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256화 (257/277)

#256화

내가 일어나서 김우태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형?”

“…으. 내가 뭘 맞은 거냐?”

“모르겠어요.”

그의 몸을 타격한 건 어디에도 없었다.

“겁나게 아프네. 젠장…. 보이지도 않는 걸 어떻게 만 번 쳐?”

“저는 보이지만 백만 번이에요.”

“백만… 하하하하하하! 환장하겠네!”

우리 둘은 어이가 없어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김우태가 놓쳤던 인형이 김우태에게 걸어와 품에 기어 올라갔다. 괜찮냐며 작은 손으로 그의 가슴을 토닥거리는 인형을 보다가 내가 손을 내밀었다.

“설 수 있겠어요?”

“…다친 건 아니야. 이 정돈 버틸 수 있다고. 문제는 그걸 치는 거지.”

“몇 번 하시다 보면 적응할 거예요.”

“그 몇 번이 벌써 두렵구나…. 끄응.”

내 손을 잡고 일어난 김우태가 기구 쪽을 보다가 몸을 홱! 돌렸다.

“일단 좀 쉬어야겠어. 머리 식히면서 방법을 찾아봐야지.”

기구는 꼴도 보기 싫은지 난쟁이들에게 걸어가는 김우태를 보며 나는 다시 줄을 당기러 움직였다. 김우태가 어떤 해결책을 찾든 나는 내 미션을 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 둘이 각자의 미션에 골몰하고 있을 때 도화지가 들어왔다.

“요!”

유쾌한 표정의 도화지는 우리는 보자마자 웃다가 이마를 찡그렸다.

“둘 다 표정이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마침 김우태가 또 벽에 처박혔다.

“…헉, 저 오빠 뭐 하는 거야?”

내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필라테스요.”

“너도?”

“네, 이거 백만 번.”

“히익! 나, 집에 갈래!”

도화지가 도망치려고 하자 김우태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경찰 아직도 밖에 있지?”

“응!”

“그렇다는 건 놈들이 우리 흔적을 찾았다는 거야. 로드든 피의 군주든.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거다.”

할머니 생각이 스쳤는지 도화지가 눈을 부릅뜨고 안으로 걸어왔다.

“알았어! 난 뭐하면 되는데?”

“모르지. 네가 받을 미션은 네가 확인해야 돼.”

“꼭 해야 하는 거지?”

“그래야 강해질 테니까.”

“어후! 살 떨리네!”

도화지가 유리 벽으로 걸어갔다. 저렇게 부담스러운 얼굴은 몇 번 없었는데 우릴 보고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하다 보면 할 수 있어요. 아예 못하는 미션을 주진 않으니까.”

내가 위로하려고 말했지만, 그 사이 미션을 받았는지 도화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둡게 변했다.

“…아아아.”

김우태가 물었다.

“뭔데?”

“팔굽혀펴기….”

“엥? 그렇게 쉬운 게 나왔다고? 와! 사람 차별하냐!”

“백만 번….”

“아…. 뭐 그 정돈… 뭐. 하하! 그래도 내 것보단 나은데?”

“내려갈 때 이마를 바닥에 붙여야 하고 올라올 땐 팔 관절을 일자로 뻗어야 1회 인정….”

“…힘내자….”

김우태가 슬금슬금 물러났다. 도화지가 폭발하기 전에 물러나는 거다.

“하…. 최고급이라지만 진짜 하나같이 미쳤네요.”

내가 말하자 도화지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백만 번을 하려면 대체 얼마나 해야 하는 거야?”

“…몇 달이면 될 거예요. 하다 보면 더 적응해서 빨라질 거고.”

“끝나면 막, 헐크처럼 팔뚝 굵어져 있는 거 아니야?”

부정하진 못하겠다. 사람이 애당초 팔굽혀펴기 백만 번을 할 수 있으리라 떠올리는 이도 없을 테니까. 그 이후의 육체 변화를 누가 짐작이나 할까?

“누나가 망치를 쓰니까 근력을 높이려고 그런 미션이 나왔나 봐요.”

나는 활을 더 민첩하게 당기기 위해서, 김우태는 접근하는 적을 쳐내기 위한 훈련일 것 같았다.

“누나도 보상이 뭔지 모르죠?”

“응! 그냥 완수하면 특별한 걸 준다는데?”

“어차피 끝날 때까진 나가지도 못하는데 해 보죠. 하다 보면 언젠간 끝나겠죠.”

그나마 난쟁이들이 있어서 우린 중간중간 녀석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지냈다. 셋만 있었다면 지루할 수도 있었지만, 난쟁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귀엽다. 물론 범이와 가이, 아리도 난쟁이들과 어울려 놀며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줄 당겼다 놓기 90만 번 남았습니다.』

살다 살다 90만 번이란 숫자에 이토록 화가 나긴 처음인 것 같았다. 이제 10%를 달성한 건데 한 달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이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면 균열을 통해 난쟁이들이 하층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우린 미션으로 묶여서 못 가지만 난쟁이들은 자유로웠다.

덕분에 소식도 들었다.

“제국이 슬슬 자릴 잡아가나 봐요.”

“잘됐다! 이래야 보람이 있지!”

고된 필라테스를 하고 있었지만 이종족들이 힘을 내고 있다고 하니 없던 체력도 치솟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흐으….”

또 뻗어버렸다. 10만 번을 했지만, 여전히 줄은 무거웠고 앞으로 남은 횟수가 계속해서 나를 억눌렀다.

콰앙-!

김우태가 또 날아갔다. 이제 간간이 쳐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날아가는 횟수가 더 많다.

“….”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래도 어쩌나.

미션을 받았으니 죽이 됐든 밥이 됐든 해야 하는 것을….

.

.

.

다리를 모으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던 퀸이 석상처럼 가만히 있다가 드디어 움직였다.

두근! 두근!

그녀의 주변으로 커다란 알들이 꿈틀거렸다. 부화를 앞둔 그것들의 태동이 밖까지 느껴졌는데 퀸은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걸 보다가 일어났다. 그리곤 저쪽으로 걸어갔다.

콰르르르르르르르!

근처에서 엄청난 소음이 들려왔다. 주기적으로 지하철이 지날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였다. 소리가 멎을 때까지 잠깐 기다렸던 그녀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곤 지하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갔는데 오랜만에 본 서울의 야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곳엔 그녀와 자식들의 자린 없었다. 인간들은 다른 생명체를 거부하며 멸시했고 자기들끼리 피부색만 달라도 싸웠다. 이런 사회에서 그녀의 아이들이 마음 편히 자랄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질서를 다시 확립하는 것. 그러려면 파괴가 필요하다.

그녀의 손이 목을 더듬었다. 본래 그녀는 뼈가 부러져도 쉽게 재생한다. 그런데 이 이빨 자국은 지워지질 않았다.

꽈악, 입술을 깨물던 그녀의 눈동자에 한 남자의 모습이 스쳤다.

“…죽일 거야.”

놈이 피를 빨았다. 하지만 그놈은 한 가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피.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자 매우 특수한 것이기에 그녀가 느낄 수 있다.

“내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에.”

그놈부터 잡아 죽여야겠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녀가 피를 느끼며 걸었다. 이미 깊은 새벽이기에 도로도 한적했다. 막 한남대교를 넘어가는데 반대편에서 남자들이 걸어왔다. 이미 잔뜩 술에 취해 있었는데 20대 초반의 네 사람이었다.

“오! 쟤 봐! 가출했나 본데?”

“이쁘다!”

“오늘은 쟤랑 놀자!”

“야! 너, 어디 가냐?”

네 사람이 껄렁하게 다가오며 물었다. 실실 웃으며 그녀의 몸을 훑어보는 걸 보니 목적이 뚜렷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비켜.”

이 세상의 경찰이 끈질기다는 걸 알기에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른쪽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려 했고 그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가 되었다.

사악!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그러자 남자의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어?”

처음엔 고통도 못 느꼈다. 그러다가 닥쳐오는 엄청난 아픔에 그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뭐야? 허억! 너, 손이?”

다른 놈들도 술기운이 확! 달아나는 표정으로 주춤거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가 한 사내의 머릴 잡더니 그대로 던져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한강으로 떨어지는 남자를 구할 새도 없이 다른 남자들 또한 그녀가 던져버렸는데 이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녀가 씨익 웃으며 손에 묻은 피를 혀로 할짝거렸다. 그리곤 다시 걸었다. 그녀의 피엔 다양한 물질이 뒤섞여 있었다. 그것 중 일부는 세포 단위로 치유를 해 주고 또 일부는 그녀의 몸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한다. 이러다 보면 외부에서 영양분을 얻어야 할 때가 있는데 이 세계엔 그런 것들이 무려 80억이나 있다.

다시 한가해진 한강 다릴 그녀가 건너 강남으로 접어들었다.

‘이쪽….’

그녀는 아직도 서울 지리를 잘 모른다. 이성보다는 본능으로 움직이는 일이 많았고 눈보단 다른 감각을 자주 사용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피가 어디에서 느껴지는진 알지만,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깝다는 것만 알면 그녀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움직이네.’

이 밤에 돌아다니는 게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놈은 박쥐니까 그럴 수도 있었다.

‘너무 멀리 날아가지 마.’

귀찮다는 듯 이마를 찡그린 그녀가 방향을 바꿔 걸었다.

‘전보다 빠르고 강해졌지만….’

그녀가 미소 지었다.

‘아직 멀었어.’

팔다릴 잡아 뽑고 머릴 부순 뒤 심장을 꺼내면 놈도 죽을 것이다. 인간에겐 이런 것들이 잔인하게 느껴지겠지만 맹수도 사슴이 살아있을 때부터 먹어 치운다.

‘오늘….’

그녀의 미소가 더 진하게 번졌다.

‘죽일 거야.’

.

.

.

토요일.

전화가 걸려왔다.

“대체 왜 이제야 연락한 거야!”

로드가 버럭 소리쳤다. 지나는 사람들이 그를 힐끔거렸다.

-퀸이 나를 추적하고 있어! 강원도까지 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다! 마법진이 완성되는 순간에 맞춰서 갈게! 뿌리칠 수가 없어!

“뭐라고? 언제부터?”

-몰라! 빨리 준비해! 여잔 찾았어?

“아직!”

-시간이 없다고! 오늘 안에 해결해!

퀸이 피의 군주를 따라 다닌다?

‘놔둘까?’

잠깐 생각했지만, 피의 군주가 없으면 퀸을 혼자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저 아프리카 어디에 숨어 살면 한동안 마주치진 않겠지만 그녀가 세상을 파괴하기 시작하면 점차 갈 곳이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 추적하고 있는 거지?’

알 수 없었지만, 피의 군주도 필사적이니까 그간 연락조차 못 했을 것이다.

“흐으, 빨리 찾아야 하는데….”

그가 다시 거릴 보았다. 비홀더의 눈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 거리에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지나가도 조건에 맞는 여자가 단 하나도 없었다.

“젠장….”

그런 그의 곁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시녀였다.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33개의 객실에 마력이 깃든 물건을 두었고 그자의 부하가 그걸 지키고 있습니다.”

“잘됐군.”

뭐 하나라도 착착 진행된다니 답답한 속이 조금은 풀렸다.

“퀸이 그자를 추적한다고 한다. 그자가 퀸에게 잡혀 죽기 전에 마법진을 가동해야 해.”

“하지만 여자가 없지 않습니까?”

신논현역.

유동인구가 이렇게 많은데, 비홀더의 눈이 고장 났나? 싶을 정도로 며칠을 허비했다.

“잠깐 시골에라도 다녀와야 하나?”

“요즘엔 젊은 여성들이 모두 도시로 떠난다고 합니다.”

“그래, 그런데 왜 단 한 명도 없냐고!”

도시에서도 가장 번화한 이곳에서 대상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 허탈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가 문득 저쪽의 대형 전광판을 보았다. 영상 광고들이 계속 바뀌면서 나오고 있었는데 그중에 한 광고를 보며 그의 눈이 변했다.

“…찾았다!”

앳된 여자가 화면 속에서 맑게 웃고 있었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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