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강나은 경위는 자신이 지금까지 보고 찾은 모든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완벽한 타인에게 이 정도로 도움을 받는 건 처음이었는데 조력자라는 재능마켓의 판단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강나은 경위에게 얻은 정보를 김우태와 도화지에게도 공유했다.
-잘됐네! 우린 우선 오크부터 해결하자! 그러다 보면 그 형사님이 놈들을 찾아주겠지!
-나도 계속 냄새 맡아볼게! 지금은 너무 희미해서 알아낼 수가 없어!
-우리도 내일 무전기 하나씩 사야겠다. 저쪽에선 핸드폰이 안 되잖아?
-맞아! 맞아!
이제 하층으로 가는 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처럼 고요한 내 방에서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 게 어색할 때가 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을 청하려는데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르르르릉?
범이도 머리를 번쩍 들었다.
‘뭐지?’
이게 얼마만의 감각인가?
‘위험하다고? 지금?’
대체 뭐가? 동료들에게 연락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창밖에서 소름이 쫙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흐읍!”
나는 서둘러 활과 활 통을 챙겨 창문을 열었다.
“…저게 어떻게….”
이전에 보던 것과는 다른 빛깔의 균열이 전봇대 아래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대가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헉!”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악마?’
나는 창문으로 뛰어내리며 활을 겨눴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은 오가지 않았지만, 소란이 일면 하나둘 불이 켜질 것이었다.
“크크크! 찾았다!”
악마는 나를 보며 크게 웃었는데 놈이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에 기선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곧장 화살이 놈에게로 쏘아졌다.
푹! 푹푹!
놈의 몸에 화살이 틀어박혔지만, 놈은 고통을 참아내며 꾸역꾸역 밖으로 몸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순식간에 12발의 화살을 박아 넣었는데도 놈은 고슴도치처럼 변한 대가리를 흔들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제기랄. 하필 저놈이 여기에?’
하층에서라면 모르겠는데 여기선 제약이 많았다. 심지어 내 집 앞이다!
“범아!”
빠르게 달려온 범이의 등에 올라타자마자 오토바이로 모습을 바꾸고 질주했다.
-절대 도망칠 수 없다!
혼자서 놈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어디로 가야 하지?’
워낙 경황이 없어서 핸드폰까지 두고 나왔다.
‘재능마켓엔 들어갈 수 없는데.’
하루 1회 입장 제한이 있어서 아침까진 버텨야만 한다.
‘최악이야.’
나도 많이 강해졌다지만 저 악마는 내가 만나본 괴물 중에서 무력으론 최강이었다.
‘최소한 자유롭게 싸울 수 있는 곳으로 가야 돼.’
휙! 뒤를 돌아보니 시커먼 구름이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 안에서 소름 돋는 음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절대 벗어날 수 없다! 크크크!
피잉-!
놈을 향해 화살을 쏴봤지만, 치명상을 입힐 수 없었다.
‘거기로 가자!’
범이가 최대 출력으로 도로를 질주했다.
-꺄아! 저게 뭐지?
-꺼억, 내가 술을 너무 마셨나?
행인 몇 명이 내 뒤로 따라오는 구름을 보며 눈을 비볐지만 그게 설마 악마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다시 갈 길을 갔다.
『돌발 미션: 데몬 제거. 차원을 넘어온 악마는 매우 강력합니다. 하지만 그를 제거할 수 있다면 매우 귀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확정 포인트 300,000P.』
놈이 얼마나 강하면 포인트가 무려 30만이나 걸렸다.
‘화살이 통하질 않는 게 문제야. 드링크도 다 집에 있는데!’
심야의 도로라서 막히는 곳은 없었다. 순식간에 한강이 보였다. 하지만 내가 가려는 곳은 저기가 아니었다. 한강 역시 사람들의 눈에 띈다. 더 깊은 곳으로 가야 범이라도 본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형사에게도 소식이 전해질 수도 있을 거고!’
화아아악!
바짝 따라온 구름 안에서 팔이 불쑥 튀어나와 등을 할퀴려고 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서울숲에 진입했다. 공원엔 몇몇 연인들이 보였는데 악마는 다른 사람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나만 죽자고 따라왔다.
‘저기야!’
사슴농장. 폐쇄되어 막힌 입구엔 접근금지라는 띠가 둘러있었지만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크흐흐흐, 여기게 네놈 무덤이냐?
콰앙!
덧대놓은 나무를 부수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여길 이렇게 다시 올진 몰랐는데 범이가 무럭무럭 자라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은색 갑옷을 입었다.
크르르르르르르!
내 옆에 선 범이가 악마를 노려보며 언제든 뛸 준비를 했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었다.
“…어떻게 올 수 있었지?”
시간을 벌고자 하는 말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궁금했다.
악마도 여유를 찾았는지 구름에서 벗어나 바닥에 발을 디뎠다.
“내가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네놈이 이쪽, 저쪽을 드나드는 통에 애를 먹긴 했지만 너를 죽이라는 맹약이 남아 있는 한 나는 너를 찾을 수 있다.”
하, 이런 질긴 놈!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싫었지.”
놈이 혀를 길게 늘어뜨렸다. 배까지 내려온 혀를 보니까 진짜 악마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다. 혀 일부분이 뜯겨있다.
“다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아. 인간은 음흉하고 욕심이 많아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거든. 하지만 더 거짓말을 잘하지. 적어도 우린 맹약을 지켜. 하지만 너희는 언제든 말을 바꾸지.”
나는 활을 겨냥하며 놈에게 말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온 것 같아?”
“더 갈 곳이 없었겠지! 크크크!”
“천만에!”
화르르르륵!
화살에 불이 붙었다.
“고작 그따위 화살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나?”
“아니.”
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피의 주인이란 놈을 만난 이후로 나는 한가지 버릇이 생겼어.”
“피의 주인이라…. 그 씹어먹을 놈의 후손인가? 불쾌한 것들!”
“최초의 뱀파이어를 아는 것 같은데?”
“모든 악마들이 그 탄생을 지켜보았지. 멍청한 인간들! 자신들이 조물주라도 된 양 착각하는데 그 무지함이 괴물을 낳았다! 결국 자신의 목을 조르는 거지. 너 역시 마찬가지다. 내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아둬. 살점 하나까지 잘근잘근 씹어줄 거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맹약이었으니까.”
“사심이 가득한 것 같은데?”
“나는 인간이 싫다.”
약간의 틈이 생기자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아까 얘기하다 말았는데 내가 버릇이 생겼어. 핸드폰은 놓고 다닐지언정 이건 꼭 챙기거든.”
놈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엔 뭐든 해보라는 자만이 가득했다.
“넌 오늘 여기서 죽는다.”
놈이 확신하듯 말했다.
“아, 무섭게 자꾸 왜 그래?”
비아냥대고 있는 것 같지만 나 역시 속으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놈이 최대한 방심해주길 바라면서 이 드링크의 효과가 내 기대 이상이길 기원했다.
‘내가 가진 드링크 중에서 가장 강력한 거니까.’
놈에게도 반드시 약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특 불바다 드링크(전설):일정 반경을 화염으로 뒤덮는다. 소유자와 동료에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써본 적 없으니 얼마만큼 위력적인진 모르겠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쓸까?
‘두 개밖에 없는 전설 드링크지만….’
저놈을 잡으면 그 이상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죽어라! 인간!”
놈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도 드링크를 던지며 화살을 쐈다.
챙-!
허공에서 화살에 맞은 드링크가 터졌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륵!
“…?!”
놈의 공동이 커졌다. 급히 뒤로 물러나며 검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불길은 고작 그 정도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화라라락!
퍼져나간 불길이 지하 전체를 가득 채웠다.
피피피핏!
놈을 향해 화살이 쏟아졌다. 이토록 펄펄 끓고 있는 불길 속에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경험은 매우 진귀했지만 그걸 감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푸푸푸푸푹!
놈의 몸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크크크크크…하하하하!”
“…?”
놈이 웃어 재꼈다.
“멍청하구나! 지옥의 불길에서 살아온 내게 고작 화염이라니!”
놈의 육체가 시뻘겋게 익어가고 있었지만 타진 않았다. 불길이 내가 들어온 입구 쪽으로도 펑펑! 튀어 나가고 있었는데 악마는 비웃으며 내게 천천히 걸어왔다. 이놈은 화살에 맞아도 반응이 없다. 고통을 느끼지도 않고 심장도 없는지 가슴에 화살이 박혀도 멀쩡했다.
“쳇!”
나는 뒤로 뛰며 다른 드링크를 하나 더 꺼냈다.
“오늘 밑천 다 터는구나!”
『겨울의 전설:일정 반경을 냉기로 뒤덮는다. 소유자와 동료에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휘익!
악마에게 던진 드링크를 놈이 검으로 가볍게 부숴버렸다. 하지만 놈은 모른다.
쩌어어어어엉-!
“…크흡?”
무자비하게 타오르던 주변이 순식간에 암흑으로 바뀌고 생명체를 절대 살 수 없는 절대 저온으로 바뀌었다.
드드드득!
움직이던 놈의 걸음이 천천히 느려졌다. 온몸에서 얼음알갱이가 떨어져나왔다.
“…이, 이…놈이?”
눈알도 얼어버리는 극한의 냉기에 놈의 혀도 딱딱하게 굳었다.
피잉-!
빠르게 화살을 쏘았다. 콰악! 콱! 바위에 박히듯 화살이 놈의 몸을 뚫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효과는 벌어지지 않았다.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갈 것이다….”
놈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얼어붙어 가면서도 저주를 퍼부을 때였다.
휘익-!
그림자 하나가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렸다.
“어엇?”
그리고 커다란 망치 하나가 악마의 머리를 정확히 때렸다.
“누나!”
콰앙!
쩌저저저저적!
단단한 것이 갈라지는 소음이 났다.
“아오! 한방에 안되네!”
바닥에 내려선 도화지가 몸을 빙글 돌리며 다시 망치를 크게 휘둘렀다. 그리곤 그 끝이 악마의 가슴을 정확하게 때렸다.
빠악-!
딱딱하게 얼어버린 악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였다.
파앙--!
놈의 가슴이 산산이 터져버렸다.
“오예! 클리어!”
도화지가 폴짝 뛰며 기뻐할 때 또 한 사람이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형!”
“하, 왜 전활 안 받아?”
『미션을 완수했습니다.』
『재능마켓에서 보상을 확인하세요.』
『300,000P를 획득했습니다.』
“이놈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못 챙겼어요!”
“화지가 네 냄새에 민감해서 다행이었지 큰일 날 뻔했잖아!”
나는 도화지를 와락 껴안았다.
“고마워요! 누나!”
“호호호! 나 없었으면 어쩔 뻔!”
그녀의 망치는 연금 도료 덕분에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다. 특히 악마 같은 것들에겐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악마 사냥꾼 호칭을 얻었습니다!』
『대단한 업적으로 모든 능력이 +1 올랐습니다.』
『이제 악마에게 높은 확률로 치명타를 줄 수 있습니다.』
악마 같은 건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게 좋겠지만 그래도 앞으론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긴 했어도 모든 능력까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으니 결과적으론 많은 걸 얻었다.
“와…. 이 끔찍한 놈이 여기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네.”
김우태가 악마의 잔해를 발로 툭툭 차며 머리를 흔들었다. 딱딱하게 얼은 악마의 몸이 조금씩 녹으며 연기처럼 변하고 있었다.
“이게 그 전설 드링크 효과냐?”
“네, 퀸이나 로드 만나면 쓰려고 아껴놨던 건데 어쩔 수 없었어요.”
“더 만들면 되지. 일단 살았잖냐.”
이때였다.
녹아내리던 악마의 머리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으으으으….”
놈의 주둥이가 움직였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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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39-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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