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빠져나가지 못하고 옥상으로 올라와서 숨어 있었나 보다. 저런 놈에게까지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는 다시 퀸에게로 날아갔다.
“….”
옹크린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괴물 같은 것들….’
사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는 오크다. 그리고 이제 알았다. 저놈들은 자신이 어쩔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놈들이 떠난 빈자릴 차지했을 때까지만 해도 무한한 자신감이 있었다. 퀸이든 뱀파이어든 소문은 지겹게 들었었지만 마주친 적도 없었고 강해 봐야 얼마나 하겠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 괴물들은 초월적인 존재들이었다. 팔이 부러져도 금세 멀쩡해지고 가슴에 총알이 박혀도 툭, 밀어내버린다.
이전의 힘을 모두 되찾으면 저것들을 이길 수 있을까?
‘불가능해.’
싸움을 지켜보며 오크는 머릴 절레절레 흔들었다.
솨아아아아.
내리는 비를 맞으니 분노가 치밀었다. 이렇게 쥐새끼처럼 숨어 있으려고 이 세계로 건너온 게 아니었다. 모멸감이 들었다.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고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이 비가 아니었다면 더 참았겠지만 그는 생각했다.
‘놈들을 죽여야 해. 그래야 내가 지배할 수 있다.’
저놈들만 사라지면 이 매력적인 세상을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죽이지? 퀸은 무적이었고 마법사는 사람의 정신까지 조종하는 것 같았으며 뱀파이어는 안개로 변하기까지 한다. 놈들은 부하들까지 있었다.
모든 것이 열세인 지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저 여자가 죽을 때까진 기다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놈들이 서롤 죽이려고 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약한 놈들이 강한 하나를 처리해주면 고마운 일이었다. 저런 괴물들이 있는 걸 알았다면 계속 제국에 있었을 것이었지만 이젠 돌아갈 방법조차 없었다.
빠아아아아아앙-!
아래 도로에선 계속해서 소란이 벌어졌다.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사람까지 있었고 몇 사람은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이런 혼란은 오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어쩐다….”
그가 고민할 때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다.
‘어? 저놈들은?’
.
.
.
나는 김우태에게 빠르게 말했다.
“우선 퀸부터요!”
여기까지 계단을 올라오면서 뒤의 일까지 모두 계획했다. 로드의 여자가 함께였기에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김우태나 도화지도 퀸 다음에 누굴 노려야 하는지 직감하고 있었다.
피잉-!
옥상에 들어서자마자 시위를 놓았다.
콰과과과과!
내 손을 떠난 화살은 단 한발이었지만 그것들은 순식간에 다섯 갈래로 늘어나서 퀸에게 날아갔다.
“…!?”
당황한 것인지 퀸은 피하지도 못하고 화살에 맞아 난간에 처박혔는데 피의 군주가 크하하하! 웃었다.
“잘했다! 잘했어!”
로드의 반응은 반대였다.
“올라오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만 로드께서 위험하신 것 같아서…!”
시녀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외치자 피의 군주가 말했다.
“지금은 어린애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라고! 마법이 풀리기 전에 어서 퀸을 관에 넣어야 해!”
나는 고갤 끄덕이며 싸움판에 뛰어들었다. 범이와 가이, 아리를 예원이 곁에 두고 왔다. 여차하면 녀석들이 예원이를 지킬 것이다.
김우태가 로드에게 뛰어가며 그에게 물었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려줘야 우리도 대응하지 않겠어?”
“…퀸을 관에 넣으면 봉인할 거다.”
로드가 마뜩잖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 상대는 해야 한다고 여겼나 보다.
“봉인이 완성되면 관을 태워 잿더미로 만들 거고.”
“퀸이 불에 타겠어?”
“그러니까 관이 필요한 거다. 저 관이 용광로 역할을 할 테니까.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가장 뜨거운 지옥 불이 타오르면 퀸도 버틸 수 없어.”
“아, 그래? 그러면 저 관에 퀸을 넣기만 하면 된다는 거지?”
“그렇다.”
김우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다음엔?”
“….”
“퀸이 죽으면 그다음엔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생각하지 않았다.”
“에이, 선수끼리 왜 이래?”
“…모른다니까!”
귀찮다는 듯 마법을 쓰며 뛰어가 버리는 로드를 보며 김우태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에 서툰 놈이네.’
김우태가 도화지에게 눈짓했다. 그녀도 망치를 들고 퀸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르고 있었는데 이놈들은 우리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모르고 있었다. 스킬 자체도 그렇지만 우리가 마지막으로 했던 필라테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이었다.
“여어, 너. 꽤 하는데?”
붉은 안개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목덜미에서 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섬뜩했지만 후려치는 건 좀 더 미루자.
“더 압박해. 그러면 내가 결정타를 먹일게.”
피의 군주가 그렇게 말하고 스윽 사라지자 나는 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표독한 눈으로 나를 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걸 맞고 일어나?’
화살은 그저 다섯 개로 눈속임을 일으키는 게 아니었다. 분신이 아닌 실체로 5배 위력을 지니는 것이고 ‘인내’ 스킬까지 더해서 철판도 쉽게 뚫어버릴 위력이었다.
“다 모였네.”
퀸이 내 주변을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오늘 다 죽여줄게.”
분명 그녀가 불리한 상황일 텐데도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문득 피라미드가 생각났다. 그것이 그녀를 만들었다면 그녀는 감정의 기준이 우리와 다를 것이었다.
‘퀸, 마법사, 뱀파이어….’
이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했는지 그 단편을 모두 보았다. 재능마켓의 목적이 세상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면 이들은 절대 악이자 질서를 무너뜨리는 존재들이었다.
타앙-!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앗! 뭐야! 아팟!”
도화지가 인상을 팍 썼다. 저쪽 건물에서 뭔가가 날아와 도화지를 때린 거다. 워낙 출중한 방어력 덕분에 관통하진 않았는데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군대에서나 볼법한 흔적이었다.
“뭔데?”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이미 고통과 상처는 김우태가 모두 가져갔지만 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오릴 노린다는 것이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실수였다.”
로드가 말했다. 덤덤하게 말하는 놈의 표정에서 나는 다른 것을 느꼈다.
‘일부러?’
반대편 건물에 총을 든 사람이 있다면, 그 총구가 퀸을 노렸다면 실수도 일어날 수 있었겠지만 지금 도화지와 퀸의 거리는 꽤 있었다.
‘저 자식이?’
놈은 실험해본 거다.
‘나중에 보자고.’
나는 활을 들고 자세를 낮추며 옆으로 돌아갔다. 도화지만큼의 방어력이 없었기에 퀸과 접근전을 하면 내게 불리하다.
“또 그러면 너부터 머릴 날려줄 거야!”
도화지가 로드에게 소리치며 돌아섰다. 새삼 놀랍다. 이젠 총을 맞아도 죽지 않을 만큼 도화지가 강해진 거다. 사실 더 깊이 박혔어도 김우태가 있는 한 그녀는 죽지 않는다. 이런 조건만 본다면 지금 퀸을 상대하기 가장 적합한 사람은 도화지였다.
“이얍!”
하지만 그녀는 순발력과 속도가 퀸을 따라잡질 못한다. 퀸도 그걸 아는 듯 비웃으며 로드에게 뛰어갔다. 말이 뛰는 거지 휙! 움직이면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그걸 피의 군주가 두고 보지 않았다.
화악-!
손톱이 나타나 퀸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예상했다는 듯 허공에서 퀸이 몸을 뒤집으며 두 발로 붉은 안개를 찼다.
“쿨럭!”
안갯속에서 피가 한 움큼 쏟아져 내렸는데 로드의 마법이 퀸을 덮쳤다.
화아아아악-!
검은 파동이 퀸을 때릴 때 내 화살도 날았다.
피피피피핏!
강력한 회전을 먹은 화살 다섯 발이 퀸에게 향하는 동시에 2회차 화살도 곧장 뒤따랐다. 무려 10발의 화살이 거의 동시에 퀸에게 날아간 것이다.
“잡았다!”
피의 군주가 어디선가 외칠 때 로드가 머릴 흔들었다.
“아직이다! 방심하지 마!”
파파파파팍!
로드의 마법과 내 화살들이 퀸을 난도질했다. 그걸 맞은 퀸이 저쪽으로 날아갔지만, 바닥에 떨어질 때는 고양이처럼 몸을 뒤집어 사뿐 안착했다.
이글이글 분노로 타오르는 두 눈은 우릴 바라보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 스르륵 아문다. 회복에도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고 재생이 반복하면 당연히 약해져야 하건만 퀸은 그 법칙마저도 무시했다.
“아! 환장하겠네!”
피의 군주가 미치겠다는 듯 입가에 피를 머금고 나타나 외쳤다. 제대로 얻어맞았는지 낭패한 몰골이었지만 그 역시 괴물이다. 저 정도 상처론 절대 죽지 않는다.
어차피 공격 능력이 부족하단 걸 알고 있는 김우태는 계속 로드의 근처에 얼쩡거렸는데 틈만 나면 물어봤다.
“산 제물은 왜 필요한 거야?”
“….”
마법을 준비하랴 퀸이 달려들면 피하랴 정신없는 와중에도 끈질기게 물어오는 통에 로드는 자기도 모르게 몇 마디 대답했다.
“이곳의 마력을 증폭하기 위해서다.”
한 차례 공방이 더 벌어지고 난 후에 또 김우태가 물었다.
“퀸은 왜 혼자야? 다른 괴물들은 어쩌고?”
“새끼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퀸이 죽는다면 그것들도 자연히 힘을 잃게 될 거다. 모든 권능은 그녀로부터 이어지니까.”
우리가 합류한 이후로 퀸은 몇 번이나 궁지에 몰렸었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엄청난 맷집이었는데 이러다간 밤새 싸워도 변화가 없을 것 같았다.
“마법진은 얼마나 지속해?”
“해가 뜰 때까지.”
“그 전에 퀸을 처리 못 하면?”
“우리가 다 죽겠지. 퀸은 지금 마법진의 방해로 권능의 절반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다.”
“허얼, 그런데도 저렇게 세다고?”
“그래서 우리가 이 모든 걸 준비한 거야! 이제 그만 좀 닥쳐!”
“에이,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닳는 것도 아닌데.”
후우우웅!
도화지의 망치가 아슬아슬하게 퀸의 등을 스쳤다. 저거에 맞았다면 퀸도 큰 충격을 받았겠지만 망치는 퀸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도화지가 느리다기보다는 퀸의 동작이 워낙 빠르다.
그래서 내가 퀸의 발을 붙잡아야만 했다.
“누나! 상황 봐서 그걸 쓸게요! 놀라지 마세요!”
“응! 뭐든 다 해! 딱 한 대만 패자! 아오!”
술래잡기하는 것처럼 줄기차게 따라다녀도 한 방을 못 맞추니 도화지도 짜증이 치민 것 같았다.
‘확실할 때 완벽하게.’
재능마켓을 이용할 수 없지만 개인 창고는 작동하고 있어서 드링크를 얼마든지 꺼낼 수 있었다. 난쟁이들이 만든 ‘개량형’ 드링크는 나도 처음 써보는 것이어서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퀸을 당황하게 할 정도만 되어도 기선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휘익-!
퀸이 이번엔 나를 노리고 움직였다. 백파이어는 안개로 변할 수 있어서 까다롭고 도화지는 몇 번 때려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니 손쉬운 상대를 찾는 것이다.
콰악!
그녀의 손을 활대로 막았다.
“…?”
내가 막아낸 것이 의외였는지 그녀의 눈이 커졌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그녀가 이렇게 바짝 접근한 것은 처음이었고 내 무기는 활이라 거리가 필요하지만 이럴 때 유용한 게 있다.
“….”
붉은 안개가 그녀의 뒤로 뭉치는 게 보였다.
“이건 선물.”
내가 웃으며 나와 그녀의 사이에 병 하나를 툭 놓았다.
쩌엉-!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