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253화 (253/277)

#252화

“…이게 뭐죠?”

그녀의 손에 들린 건 실밥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하찮은 것이었지만 여긴 박물관이다. 청결이 무엇보다 강조되고 온도도 항시 일정하게 맞춰야 할 정도로 관리 감독이 철저했다.

“셔츠 같은 것에서 나온 것 같은데요?”

장혁의 말에 강나은 경위가 가방에서 비닐을 꺼냈다.

“국과수에 감정의뢰 해주세요.”

“여기도 있습니다!”

장혁이 바닥에서 다른 실밥을 또 찾았다.

“이상하죠? 마치 이곳에서 뭔가를 잡아 뜯는 것처럼….”

장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면 뜯어졌거나요. 관을 들다가 힘을 너무 줬나 보죠? 하하하!”

그는 농담을 하며 웃었지만 강나은 경위는 웃지 않았다.

‘옷이었다면 DNA라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의심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명이라도 더 찾아서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했다.

그녀가 관장에게 물었다.

“더 없는 거죠?”

“지금은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저희는 도로 쪽 CCTV부터 볼게요. 이 많은 짐을 옮기려면 차량이 반드시 필요했을 거니까요.”

“저는 이것부터 넘기고 오겠습니다!”

장혁이 뛰어나가자 강나은 경위는 박물관 밖으로 나가면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제 말 들리시나요?”

하지만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아, 미치겠네!”

김우태가 버럭 소리쳤다.

“그놈은 어딜 간 거야!”

오크들의 제국. 우린 재능마켓이 열리자마자 곧장 이곳으로 날아왔다. 그런데 그놈이 없었다.

“아, 몰라! 몰라! 일단 다 부숴버려요!”

악마를 죽인 보상은 30만 포인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난쟁이들이 그걸 보더니 오호! 오호호호! 기뻐하면서 자기네들이 뭔가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

가이가 오크의 건물을 무자비하게 박살 내고 있었고 아리도 하늘에서 폭격하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뭔가 한 무리의 커다란 것들이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어라? 저게 뭐지?”

“아! 그 와이번인가 하는 건가 봐요!”

오크 마법사들이 와이번의 등에 올라타 있었고 놈들이 지팡이가 아리를 향해 번뜩였다.

-꺄아아아아아!

번개 같은 것에 맞은 아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그건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열 받아서 지른 것이었다.

-와아아아악!

-마법이 통하질 않는다!

-후퇴해! 후퇴!

기세 좋게 나타났지만 와이번들은 아리의 상대가 되질 못 했다. 독수리 앞의 닭이랄까? 닭이 아무리 날뛰어봐야 닭이다.

“형! 일단 그놈을 찾아야 해요! 그놈을 못 잡으면 계속 세력을 넓힐 거니까!”

“알았어! 너는 성으로 가봐! 나는 화지랑 뒤쪽을 찾아볼게!”

두 사람이 왼쪽으로 뛰어가자 나는 범이와 함께 성으로 곧장 뛰어갔다. 그런데 어디에도 놈이 보이질 않는다.

‘지하에 있나?’

과거에서 본 성의 구조를 떠올리며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찾았다. 비밀스러운 곳은 항상 지하에 만들어두는 습성은 인간이나 오크나 같을지도 몰랐다.

‘불을 켜뒀어. 최근까지 드나들었다는 뜻이겠지.’

나선으로 휘어지는 계단을 따라 빠르게 내려가던 나는 우뚝 멈춰 섰다. 지독한 악취가 어지러울 정도로 덮쳐왔다.

‘감옥인가?’

조금 더 앞으로 가니 창살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엔 수많은 ‘생명’이 갇혀 있었다.

인간, 엘프, 드워프, 난쟁이….

“이보게! 자네는 누군가? 더러운 오크 놈들하곤 다른 것 같은데?”

늙은 난쟁이가 창살에 붙어 내게 물었다.

“비켜서세요.”

나는 난쟁이가 물러나자마자 활대로 자물쇠를 때렸다.

퍼억-!

악마를 죽이고 늘어난 힘 덕에 이런 것도 가능하다.

“오오오오! 혹시 자네는 우리를 구해주러 온 것인가?”

처음엔 아니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들 꺼내주세요!”

-와아아아아아아!

-탈출이다!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살던 이들이 환호하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까의 난쟁이가 내게 다가왔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나는 언제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네! 신은 우릴 버리지 않으셨던 거야!”

“혹시 오크의 왕이 어디로 간지 아세요?”

“쿤드라 말인가? 모르겠네. 그 무자비한 악마는 대륙을 다 밟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 같더군. 아참, 그런데 말이야.”

“네?”

“어제 그놈들이 엘프들을 싹 잡아갔다네. 자네도 보면 알겠지만 어린 엘프만 남아 있질 않나?”

“엘프?”

“그리고 마법을 다루는 인간들도 수소문하고 있었어. 그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진 모르겠지만 오크들은 매우 흥분해 있었다네.”

“알겠습니다. 밖은 위험하니까 무기를 찾으세요.”

얼마나 갇혀 있었던 건지 워낙 비루해서 창을 들 수 있을지 의심이 갈 정도로 비쩍 마른 이들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지하도 아니면 어디지?’

감옥에서 이어지는 다른 공간은 없었다.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재능마켓의 그것이 아니라 무전기 효과다.

『민준아!』

도화지였다.

“네!”

『수상한 탑이 있어! 이쪽으로 와!』

그녀가 위치를 알려주었고 한달음에 복도를 뛰어 반대편으로 돌아가니 창문 밖으로 탑이 보였다. 도화지와 김우태가 탑을 보며 대치하고 있었는데 탑 안에서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꺄아! 깜짝이야!”

불쑥 나온 지팡이에서 뭔가가 쏘아져 나와 도화지를 때렸다. 하지만 그녀는 머리칼 하나 그을리지 않았다.

“너네, 죽을래?”

화난 도화지가 망치를 들고 뛰어가려고 했다. 탑을 통째로 부숴버릴 모습이었다. 그걸 김우태가 막았다.

“잠깐만. 저 안에 오크들이 많은 게 수상해. 민준이 합류하면 같이 가자.”

김우태가 도화지의 팔을 잡고 탑의 창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갑자기 큰 충격이 탑에서 터져 나왔다.

콰앙-!

눈엔 보이지만 손으론 잡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파동에 김우태와 도화지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으왓!”

“꺄아!”

화악-! 퍼져나간 충격은 멀리까지 뻗어 나갔는데 10층 높이의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도 순식간이었다.

“허억!”

놀란 건 김우태만이 아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

탑 안에 있던 오크들도 그대로 압사당하고 있었다. 창문으로 뛰어내린 몇몇도 바닥에 떨어지며 뼈가 부러졌고 뭉게구름처럼 흙먼지를 피워낸 탑의 잔해는 그대로 시체의 무덤처럼 변해버렸다.

“…뭐야? 대체?”

이맘때 나도 김우태의 근처에 와 있었다. 도화지를 부축해서 일으켜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모르겠어! 갑자기 무너져버렸지 뭐야!”

자욱하게 퍼져나가는 흙먼지 사이로 누군가 비틀거리며 우리 쪽으로 걸어 나왔다.

“으으으… 으으으으으….”

머리가 깨져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팔도 하나 부러진 것 같았다. 목에 찬 목걸이가 특이하다. 오크는 저런 장신구를 차지 않았으니까.

김우태가 벌떡 일어나 녀석에게 가서 목을 잡았다.

“네놈들의 왕은 어디에 있어!”

“…으으으 …으으으 …쿤드라께서는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셨다.”

“뭐라고?”

“흐으… 흐으…. 말려도 소용없었어.”

오크가 주저앉았다.

“이제… 제국은 내 것인데… 내 것이 될 수 있었는데….”

오크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얼굴을 처박았다.

『지혜의 목걸이를 획득했습니다. 재능마켓에서 수령하세요.』

오크의 목에서 목걸이가 사라졌다.

“뭐야? 이놈은? 아이템만 주고 가네? 민준아! 난쟁이들은 찾았어?”

“감옥 어딘가에 있던가 다른 곳에 끌려갔을 거예요.”

먼지가 점차 걷히자 돌무덤처럼 음산한 탑의 흔적이 보였다.

“그 쿤드라인지 뭔지가 튀었다는데?”

“아마도 저쪽으로 건너간 것 같아요. 퀸이나 로드처럼.”

“하! 왜들 못 가서 안달이야?”

도화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서 찾아볼게요!”

“그래! 우린 저 탑에 뭐가 있는지 볼게! 가자, 민준아!”

감옥에서 풀려난 이들은 밖으로 나와 오크와 싸우기 시작했다. 이미 오크들은 가이나 아리를 보고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기 바빴는데 전에도 한 번 당했던 기억 때문에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오크의 힘줄을 얻었습니다. 재능마켓에서 수령하세요.』

『오크의 뼈를 얻었습니다. 재능마켓에서 수령하세요.』

탑의 잔해를 치우자 이런저런 아이템이 쏟아졌다. 수많은 오크가 즉사했는데 돌과 돌 사이에서 엘프 한 명이 신음하고 있는 걸 보았다.

“이봐요!”

엘프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으으… 으으으… 당신은?”

여자 엘프는 나를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가 입을 뗐다.

“어떻게 된 거죠?”

“탑이 무너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마법을 썼어요. 오크의 왕이 다른 세계로 가겠다며 우릴 모아놓고 닦달했죠. 마법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불안했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어쨌든 대륙 입장에선 쿤드라가 사라진 것이 득이 됐다. 이제 오크들은 뿔뿔이 흩어질 거고 이종족들은 다시 자기들만의 세상을 구축할 것이다.

“일어나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잠시만 앉아 있을래요. 어지러워요.”

“알겠습니다. 생존자가 더 있을지 모르니 저는 저쪽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당신은 어느 왕국 사람이죠?”

“아, 멀리서 왔습니다. 들어도 모르실 겁니다.”

돌탑이 무너지는 바람에 안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다. 다친 사람들에게 생수를 먹이며 밖으로 끌어냈는데 쿤드라가 균열을 연 것이 확실해 보였다.

한참을 움직이다가 김우태와 만났다.

“이제 더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힘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서 돌들을 치울 수 있었던 거지 아니었다면 중장비가 필요했을 거다.

“그 오크 놈이 넘어갔다면 뉴스에서 난리가 날 건데?”

“아마 지금쯤 사살됐을지도 모르겠네요. 퀸처럼 강한 것 같진 않아 보이던데.”

“하,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여기서나 강한 거지 총 맞으면 죽을 건데.”

특히 오크는 어딜 가나 눈에 띌 거다.

“어쩌면 모습을 바꿨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경계는 해야겠어요.”

“얘네가 그럴 머리가 있을진 모르겠는데?”

오크는 이족보행을 하고 말도 하지만 인간이나 엘프에 비해서 좀 더 동물에 가까웠다. 그 본능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건 대한민국에서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놈은 나중에 찾아보고 여기부터 정리하고 가죠. 오크들이 다시 올지도 모르니까 사람들을 모아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떠나면 또 오크가 올 수 있었다. 주역들은 탑에서 다 죽어버린 것 같지만 새로운 우두머리가 생기지 말란 법이 없었으니 확실히 와해해버려야 했다.

『민준아! 여기로 와! 난쟁이들 찾았어! 대장간이야!』

도화지의 메시지에 나는 김우태와 함께 성의 외곽으로 뛰어갔다.

“여기야! 여기!”

대장간 앞에서 도화지가 팔을 흔들고 있었다.

“오! 찾은 거예요?”

“응!”

나는 서둘러 대장간으로 들어갔는데 안엔 드워프들과 난쟁이들이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밖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시끄러우니….’

깡깡 두드리고 쇳물을 다루고 서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는데 난쟁이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완성된 무기에 뭔가를 바르고 있었다.

그중에서 몇몇이 눈에 익다.

“아!”

그들도 나를 보았다.

“어어?”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