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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262화 (263/277)

#262화

브라칸 빌딩 1302호.

“…시작됐나?”

아직도 인간의 몸이 익숙하질 않았다. 이 연약한 피부와 나약해 보이는 이목구비, 무엇보다 강인한 송곳니가 없다. 하지만 이 세계로 넘어와서 깨달은 건 여기선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몬스터도 없고 맹수는 다 동물원이나 오지에 있었다. 허약한 인간들이 지상 최강의 생명체로 군림하는 세상!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읍읍읍!”

구석에서 집주인이 그를 보며 할 말이 있다는 듯 버둥댔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작은 TV를 보면서 며칠간 이 세계를 익혔다. 그가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안에 잠들어 있는 쿤드라 덕분이었다. 그것이 마력을 감지했고 이 건물로 이끌었다.

그리고 TV는 이제 꺼져있다. 모든 기계와 빛이 사라졌다. 시끄러운 경보와 함께 암흑으로 물들었지만 창문이 워낙 커서 움직이는 것엔 지장이 없었다.

스윽.

그가 창가에 섰다. 저 아래, 엄청난 인파가 모여있었다.

‘그놈들도 나와 같은 모습으로 변했겠지. 그렇다면 내가 죽일 수 있어.’

놈들도 마력을 감지해서 이곳에 온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건물이 놈들의 아지트이거나 혹은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내 제국을 다시 일으킨다.’

전엔 피와 살육으로 오크 세상을 만들었다면 이곳에선 더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세력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 약한 육체 안엔 힘이 있다. 인간은 할 수 없는 파괴적인 강함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원래의 힘을 다 회복하는 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인간 따윈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었다.

‘저놈들이 경찰이란 놈들이겠지?’

이 육체에 깃든 기억 일부를 얻었기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지만, 이전의 기억과 혼재되어서 헷갈릴 때가 있었다.

꾸르르륵.

배가 요동치자 그가 냉장고로 걸어갔다. 냉장실에서 고기를 꺼냈다. 익히지 않은 상태의 삼겹살. 비닐을 뜯고 고기를 입에 넣고 씹었다. 200g도 되지 않는 고기라 순식간에 그의 뱃속으로 들어갔지만, 이 육체는 이 정도만으로도 포만감을 느꼈다.

그가 다시 창가로 걸어갔다. 자신의 성에서 제국을 바라볼 때와는 조금 다른 감정이 든다. 막 새로운 시작의 기로에 서서 그런지 기분 좋은 긴장감도 들었다.

그러다가 저쪽 아래에서 누가 건물 밖으로 뛰어내리는 게 보였다.

‘저놈?!’

제국을 침략했던 그 인간! 등에 멘 활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저놈도 있다는 건 이곳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 맞아.’

이해가 가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자신은 여길 오기 위해 제국의 모든 걸 총동원했었다. 다시 돌아갈 방법도 없었다. 그런데 저놈은 두 세계를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것 같다. 그 말인즉슨 저놈을 잡으면 그 방법도 자연히 얻게 된다는 뜻이었다.

‘내 군대를 데려올 수 있다는 거다.’

그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인간 정도는 쉽게 찢어발기는 육체를 타고 난 오크들이 제모습으로 올 순 없겠지만 그의 군대가 다 넘어오면 이곳의 인간보단 강력할 것이었다.

‘슬슬 나가봐?’

놈들이 이곳에서 뭘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무언가 시작되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읍읍읍읍!”

버둥대던 인간이 갑자기 축 늘어졌다. 포기한 것 같은 얼굴을 보며 그가 웃었다. 바지에 오줌이라도 싼 건가? 그가 비웃으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라고.”

그 말을 남기고 문을 열었다.

‘옥상으로 가자.’

아래에서 놈들이 뭘 하려는 진 모르겠지만 당장 마주칠 필욘 없었다.

‘전쟁의 기본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

맹수로서의 본능이 그를 이끌었다. 비록 군대는 없었지만, 그는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했다.

휘이이이이잉.

바람이 불었다. 시선을 멀리했다. 빼곡하게 솟은 빌딩들이 보였다.

대한민국 강남.

오크 제국을 일으켰던 그였지만 이 도시는 참으로 경이롭다. 인간이 이토록 눈부신 문명을 이룩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모두 내 것이 될 것이야.’

난간에 서 있던 그가 어떤 것을 감지하곤 흠칫 놀랐다.

“마법…?”

무언가 건물을 감쌌다. 그가 손을 난간 밖으로 뻗어보았다.

‘나갈 수 없다?’

손이 난간 밖으로 뻗질 않았다. 강력한 구속이 그의 손을 외부로 보내지 않는다.

‘이 정도의 마법을 쓸 수 있는 자라면….’

그에게도 반드시 위협이 될 것이었다.

“죽인다.”

그가 섬뜩하게 웃으며 계단으로 걸어갔다.

이제 사냥할 시간이다.

.

.

.

“방금 저 위에 누가 서 있지 않았나요?”

강나은이 건물을 올려보며 말했다. 옆에서 윤일권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는 못 봤는데요?”

“그래요? 누가 서 있었던 것 같은데. 흐음, 아직 나오지 못한 사람이 있겠죠?”

“대부분은 빠져나온 것 같지만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기동대를 언제 투입해야 할까요?”

“그건 조심하셔야 해요. 우리 팀장님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아시잖아요.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우리 편끼리 총질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전례가 있어서 그런지 윤일권도 몸을 사렸다. 그 마법이란 걸 아직도 믿긴 어렵지만 실제로 오발 사고가 있었고 그때처럼 누군가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다면 여기 모인 민간인이 희생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었다.

강나은이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몸을 밀착하며 목소릴 낮췄다.

“우리가 개입하는 걸 꺼렸어요. 아마 지금 저 안에선 그들끼리 충돌을 시작했을 수도 있고요.”

몇 번이나 묵직한 소리가 밖으로 나왔었다.

“…그는 어땠습니까?”

윤일권이 누굴 말하는지 알았기에 강나은이 웃었다.

“이번엔 학생으로 위장했더라고요. 다음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예상도 못 하겠어요.”

“그 말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겠군요.”

“목적이 뭔진 몰라도 오늘 그 해결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을 테니까 그들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저격수 배치는 계속할 겁니다.”

“그러셔야죠. 우리도 도울 방법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강남의 좋은 점은 이쪽에 고층 건물이 있으면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높이의 건물이 솟아 있다는 거다. 저격수들에겐 최고의 환경이다.

그녀가 3층을 올려보았다.

“저기라고 했죠? 최근에 계약된 공실이.”

“원래 식당 자리였는데 커피숍을 하겠다며 찾아왔답니다.”

이 건물의 모든 부동산에 수소문한 결과 확실히 이상한 점들이 눈에 확 띄었다.

“3층에 커피숍이라니. 대충 둘러댔네요.”

윤일권이 서류를 하나 꺼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계약된 공실들 명단입니다. 박물관에서 사라진 물건들이 이쪽으로 옮겨졌겠죠?”

“아마도요. 화재 경보는 그들이 사람들을 대피시키려고 울린 것 같아요.”

“그러면 그 납치된 아이돌은 왜일까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머릿속에 ‘제물’이란 끔찍한 단어가 스쳤다가 사라졌다. 설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다가도 이 모든 일이 비상식이라 그럴 수도 있단 생각도 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지갑도 두고 나왔다고요!

-잠깐만 갔다 오면 안 돼요?

입주자들이 항의했다. 경찰들은 건물이 붕괴할 수 있다며 막아섰는데 시간이 지체될수록 항의는 더 거세질 것이었다.

“기사들이 냄새 못 맡게 단속 잘해주시고요.”

강나은이 움직이려하자 윤일권이 물었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잠깐 건물 전체를 둘러보려고요. 혹시 우리가 모르는 통로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도면은 저희가 이미 확보했습니다.”

“불법으로 뭘 어떻게 만들었을지 모르잖아요. 여기, 강남이에요.”

유흥업소만 해도 지천으로 널렸다. 그런 업소들의 특징은 경찰 모르게 외부로 빠져나가는 통로를 만들어둔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윤일권의 말에 그녀는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았다. 이면도로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이미 경찰에 소방차까지 와 있어서 인근 주민이나 상가 주인들이 다 밖으로 나와 구경하고 있었는데 방송국 차량도 하나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브라칸 빌딩.’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순히 우연일까?’

왜 하필 이곳일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녀는 팀장과 함께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다른 사건 때문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무언가 이 건물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그냥 오피스텔인데.’

이 근처엔 이 비슷한 용도의 건물이 수십 채다. 특별할 게 없다는 거다.

그녀가 건물 뒤로 돌아갔을 때 한 남자가 빠르게 뛰는 게 보였다. 퇴근 시간이니까 급히 서두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의 행동을 보며 그녀가 경악했다.

‘뭐야? 방금? 뛰었어?!’

건물 뒤엔 상가들로 통하는 통로들이 있는데 그 통로 위엔 비를 피할 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다. 높이가 적어도 4미터는 되었고 2층 창문 아래부터 뻗어 있었는데 남자가 그걸 한 번에 뛰어 올라가더니 열린 창문으로 쏙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방금 뭘 본 걸까? 일단 그쪽으로 뛰어갔다. 올려보니까 절대 뛰어오를 높이가 아니었다. 뛰어도 손가락 끝조차 닿지 않는다.

‘그 괴물 중 하나인가?’

강나은이 멍하니 위를 올려보고 있는데 또 하나의 그림자가 그녀의 뒤에서부터 뛰어올랐다.

“…허억!”

이번엔 여자다. 그리고 그 여자는 이미 그녀가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너! 너!”

강나은이 기겁하며 외쳤지만 이미 여자는 남자가 사라진 창문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그 괴물!’

중학생 정도로 보이지만 저 여자는 조폭 사무실에서 사람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괴물이었고 조우진 형사를 피습했을 거로 추정되는 유력한 용의자였다.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이 그…?’

고속도로 CCTV에 찍힌 주인공들인가? 지금도 여자가 남자를 쫓는 모양새였지 않나?

강나은은 아까 윤일권이 있던 곳으로 헐레벌떡 돌아왔다.

“그들이 왔어요!”

“누구 말입니까?”

“우리가 추적하던 그들이요!”

“언제요? 지금요?”

“네! 막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요!”

하악, 하악, 숨을 헐떡이며 말하던 강나은이 상체를 들고 입을 열었다.

“정리해보면요. 조우진 형사가 사람들을 시켜서 박물관에서 물건을 훔쳐 이곳으로 가져왔고 그사이에 그 두 사람은 추격전을 벌였어요.”

“아이돌이 납치되었고요.”

“네, 그리고 오늘 그들이 모두 저 안에 모였어요.”

“…으음. 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제가 듣기론 저들은 서로 한 패가 아니에요. 오늘 끝장을 보려고 할 것 같아요.”

이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소리가 건물 안에서부터 터져나왔다.

-꺄아아아아!

-뭐야?

-폭탄이라도 터졌나?

-진짜 위험한 상태인가 봐!

-엄마 집에라도 가 있을까?

사람들이 놀랄 만큼 안쪽에서 난 소린 심상치 않았다.

“이제….”

강나은이 입술을 깨물고 건물을 보았다.

“시작인가 봐요.”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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