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으앗!”
“어떻게 된 거지? 끝난 건가?”
김우태와 도화지뿐 아니라 범이나 가이도 영문을 몰라 오피스텔 안을 둘러보았다.
『퀘스트를 종료했습니다.』
『보상을 확인하세요.』
『레벨이 올랐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끝난 거 같은데?”
“와! 집에 오니까 좋다!”
도화지가 만세를 불렀다. 나도 같은 심정이다.
『제국은 황제가 뱀파이어가 되어 멸망했습니다. 진화 과정에서 하프엘프의 피를 흡수하지 못한 뱀파이어는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고 저주는 영원히 뱀파이어 일족을 괴롭혔습니다.』
나는 장롱으로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
덜컥!
『세계수의 가지를 얻었습니다.』
『대지의 핵을 얻었습니다.』
『쿤드라의 해골을 얻었습니다.』
세 가지 보물이 우리 손에 들어왔다.
『뱀파이어는 강력하지만, 약점이 있습니다. 아이템을 잘 활용하면 그를 영원히 잠재울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아이템이 있었는데 중요한 건 우리에게도 놈들과 싸울 무기가 생겼다는 거다.
“그런데 이 세계수 가지는 전에 우리가 복원하지 않았었나?”
“과거에서 온 건가 봐요.”
“신기한 노릇일세.”
김우태가 재미있다는 듯 세계수 가지를 들어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뱀파이어 가슴에 콱 박아줄 말뚝이란 거지?”
“다른 두 가지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죠.”
우리의 대화에 도화지가 갑자기 생각났듯 말했다.
“그 오크는 어쩌지?”
“내일 다시 가봐요. 오늘은…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
하도 정신이 없어서인지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었다. 하층으로 가서 얼마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포인트는 제법 벌었어.”
김우태가 크크! 웃었다. 쉐이크 팔 생각에 신이 난 것 같았다.
“장사도 좋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세요. 이러다 병나겠어요.”
“그래, 그래. 먼저 가. 난 정리 좀 하고 갈게.”
“나도 할머니 보러 갈래요! 그러면 오빠, 수고해요!”
나와 도화지가 먼저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강남역 거리.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우리는 조금 전까지 다른 세상에서 황제가 뱀파이어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고 왔는데 마치 근처 영화관에서 블록버스터 한 편을 보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현실감이 전혀 없달까?
오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도화지가 물었다.
“민준아.”
“네.”
“그 엘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녀들 덕분에 뱀파이어가 완전무결한 존재가 되진 못한 것 같아요. 그랬다면 온 세상이 다 뱀파이어로 뒤덮였을 거겠죠?”
“끔찍하네.”
“근처에서 냄새는 안 나죠?”
“응.”
얼마만의 평화던가. 물론 이 거리에서도 매일 사건 사고가 터지겠지만 세상이 멸망한다거나 하는 그런 스케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오래전 재능마켓에 들어갔을 때의 그날이다. 어머니에게도 예원이에게도 오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도민준! 내일 봐!”
도화지가 저쪽으로 뛰어가는 걸 보며 나는 지하철로 향했다.
‘불멸이라….’
미친 흑마법사와 욕망의 황제가 결합하여 사상 최강의 괴물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종족을 만든다는 게 신이 아니고서야 엄두를 내겠냐마는 그들은 해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좋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뭐든 끝이 있어야 과정이 더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만 해도 저쪽에서 넘어갔을 때는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 잘만 조절하면 영생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저쪽에서 10년 살다가 여기 와서 하루 정도 있다가 또 넘어가서 10년, 이러면 대체 얼마를 살 수 있는 거야?
‘정신병 걸릴 것 같은데.’
실존을 어디에 두느냐 같은 철학을 탐구하느니 빨리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그런데 내 앞의 두 사람이 앉아서 웅성거렸다.
“우와, 너 이거 봤냐?”
“뭔데?”
“지금 속보로 뜨는데? 경기도의 한 종교단체 시설에서 쓰레기 소각장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사람의 뼈가 발견됐는데 그게 전 교주의 것으로 추정된대.”
“하, 말세네, 말세! 그래서 범인은 잡았대?”
“현 교주가 도망쳤다는데 휴직 중인 경찰이래.”
“경찰이? 하여간 이 나라가 어찌 돌아가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들의 얘길 듣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 무슨 일 있어요?”
-냄새가 움직이고 있어! 서쪽으로 빠르게 가는데?
“저한테요?”
-아니 더 멀리!
“알겠어요. 멈추면 어디쯤인지 말씀해주세요. 다른 건요?”
-일단은 없어!
새로운 균열이 발생하거나 퀸, 로드, 피의 군주가 성큼 이동할 때 도화지가 포착한다. 지금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기에 추적할 수 없지만 그들이 움직이면 냄새가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침반을 꺼냈다. 바늘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하프엘프에게 맞춰놓았었던 바늘인데 그 대상을 찾을 수 없기에 이런 것 같았다.
‘긴 꿈을 꾼 기분이야.’
그러나 이곳은 현실이다. 과거의 그 괴물이 여기에도 있었다. 막지 못하면 제국처럼 우리도 멸망의 길로 접어들 것이었다.
집으로 와서 침대에 널브러졌다. 피곤해 죽겠는데 묘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럴 땐 따듯한 우유를 마시거나 일어나서 활동을 하라고 들은 것 같은데 그 모든 것마저 귀찮다.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었다.
톡이 왔다.
『민준아, 뭐해?』
예원이었다.
『그냥 쉬고 있어.』
『그렇구나. 혹시 주말에 시간 돼?』
『이번 주?』
『응!』
『아직은 딱히 일은 없긴 한데.』
『그러면 나랑 놀자! 회사에서 하루 휴가 줬거든!』
『잘됐네. 알았어.』
여러 일을 생각하면 내가 데이트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는 건 사실이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러고만 사나?
‘잠깐만 쉬자. 잠깐만….’
그렇게 나는 어느 순간 잠에 빠졌다.
.
.
.
“지명수배하죠!”
강나은 경위가 윤일권에게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겠습니까? 경찰 일인데…. 위에서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잡아야죠! 저 뼈들이 사람의 것이란 건 확실하잖아요! 그러니까 용의자도 도주한 거고요!”
‘도주’라는 단어에 윤일권이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기동대가 와 있었다. 광수대도 진을 쳤었다. 그런데도 그 남녀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초인적인 모습으로 도망쳤다. 거의 ‘날았다’라고 생각될 만큼 이상한 움직임이었다.
“해외로 도주할 가능성이 커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단체를 만들었다면 해외에서도 똑같이 만들 수 있거든요. 사이비 종교가 세계 각지로 퍼지는 것도 같은 이유고요.”
“아직 감정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확정하는 건 안 됩니다.”
“아오! 답답하셔라! 저게 교주의 뼈가 아니면 그들이 왜 도망쳤겠어요? 기동대가 총 들이밀어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던 사람들인데요! 당장 공개수배 해야 해요! 신도가 워낙 많아서 마음먹고 숨어버리면 답이 없다니까요?”
그녀의 말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윤일권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국과수 감정 나올 때까지만 기다리죠. 자수할 수도 있습니다.”
휴직 중인 경찰이 사이비 종교 단체의 교주가 되었다. 이전 교수는 불태워서 버렸다. 이것만 해도 충격적인 일인데 기동대와 광수대까지 포위한 상황에서 도주했다는 게 알려지면 옷을 벗어야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경찰의 무능.
이 프레임이 가장 무서웠다.
“그보다… 잠깐 저쪽으로 가시죠.”
윤일권이 따로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녀를 이끌었다.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윤일권이 말했다.
“아까 그 용의자의 움직임. 그게 정상으로 보였습니까?”
“아뇨. 5미터는 날아올랐잖아요.”
“그 형사가 전에 피습됐었던 그 형사죠?”
“맞아요. 한강 굴다리에서요.”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마법사, 하나는 벌레의 어머니란 것까진 예상할 수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끈을 윤일권이 포착한 것이다.
“이건 단순 종교단체의 소행이라고 보기엔 어려워요. 용의자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주를 죽였다고 아무나 새로운 교주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여기 신도들이 어떤 믿음을 가졌겠어요? 가족도, 자식도 다 버리고 뛰어든 사람들인데. 덜컥 용의자가 교주가 되겠단들 받아줬을까요?”
“저도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조우진 형사는 사람이 180도 바뀌었다고 해도 말이 될 정도로 이전에 그를 알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지금과 전혀 달라요.”
“다른 사람 같다….”
“서울숲 지하에 괴물이 설치는데 뭐가 됐든 이상할 건 없죠.”
“공개수배로 전환하면 그를 궁지로 몰 순 있겠지만 반대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이요? 그가 자살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어요.”
“아니요. 자해 말고 타인에게요.”
“아….”
“아까 그가 보여준 모습을 보면 경호 정도는 쉽게 뚫고 들어올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한 건진 모르겠지만 높은 담장도 그냥 넘을 거예요.”
“설마 대통령이라도 노릴 거란 건가요?”
“아니요. 제가 걱정하는 건 경위님입니다. 경위님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다고 여길 수도 있죠. 그냥 지나갔을 일을 키웠다고 원망할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두렵지 않아요.”
“저는 두렵습니다. 동료를 잃는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거든요.”
“고마워요. 저는 동료라고 생각해주셔서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저도 경찰이잖아요!”
팀장의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가 철철 흘러넘쳤다. 기동대 대원의 실수가 아니라 그 남자가 어떻게든 관련이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까요.”
“네.”
“조우진 형사가 뭐라고 말하니까 광수대 사람들이 비켜줬잖아요.”
“…저희 애들도 왜 그랬는지 모른답니다.”
“따지자는 게 아니라 뭐라고 그랬대요?”
“그저 비키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길을 터줬고요?”
“아마 집단최면 같은 것을 공부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교주 노릇도 할 수 있었겠죠.”
“상식과 데이터보다 다른 것에 더 의지하게 되는 저 자신을 어쩔 수가 없네요. 후우…. 어쨌든 저는 국과수 발표 나올 때까지 주변 cctv부터 다 확보할게요. 아무리 신출귀몰해도 대한민국에선 cctv를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차량에 부착된 블랙박스까지 다 합치면 서울 도심에선 사각이란 없다. 그걸 확보하는 게 일이지만.
“좋습니다. 저는 여기 신도들을 통해서 용의자에 대해 파악하겠습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두 사람의 행방이 묘연했다. 멀리 가진 않았을 것 같은데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는데 혹시라도 신도들은 주변에 몸을 숨길만 한 은밀한 장소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러나 로드는 지금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한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더 가까이 오면 대가릴 날려주지.”
“아아, 그 정도로 내가 죽지 않는다는 거 알잖아? 왜 이래? 로드답지 않게. 겁까지 먹고?”
피의 주인이 생글생글 웃으며 로드에게 걸어왔다.
재능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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