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비홀더의 눈알? 그것치곤 좀 다른데?”
“아주 귀한 비홀더의 눈알이지. 내가 깨끗한 피를 찾을 때 쓰는 물건이다.”
“아, 그런가?”
“구하기 까다로운 물건이니까 잃어버리지 마.”
로드가 웃으며 비홀더의 눈알을 자신의 왼쪽 눈에 넣었다. 그러자 감쪽같이 파고들었다.
“그러면 나는 바로 작업을 시작하지. 너는 이 건물의 모든 빈방을 계약해.”
“이미 준비해뒀다.”
스으으윽.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충실한 하수인들이었는데 벌써 이만큼이나 모았다는 건 그만큼 퀸의 피가 강력했다는 뜻이었다.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
“일주일 안에 찾아올 거다.”
로드가 떠나자 피의 주인이 손으로 턱을 만지며 웃었다. 이 세상은 돈만 있으면 다 된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태창 바이오의 자금력으로 이 건물을 통째로 사들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퀸이 더 자라기 전에 일을 마무리 해야 했다.
“일주일이라….”
그가 로드가 간 방향을 보며 서늘하게 웃었다.
“너도 그때까지 충분히 즐기라고. 그게 네 마지막 시간이 될 테니까.”
크크크크크크!
주변의 하수인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그와 함께 웃었다.
.
.
.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와! 거인들이 왔다!”
“우와아아아!”
난쟁이들이 쪼르르 들려왔다. 도화지가 녀석들에게 말했다.
“곧 너희 마을에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녀석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움… 나는 가기 싫은걸.”
“나도! 거긴 맛있는 것도 없고 심심하고!”
“여기가 훨씬 좋아!”
신세계를 경험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피스텔 밖으로 나가진 못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녀석들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고 무엇보다 달콤한 과자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하, 요 녀석들 봐라?”
김우태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아무리 여기가 좋아도 그렇지 돌아가지 않겠다니? 어른들이 알면 얼마나 서운할까?
하지만 그건 우리의 생각이었나보다.
“형아! 여기로 와봐!”
난쟁이가 내 바짓단 밑을 잡고 흔들었다.
“어? 왜?”
“드링크가 완성됐어!”
“그래? 벌써?”
“빨리, 빨리!”
다른 난쟁이들도 흥분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몇몇은 범이의 등에 올라타기도 했는데 벌써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꺄아! 귀여워!”
그 모습을 보더니 도화지가 꺄르르 웃었다. 인형 위에 올라탄 인형 같았다.
중요한 것은 드링크였으니 1층으로 가서 중앙으로 걸어갔는데 한 녀석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짜잔! 구속 효과 추가요!”
“이건 추가 타격 효과 추가요!”
“나는 더 좋은 걸 붙였다고! 내 것부터 봐!”
이 난쟁이들은 일종의 요정과도 같았다. 태생부터 마법력을 지녀서인지 이들의 손을 거치면 매우 특수환 효과를 지닌다. 그래서 그 빈 병도 만들 수 있었던 거겠지만.
“오…. 멋진데?”
『불바다 드링크: 작은 요정의 노력이 깃들어 더 강력한 효과를 낸다.』
하긴, 나와 김우태, 도화지의 무기도 전보다 훨씬 강하게 변했다. 드워프까지 합세해서 장인정신으로 고친 거라 아직 써보진 않았지만 어마어마할 것 같았다.
난쟁이 하나가 도화지를 이끌었다.
“누나! 옷 좀 벗어봐!”
“뭐, 뭐라고? 옷을 왜?”
“내가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아, 그래? 정말?”
“응!”
도화지가 당황하자 다른 난쟁이들도 도화지에게 엉겨 붙었다.
“나도 할 수 있어!”
“나도!”
도화지가 정신없는 표정으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해하는 걸 보며 나는 붙박이장으로 걸어갔다. 김우태가 따라붙었다.
“뭐가 잔뜩 나왔을 것 같은데?”
쿤드라는 잡지 못했지만, 대륙을 평화롭게 만들었으니 기대가 된다.
딸깍!
반짝이는 돌들이 가득하다.
“엥? 이건 처음 보는 건데?”
김우태가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최고급 필라테스 이용권: 강력한 수행 뒤 압도적인 능력을 얻을 수 있다.』
“헉… 최고급… 보기만 해도 토 나온다.”
“운동이 직업인 형이 그런 말 하면 일반인은 못 한다는 거 아니에요?”
“하… 좋긴 한데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해. 스쿼트 백만 번 뭐 이런 거 아니겠냐?”
“…딱 세 장 나왔네요.”
“내 거 너 줄까?”
“사양할게요….”
필라테스 이용권 외에도 각종 아이템과 소재가 그득했다. 장신구도 많았는데 탑 앞에서 죽어가던 오크가 준 지혜의 목걸이는 지력을 +2나 올려 주는 아이템이었다. 추가로 집중력과 기억력 상승까지 붙었다.
“어차피 네가 하드캐리하니까 이건 너가 가져. 우리 머리가 여기서 더 좋아져 봐야 거기서 거기야.”
각종 재료도 정리하고 목걸이도 찼다.
피잉-!
『기억력이 상승합니다.』
『집중력이 상승했습니다.』
집중력 드링크를 영구적으로 마시는 효과가 붙어버렸다. 현기증이 동반하며 헝클어진 머릿속이 뚜렷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었는데 잡생각이 사라진다고 해야 하나? 전산 능력이 빨라졌다고 말해야 하나? 무언가를 떠올리면 절로 그것에 관한 모든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떠올랐다.
지금처럼.
‘포인트를 많이 벌었어. 이걸 효과적으로 쓰려면?’
재능마켓의 물건들과 가격이 죽죽 눈앞에 늘어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재능마켓엔 새로 추가되는 아이템도 있으니 가서 보는 게 더 좋다.
나는 유리벽을 보면서 떠올렸다.
‘나 혼자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큰 타격을 주는 스킬이나 아이템도 있어야 해.’
도화지의 방어력처럼 이쪽에서 아무리 때려봐야 임계점을 넘지 않으면 대미지를 줄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만약 퀸이나 피의 군주가 그렇다면 이쪽도 필살기가 있어야 한다. 마법을 사용하는 로드도 있으니 그쪽도 부술 수 있는 것으로!
‘흑마법사들 때문에 고생했었으니까.’
목록을 쭉 살펴보면서 나는 난쟁이들과 어울리는 범이를 보았다. 서로 잘 지내서 다행이다.
‘그런데 뭐가 변했다는 거지?’
깜빡하고 있었다. 분명히 재능마켓에 변화가 있을 거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재능마켓 확장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아…?”
포인트처럼 귀속된 것이었나?
나는 김우태에게 외쳤다.
“형! 놀라지 마세요!”
“어? 왜?”
“뭔데?”
다들 잊고 있나 보다.
『확장을 시작합니다.』
우우우우우우웅-!
“히이이이잇?”
“끼아아아아!”
“움직인다아아아아아!”
난쟁이들이 기겁했다. 어떤 녀석은 재미있다고 깔깔 웃어댔다.
“흐억! 잘 붙잡아!”
김우태가 버럭 외쳤지만, 바닥 자체가 휘거나 갈라진 건 아니었다. 벽과 천장이 움직이니 본능적으로 균형감각을 잃은 것이다.
벽에 붙은 계단이 더 길게 이어졌다. 작은 나무들도 자라났고 위론 2개의 층이 더 생긴 것 같았다. 1층은 2배가 더 넓어졌다. 필라테스 기구가 늘어나진 않았는데 벽을 따라 큰 트랙이 생겨났다.
“와… 쩐다.”
김우태가 멍하니 바라보며 말하자 난쟁이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죽인다고?”
“응? 그건 또 무슨 말인데?”
“너무 좋다고! 좋아! 내 헬스장보다 훨씬 더 크네! 300평은 되겠다!”
1층만 해도 엄청나게 넓어졌는데 위로 몇 층이 더 생겼으니 아직 놀라긴 일렀다.
“하하…. 강남 한복판에 대저택이 생겨버렸네.”
김우태가 어이없는 듯 웃었다. 이건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확장이 끝났습니다. 이제 4층의 균열의 숲에선 지정된 수호자의 균열을 통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헛? 하루 1번이 아니라?”
『균열의 숲을 통해 물건을 옮길 수 있습니다.』
『균열의 숲을 통해 각종 자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도화지가 뾰족하게 외쳤다.
“아앗! 마켓에 씨앗들이 생겼어! 이것들을 심을 수 있나 봐! 그 버섯도 있어!”
『이제 5층의 공간을 마음껏 꾸밀 수 있습니다. 가구와 물건은 재능마켓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허억! 에스컬레이터다! 40만 포인트야!”
“…사십만이라니. 완전 날강도네! 제국에서 오크들을 몰아내도 오십만인데! 에스컬레이터가 40만이냐? 차라리 돈 주고 설치하겠다!”
재능마켓에 속속 새로운 물건들이 추가되었다.
“히익! 엘리베이터도 있어! 60만!”
“그냥 걸어 다녀. 운동도 할 겸….”
김우태가 얼굴을 흔들었다. 60만 포인트면 쉐이크를 얼마나 만들 수 있는지 계산도 안 되는 엄청난 포인트였다. 잠깐 편하자고 그런 걸 덥석 사기엔 사치다.
“구경 가자!”
도화지가 위로 뛰어올랐다. 난쟁이들도 우르르 달려갔는데 나는 김우태를 보며 말했다.
“형, 필라테스는 내일 할게요. 오늘은 어머니 뵙고 와야겠어요.”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혹시나 해서요. 재능마켓이 이렇게 변하니까 왠지 더 위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요…. 전에도 그랬거든요.”
“음…. 그래. 안부 전해드리고.”
잠시 후 재능마켓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데 무전이 날아들었다.
『들려요? 이봐요!』
“아, 경위님.”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하하, 연락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랬죠! 근데 이건 정말 적응하기 힘드네요.』
“익숙해지실 겁니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 만날 수 있나요?』
“필요하다면요.”
『좋아요! 이야기가 길어서 만나서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상식으론 별거 아닌 사건이지만 저는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국과수 보낸 자료 더 정리해서 토요일 오후 어때요?』
그날은 예원이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잠깐 들렀다 가는 거라면야….
“좋습니다. 어디서 뵐까요?”
『논현 쪽 괜찮아요?』
“네.”
무전을 끊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생각난 김에 예원이에게 연락했다.
-토요일 저녁쯤 괜찮아? 낮에 일이 있어서.
답이 곧장 왔다.
-응! 나도 어두운 게 편해! 요즘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서 곤란하거든!
-피곤하겠네.
-감당해야지! 내가 선택한 길인데!
씩씩한 예원이를 보고 있자면 나도 무한동력을 얻는다. 이렇게 열심히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곳이 파괴되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순 없었다.
-그럼 6시 거기서 봐!
논현이면 여기서 걸어가도 멀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지하철로 걸어가며 핸드폰으로 사회면 뉴스를 봐도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그러다가 누군가와 어깨를 툭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 감각이 올라간 뒤로 아무리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지만 누군가와 부딪친 일은 드물었는데….
“….”
나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았다.
“…!?”
그리곤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마 도화지가 있었다면 바로 알아차렸겠지만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눈썹이 움직이질 않는 걸 보면 위험한 상대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 위화감이 들었다.
“….”
30대 초반의 사내는 말 없이 나를 보다가 스윽 지나쳤다.
‘뭐지? 내가 너무 예민해졌나?’
뒤를 돌아보니 그가 브라칸 빌딩의 1층 부동산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갑자기 몇 단계나 능력이 올라버려서 그럴 수도 있겠네.’
지혜의 목걸이 덕분에 특히 두뇌 쪽은 미친 듯이 상승했다. 어느 정도냐면 이렇게 번화한 곳에서도 사람들의 모든 움직임이 예측된다. 전엔 몇 사람만 보였다면 이젠 공간 자체를 주시하는 기분이었다.
“흐음….”
부동산을 보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빨리 이 감각에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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