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팀장님은 아직도 의식이 없으신가요?”
병원. 강나은 경위가 침울한 표정의 형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보고 갈 순 있죠?”
“네, 원하신다면….”
강나은 경위가 병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형사는 머리를 흔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총상은 흔하지 않다. 그만큼 익숙한 의사도 드물었고 낯설다.
침상으로 간 강나은 경위는 팀장을 보고 또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팀장님, 제가 단서를 찾았어요.”
설령 그가 듣지 못한다고 해도 말해주고 싶었다.
“히트맨과도 연락할 수 있게 되어서 그들과 힘을 합쳐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그녀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팀장을 바라보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강나은입니다.”
-저, 윤일권입니다.
“네, 어떻게 되었나요?”
-국과수 결과 나왔습니다. 그걸 토대로 용의자들 신원을 알아냈는데 CCTV를 모조리 뒤져봤더니 놈들이 단체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건 강남 일대였고요.
“그랬겠죠. 박물관을 혼자 털 순 없었을 거니까. 무거운 관도 옮겨 갔더라고요.”
-놈들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를 쥐잡듯이 모니터하고 있습니다. 곧 걸려들겠죠.
“저도 찾아볼게요.”
-경위님은 좀 쉬셔야 합니다. 지금 어디입니까?
“팀장님 뵈러 병원 왔어요.”
-아…. 그러면 곧장 퇴근하세요. 요즘 경위님, 잠은 주무십니까?
“네, 조금….”
-수사도 체력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오늘은 푹 주무세요.
“노력해볼게요.”
잠을 자려고 누워도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쉽사리 숙면을 취할 수 없다. 겨우 잠든다고 해도 악몽을 꾼다거나 절로 눈이 떠져서 한번 깨면 다시 잠들 수 없었다.
통호를 마친 강나은 경위가 팀장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기다리던 형사가 물었다.
“수사는 진척이 있습니까?”
“어느 정도는요. 놈들이 팀장님을 노리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애초에 오발 사고를 당하신 거였고 뭘 노리는진 모르겠지만 이쪽엔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래도 제가 지켜야죠.”
“…수고해주세요.”
강나은 경위가 병원을 빠져나가 택시에 올랐다.
‘강남, 서초. 이유가 있을 거야. 유흥 쪽 이권 다툼을 하려는 것 같진 않고 그러면 조직적으로 움직일 이유가 뭐가 있을까?’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박물관에서 훔친 물건들이다. 별 돈도 안 되고 장물로 팔면 곧장 추적당해서 위험할 텐데 그것들로 뭘 하려는 걸까?
‘아니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려니까 계속 놓치는 거야. 그들은 괴물이야. 마법사도 있다고.’
히트맨에게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시간을 확인하곤 머리를 흔들었다. 너무도 늦은 시간이었다.
‘서울에 있다면 그것도 강남에서 CCTV를 피할 순 없어. 광수대가 조사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꼬릴 밟히겠지.’
오늘은 윤일권의 말대로 집으로 가서 푹 잤으면 좋겠다. 택시가 그녀의 아파트로 도착했다. 경찰이 되고 난 후부터 쭉 혼자 살았는데 오늘처럼 빈집이 스산하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팀장을 보고 와서 마음이 허전한 건가?
간단히 씻고 나온 그녀가 침대에 막 누웠을 때였다.
“음?”
본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경위님.
“무슨 일이죠?”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그런데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부득이하게 지금 연락드렸습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뭔데요?”
-그 박물관 놈들 있지 않습니까?
“네.”
-서초구 소재의 한 건물에서 나오는 걸 찾았습니다.
“정말인가요? 거기가 어디죠?”
-브라칸 빌딩입니다. 강남역 신분당선 5번 출구요.
“하! 자료 확보하고 계신 거죠?”
-네.
“알겠어요! 아침 일찍 거기서 봐요!”
지금 가도 깨어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 탐문조차 할 수 없다.
‘광수대도, 본부도 놈들의 행적을 찾았어. 이제 시간 문제야!’
그녀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참으로 오랫동안 신경 썼던 일이 조금 해결되어서 그런지 피로가 한꺼번에 덮쳐오는 것 같았다.
.
.
.
‘이크! 뭐야? 그 형사님이잖아?’
지하철에서 올라와 재능마켓으로 들어가려는데 오피스텔 입구에 강나은 경위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이 아침부터 뭐야?’
나도 출근 시간 이전에 움직이려고 빨리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강나은은 손에 든 무언가를 오가는 사람에게 보여주며 열심히 물어보고 있었다.
-이 사람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녀뿐 아니라 다른 형사들도 있었기에 나는 몸을 숨겼다. 그리곤 김우태와 도화지에게도 알렸다.
‘설마 우릴 찾는 건가?’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잠시 지켜보니 그녀가 찾는 사람이 다른 인물이란 걸 알았다.
-자세히 봐주세요. 어제 이 건물로 드나드는 게 CCTV에 찍혔거든요. 이 여자는 미인이라서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휴, 여기 강남이에요. 예쁜 사람 천지라고요. 그리고 누가 지나가는 사람 얼굴을 일일이 보고 다녀요? 바빠 죽겠는데.
-이 중년 남자는요? 이 사람도 못 보셨나요?
-아, 글쎄 못 봤다니까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지나고 있어도 강나은이 원하는 걸 쉽게 얻진 못할 것 같았다. 여긴 서울 최대의 번화가 중의 한 곳이었으니까.
나는 잠깐 더 지켜보다가 이면도로로 돌아 들어갔다. 후문으로 향하는 거다. 가방에서 꺼낸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계단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5층까지 뛰어 올라가서 오피스텔 문을 열었다.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난쟁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춤을 춰댔다.
“형아! 오늘은 나랑 놀자!”
“아니야! 나랑 놀 거야!”
“이것 봐! 드링크가 빛을 내고 있다고!”
나는 웃으며 녀석들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필라테스야.”
어제 어머니를 보고 깨달았다. 내가 더 강해져야 모두를 지킬 수 있다는 걸.
‘미룰 순 없어.’
최고급이라는 단어가 심각하게 거슬렸지만 그만큼 강력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오랜만인데?’
그간 틈날 때마다 종종 하긴 했어도 이렇게 마음먹고 부담을 느끼는 건 초반 외엔 없었다. 힘이나 다른 능력이 올라갈수록 운동은 이제 어렵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난쟁이들과 잠시 이야기한 뒤 가방을 내려놓고 유리 벽으로 걸어갔다.
『최고급 필라테스 이용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침이 꿀꺽 넘어갔다. 대체 뭐가 나올까?
『최고급 필라테스를 시작합니다.』
『필라테스를 완료할 때까지 재능마켓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포인트도 넉넉하니까 두렵진 않다. 1달이 걸리든 2달이 걸리든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줄 당겼다 놓기 100만 회 시작합니다. 필라테스를 완성하면 매우 특별한 능력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뭐…?”
줄 당겼다가 놓기? 아무리 100만 번이라지만 그것만이라면 너무 쉬운데? 머리가 핑-! 돌아갔다. 1초에 한 번이면 1분에 60번, 10분에 600번, 1시간이면 2400번인가? 10시간에 2만4천 번이라고 했을 때 100시간에 24만 번이니까 한 달 남짓?
‘밥도 먹고 잠도 자려면 두 달은 걸리겠네.’
이렇게 생각하니까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해야지! 아자!’
후우우우웅.
저쪽의 기구 하나에 원이 생겼다. 철봉처럼 생긴 기구에 세로로 줄이 매달려 있었는데 저걸 당기라는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 앞으로 가서 줄을 잡아보았다. 내 활줄과 비슷한 두께다. 이런 걸 반복해서 잡아당기면 손에 물집이 생기지만 나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다.
‘하루에 15시간씩만 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자세를 잡은 뒤 줄을 당겼는데 얼굴이 무참히 구겨졌다.
“뭐…, 뭐야? 끄응….”
1초에 한 번은 개뿔! 엄청난 힘을 줘야 겨우 당겨졌다.
“하… 이게 말이 되나?”
어이가 없다.
“헉, 헉….”
순간적으로 얼마나 힘을 줬던지 호흡까지 거칠어졌다.
『미션을 1회 달성했습니다!』
마치 놀리듯 들려오는 미션에 나는 입을 꽉 다물었다. 그래, 최고급인데 쉬울 리 없었다.
“젠장, 어쩐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줄을 당겼다. 여전히 있는 힘을 다 줘야 당길 수 있었다.
티잉-!
놓자마자 원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게 이렇게 허무할 수 없었다.
‘이걸 백만 번 하라니….’
두 번으로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15시간은커녕 1시간 하면 탈진할 것 같았다.
“하는 데까지 해보자….”
티잉, 티잉-!
반복해서 줄 놓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처음엔 나를 따라와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하던 난쟁이들도 곧 시들해졌는지 다 떠나갔고 홀로 필사적인 싸움을 했지만 30분이 지나자 기구 아래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헉…헉…. 장난 아니네. 이거….”
30분을 전력 질주했어도 이것보단 낫겠다. 팔 뿐만 아니라 온몸의 힘을 폭발적으로 다 써야 한번을 당길 수 있어서 그걸 반복하면 점차 체력이 고갈되었다. 철봉 오르기도 처음의 한 번은 쉽지만 그게 10번 50번 반복하면 힘든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학, 학….”
누워서 몸을 풀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여어! 도민준! 필라테스 하냐? 얼마나 했기에 벌써 뻗어버린 거야? 하하하!”
“…30분요.”
김우태가 양손 가득 식료품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우아! 형아다!”
“과자 줘! 과자!”
“기다려! 이놈들아! 가방 좀 내려놓자!”
김우태가 껄껄 웃으며 난쟁이들의 성화에 맞춰주다가 흠칫했다.
“뭐라고 했냐? 30분?”
“…네. 30분이요.”
“허…! 최고급 필라테스인 거지?”
“형도 시작하시면 알게 될 것 같네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와, 벌써 무섭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일단 뭐가 나오는지부터 볼까?”
김우태가 유리벽으로 걸어가다가 멈춰 서서 물었다.
“아참, 아래에 경찰들 있던데 우리 찾는 건 아니지?”
내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 것 같긴 한데 이상하지 않아요? 우리가 아니라도 만일 로드나 피의 군주를 쫓는다면 그게 여기란 게?”
“음… 설마 놈들이 우리 위치를 파악한 건가?”
“전혀 무시할 순 없을 것 같아요.”
“필라테스 빨리해야겠네. 더 강해져야 그놈들이 쳐들어와도 막을 수 있을 거니까.”
김우태가 인형을 손에 들고 유리 벽 앞에 서서 필라테스 이용권을 사용했다.
그러자 곧장 그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오! 별 거 아닌데?”
“…그래요?”
“응! 이거면 금방 하겠다. 하하하하!”
김우태가 저쪽의 기구로 걸어갔다. 사람마다 미션이 달라서 그에겐 뭐가 나왔는지 지켜봐야 안다.
“그거 알지? 술집 많은 거리에 있는 야구 연습장.”
“네.”
“그거랑 비슷한 것 같아!”
김우태가 원에 서자 저쪽에서 김우태를 향해 무언가 작동했다. 그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인형을 손에 쥐고 기다렸다.
“만 번만 쳐내면 된대! 이까짓 거! 바로 끝내주겠어!”
만 번? 내 거에 비하면 횟수가 지나치게 적은 거 아닌가?
‘묘하게 억울한데?’
생각이 절로 들 때였다.
투웅-!
뭔가 김우태를 향해 발사됐고,
“커헉-!”
그걸 배에 정통으로 맞은 김우태가 반대편 벽까지 날아가서 처박혔다.
“….”
“….”
재능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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