#267화
옥상에 웅크리고 있던 오크가 일어났다. 물론 그를 오크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었다.
“…관이라. 아까 그 상자가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씨익 웃는 그는 마치 보물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웃었는데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는 것 같았다.
퀸이 도주한 뒤 텅 빈 옥상은 폭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파괴되어 있었다.
‘놈들이 서로 싸우다가 기력이 빠지는 순간을 노려야겠어.’
괴수를 데리고 와서 제국을 파괴하던 그 인간들까지 나타났으니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정보를 통해서 저들이 뭘 하려는 건진 알았다.
슬쩍 건물 밖을 보았다. 난리가 났다. 곳곳에서 불까지 치솟았다. 왜들 저렇게 싸우는진 모르겠지만 이런 혼돈은 그에게도 기회였고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분됐다.
오크가 슬금슬금 계단으로 향했다.
“….”
“….”
한편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수색하는 중이었는데 기묘한 조합이었지만 모두가 심장을 졸이고 있었다. 어디서 퀸이 튀어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고 공포영화를 보듯 마음을 졸여야 했다.
김우태가 말했다.
“전 호실을 이렇게 다 뒤져야 하나?”
“아니요. 문이 닫힌 곳으론 못 들어갔을 거예요.”
부수고 들어갔다면 밖에 흔적이 있을 거다. 자유롭게 잠긴 문을 열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아! 그러네! 저기! 손잡이 부서졌다!”
왼쪽 문이 부서진 것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도화지가 망치를 들고 앞으로 나갔다.
벌컥!
문이 열리자마자 붉은 안개와 도화지가 밀려들었지만, 안쪽 벽이 뻥! 뚫려 있었다.
“…어라?”
잔뜩 긴장하고 들어왔는데 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잠깐 당황했을 때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윽!”
로드의 목소리였다.
“이런! 뒤다!”
옆 호실로 돌아서 우리 뒤를 노린 퀸이 복도에 있던 로드를 노린 것이다.
퍼퍼벅!
로드가 급히 마법을 치며 대비했지만, 퀸의 손은 가볍게 방어를 뚫고 들어와 로드를 때렸다.
“…쿠흑!”
명치를 맞고 날아간 퀸에게 내가 화살을 쏘았다. 워낙 좁은 복도였기에 바로 앞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피할 수 있는 거리는 없었다.
퍼퍼퍼퍼퍽!
다섯 발의 회전 화살이 그녀의 등을 파고들었다. 그녀 역시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는데 그러면서 몸을 뒤틀어 왼쪽 문의 손잡이를 부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저쪽!”
피의 군주와 도화지가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더니 낭패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로 올라갔어!”
“뭐?”
급히 안으로 들어갔는데 화장실 천장이 뚫려 있었다.
“위험해.”
사람이 겨우 기어서 이동할 정도의 공간밖에 없는 곳으로 들어갔다간 퀸에게 잡혀 죽을 거다. 방금처럼 우리 뒤를 기습할 수도 있었다.
“일단 물러나!”
복도로 나온 우리는 가장 넓은 공간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 앞이다.
“이봐, 괜찮아?”
“…곧 회복할 거다.”
로드가 박살 난 가슴을 손으로 잡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피의 군주가 말했다.
“이렇겐 안 되겠어. 내가 퀸을 찾겠다.”
그러더니 자신의 수족을 불러 모았다. 마치 불이 난 것처럼 주변이 짙은 안개로 꽉 찼다.
피의 군주가 말했다.
“싸우려 하지 말고 찾기만 해. 아무리 변신을 했어도 그 괴물에게 맞으면 죽는다.”
퀸은 그 존재 자체가 파괴였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진 모르겠지만 마법까지 손으로 부숴버리는데 안개로 변했다고 안전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나침반을 매만졌다. 일단 그녀를 특정하긴 해도 방향만으론 완벽히 막을 수도 찾을 수도 없다. 탁 트인 개활지면 모르겠지만 여긴 층층 높은 빌딩이라서 더 정밀한 탐지 도구가 필요했다.
“누나, 어때요?”
“언제부턴가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어. 아마 그 마법진인가 뭔가 때문인 것 같아.”
로드가 입을 열었다. 뒤에서 그의 시녀가 접근했기 때문이다.
“관은 발동하기 전엔 마력이 흐르지 않으니까 무조건 부서지지 않게 지켜야 해.”
“알겠습니다. 마이 로드.”
기회가 오면 바로 사용해야 하니 멀리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가까이 두면 퀸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거기, 너희.”
“네.”
관을 든 사내가 대답했다.
“저 안으로 들어가서 관을 지키고 있다가 부르면 나와. 저기라면 어디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을 거다.”
로드가 말한 곳은 엘리베이터였다.
“알겠습니다.”
한 사내가 문을 열자 다른 사내가 관을 들고 줄을 잡았다. 일반인이라면 저렇게 매달려 있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이들은 뱀파이어다.
‘과연 저기라면 모든 층을 자유롭게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겠는데?’
엘리베이터가 운행 중이라면 엄청나게 위험했겠지만, 지금은 전기가 끊긴 상태다.
“닫아.”
그의 말에 시녀가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 그녀 역시 보통 힘이 아니었다.
로드가 우릴 보며 말했다.
“봐서 알겠지만, 퀸은 우리 모두를 노릴 거다. 뒤를 노릴 수도 있고 위에서 떨어질 수도 있어. 언제든 반격할 수 있어야 해.”
김우태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는 너는, 반격했고?”
“곧 할 수 있게 될 거다.”
로드가 무서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뭘 하려는 진 모르겠지만 자신에 찬 얼굴을 보니 숨기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박쥐가 퀸을 찾으면 우린 그녀를 유인한다. 너.”
로드가 나를 보았다.
“아까 그 마법 아이템, 다른 것도 있겠지? 퀸을 잠깐 잡아둘 수 있는 것도 있나? 발목을 잡는 다던지.”
“그런 건 없는데?”
있어도 내가 알려줄 것 같냐?
도화지가 뜬금없이 로드를 보면서 말했다.
“당신, 엘프야?”
“그게 왜 궁금하지?”
“당신을 찾으려는 여잘 만난 적이 있었거든.”
“나완 관계없는 일이다. 지금은 퀸에 집중해.”
로드가 칼같이 자르자 도화지가 어깨를 으쓱하며 이번엔 시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상하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말이지….”
시녀는 도화지가 자길 바라보는데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고 로드만 보고 있었다.
이때 바닥이 흔들렸다.
“아래다!”
로드가 계단으로 향했다. 모두 보통이 아니었기에 한층 정도 내려오는 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저기!”
복도 끝에서 퀸의 모습이 보였다. 붉은 안개에 덮여 있었는데 옆엔 뱀파이어 하나가 축 늘어져 있었다.
-빨리!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했는지 피의 군주는 허공에 피를 토하면서도 외쳤다.
콰르르르르르!
로드의 손에서 떠난 마법이 퀸에게 날아갈 때 퀸은 벽을 부수고 옆으로 사라졌다.
“젠장!”
로드가 급히 피의 군주에게 다가갔다.
“…흐으 …괴물은 괴물이군.”
피의 군주가 벽에 등을 기대앉았다.
“젠장. 피가 부족해.”
그 말에 도화지가 흠칫 물러났다. 김우태도 무서운 표정으로 경고했다.
“아서라. 네 이빨부터 부러진다.”
도화지에게 뱀파이어 이빨이 박힐까?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피의 군주가 농담이었다는 듯 일어나서 웃었다.
“이번엔 실수했지만, 곧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다. 위엔 공간이 좁아서 퀸도 빠르게 이동하지 못해. 곧 내 아이들이 찾아낼 거다.”
로드가 물었다.
“박쥐, 관을 엘리베이터에 뒀다.”
“그렇게 부르지 마라, 변절자야. 나는 모든 생물의 주인이다.”
피의 군주가 송곳니를 드러냈지만, 로드는 웃지도 않고 다시 말했다.
“퀸의 속도나 파괴력, 회복력을 보면 계속 일정했어.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거다. 종합적으로 볼 때 우리의 몇 가지 타격이 정확하게 먹혀들면 허릴 잘라버리는 정돈할 수 있어.”
허리를 자른다는 말에 김우태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 정도면 죽은 거 아니냐?”
“그랬다면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겠지. 퀸은 무한으로 재생한다.”
그 말에 피라미드에서 나온 붉은 혈관이 떠올랐다. 그 안에서 벌레들이 태어나는 걸 봤다.
“머리나 심장에 원천이 있을 거야. 그걸 관에 넣어서 태워야 돼.”
그 말에 피의 군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궁에 있을지도 몰라. 그녀는 벌레의 어머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손가락 하나 남김없이 관에 넣는 거로 하지.”
참으로 끔찍한 소릴 지껄여대고 있었지만 그게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 건 그녀가 퀸이기 때문일 것이다.
피의 군주가 갑자기 정색했다.
“아래다! 어서!”
그가 계단을 향해 뛰었다. 그의 부하들 역시 하나하나가 백작급이었기에 능력이 출중했는데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태창 바이오에서 봤을 때보다 몇 배는 강해진 피의 주인은 계단은 내려오자마자 안개로 변했다.
“저거 되게 편해 보이네.”
“오빠도 날아다니고 싶어요?”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아무 데서나 오줌싸도 사람들은 그냥 비 오는 줄 알 거 아니야?”
“킥킥! 뭐야! 그게!”
도화지가 웃으며 김우태의 가슴을 때렸다.
“….”
“….”
나와 로드가 멍하니 바라보자 김우태가 헛기침을 했는데 로드가 물었다.
“너는 무슨 역할을 하지?”
김우태가 궁금한가 보다. 그럴 만도 한 게 김우태는 전투가 벌어지면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고 그의 인형도 지금은 도화지의 어깨에 매달려 있다. 생각해보니까 저것도 이상하네. 저 인형은 절대 김우태한테서 떨어지지 않는데?
“얼굴마담.”
“…장난할 때가 아니다. 네 능력을 알아야 퀸을 잡을 때 수월하다.”
“장난 아닌데?”
김우태가 팔뚝을 걷어 보여주자 로드는 얼굴을 홱 돌려버렸다.
‘잘했어!’
김우태의 능력을 알려줘서 좋을 게 없었다. 저게 농담인지 진짜인진 몰라도 어쨌든 로드는 김우태와 더 말을 섞길 싫어했다.
“잠깐!”
우린 중앙으로 가서 대기했다. 붉은 안개가 사라져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로드가 말을 이었다.
“계속 시간을 주면 퀸이 우리 패턴을 익힐 거다. 지금 잡아야 해. 너, 활을 두 번 연속해서 쏠 수 있지?”
“아마도?”
“허리를 노려. 너와 나의 타격이라면 끊어낼 수 있을 거다.”
그야 다 명중했을 때 얘기지. 조금만 빗나가도 퀸은 자릴 피해버릴 거다.
로드가 도화지에게 얼굴을 돌렸다.
“너는 언제든 그녀의 머리를 노리고. 그 망치, 쓸만하겠지?”
“한 대 맞아볼래?”
시녀가 도화지 앞을 막았다. 로드는 그런 시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내게 말했다.
“단 한 번이야. 관에 넣기만 하면 돼.”
로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김우태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내게 바짝 붙었다. 그러더니 치익, 내 목에 뭘 분사했다.
“…엥?”
나도 놀라서 움찔했다. 가끔 드라마를 보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타이밍에 PPL이 들어가는데 딱 그런 기분이었다.
‘갑자기 뭘 하는….’
내가 황당해서 김우태를 바라보는데 그가 내게 윙크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향수 지속시간 4시간 효과가 발동했습니다.』
‘어라…?’
김우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제 좀 낫네. 너네, 관리 좀 하고 살아라. 땀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알아? 아리따운 여성분도 있는데.”
김우태의 말에 도화지가 호호홋! 웃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리고 이 순간 머릿속으로 로드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퀸을 잡으면 네놈부터 머리를 부숴주마.】
김우태가 어지간히 싫었는지 로드의 마음이 또렷하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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