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나를 어떻게 찾았지?”
“영업비밀이야. 왜 살다 보면 감추고 싶은 거 그런 거 있잖아? 알려주면 경쟁력 떨어져서 장사 못하는 거.”
느긋한 피의 주인과 달리 로드는 바짝 긴장했다. 피의 주인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로드의 옆에서 시녀가 어금니를 깨물며 언제나 나설 준비를 했다.
“아아, 가만히 있지? 같은 편끼리 싸우고 싶지 않거든.”
“내가 왜 너와 같은 편이라 생각하지?”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말이지 퀸이 너무 강하더라고. 내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그녀가 빨라. 애대로라면 우린 평생 숨어 살아야 할 거야.”
“그래서?”
“그녀가 더 크기 전에 싹을 자르자는 거지.”
“마치 돌아가는 상황을 다 안다는 것처럼 말을 하는군?”
“퀸에 네게 와서 경고하지 않았나? 꺼지라고.”
“그걸 어떻게….”
피의 주인은 퀸의 피를 빨았다. 그의 권능으로 퀸의 기억 일부를 갈취했는데 그래서 퀸이 얼마나 빠른 발전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우린 그녀의 새끼들조차 감당할 수 없게 돼. 그것들이 태어나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고.”
“그 이후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면 되지 않을까? 너도 알겠지만, 이 땅은 무식하리만치 넓고 인구도 많아. 80억 명이라고 하던데? 들어는 봤지? 크크크, 80억 명이면 내가 천년만년 동안 살아도 전혀 줄지 않는다고. 오히려 더 불어날걸? 천국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마법사.”
“내가 너와 손잡는다고 해서 그녀를 해치운다는 보장은?”
“없어.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영영 이런 기회가 오지 않으리란 것도 알지. 너는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그녀는 이전보다도 훨씬 강해질 예정이야. 여긴 그녀의 양분이 되는 것들이 매우 많거든. 고민이 길어질수록 우리에게 불리하다는 것만 알아 둬. 시간이 없다. 이 순간에도 그녀가 알을 낳고 있을 거야.”
“네 말이 다 맞는다고 쳐도 내가 너를 믿는 건 별개의 문제일 것 같은데? 너희 일족은 피를 나눈 사이만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그랬지.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잖아! 어제의 적도 오늘의 동지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하하하! 자본주의! 이 얼마나 멋진 말이야? 내가 여기 와서 감탄하는 게 한둘이 아니야! 인간이 어떻게 저 우주에 갈 생각을 하겠어? 그런데 이들은 해내고 있잖아! 멋지지 않나? 우리는 이들의 과학과 기술을 한 단계 더 진보시킬 수 있어.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마법과 흑마법, 과학과 기술이 융합될 거야.”
“그리되면 종국엔 파멸만 남겠지.”
“퀸이 날뛰어도 어차피 파멸이야.”
“….”
“그녀의 벌레는 감염을 시킨다. 내가 종족을 늘리는 방식과는 전혀 달라. 그 기생충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번식하고 사회는 붕괴할 거다. 거기서 끝나지 않아. 놈들은 병을 옮긴다. 그 전에 다 불태워야 해.”
“누가 들으면 네가 영웅처럼 알겠어.”
“나는 악당이지만 세상이 망하는 걸 바라진 않아. 인간이 없으면 나도 굶는다고.”
“악당이란 걸 아니 다행이군. 네 종족이 죽인 이종족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긴 하는 거지?”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늑대가 풀만 먹고 어떻게 버티나? 하지만 퀸은 생태계를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없어.”
“좋아. 하나만 묻지. 내가 볼 때는 너도 퀸이 사라지면 이 세상을 지배하려 들 거야. 그때 너는 종족을 일정 숫자 이상 늘리지 않을 자신이 있나?”
“얼마든지!”
“그 수가 일백 이하라고 해도?”
“물론!”
“네 심장에 맹세해?”
“보여줄까?”
자신의 심장을 꺼내려는 피의 주인을 보며 로드가 피식 웃었다.
“됐고, 그건 악마를 불러 약속하면 되는 일이니, 뜻은 알겠어. 나도 이곳이 좋아졌다. 지키고 싶은 건 너와 같아.”
“그럴 것 같았지. 그래서 내가 너를 찾아온 거고.”
“하지만 퀸이 사라진 이후에도 너와 같은 곳에서 살 생각은 없어.”
“그건 걱정 마. 나는 미국으로 갈 거니까. 이왕이면 세계 최강의 나라에서 살아야지! 하하하하!”
“설마… 대통령이라도 할 생각이야?”
“아니! 내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데 그렇게 드러나는 일은 안 하지. 사실 지금이라도 미국으로 가서 여기에 핵을 한 100발쯤 쏴버리면 퀸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고민도 해봤거든? 대통령이든 뭐든 다 내 일족으로 만들면 되니까. 그런데 만약 그래도 퀸이 죽지 않으면 그때부턴 전쟁이야.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보단 너와 조용히 가서 스윽 처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오크나 사냥할 때가 훨씬 마음이 편했던 것 같군.”
“알아. 여긴 복잡하잖아. 근데 그래서 재미있지 않나? 어차피 너는 범죄자잖아. 내가 숨겨주지. 나는 인맥이 화려하거든.”
“혹시라도 하는 말인데 나를 네 일족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아아, 타락한 엘프의 피 따위! 맛없다고. 내 쪽에서 사양하겠어.”
피의 주인이 맛을 떠올렸는지 인상을 쓰다가 말했다.
“자, 이제 남은 건 하나야. 퀸의 정보를 얻고 난 뒤에 알게 됐는데 우리 셋 외에 또 다른 세력이 더 있어. 활 쏘는 놈, 망치 든 여자, 덩치 큰 기분 나쁜 자식. 나는 그놈들이 네 부하인 줄 알았었는데 아니었더군. 완전한 제3세력이라고 봐야 해. 그들을 잘 이용할 수 있다면 퀸을 제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야.”
“인간이 그렇게 강하다고?”
“그래, 그들도 마법을 쓴다. 어떻게 얻었는진 모르겠지만.”
“이 세상 인간들에겐 마법이 없을 텐데?”
“나도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세상사 다 알 순 없잖아? 넌 자동차 한 대 만드는데 부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아?”
“…모른다.”
“그런 거야. 다 알려고 하지 마. 하지만 우린 자동차를 부술 힘이 있어. 놈들이 어떻게 마법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는 얘기야. 죽이면 그만이니까.”
“좋아. 내가 뭘 하면 돼?”
“따라와. 펜트하우스를 보여주지. 앞으로 너희가 머물 곳이다.”
.
.
.
재능마켓.
내겐 이제 없어선 안 될 공간이 되었다. 오랜만에 푹 자고 일찍 일어났더니 몸이 개운했다. 그래서 곧장 강남역으로 왔다.
『신비한 무전기(귀속): 상대를 떠올리면 소통할 수 있다. 절대 추적당하지 않는다. 단, 상대가 발신자의 무전을 들을 만큼의 호감도가 있어야 한다. 80,000p』
어떤 원리로 되는진 중요하지 않다. 가격도 깡패다. 그러나 이제 이 정도 포인트는 저쪽으로 한번 넘어갔다 오면 벌 수 있다.
‘흩어질 일이 많으니까 이런 게 있으면 좋을 거야. 일단 하나만 사서 써보고 좋으면 더 사자.’
『신비한 무전기를 구매하시겠습니까?』
“그래.”
『주의사항: 신비한 무전기는 같은 시간대의 대상만 소통할 수 있습니다.』
“알았어. 줘.”
『신비한 무전기가 귀속되었습니다.』
“에? 이게 다야?”
손안에 놓인 건 작은 골무 같았다. 마치….
“귀에 넣는 건가?”
그렇다고 코에 넣을 순 없으니 일단 오른쪽 귀 안에 밀어 넣었는데 쏙 들어가서 자릴 잡았다. 이물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실험을 해봤다.
“범아.”
화들짝! 저쪽에서 잠을 자던 범이가 눈에 띄게 몸을 떨었다. 그리곤 나를 보며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보았다.
“오오… 되는 건가?”
통신 요금도 나가지 않는 멋진 물건이 내 귀에 자리 잡은 것이다.
“뭔들….”
사두면 언젠간 써먹지 않겠어?
웃으며 장롱으로 걸어갔다. 어젠 피곤해서 잡템 정리를 다 못했다. 드링크도 못 만들었다. 하긴 세계수 가지 같은 3가지 보물이 주인공이었으니 뭐가 더 있었어도 눈에 띄질 않았을 거다.
“흐흐…. 내 보물들.”
김우태와 도화지는 보조직업에 별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지만 나는 드링크 만드는 게 좋다. 사람들도 도울 수 있고 급할 때는 전투에도 쏠쏠하게 써먹는다.
“용사의 혼, 흑마법사의 눈알? 흑마법의 가루…. 이번엔 이런 것들이 많네?”
제국에 다녀와서인지 각종 재료가 넘쳐났다.
“연금 가루, 연금 도료? 와, 이건 그때 그건가?”
나는 신중하게 하나하나 분류하며 어떤 것들을 조합할지 계산했다. 일단 중류가 많은 것들은 몇 번이고 실험해 볼 수 있으니 레시피를 만들어내기 좋다. 그렇게 무언가 하나가 만들어지면 더 고급 재료를 섞어서 무엇이 나올지 본다.
‘아! 오늘은 차우산에 다녀와야겠는데?’
빈 병을 재능마켓에서 구매하는 것처럼 포인트 아까운 일도 없었다. 재능마켓 아이템은 뭐든 비쌌는데 필드에서 구하면 훨씬 저렴할 것을 몇 배는 부풀려 받는다. 단전인 예로 5가지 조합을 섞을 수 있는 귀한 빈 병의 경우 살 때는 10,000포인트인데 팔려고 하면 100p밖에 안 준다. 강도도 저런 날강도가 따로 없었다.
『빈 병을 110p에 판매하시겠습니까?』
“안 판다고! 됐거든?”
이 안에선 내 생각까지 읽는 게 확실하다. 딴엔 10p 올려준다고 하는 게 더 열 받는다.
나는 재료 정리를 마치고 가방을 꾸렸다. 혹시 있을 전투를 대비하지만 빈 병을 수거해 오려면 공간이 필요했다.
“아예 가방 하나를 더 가져가자.”
내 개인 창고에서 똑같은 가방 하나를 더 꺼냈다. 요즘 우린 틈 만나면 이렇게 장비의 여유분을 재능마켓에 가져다 놓았는데 김우태가 차가 있다는 게 이 모든 걸 손쉽게 했다.
덜컥!
문이 열리며 김우태가 들어왔다. 뒤따라 도화지도 보였다. 오늘도 역시 양손엔 무언가 한가득이다.
“뭘 그렇게 많이 샀어요?”
“흐흐흐! 돈 좀 만졌거든! 야, 쉐이크가 얼마나 잘 팔리는지 아냐? 차라리 공장을 차리는 게 낫겠어! 편의점에만 유통해도 대박 터지겠다니까?”
“그러다가 포인트 못 벌면요.”
“…망하겠지.”
우리는 어쩌면 하루살이일지도 모른다. 죽으면 그 순간 우리가 해오던 모든 게 끝난다.
“생수 정도는 부담 없이 대량으로 살 수 있을 만큼 압도적으로 포인트를 수급할 방법을 찾기 전까진 일을 크게 벌이면 안 돼요.”
“그래, 그러면 빨리 오크 때려잡으러 가자!”
“아, 저는 오늘은 차우산에 가려고요. 빈 병도 가져와야 하고요.”
“그래? 그러면 우리도 같이 갈까?”
“좋아! 나도 거기 갈래! 오크! 지겨워!”
“혹시 늑대인간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긴장은 하셔야 해요. 뭐, 두 분 실력이면 이제 늑대인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나야 초장에 고생한 거지 이제 도화지에겐 강아지나 다름없을 거다. 아니, 도화지가 나설 필요도 없다. 가이나 아리가 날뛰면 죄다 혼비백산해서 도망칠 것이니까.
‘우리가 정말 강해졌구나.’
격세지감이란 게 이런 거겠지. 나 혼자 그 차우산에서 피똥 싸며 늑대인간을 상대하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시간이 그리 오래 흐르지도 않았다.
그만큼 우리가 치열하게 살았다는 거겠지.
“기다려봐! 거기 갈 거면 초코파이 넣자!”
오늘, 난쟁이들이 포식하겠는데?
재능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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