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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257화 (258/277)

#257화

정글에도 가보고 사막에서도 살아봤지만 재능마켓에서 어디에도 못 가고 1년을 버틴다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 끝날 것 같지 않던 시간의 감옥에서 나온 뒤 며칠을 죽은 것처럼 쉬었다. 몸은 멀쩡했지만, 정신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토요일 아침.

“응? 오늘 데이트 있다고 하지 않았니?”

어머니에게는 며칠이 지났을 뿐이지만 내겐 1년이었다.

“이따가 가.”

“…무슨 일 있니?”

“일은….”

나는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주방엔 아주머니들이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가게는 일대 최고의 맛집으로 소문나서 온종일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밥 먹을래?”

“응!”

“잠깐만, 이모들 바쁘니까 엄마가 차려줄게!”

이 한 그릇 공깃밥을 먹고 싶었다. 1년 동안 가장 많이 떠올랐던 게 바로 이것이었다.

“요즘 그 친구는 안 만나니?”

“누구요?”

“화지.”

“아, 자주 봐요.”

1년간 동거 아닌 동거를 해버렸다. 이젠 가족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아무 미묘한 일이 있었는데 그건 더 지켜봐야 명확하게 알 것 같았다.

-어? 두 사람 뭐해요?

-아, 아무것도 안 했어!

-허허허! 하긴 뭘 해? 허허허허허!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던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럼 오늘 데이트는 누구?”

“…데이트 아니라니까 계속 그러시네.”

“호호! 알았어. 예원이 만나는구나? 요즘 TV에 자주 나오던데. 우리 아들, 능력도 좋아.”

주방에서 아주머니가 어머니 편을 들었다.

-우리 민준이 정도면 최고지! 공부도 잘해! 효자에! 키도 크고 잘생기고! 얼마나 착해!

여기 더 있다간 어머니 입에서 손주 얘기까지 나오겠다. 후다닥 밥을 다 먹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차 조심하고!”

손을 흔들며 지하철을 향해 뛰었다. 1년 전 기억이지만 오늘 낮에 강나은 경위와의 약속이 있었다.

문득 생각나서 그녀에게 무전을 했다.

“경위님.”

-기다렸어요!

“오늘 뵙기로 했죠?”

-네! 그런데 저, 조금 늦을지도 몰라요! 아침에 한강 하구에서 시체가 발견됐는데 며칠 전 CCTV를 보니까 어떤 여자가 남자 넷을 한강으로 던져버렸어요!

“…여자가요?”

-그럴 여자는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지 않나요? 아직 네 사람을 다 찾진 못했는데 이따가 가서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퀸?

‘그 괴물이 밖으로 나온 건가?’

남자들이 왜 한강에 빠졌는진 모르겠지만 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우리도 대비해야 했다.

김우태에게 곧장 전활 걸었다.

“형. 퀸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잘됐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했던 참이었어.

고작 미션을 하나씩 한 것뿐이었지만 우린 성장했다. 그리고 그건 자신감으로 환산되었다.

-화지한테 찾아보라고 할게.

“제가 전화할까요?”

-아, 아니야. 내가 전할게. 그게 빨라.

빠르다고? 전화보다 빨라?

“…뭐야? 설마….”

통화가 끊기자 황당했지만 일단 퀸이 나왔다고 하니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며칠 전 한남대교 위에서 남자의 손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보였다.

‘이건가?’

토막살인범이 손만 놓고 갔다든지 한강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었다든지 다양한 댓글이 달렸는데 아마 강나은이 찾고 있다던 네 사람이 이때 실종된 것 같았다.

나는 옆구리에 찬 가방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무한의 드링크 가방: 드링크를 저장할 수 있다.』

1년간 난쟁이들이 하층에 드나들며 빈 병을 모았고 계속 만든 드링크를 이 가방에 넣었다. 무려 20만 포인트나 하는 물건이었지만 내겐 꼭 필요한 것이었고 수백 종에 달하는 드링크를 다 넣어도 무겁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의 활 솜씨(전설): 한 번에 다섯 발의 화살을 쏠 수 있다. 추가 효과: 각 화살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낼 수 있다.』

최고급 필라테스를 해내고 얻은 능력!

아직 적에게 써보진 않았지만 1년의 노력이 싹 씻겨 내려갈 만큼 엄청난 스킬이었다. 김우태와 도화지도 그들에게 꼭 필요한 멋진 능력을 하나씩 얻었는데 우리가 처박혀 있을 때 이쪽의 시간이 멈춰 있었으니 이젠 피의 주인이나 퀸을 만나도 두렵지 않다.

‘그 마법사는 잠적한 건가?’

로드가 잠잠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 역시 이제 무섭지 않다. 고작 스킬 하나 얻은 게 아니다. 우린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수많은 작전을 짰고 며칠에 한 번씩 대련했다.

-이번에 정차하실 역은….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다. 지상으로 나와 약속장소로 먼저 들어갔다. 커피숍엔 책을 펴놓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고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회사원도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런 평화가 지켜지려면 우리가 놈들을 막아야 한다.

‘오랜만이네. 이런 한가함도.’

창가에 자릴 잡고 앉아 아이스 커피를 앞에 두고 지나는 사람들을 보았다.

톡이 왔다.

-민준아, 오늘 괜찮지?

-응.

-알겠어! 오전 스케줄만 끝나면 바로 준비할게!

가끔 예원이를 떠올리면 내가 계속 예원이와 관계를 지속하는 게 맞나 싶다. 나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때 예원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내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건 어머니와 예원이가 전부였다. 그것도 아니면 무척이나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

‘이 정돈 괜찮잖아.’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제 공부에 미친 듯이 열을 올리진 않지만, 문득문득 사람은 그립다. 김우태와 도화지가 함께 있다고 해도 ‘그 세계’를 모르는 이들과 천진난만하게 웃고 싶다.

커피가 바닥을 보일 때쯤.

“미안해요!”

커피숍으로 부리나케 들어온 여자가 곧장 내게 와서 외쳤다. 숨을 헐떡이는 걸 보니 짧은 거릴 전력으로 뛰었나 보다.

“괜찮습니다.”

“…그때 그 모습이네요? 대체 뭐가 진짜예요?”

“사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하긴… 학생처럼 다니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겠죠. 현명하네요.”

그녀가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가셨던 일은 잘되었나요?”

말을 하며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그녀 외에 다른 시선은 없었다.

“시신이 워낙 훼손되어서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한남대교에서 떨어진 남자가 맞는 것 같아요. 성인 남자를 그렇게 7미터 밖으로 던져버릴 수 있는 여자는 우리가 아는 한 사람밖에 없어요.”

“사람… 은 못하는 일이긴 하죠.”

그녀가 서류철을 가방에서 꺼내 내밀었다.

“최근 강남 일대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요약이에요. 보고 이야기하는 게 빠를 거예요.”

빠르게 서류를 넘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지혜의 목걸이 덕분도 있었지만 이미 내 지력은 한계치에 다다른 것 같았다.

“…벌써 다 봤나요?”

대충 둘러댔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았습니다.”

“아, 그 점을 간과했네요. 하지만 강남역 주변에서 놈들의 움직임이 자주 발견되었다는 게 이상하죠? 특히 브라칸 빌딩엔 11회나 드나드는 게 찍혔어요. 그들 모두 박물관 도난 사건의 용의자일 거고요. 건물 엘리베이터와 복도 CCTV를 통해 그들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알아냈지만, 문을 두드려도 안에선 반응이 없더군요. 곧 영장 신청할 예정이에요.”

“부동산 자료를 보면 최근에 수십 곳의 오피스텔이 계약되었던데요.”

“맞아요. 월세든 전세든 매매든 매물이 전부 다 나갔어요. 본래 이런 움직임은 변종 성매매에 동원되긴 하는데 이번 일은 그것관 다르게 해석해야 할 것 같아요.”

“저보다는 형사님께서 더 잘 아시겠죠.”

“그들을 찾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 식대로 할 겁니다.”

“부탁이 있어요. 용의자 중에서 몇은 우리에게 넘겨주시겠어요? 이렇게 수사하는데 우리도 성과가 있어야 해요.”

“…노력은 해 보겠지만 그들을 컨트롤 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피의 주인뿐 아니라 그 하수인들도 일반인에 비하면 괴물이었다. 그것들을 감옥에 가둘 수 있나? 불가능하다고 본다.

“후…. 당신을 만나면 참 많은 걸 물어보려고 했는데 막상 앞에 두니까 머릿속이 하얘지네요. 그래도 하나는 알아야겠어요. 그들은 뭐죠?”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괴물입니다. 그리고…. 이건 확실하지 않지만 진짜 괴물 같은 게 하나 더 나타날지도 모르고요. 뭐, 아직 잠잠한 걸 보면 별일은 없을 것 같지만.”

쿤드라가 나타났다면 뉴스에 나오지 않았을 리 없다. 일본에서도 균열이 열렸던 것을 보면 어디 오지에라도 떨어졌나? 그건 그것 나름대로 고생 좀 할 거다.

“당신이 사는 세계가 어떤지 짐작도 못 하겠군요. 그런 괴물이 많나요?”

“많지만 당장 위협적인 건 셋입니다. 다행인 건 그 셋이 서로 한 편이 아니란 거죠. 하나씩 제거하면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요.”

“당신들만으로 되겠어요?”

나는 웃으며 주머니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꺼냈다. 그리곤 그걸 손에 쥐고 그녀에게 뻗었다.

꾸깃.

동전이 내 손안에서 종이처럼 구겨졌다.

“…세상에.”

나는 그걸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못 합니다.”

“…당신도 괴물인가요?”

“아니라곤 말 못 하겠네요. 이제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아서….”

나를 보고 저리 놀라면 가이의 본모습을 보곤 기절초풍할 거다.

이때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잠시만요.”

그녀가 몸을 돌리며 전활 받았다.

-경위님, 윤일권입니다. 메일로 CCTV 몇 장 보내겠습니다. 확인하고 바로 연락해주시겠습니까?

“알겠어요.”

다급한 목소리에 강나은이 전활 끊고 메일을 확인했다.

“…으응?”

강나은이 미간을 좁히며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는데 밤에 촬영된 것이고 대상이 빠르게 움직인 걸 포착한 건지 흐릿했다.

그녀가 핸드폰을 내게 내밀었다.

“…추정하실 수 있으세요?”

나는 보자마자 알았다.

“그 괴물 중 둘입니다.”

“그래요? 시간을 보면 4초 차이로 찍혔어요! 남자가 먼저고 여자가 뒤에요. 같이 다니는 것 같은데요? 그들이 힘을 합쳤다면 더 위험한 거 아닌가요?”

“여기가 어디랍니까?”

“경기도 가평이요. 서울 방향 고속도로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건 힘을 합친 게 아니라 어쩌면….”

퀸이 피의 주인을 쫓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요?”

내 얘길 들은 강나은이 깜짝 놀랐다.

“네, 그들은 다른 이와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죽이려고 하겠죠.”

강나은이 전활 들었다.

“잠시만요.”

-윤일권입니다. 사진 보셨습니까?

“네, 막 확인했어요.”

-강원도에서도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시간을 보면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넘어온 것 같은데 아무래도 서울로 들어올 것 같습니다.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도로 CCTV에 찍힌 건 이게 유일한 겁니다. 인적이 전혀 없는 산을 타는 것 같은데 간첩도 아니고 참…. 왜 이러는 건질 모르겠습니다. 차를 타면 훨씬 빠를 건데요. 단순히 추적을 피하려 하는 거라면 도로로 나오질 않아야 했고요.

핸드폰을 든 강나은이 나를 보며 윤일권에게 말했다.

“저는 대충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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