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난쟁이들이 없었다. 몇 개의 마을을 다 돌아봤지만, 인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그 늑대인간들에게 다 잡아먹힌 건 아니겠지?”
김우태가 불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손엔 초코파이 같은 것이 든 큰 상자가 들려 있었는데 그걸 맛있게 먹어줄 대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더 찾아보죠. 뭔가 일이 생겨서 이주했을지도 몰라요.”
“그렇다고 마을까지 버리고 달아나? 주변은 다 사막이라면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 이유만 알면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있을 거고요.”
우린 차우산 등지를 돌며 조사를 시작했다. 혹시 땅굴을 파고 숨었을지도 모르니 구석구석 뒤졌는데 도화지가 전혀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게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어느덧 밤이 왔다.
소득 없이 시간만 지났는데 보름달이 떴다.
“와… 이게 달꽃이구나?”
차우산이 소금을 뿌려놓은 것처럼 하얗게 변해갔다. 달꽃을 채집할 난쟁이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 을씨년스럽게만 보였다.
어딜 간 걸까? 김우태의 말처럼 모두 죽은 건 아니겠지?
멍하니 들판을 바라보는데 범이가 갑자기 옆으로 튀어 나갔다.
“범아!”
우린 범이를 따라 뛰었다. 워낙 빠른 녀석이라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졌는데 그렇게 10분쯤 뛰었을까?
‘여긴….’
계곡으로 통하는 입구였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폭포!
“아! 설마 그쪽으로 간 건가?”
범이를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어떤 흔적을 발견했다.
“오! 있다! 누군가 있어!”
물가에 이런저런 도구가 놓인 게 보였다. 앙증맞은 사이즈였기에 난쟁이의 물건이란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서 빨래를 했나 봐!”
“더 올라가 봐요!”
동물은 물 없이 살 수 없다. 분명, 이 근처에 그들이 모여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올라갔을까?
“오오오오! 있다!”
나무 사이사이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도 우릴 발견했는지 환호하며 우르르 튀어나왔다.
-와! 영웅이 왔다!
-이제 살았어!
-거인족이다!
아이들이 먼저 나를 알아보고 사방에서 쏟아져나왔다. 다행히 숫자가 많이 줄진 않은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야?”
가장 먼저 온 아이에게 묻자 녀석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
“오크들이 왔었어요! 너무 무서워서 우리는 여기까지 도망쳤는데 어른들이 잡혀갔어요!”
“오크가? 언제?”
“그제요!”
오크가 여기까지 왔다고? 거리가 상당히 멀 텐데? 게다가 주변은 온통 사막인데 고작 난쟁이 잡겠다고 사막을 건넜다고?
“무시무시한 와이번을 타고 날아왔는데 그 괴물이 어른 몇 명을 통째로 삼켜버렸다고요! 너무 무서워서 우리는 울면서 도망쳤어요!”
와이번? 그게 뭐지?
“날개가 달린 큰 괴물이에요! 오크가 둘 셋씩 타도 끄떡없을 만큼 커요!”
익룡 같은 건가?
“어느 쪽으로 갔어?”
“저쪽 하늘 방향으로요!”
“그래, 잘 버텨주었구나.”
내가 난쟁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말하자 김우태가 상자를 내려놓았다.
“배고프지! 일단 먹고 얘기하자! 다들 나와!”
-와아아아아아아!
김우태와 도화지가 초코파이를 까주면 대여섯씩 붙어서 그걸 뜯어먹느라 바빴다. 며칠을 굶은 건지 걸신이 들린 것처럼 해치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흐뭇해할 때가 아니다.
“오크가 미친 듯이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오크 왕이란 놈을 처리하지 않으면 대륙 전체를 집어삼킬 것 같아.”
“그 황제가 했던 거랑 비슷하네요. 인간이 오크로 바뀐 것뿐이지.”
“이래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딱히 원한은 없었지만, 그 오크를 막지 않으면 대륙 전체가 씨가 말라 버릴 것 같았다.
‘이걸 보여주려고 했던 건가? 경고로?’
그럴 수도 있고 우리 세상의 위험을 막으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고.
“아리가 있으니까 놈들 본거지까진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악마가 다시 나타나면 그게 문제에요.”
“재능마켓에서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가는 건 어때? 그리고 이제 우리한텐 연금 도료가 있잖아. 악마에게 강한 타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좋아요. 그런데….”
초코파이를 먹고 있는 난쟁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 수가 이백이 좀 넘어가지만, 워낙 작은 녀석들이라서 축구장만 한 면적이면 생활이 가능할 것 같다.
“얘들은 여기 그냥 두고 갈 순 없을 것 같은데요. 보름달이 떠서 늑대인간이 나올 수도 있고….”
“그러면 어쩌지? 우리가 며칠 지켜줘야 하나?”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데려가죠.”
“응? 오크 군락지로?”
“아뇨! 재능마켓에요!”
“헉…. 우리 오피스텔에?”
“위층은 비었잖아요! 훈련장을 좀 손보면 얘들 생활하는 건 문제없을 것 같은데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기도 하고요.”
도화지가 손뼉을 쳤다.
“그러네! 가자! 여긴 너무 위험하잖아. 오크가 다시 올 수도 있고! 한번 온 놈들이 두 번 오지 말란 법도 없는데!”
아무리 균열이 이어져 있다고 해도 우리가 수시로 드나들 순 없었다. 당분간만이라도 난쟁이들이 안전한 곳이 필요했다.
“어때? 너희들! 우리 집 갈래?”
난쟁이들을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계곡엔 이들이 먹을 것도 없었고 어른들도 보름달 뜬 차우산에 내려가는 걸 거북해했다. 특히 마을이 한번 오크에게 침략당해서 안전하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오갈 곳이 없다.
“가서 며칠 생활해보고 판단해. 나쁘지 않을걸? 초코파이도 무한으로 공급해줄 수 있다고! 호호호!”
난쟁이들이 봇짐을 메고 줄을 섰다.
-거인들의 집은 어떤 곳일까?
-어마어마하게 크겠지?
-여기보단 안전하다니까 무조건 가야지!
-흑흑…. 엄마는 돌아오실 수 있을까?
오크들이 잡아간 어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돌아가자.”
.
.
.
“인간들에게서 와이번 조련술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던 것 같습니다.”
“약해빠진 놈들도 뭐 하나 잘하는 건 있단 말이지. 난쟁이들은 어찌 됐나?”
“전설대로 손재주가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드워프가 철을 다룬다면 난쟁이들은 마법 도구를 만드는데 특화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좋아. 더 강한 무기를 만들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혹시 그놈들 소식은 없었나?”
“흔적도 없습니다.”
“으음….”
군단장은 신음했다. 괴수를 부리는 인간 세 놈을 잡아 죽여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데 놈들이 어디 숨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전 대륙을 다 뒤져서라도 반드시 찾아내. 와이번 둥지도 보이는 족족 확보하고.”
“네!”
“광산 개발은 잘 되어가고 있지?”
“두 곳 더 찾아냈습니다. 그것도 본래 인간들이 채굴하던 것이었고요.”
“잘됐어. 이제 우리도 더 넓은 영토를 관리해야 하니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더 정복할 땅이 없어지면 그때는 있는 자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야.”
“노예가 많으니까 식량은 걱정 없을 겁니다.”
오크는 모든 이종족 중에서 가장 번식이 빠르다. 물론 고블린 따위가 더 많은 새끼를 낳지만, 그놈들은 많아 봐야 쓸 곳이 없다.
“인간들은 개나 말 따위를 잘 부리니 그쪽으로 투입하고 엘프는 계속해서 농사에 매진하게 해. 특히 엘프들은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그놈들이 가진 책을 모두 찾아내서 불태워! 가축이 똑똑할 필욘 없다.”
“알겠습니다!”
“놈들이 아직 사회나 문화에 익숙해져서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겠지만 몇 세대만 흐르면 옷도 입지 않을 정도로 짐승이나 다를 바 없어질 거야. 그때가 오면 우리 종족이 지상 최고의 지성체가 될 거다.”
“대단하신 계획입니다!”
“이번에 전리품으로 얻은 이 목걸이를 찬 뒤로 머리가 좋아진 것 같아.”
인간의 왕이 차고 있던 목걸이가 그의 목에 걸려 있었다. 그가 흡족하게 목걸이를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오크 하나가 막사로 들어왔다.
“군단장님! 쿤드라께서 찾으십니다!”
“앞으로 폐하라고 부르거라. 우리는 제국이 될 거다.”
“폐하요? 알겠습니다!”
군단장이 성큼성큼 성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좋아진 두뇌 덕분에 그의 눈엔 모든 것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제사장이 왜 그렇게 툴툴댔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새끼가 여기다 똥을 싸질러 놓은 거야?’
오크는 무식하다. 무식하니까 위생 관념이 없다. 더럽고 추악하다. 말 보단 주먹이 앞선다. 종족 특성일 수도 있지만 이제 군단장은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쿤드라가 의자에 앉아서 피식 웃었다.
“그 호칭은 인간들이 쓰는 것 아니던가?”
“대륙에서 가장 강성한 제국의 최고 지도자를 예우하는 호칭입니다.”
“나쁘지 않군. 그래, 그 목걸이가 효과가 있나 보지?”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이 보물을 제게 주신 것,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네가 가장 수고했으니 주는 것이 마땅하다.”
자신이 가질 수도 있었지만 쿤드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크는 오크다워야 한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법 아이템을 멀리했다. 하지만 똑똑한 부하는 언제든 환영이었다.
그가 말했다.
“이제 우린 더 싸울만한 대상도 없다. 사막의 괴수들은 사냥해봐야 시간 낭비일 뿐이고 악몽의 바다를 건너는 건 미친 짓이야. 그래서 말인데.”
“네, 폐하.”
“인간, 엘프, 드워프, 난쟁이, 악마라고 해도 좋으니까 로드나 퀸이 어디로 넘어갔는지 알아봐.”
“서, 설마 그들을 따라가시려는 것입니까? 이미 대륙이 폐하의 것인데요?”
“싸울 놈이 없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무료하다. 살아있는 기분이 들지 않아.”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루셨는데….”
“그 좋은 머리로 생각해봐라. 군단장.”
“네?”
“이 땅을 지배하던 세 절대자가 왜 다들 저쪽으로 넘어갔겠나?”
“그건….”
“그곳이 더 윤택하기 때문일 거다. 이제 우린 힘없고 겁먹던 허약한 오크가 아니야. 놈들을 상대할 군대와 힘을 가졌다.”
군단장이 빠르게 머릴 굴렸다. 결론을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감히 아뢰온데 폐하께선 그 절대자들을 마주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드는 무시무시한 흑마법으로 고통과 상처가 크면 클수록 더 강한 마법을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피의 주인은 트롤보다 재생이 빠르고 오우거보다 힘이 세며 안개나 박쥐로 변신도 할 수 있고 손톱으로 철 방패도 찢어버린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퀸은 이 둘을 합친 것보다 강하다고 했었고요.”
“내가 질 거란 얘긴가?”
쿤드라가 비웃었다. 그의 눈빛은 확신이 있었다.
‘이건 아닌데….’
과거의 군단장이었다면 맞장구쳤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지능이 높아지면 객관화가 된다. 여우들이 산의 주인이 되고 나서 호랑이 잡겠다고 설피는 꼴과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제국의 지배자는 쿤드라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놈들이 갔다면 나도 갈 수 있다. 놈들이 한 일이면 나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이 땅을 지배하지 않았나?”
“엘프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것들은 마법에 능숙하니까 가는 길을 알 거야. 당장 알아내.”
군단장은 끄응, 신음하며 물러났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무식한 오크 같으니라고….’
과거였다면 절대 떠올릴 수조차 없던 감정이었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