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여기야?”
“네, 오늘이 기회에요. 또 어디로 이동할지 몰라요.”
“지원은?”
“기동대가 오고 있어요.”
“광수대에도 알렸지?”
“30분 후에 도착할 거예요.”
강나은 경위와 팀장이 벽에 바짝 붙으며 얘기했다.
“오면 다 같이 들어갈까?”
“그러는 게 좋겠지만 괜히 놓치기라도 하면….”
우연이었다. 강나은 경위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조우진 형사의 아파트 주민들의 동선이었다. 처음엔 아파트 주민 중 누군가가 조우진 형사를 꾀어냈다고 여겼는데 cctv를 분석해본 결과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한 사람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시키면 시키는 대로, 가정도 등한시하면서까지 명령을 받고 있었다.
‘그 여자.’
조우진 형사의 곁에 있던 여자가 핵심이었다.
“일정대로라면 조우진 형사도 곧 올 모습을 드러낼 거에요. 오늘 매우 중요한 행사가 있는 것 같은데 이것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도 어제부터 이상했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또 뭐가 있어?”
“이 주면 마을에서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이들이 이 단체에 가입했어요.”
본래 사이비 종교가 자리 잡으면 주변 사람들부터 포교하는 것이 정석이긴 해도 이렇게 모두 홀리는 건 드문 일이었다. 가족이나 친구 중의 누군가는 반드시 의심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며칠 동안 지켜보니까 조우진 형사가 주동자 혹은 교수의 자리까지 간 것 같아요. 팀장님께선 믿기 힘드시겠지만 모든 정황이 그래요.”
“하아…. 우진이가 어쩌다가.”
“지금 막아야 해요. 전 교주의 시체를 찾으면 더 멀리 가기 전에 막을 수 있어요.”
“좋아. 어렵게 영장 받아왔으니까 어떻게든 찾아야 해. 24시간이야.”
“네.”
우진이 일이다. 남도 아니고 우진이에 대해선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우진이가 사이비 교주라니?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멈출 수 있다.
“시체를 밖으로 옮기진 않았을 거예요. 저들은 여기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할 거니까요.”
“묻었겠지?”
“그건 모르겠어요. 워낙 엽기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나니까. 어느 냉장고 같은 곳 속에 있을 수도 있고 김장독도 봐야 해요.”
“김장독이라니….”
단 며칠이었지만 교인들이 조우진 형사에게 보이는 충성심은 대단한 것이어서 목숨까지 내놓을 기세였다. 당연히 충돌이 예상된다. 살인사건의 조사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막아서면 공권력이 제힘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저기, 와요!”
강나은 경위가 몸을 벽에 더 깊이 숨겼다.
“조우진 형사예요.”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건물 앞으로 왔다. 형사 월급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살 수 없는 최고급 독일 차였다.
“와… 저거 2억은 그냥 넘을 건데. 심지어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형이네.”
“조 형사가 있던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시죠?”
“뭔데?”
“저도 부동산 갔다가 우연히 알았는데 갑자기 50가구 이상이 집을 내놨대요. 이런 물량은 처음이라고 하던데 저는 그게 이곳과 관련이 있다고 봐요.”
“미, 미친…. 집까지 팔아서 여기에 오려고 하는 거야?”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집고 있고 조부모와 함께 사는 가족도 있었는데 다 내놨대요. 공통점은 모두가 최대한 급하게 팔아달라고 했고 어디로 이사할 건지도 말하지 않았대요.”
최소 2억씩만 잡아도 50가구면 100억이다. 그런 식으로 돈을 벌면 저런 차를 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이쪽 마을에선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어요.”
“또 뭔데?”
“이 단체가 주변 땅과 집을 모조리 사들이고 있어요. 쓸모없는 산까지도요. 길도 없어서 들어갈 수도 없는데요.”
“파는 사람이 있대?”
“전부요. 대부분 매우 싼 값에 거래했다고 해요. 아버지가 땅을 팔겠다고 하니까 서울에 있는 아들이 내려와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는데 경찰까지 출동했지만, 아버지를 말릴 수도 없었대요.”
한쪽에선 돈을 벌고 한쪽에선 그 돈으로 땅을 산다.
“이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뇨…. 어쩌면 이 지역 전체를 그럴지도 몰라요. 오늘 집회에 예정된 신도가 만 명이 넘어요. 그래서 이 건물을 급히 개조한 것 같고요.”
“이걸…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팀장이 스턴 건을 꺼냈다. 종교 단체에 오면서 총을 들고 올 순 없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위협은 충분할 것이다.
“저 여자, 그때 보셨죠?”
“그래.”
“조우진 형사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예요. 24시간 함께 다니는 것 같은데 저 여자가 모든 일을 주관하고 있었어요.”
“신원은?”
“전혀 나오지 않아요. 저도 그게 이상해서 계속 찾아봤지만 나오는 게 없어요. 이름이나 나이조차도.”
“점점 더 수상하네.”
“14분 남았어요.”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덮쳐야 했다. 만 명 가까운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혼란은 가중될 것이고 신도들에게 둘러싸이면 조우진 형사는 유유히 빠져나갈 거다.
“우진이가 왜 저렇게 됐을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크게 다쳐서 사경을 헤맬 때 저 여자가 접근했을 거예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약한 부분을 노린 거죠.”
“그러면 혹시 저 여자가 전 교주와 관련이 있는데 그 교주를 밀어내고 우진이를 대리로 세운 걸까?”
“물어보면 알게 되겠죠. 그래서 신병을 확보해야 하고요.”
조우진 형사가 안으로 들어가자 차가 이동했다. 강나은 경위가 말했다.
“지금이에요!”
“알았어! 가자!”
인적이 뜸해진 틈을 타 두 사람이 정문으로 뛰어갔다. 안으로 급히 들어가서 몸을 숨기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팀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뭐야? 공사판이 따로 없잖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하려고 다 뜯어낸 것 같아요.”
“무너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더 의미심장한 건요. 원래 이런 단체는 겉으로 보여주는 것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데 이런 개판인 상태로 신도를 불러들인다는 건 그만큼 확고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집회는 2시와 5시에 있어요. 2시 전에 마무리해야 좋아요.”
“장난 아니네.”
“곧 광수대와 기동대가 도착할 거니까 조우진 형사가 도망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도주로를 차단해야 해요.”
“저쪽이야. 따라와.”
조우진 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팀장은 그간의 경험으로 어디를 막고 있어야 하는지 알았다.
“기동대가 정문으로 들어오면 우진이는 뒷문으로 올 거야. 여길 반드시 지나칠 수밖에 없겠지. 마침 저 벽이 없어서 시야도 좋네. 내가 우진이를 잡을게.”
“저는 여자를 맡을게요.”
“할 수 있겠어?”
“해야죠. 무조건. 그 여자가 주범일 수도 있는데. 3분 남았어요. 지금쯤 근처에 와 있을 거예요. 마을 사람들이 기동대 차량을 봤다면 이쪽으로도 연락이 왔을 거고요.”
광수대도 모자라서 테러 진압을 주로 하는 기동대까지 부른 건 조우진 형사의 일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런 단체의 교주라는 게 알려지면 내부에서도 좋을 게 없기에 사전에 차단해야 했다.
“놓치면 서장님께 맞아 죽을 거야. 내가 이 일에 얼마나 무리한지 알지? 아무리 우진이 일이라도 이건 과하다고. 시체 못 찾으면 나, 옷 벗어야 할 수도 있어.”
“찾으면 돼요! 시간 됐어요!”
벌컥!
저쪽에서 문이 다급히 열렸다. 그러더니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사방에서 건장한 사내들이 모여들었다.
“교주님! 어서 피하십시오! 경찰입니다!”
“경찰이 왜 왔죠? 우린 아무 잘못이 없어요.”
여자의 말에 사내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우진 형사가 팔짱을 끼고 사내들을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지 않는다. 집회를 강행하지.”
“교주님!”
“안 됩니다! 경찰이 곧 올 겁니다!”
사내들이 절박하게 외쳤지만, 조우진 형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올 테면 와보라고 해. 나는 피할 생각 없으니까.”
조우진, 그러니까 로드는 씨익 웃었다. 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엄청난 신도들이 그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마법의 원천은 마음과 믿음이다. 기술적인 계산도 필요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원천은 고통과 상처, 이곳으로 오는 인간들은 보통 사람 이상으로 심약한 이들이었다.
‘이제 물러서지 않아.’
특히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힘이 다소 돌아왔는데 권능을 기반으로 한 마법력은 퀸을 만나지 않는 한 인간 따위에게 밀릴 리 없었다. 그게 경찰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손들어! 움직이지 마!
-조우진! 가만히 있어!
우르르르르! 소총을 든 경찰들이 정문으로 뛰어 들어왔다. 로드의 곁에 있던 사내들이 필사적으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미, 미친! 비켜!
-흐읍, 물러서!
총 든 기동대한테 맨몸으로 달려드는 미친 사람들이 있을지 몰랐다. 오히려 기동대가 당황할 정도였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 기동대를 온몸으로 밀어내는 사내들은 나가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이때 팀장이 나섰다.
“우진아! 이제 끝났어! 그만하자!”
강나은 경위도 팀장의 뒤를 따르며 외쳤다.
“조우진 형사님! 당신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강나은 경위가 외칠 때 로드가 피식 웃었다.
“용의자라….”
그 비웃음을 본 팀장이 스턴 건을 뽑아 들며 말했다.
“이미 광수대가 밖에서 피해자의 단서를 찾고 있을 거다. 너도 알잖아. 저들은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찾아낸다는 거. 조용히 가자. 우진아.”
로드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용의자라고?”
“네가 죽이지 않았지? 그렇지? 그러니까 가서 설명하자.”
“용의자라….”
로드가 씨익 웃었다. 그 미소가 너무도 섬뜩하다고 생각한 팀장이 인상을 팍 구겼는데 로드는 이때 주변에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다.
스멀스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주변을 먹어치웠다. 사람들은 조금 답답해졌다는 생각밖에 못 하겠지만 이건 강력한 권능이며 스캔이었다.
기운이 기동대까지 덮쳤다.
‘꽤 단단하지만….’
훈련을 잘 받은 자들이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의 권능이 파고들기 어렵다. 그러나 언제나 틈은 있기 마련이다. 거대하고 견고한 둑도 구멍 하나면 순식간에 터져버리는 것처럼 딱 하면 된다. 믿음의 고리를 끊어낼 딱 하나의 균열.
로드가 더 진하게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
기동대는 지금 두 패로 나뉘어 있었다. 사내들과 대치한 무리, 뒤쪽으로 총을 들고 늘어선 무리. 뒤쪽 대원 중 앳된 눈을 한 남자의 눈동자가 혼탁하게 변했다.
스윽.
그의 총구는 본래 로드를 겨누고 있었지만, 그 끝이 조금 옆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타앙-!
“…?!”
명중했다.
-뭐야? 누가 쐈어!
-발포 명령 없었잖아! 누구야!
기동대도 당황했고 강나은 경위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알게 되었다. 그 총구가 어디를 향했는지.
털썩!
그녀의 옆에서 팀장이 주저앉았다.
“티, 팀장님?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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