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그때….”
기억이 뒤엉킨 건지 악마는 뜻 모를 소릴 하며 완전히 녹아내렸다.
“뭐라는 거야?”
“몰라요. 사람들 오기 전에 우선 나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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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서울숲에서 화재가 발생했었다는 짤막한 기사가 뉴스를 장식하긴 했지만, 세상은 악마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걸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눈치챈 존재도 있었다.
“흑마법이었다.”
강남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 펜트하우스.
로드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파의 주인이 소파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며 대답했다.
“이상할 필요가 있나? 다른 놈들도 하나둘 넘어오는 거겠지. 이토록 먹음직한 세상이니까.”
건배하듯 잔을 들고 훌쩍 포도주를 마신 피의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로드의 생각은 달랐다.
“넘어오는 게 문제가 아니야. 제거됐다는 게 핵심이다. 누군가 이 세계를 지키고 있어. 그건 아마도 너와 내가 아는 바로 그놈들인 것 같은데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놈들만으로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거다. 이 땅은 과학과 기술이 지배하고 있어. 특히 언론과 방송이 사방에 있어서 정보를 숨기기도 어렵지.”
“그딴 놈들은 신경 쓸 필요 없다니까? 퀸만 사라지면 그놈들은 하루아침에 죽일 수 있어. 내가 상대해봐서 알아. 퀸을 잡기 위한 함정이나 계속 궁리하라고.”
피의 주인은 강해졌다. 퀸의 피를 마신 뒤론 육체적이나 권능이 저쪽 세상에 있을 때와 거의 근접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퀸을 죽이려면 다른 것의 도움도 필요하다.
마법이었다.
“이 땅엔 마법이 없었어. 우리가 건너오기 전까진 어떤 마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놈들은 분명 마법을 쓰고 있었지. 이걸 파악하지 못하면 우리도 당할 수 있다는 뜻이야.”
“여기에 뭐 비밀 마법 집단이라도 있어서 이 세계를 수호하고 있다는 그런 뜻이야? 억측이 심한데? 인간들의 역사를 보라고. 그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마법을 쓰지 않았어. 그게 가능해? 원래 없던 거야. 지금도 그렇고. 내가 볼 때는 엘프 몇 마리 넘어 온 것 같은데 그쪽으론 네가 전문가잖아? 타락한 엘프!”
로드가 쓰게 웃었다.
“나를 자극할 생각이었다면 의미 없다고 해두지. 나는 타락한 게 아니야. 좀 더 많은 학문의 영역에 발을 디딘 거다. 왜 빛만 추종하지? 어둠을 이해해야 진정한 자연을 볼 수 있는 거라고.”
“아아, 내게 마법 강론 따윈 집어 치워주겠어? 벌써 잠이 오려고 해.”
“너희 일족도 절반은 마법에 의해 탄생한 거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글쎄, 이 권능엔 마법보단 저주가 더 강력하게 깃들어 있는데? 내 힘은 악마에게서 온다고. 더러운 피 말이야. 크크큭.”
피의 군주가 다리를 테이블 위에 올리며 말했다.
“이제 말해봐. 퀸을 어떻게 유인할 거지?”
“그 괴물은 물리적인 힘이나 마력으로도 완전히 죽일 수 없어. 나도 오래도록 그 괴물에 관해 연구했는데 퀸의 자식들은 이 땅의 것들이 조합되어 탄생한 것이 확실하지만 그 괴물은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태어났어.”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물어보는 거잖아. 방법이 없으면 찾아. 만들어서라도 죽여. 그게 마법사의 일이잖아.”
“나는 네 부하가 아니야.”
“나도 네 군주가 될 생각은 없는데? 마법사를 어떻게 믿나? 그것도 타락한 엘프를.”
로드가 쯧,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잠시 후 한 사람이 거실로 들어왔다. 로드의 시녀였다.
“말씀하셨던 물건들을 수소문해보았지만, 이 세계엔 마력을 지닌 물건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피의 군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없진 않잖아? 박물관 같은 곳엔 저주 받은 것들이 있던데?”
“그것들을 몰래 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화끈하게 빼내면 되잖아.”
피의 군주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시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정작 말은 로드가 들으라고 하고 있었다.
“경찰이든 뭐든 퀸만 죽이면 돼. 그러면 이 세상은 우리 거다. 그 괴물이 더 강해지기 전에 없애야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 원한다면 내 아이들을 붙여줄 테니까.”
로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땅에도 마력이 흐르는 곳이 몇 곳 있어. 거기에 마법진을 쳐놓고 퀸을 유인하면 그녀의 힘을 무력화할 수 있을 거다.”
“오! 그래? 그게 어딘데?”
“버뮤다나 미국의 사막 인근, 아마존과….”
“헤에, 그렇게 멀어? 퀸이 거기까지 올까?”
“말을 끝까지 들어. 가까운 곳에도 한 곳 있으니까.”
“그게 어딘데?”
“강남역.”
“어어억? 저기? 저 강남역?”
피의 군주가 창가로 가서 손을 뻗었다.
“그래, 어쩐 일인진 모르겠지만 이 근처에도 마력이 희미하게 흐르는 곳이 있더군.”
“하! 그래서 여기 땅값이 비싼 건가?”
“…그건 상관없는듯하지만, 마력이든 저주든 매개체를 구해서 마법진을 완성할 수 있다면 그녀를 소멸하는 것도 가능할지 몰라. 마력이 흐르는 땅이 어딘지 더 정확하게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멀지 않으니 곧 특정할 수 있겠지.”
“재밌네? 어제도 그 근처를 지났는데 전혀 느끼지 못했어!”
“미약하거든. 하지만 존재하기만 하면 증폭할 수 있다. 그게 퀸의 발목을 자를 거고.”
“좋아! 좋아! 네가 원하는 모든 걸 말해! 내가 다 지원하겠어!”
두 사람은 창밖을 바라보며 섰다. 시녀가 뒤에서 말했다.
“경찰이 주인님을 쫓고 있습니다.”
피의 군주가 피식 웃었다.
“놔둬. 퀸만 죽이면 경찰이고 뭐고 다 조종할 수 있으니까. 이미 내 아이들을 심어놓고 있거든.”
로드가 피의 군주를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거해야 할 자.’
퀸도 위협이지만 뱀파이어도 인간에겐 치명적인 유해 생물이었다. 지금은 함께 있지만 마지막 순간이 오면 피의 군주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로드였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가 시녀에게 말했다.
“물건을 확보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네,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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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이 안 되네?”
강나은 경위가 얼굴을 찌푸렸다.
“네? 경위님? 제게 하신 말씀이세요?”
“아, 아니에요!”
강나은 경위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가요!”
“네, 타세요.”
팀장이 입원해서 그녀에겐 새로운 파트너가 생겼다. 장혁이라는 형사인데 매우 젊고 의욕적이었다.
‘무슨 일 생겼나?’
서울숲 지하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아침에 달려가서 보니까 어찌나 서늘한지 냉장고에 들어간 것 같았다. 그런데 사건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장혁 형사가 말했다.
“박물관이 통째로 털렸다고 하면 맞을 겁니다. 근데 참 이상하죠? 금관처럼 돈이 되는 건 건드리지도 않았어요. 이상한 것만 훔쳐 갔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털렸다.
“국보나 보물 같은 거 말고 조선 시대 비녀랑 족자, 도자기 몇 점이랑 일제 강점기 때 쓰던 소총 같은 겁니다. 지금도 확인중인데 한 30여 종 되는 것 같습니다.”
“광수대 분들도 오실 거예요.”
“…대체 이 사건을 우리가 왜 맡은 겁니까?”
장혁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CCTV는요? 확보했나요?”
“경비원이 확인했을 때는 전부 부서져 있었답니다. 더 이상한 건 박물관 전체에 깔린 최첨단 경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거고요. 내부자가 관련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것이어서 직원들을 전부 구금 중입니다.”
“목격자도 없겠죠?”
“네, 전혀요.”
차가 박물관으로 향할 때 윤일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접니다. 경위님.
“네, 저도 현장으로 가고 있어요.”
-저는 늦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제보가 있었거든요. 조우진 형사 옆에 있던 여자, 그 여자를 봤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어디서요?”
-역삼동입니다.
“하? 서울에 있었다고요?”
-일단 확인을 해봐야 하니까 그 여자가 맞으면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누가 제보했는데요?”
-출입기자입니다. 며칠 전에 제가 조우진 형사와 그 여자 사진을 뿌렸거든요. 닮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고생하세요. 기다릴게요.”
그 여잘 찾을 수 있다면 조우진 형사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범하게 서울에 있다는 게 놀랍지만 그래서 더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 않나?
박물관에 도착한 강나은과 장혁은 차에서 내리며 주변을 보았다. 이미 국과수가 족적이나 증거를 채집하려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장혁이 물었다.
“그냥 절도가 아닌 겁니까? 혹시 팀장님과 관련된 사건입니까?”
팀장이 기동대 총에 맞아서 입원했다는 사실은 모든 형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계속 움직여야 해요. 그래야 그들의 그림자라도 밟을 수 있을 테니까.”
“누구 그림자 말입니까?”
“…어둠이요.”
박물관에서 사라진 물건들을 듣자마자 강나은 경위는 소름이 끼쳤다.
마법, 저주, 흡혈귀, 괴물….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골동품이 어디에 쓰일지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연상이 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만약 돈이 목적이었다면 더 값비싼 것들을 훔쳤을 것인데 도난당한 물건들은 묘한 사연이 있는 물건들이었다.
‘불길해. 뭔가 시작되려 하고 있어.’
무엇보다 범행 패턴이 그랬다. 지금까지 놈들은 사람들의 눈에 최대한 띄지 않으려고 해왔다. 히트맨 역시 세상의 이면에서 놈들과 대적해왔었다. 그런데 히트맨이 먼저 접선해왔다. 놈들도 이렇게 대범하게 박물관을 털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아니, 징조야.’
인간의 몸은 참으로 신기해서 귀가 트이면 모든 소리가 거슬리기도 하고 특정 부분에서 예민해지면 그게 한없이 거슬린다. 지금 강나은이 그랬다. 히트맨의 메시지를 들은 그날부터 모든 것을 의심했다.
“혹시 십자가 같은 것도 도난됐나요?”
“십자가요?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요?”
“아, 네.”
두 사람이 박물관으로 들어가자 관장이 부리나케 뛰어왔다.
“아이고! 형사님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희 직원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요!”
장혁이 정색했다.
“죄가 없다면 풀려날 겁니다. 알리바이가 확인된 사람들은 바로 보내드릴 거고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 용의자입니다. 공범 없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얼만 착한 사람들인데요! 절대 그럴 리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건 저희가 조사해본다고요. 도난물품 더 찾은 거 있으십니까?”
“아…. 그게 저도 조금 전에 안 건데 관이 없어졌습니다.”
“관이요?”
“네, 이쪽으로 오시죠.”
관장은 두 사람을 지하로 이끌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본래 이달 말까지 저희 박물관에서 전시한 뒤 프랑스로 보낼 예정이었던 이집트 미라의 관이 저기에 있었습니다.”
관장의 손끝이 가리킨 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그 관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십니까? 장정 몇이 들어도 힘들어서 지게차를 이용해서 옮겼다고요! 그런데 그걸 여기서 들고 나간 겁니다!”
“귀한 겁니까?”
“학문적이나 역사적으로 볼 때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겠지만 관을 금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장물로 팔아 봐야 별로 살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가져갔다?
강나은 경위가 몸을 숙였다.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재능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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