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와하하하하! 다 집어 삼켜라!”
데럭이 두 팔을 벌려 주문을 외우자 세 가지 제물이 황제의 몸으로 날아갔다. 세계수의 가지가 황제의 명치에 수직으로 꽂혔고 대지의 핵이 심장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제 쿤드라의 해골이 황제의 머리와 점차 겹쳐지는데 황제가 괴로운 듯 부들부들 떨었다.
-데럭! 멈춰!
-뭐 하는 거야! 이건 아니야! 잘못되고 있다고!
-데러어어어억!
흑마법사들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함을 지르며 데럭에게 다가갔지만 이미 멈출 수 있는 상황은 지나버렸다.
“크흑!”
두명의 흑마법사가 데럭을 찍어눌렀다.
“멈추라고! 당장!”
“크흐흐흐,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어. 막을 수 없는 주문이 완성되었다!”
데럭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웃었다. 그 얼굴이 어찌나 기괴한지 저쪽의 악마들 같았다.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위대한 흑마법이! 나, 데럭의 손에서!”
“이런 미친 자식이!”
흑마법사들이 한 대 모였다.
“우리가 막아봅시다!”
“악마만 되돌리면 되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두 마력을 한 대 모아요!”
지금도 악마들은 황제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천장의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악마들이 비웃었다.
-키키키! 내가 저럴 줄 알았지!
-멍청한 놈들!
-그런데 저 인간은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마법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우릴 인간의 육체에 가둘 순 없는데? 저렇게나 많은 악마를?
-쿤드라의 해골 때문이야. 저 물건은 애초에 영혼을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니까.
-오! 그렇군!
-거기에 대지의 핵이 심장에 파고들었어. 뭘 하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대지의 핵은 재생의 상징이잖아. 모든 건 흙으로 돌아가고 다시 생명이 싹트지. 세계수의 가지의 역할은 아마도 균형과 창조. 뭐가 되려는지 정말 궁금하군!
나만 아니면 될 대로 되란 생각인지 구름 속 악마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황제를 내려보았다.
데럭을 제외한 모든 흑마법사가 준비를 마쳤다. 그걸 본 공작이 외쳤다.
“폐하를 구해야 하네! 뭐든 빨리 해 보라고!”
공작이 다그치지 않아도 그럴 예정이었다.
“우리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모두 힘을 아끼지 말고 전력으로 맞서세요!”
“폐하를 구해야 합니다!”
“이건 우리가 생각한 마법이 아니에요! 제자리로 돌려놓지 않으면 재앙이 올 겁니다!”
흑마법사들이 의기투합해 황제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었다.
우우우우우우웅.
지팡이들이 빛을 내다가 황제를 향해 쭉! 빛이 날아갔다. 무려 팔십 개가 넘는 기운이 황제를 구속하며 악마들을 떼어놓으려 했다.
“으으으으! 더! 힘을 내야 합니다!”
“크윽! 반탄력이 강해요!”
“더 힘을 냅시다!”
레이저처럼 검붉은 선들이 흑마법사와 황제를 이었다. 팽팽한 힘겨루기가 진행될수록 모두는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는데 나는 그걸 보면서 말했다.
“지금이 기회에요!”
“어? 지금?”
김우태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사들이 전부 저쪽에 집중해있어요! 하프엘프를 데리고 도망칠 기회잖아요!”
“오! 그러네? 그런데 그녀를 어떻게 데리고 나가? 만지지도 못하는데.”
“일단 시도는 해야죠! 가요!”
악마가 날뛰고 황제는 더 미쳤다. 흑마법사들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수 없었고 일천의 이종족은 멍하니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에겐 천금 같은 순간이다.
“이봐요! 당신은 제가 보이죠?”
엘프 장로에게 뛰어가서 외쳤다. 그녀의 옆에 하프엘프가 두 손을 꼭 모으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장로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구나….”
그녀가 신기하다는 듯 우릴 보며 말했다. 옆에서 하프엘프가 물었다.
“왜요?”
“그 유령들이 또 나타났어.”
우린 손짓, 발짓해가며 그녀에게 말을 전하려 애썼다.
“도망치라고 하는 것 같은데?”
“…누가 봐도 그런 상황이긴 하잖아요. 하지만 기사들이 저렇게 많은데 어디로 가겠어요. 당장 붙잡히고 말 거에요. 이 사슬을 끊기도 어렵고.”
“사슬은 내가 끊을 수 있단다. 기사 몇 정도도 상대할 마법이 있고.”
“제국의 눈을 피해 영원히 숨을 순 없잖아요. 괜히 우리 마을이 공격당할 거에요.”
“그렇겠지. 하지만… 이 유령들이 너무도 간절하네.”
“어머니는 그 유령들이 무섭지 않으세요?”
“무섭기는. 이들도 한때는 살아있는 사람이었을 텐데. 귀여운 아가씨도 있고 잘생긴 청년도 있고 조금은… 기분 나쁜 사람도 있지만 나쁜 뜻은 없어 보여.”
그 말에 김우태가 상처받은 듯 움찔했다. 그의 강력한 마이너스 매력은 이런 상황에서도 통하나 보다.
“왜 이러는진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다면 따라보는 것도 어떨까 하는데.”
“저는 어머니께서 하시면 할 거예요.”
멀리 도망치진 못할 거다. 황제의 의식을 망친 것이니 대륙 끝까지 추적해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다가 죽는 건 억울하기도 하다.
“기사들도 우리에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아.”
다들 황제와 흑마법사를 보느라 이종족에겐 눈길도 안 줬다.
“내가 신호하면 천천히 몸을 숙이고 움직이렴.”
“사슬은요?”
“이미 끊어뒀어.”
“아! 역시 어머니 마법은 놀라워요!”
“네가 학문이 아닌 마법에 매진했다면 이 정돈 할 수 있었을 거야. 원리만 알면 어렵지 않거든. 비틀어진 걸 바로잡는 거니까. 저들도 그렇게 황제에게 하고 있을 거고. 쉽게 해결될 것 같진 않지만….”
“왜 저렇게 된 거에요?”
“저주란다. 황제가 모든 악한 기운을 다 빨아들이고 있어.”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인간의 육체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닌데요?”
“이미 황제는…전부터 선을 넘어버렸던 것 같구나. 내가 신호하면 바로 움직이렴.”
“네, 어머니.”
두 사람이 도망칠 준비를 하자 우리는 환호했다.
“이보시오! 나도 데려가 주시오!”
근처에 있던 이종족이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외쳤다.
“나도! 죽기 싫어요!”
“저도 도와주세요!”
장로가 갈등했다. 본래 선한 마음을 가진 그녀다. 인간을 사랑할 만큼 한땐 방황도 했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저들이 눈에 밟혔다.
“어쩌죠?”
“…선택은 저들에게 맡기자.”
그녀의 머리칼이 푸른 빛을 내며 살랑거렸다. 철을 끊어내는 건 물의 기운을 쓴다. 물, 나무는 엘프들에게 가장 익숙한 힘이기도 했다.
파파파팟!
그녀의 몸에서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지금이야!”
기사들도 눈치챘다.
-뭐야?
-놈들이 도망친다!
-잡아!
그런데 황제에게서 붉은 줄기가 파파파파파파팟!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처음엔 빛인 줄 알았는데 그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몸에 닿았다.
“…허억!”
“크어어어어억!”
“아아아악!”
그 붉고 가느다란 촉수 같은 것이 살갗에 닿자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기사나 이종족 할 거 없이 무작위로 달라붙은 후 피를 훔쳤다.
그래, 분명히 피를 빨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도와줘!”
두 손으로 잡고 떼어내려고 해봐도 안 된다. 칼로 자르려고 해도 잘리지 않았다. 이미 그 촉수에 닿은 사람들은 심한 고통 때문에 바닥을 나뒹굴었는데 촉수를 통해 피를 공급받은 황제는 흑마법사들을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으윽!
-너무 강합니다!
-이대론 밀리겠어요!
-방법을 찾아보세요!
-크윽….
울컥 피를 토하는 흑마법사도 있었다. 악마와 사람들의 피를 흡수한 황제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여전히 의식은 없지만, 촉수들은 그를 위해 움직였고 주변 악마는 거의 다 흡수했다.
난장판이라 두 엘프가 도망치긴 쉬웠다. 공작이고 뭐고 대신들도 촉수를 피해 미친 듯이 달아나고 있었다.
“이쪽으로! 어서요!”
도화지가 두 엘프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창문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촉수가 더 많아졌다. 문으로 우르르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촉수가 뻗어나갔다.
-으아아아아악!
-살려줘!
서로 밟고 밟히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해 보았지만 촉수는 빨랐고 많았다. 처음보다 몇 배는 많아진 촉수들은 이제 흑마법사들까지 덮쳤다.
“이대론 안 되겠습니다!”
“아니에요! 더 버텨야 합니다!”
흑마법사들도 촉수를 보면서 덜덜 떨었는데 시작한 마법을 거두면 반탄력이 막강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빨리요! 빨리!”
촉수의 반경이 넓어서 더 멀리 물러나야 했는데 창가로 온 두 엘프가 자기도 모르게 저쪽을 보았다. 굉장한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콰앙!
-으아아아아악!
-아아악!
-크어어억!
모든 흑마법사가 벌러덩 자빠졌다. 지팡이는 깨지고 촉수가 사라졌다. 그리고 언제 일어났을까? 황제가 침대에 서서 눈을 감고 있었다.
-오오오오! 인간이 깨어났다.
-저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단해! 이렇게 멋진 광경은 처음 봤어!
천장 구름 속 악마들이 감탄할 때 황제가 눈을 떴다.
“….”
황제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넘치는 이 힘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건 갈증이었다.
“…으으으….”
그가 침을 흘렸다. 그러자 한 쌍의 송곳니가 삐죽 자라났다. 황제를 본 데럭이 외쳤다.
“성공이다! 으하하하하! 성공이야!”
황제에게로 뛰어간 데럭은 감격한 듯 울며 물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마법이 성공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도 않으며 강력한 힘을 쓰실 수 있습니다!”
“…영원히 살아?”
“네! 폐하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셨습니다!”
황제가 자신의 손을 보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러자 손톱이 길게 자라났다.
“…초월했다라….”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대지의 핵이 폐하의 심장을 지켜주지만, 그것을 뽑아내면 노화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쿤드라의 해골이 저주를 대신 받아 폐하의 심신을 지켜주지만 깨지면 그 또한 균형을 잃습니다. 무엇보다 가슴에 박힌 세계수의 가지. 그것은 폐하의 육체를 지탱하게 해주지만 반대로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취약하다?”
“네! 나무로 가슴을 관통하면 세계수의 가지가 뽑힐 것입니다.”
“…나무라….”
“하지만 폐하는 이미 육체적으론 그 어떤 이종족도 따를 수 없는 강인함을 가지셨습니다.”
“…그런가. 그건 나쁘지 않군. 그런데….”
황제가 이마를 찌푸렸다.
“나는 왜….”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전에 하려 했던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 거지? 오직 하나밖에 생각이 나질 않아.”
“그게 무엇입니까?”
황제는 데럭에게 걸어갔다. 급히 엎드린 데럭이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황제가 데럭을 보더니 몸을 낮췄다. 그리곤 말했다.
“피…. 피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그러더니 데럭의 목을 사정없이 물었다.
“커헉!”
대륙을 통일하겠다는 정복욕도 명예도 사람도 모두 사라졌다. 오직 피만 갈구하며 마셔도 끝없는 갈증을 느낀다.
“…왜, 왜….”
데럭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비쩍 말라갔다. 마법이 성공했는데 어째서?
『하프 엘프를 지켰습니다.』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재능마켓으로 귀환합니다.』
재능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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