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263화 (264/277)

#263화

“크윽! 이봐! 어떻게 좀 해봐!”

피의 군주가 가까스로 퀸의 손아귀를 떨쳐내며 외쳤다.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마법진이 작동한 게 맞아?”

“그래서 이 정도인 거다!”

“이런 제길!”

퀸이 코웃음 치며 다시 피의 군주를 따라 움직였다. 마법진이고 뭐고 이런 상황이라면 둘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괴물 같은 x!”

피의 군주는 계단을 뛰어오르며 욕을 했다. 퀸이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현격히 격차가 날 줄은 몰랐다. 마법진이 그녀를 약화했다지만 순간적인 속도나 파괴력은 여전히 그를 상회하고 있었기에 잡히면 팔다리가 뚝뚝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나마 결정적인 순간에 로드가 마법으로 퀸을 위협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 모두 멀쩡했지만 스치기만 해도 이 균형은 깨져버릴 것 같았다.

“이렇게는 안 되겠어! 시간을 벌어!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나 혼자? 미친!”

로드가 저쪽으로 멀어지자 피의 군주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의지를 전했다.

-막아!

사방에 흩어져서 마법진에 필요한 물건들을 지키던 부하들이 복도로 튀어나왔다.

‘오늘 못 잡으면 영원히 저 x를 피해 다녀야 할 거야.’

퀸은 이상할 정도로 강한데 그게 물리적이나 마법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치명적인 공격을 해도 금세 회복하고 고통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로 그녀의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맞으면 복구가 안 된다. 마치 그녀의 몸엔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세균이 잔뜩 있어서 회복을 방해하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너무 늦은 건가?’

이것도 빠르다고 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퀸은 이미 과거의 힘을 상당히 되찾은 것 같았다. 핵폭탄이라도 떨어지지 않으면 저 괴물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지 상상조차 힘들었다. 그나마 로드가 무언가를 해 본다고 하니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퀸의 옆에서 그의 부하가 불쑥 튀어나와 그녀의 등을 덮쳤다.

“잘했어!”

그걸 본 그의 눈이 잠깐 반짝했지만, 곧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와직! 퀸의 몸이 둥실 뜨더니 오른발이 뒤를 그대로 걷어찼다.

“허억-!”

그녀의 작은 발은 그대로 부하의 배를 관통해버렸다. 저건 불가능한 장면이다. 보통은 뒤로 날아가 처박혀야 하는데 순간적인 속도와 파괴력이 극한까지 차올라서 그대로 뚫어버린 거다. 신발을 신지 않은 그녀가 발끝을 칼처럼 오므려 무기로 쓰고 있다. 그야말로 온몸이 흉기나 다름없었다.

“…끄으.”

그의 부하 역시 뱀파이어기에 저 한 수로 즉사하진 않았지만 뒤로 주춤 물러나며 전투 기능을 상실했다. 당분간은 회복에 전념해야 할 거다.

“막아! 죽더라도 막으라고!”

그가 버럭버럭 소리치자 부하들이 더 모여들었다. 엘리베이터를 열고 나온 부하부터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온 부하까지 모두 퀸을 향해 달려들었다.

“흥!”

퀸은 가소롭다는 듯 뱀파이어들을 보면서 손을 휘둘렀는데 그럴 때마다 접근했던 뱀파이어들이 벽에 처박혔다. 벽을 뚫고 오피스텔 안으로 날아간 뱀파이어도 있었다.

‘더 빨리!’

이 건물의 계단은 두 곳이다. 주로 중앙 계단을 통로로 쓰지만, 오른쪽에도 비상용 엘리베이터와 좁은 계단이 있었다. 이미 퀸도 그걸 파악했는지 단 한 번의 혼동도 없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10층 이상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길 반복하면서 추격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때 건물 전체에서 어떤 압력이 느껴졌다.

‘로드인가?’

그 녀석이 무언가를 한다더니 발동한 것 같았다.

으드드드드드.

건물이 조금 흔들리며 돌가루들이 떨어지고 벽에 실금이 갔다.

‘무너뜨리려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마법진도 사라질 테니 다른 방법을 썼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불안해졌는데 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가 준비한 게 고작 이거였어?”

부하들은 다 어디 가고 벌써 따라왔나?

“미련하구나. 박쥐.”

“닥쳐!”

퀸의 입술이 뒤틀렸다.

“내 피를 가져가면 더 강해질 줄 알았나 본대. 나는 네가 흡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이 세상이 조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생물이라고. 나 또한 그렇게 아이들을 만들고.”

“그러니까 죽어! 괴물아! 너 같은 건 존재해선 안 되는 거였다고!”

그가 품에서 칼을 던지며 외쳤다.

피핏-!

그녀의 볼을 살짝 스치고 간 칼이 뒤로 쭉 뻗어 날아갔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박쥐. 사람에게 기생해 사는 건 우리 아이들과 같지 않나?”

훅 날아오른 그녀가 발을 뻗었다. 피의 군주가 연기로 연해 사라지자 그녀의 발이 벽을 때렸는데 벽이 터져나가며 뻥 뚫린 공간이 나타났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도망칠 수 없다는 거, 너도 알잖아?”

그녀가 존재감을 추적하며 시선을 옆으로 돌릴 때 한 사람이 저쪽 복도 끝에서 외쳤다.

“인간들이 도울 거다! 옥상으로 올라가!”

그 목소릴 들었는지 붉은 연기가 계단을 타고 위로 향했다.

스윽.

퀸이 로드를 바라보았다.

“다음은 너야.”

“….”

퀸이 계단을 뛰어올랐다. 로드도 정신을 집중하며 그녀를 추적했는데 그의 사고는 이미 건물 밖으로 무럭무럭 확장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관에 가두면 죽일 수 있어. 다른 방법은 없다.’

그가 준비한 수많은 물건과 마법진은 각자의 역할이 있었고 그녀를 관에 가두는 건 피의 군주와 자신이 해야 했다. 저렇게 날뛰는 맹수를 어떻게 가둘지 암담하겠지만 큰 코끼리도 마취총에 쓰러진다.

‘한 방이면 돼.’

반대편 건물에 저격수들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마법진 때문에 마력이 깃든 물건이나 생명체는 드나들지 못하겠지만 탄환은 순수한 물리력이니 퀸을 사선에 놓기만 하면 된다.

‘딱 한 방만 치명상을 주면….’

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단을 오르는데 뒤로 누군가 따라붙었다.

“마이 로드!”

“왜 왔나? 너는 도움이 안 돼. 제물을 지켜!”

“그들이 왔습니다. 인간들이요!”

“…인간들?”

“그들이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권능이 파고들려면 마음속에 뭔가 비틀린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전혀 통하질 않는 세 사람이 있었다.

“아니, 그놈들도 제거해야 돼. 놈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퀸이 죽기만 바라고 있다가 우릴 치겠지. 가서 놈들을 감시해!”

“알겠습니다. 로드.”

시녀가 사라지자 로드는 계속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러면서 떠올렸다.

‘마지막에 살아 있는 건 나 혼자여야만 해.’

그래야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그 인간들이 어떻게 그런 강한 힘을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국엔 적일 뿐이었다.

순식간에 옥상으로 올라오자 퀸이 피의 군주와 엉켜있는 게 보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내 아이들이 깨어날 거야. 그때까지 충분히 즐기라고.”

“어쩔 생각인 거야? 도시를 다 파괴하기라도 할 거야?”

“그렇다면?”

“멈춰!”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어차피 너도 인간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건 똑같지 않아?”

“나는 정도란 게 있다고! 너는 그저 짐승처럼 사냥할 뿐이잖아!”

피의 군주가 그녀의 뒤로 내려서며 날카로운 손톱을 휘갈겼다. 하지만 퀸은 여유 있게 상체를 뒤로 움직이며 공격을 피하더니 피식 웃었다.

“누가 누구보고 짐승이래?”

이때였다.

스아아아아아악!

무언가가 퀸을 향해 접근했다.

“…!?”

퀸이 급히 몸을 옆으로 틀었다. 반대편에서 날아온 빠르고 작은 것이 그녀의 옆구릴 관통하며 지나갔다.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가 저쪽 옥상을 바라봤는데 또 하나의 탄환이 날아왔다.

“…흥!”

그녀가 몸을 틀었다. 어디에서 발사되는지 알면 피할 수 있었다.

“재미있네. 고작 이따위로 날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니?”

자세를 낮춘 그녀의 몸에서 탄환이 툭, 떨어져나왔다. 이 틈에 로드가 피의 군주에게 말했다.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해. 아랜 너무 좁아서 활동하기 어렵다. 내가 지원할 테니 네가 그녀를 쓰러뜨려.”

로드가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손가락으로 어지러운 도형을 만들어 냈다. 엘프에게만 허락된 숭고한 의식이 흑마법으로 변질하여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내가 왜 이러고 있었겠냐?”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피의 군주가 퀸에게로 뛰어갔다. 그의 뒤로 시커먼 그림자들이 퀸에게 달려들었는데 태초부터 세상 너머에 존재하던 악마의 기운이었다.

“쓸데없는….”

퀸이 웃으며 피의 군주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몸에 그림자들이 달라붙었지만, 공포와 혼돈은 그녀에게 전혀 파고들지 않았고 약간의 물리력만 행사할 뿐 정신적인 고통도 주지 못했다.

콰앙-!

로드가 그녀의 손에 얼굴을 맞고 저쪽으로 날아갔다. 얼마나 강한 충격이었는지 건물 밖으로 튕겨 나갈 것 같았는데 허공에서 벽에 막힌 듯 그의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그 마법이란 게 오히려 너희를 가두고 있는 것 같은데?”

그림자 달라붙은 손을 혀로 핥는 그녀를 보며 로드는 소름이 돋았다. 모든 법칙을 무시하는 저런 생물이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란 말인가? 그의 모든 공격 마법도 무용지물이었고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으면 머리가 부서질 것이었다.

피피피피핏!

그녀를 향해 저격수의 탄환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귀찮다는 듯 몸을 움직여 피하는 퀸은 로드를 보며 말했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

“네 목적이 뭐지?”

로드가 되묻자 퀸이 말했다.

“시끄러워서. 나는 조용한 게 좋아. 여긴 너무나도 번잡하다고.”

“그래서 다 죽이겠다?”

그녀가 손을 들었다. 무언가를 느끼려는 듯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웃었다.

“내 아이들은 그렇게 영리하지 않아. 그저 배고프면 먹고 움직이는 게 있으면 사냥할 뿐이야. 그런다고 이 세계가 모조리 파괴되진 않을 거고.”

그녀의 손이 아랫배로 향했다.

“이제 곧 아이들이 깨어날 거야. 그 순간을 보고 싶은데. 도와주겠어?”

“….”

인간들은 지금 자기들이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있는지 모를 것이다. 퀸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핵폭탄과 버금갈 파괴력을 지녔다. 물론 혼자서 단시간에 그만큼 대규모 살상을 일으킬 순 없겠지만 그녀의 자식들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동 시간에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수를 생각하면 과한 비교도 아니었다.

‘내 구속 마법이 통하려면 저 괴물이 큰 상처를 입어야 하는데….’

박물관을 털어 가져온 물건들도, 어렵게 찾은 산 제물도 퀸이 첫 번째 조건을 맞춰야 쓸모가 있다.

-정신 놓지 마! 계속 공격하라고!

붉은 연기 속에서 음성이 터졌다. 피의 군주가 퀸에게 접근하며 외친 것이다.

그 목소리에 다시 로드의 손이 움직였다. 그는 고통과 상처를 먹고 사는 마법사.

‘내게 힘을 줘.’

그의 영역이 건물 주변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퇴근길 번화가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몸과 마음에서 상처를 읽어냈다.

‘더….’

행복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은 먹고살 만한데도 더 많은 것을 원했고 그 욕심과 욕망은 결국 자신을 괴롭혔다.

‘더…!’

그의 두 손이 검게 물들었다. 수만 명의 상처가 모여 뾰족한 창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잡았다.”

퀸의 손이 덥석 피의 군주의 목을 움켜쥐었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