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민준아!”
“누나? 어떻게 왔어요?”
“네가 하도 안 오길레!”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가리켰다. 냄새로 추적할 수 있다는 걸 잠시 잊었다.
나는 김우태와 도화지에게 빠르게 설명했다.
“개인미션? 저 여자를 지키는 거라고?”
“네, 근데 저 사람은 여길 떠날 이유가 없거든요. 그 흑마법사 개인이 벌인 일이었으니까요.”
“음, 이거 큰일이네. 말이라도 통하면 모를까.”
도화지가 여자의 앞에서 팔을 휙휙 흔들었지만, 여자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단 제가 지키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우리도 같이 갈까? 출정식까진 딱히 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우리가 말하는 사이 범이와 아리, 가이가 서로 부둥켜 물며 놀고 있었는데 잠깐이었지만 헤어졌다가 만나서 반가운 것 같았다.
“아니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계속 희생될 거예요. 형이랑 누나는 여기에서 흑마법사들을 상대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 기회가 있으면 한 놈이라도 줄여놓아야 하고요. 아까 제가 흑마법사와 싸워보니까 가이나 아리도 놈들을 타격할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손이나 발에 도료를 바르면 될 것 같긴 한데.”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 당장 해봐야겠다!”
이때 여자가 문밖으로 나갔다.
“일단 저는 다녀올게요! 어떻게든 출정식 전까진 돌아올 거에요!”
여자도 보호해야 하지만 사람들도 구해야 한다. 두 팀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범아! 가자!”
규우우우!
여자는 밤길을 걸었다. 다소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그녀는 익숙한 듯 한 방향으로 향했는데 그녀가 도시를 완전히 빠져나왔을 때 해가 뜨고 있었다.
“휴.”
바위에 걸터앉으며 다리를 손으로 주무르는 그녀를 보다가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간다고 했던 것 같고….’
그녀는 하프다. 어머니가 엘프일 수도, 아버지가 엘프일 수도 있다.
‘멀지 않아야 할 텐데.’
출정식 전까지 돌아오는 것이 파티 미션에 중요한 기점일 것이었다.
‘아직은 별다른 위험은 없어.’
21세기 대한민국엔 어딜 가든 사람이 있지만, 이곳은 다르다. 도시만 나와도 인적은 뚝 끊기고 길조차 제대로 깔려있지 않았다. 조선 시대엔 호랑이가 있었다면 여긴 온갖 몬스터가 득실거렸다. 여자 혼자 먼 길을 나선다는 건 매우 위험했는데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익숙하다는 뜻이겠지.
그녀가 다시 걸었다. 6시간 정도 걷다가 잠시 쉬며 물을 마시고 또 걷길 반복했다.
얼마나 왔을까?
해가 진다.
누군가를 이렇게 따라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녀와 대화라도 할 수 있으면 좀 낫겠는데 그게 안 되니까 답답하다. 목적지 역시 내가 정하는 것도 아니었고 무작정 뒤만 쫓아야 하니 이 길의 끝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밤에도 걸었다.
인간이었다면 이미 체력을 다 써버렸을 텐데 그녀는 엘프의 피가 섞여서 그런지 곧잘 걸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음식을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오직 물만 먹고 저렇게 잘 걷는다. 이 또한 그녀의 태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물우물.
하지만 나는 먹어야 산다. 가방에서 간편한 먹거릴 찾아 범이와 나눠 먹으며 그녀를 따랐다. 완만한 평지가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이런 광야에서 혼자 있으면 두려움을 느끼겠지만 그녀는 도시에 있을 때보다 자연스러웠다.
살랑, 살랑.
그녀의 머리가 걸을 때마다 출렁였다. 온종일 그녀를 보고 있었더니 이제 남 같지 않다. 우뚝 멈춘 그녀가 큰 바위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바위 아래에 앉아 무릎을 모았다.
‘저렇게 잠을 자려는 건가?’
어차피 누울 곳도 없지만 쪼그려 앉아 잠을 청하려는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하아, 어머니가 좋아하실지 모르겠네.”
그녀가 하늘의 별을 올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뛰쳐나왔는데. 9년 만인가.”
그녀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호기심은 인간의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이었지만 고양이를 죽이는 것도 호기심이었다. 엘프는 호기심을 억제하며 살아간다. 한 공간에서 수백, 수천 년을 대대로 살아갈 만큼 폐쇄적이고 모험이나 새로운 것에 관한 시도를 배제한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학문과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보통의 엘프가 마법과 자연에 심취한다면 그녀는 이 세계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를 탐구하고 싶어 했다.
“아니, 10년이네.”
마을을 벗어난 것도 벌써 10년. 연금술사가 되어 인간들과 어울려 살았고 이따금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곤란한 일을 겪긴 했지만, 어제처럼 죽을뻔한 적은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경각심을 깨웠다.
“어머니….”
그녀의 눈동자가 그리움에 물들었다. 그리곤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
.
.
경기도 북부 외곽.
사내가 만족스러운 듯 신도들 앞에 서 있었다. 족히 수백 명이 넘는 신도들이 그의 앞에 머릴 조아리고 있었다.
‘좋군.’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모이자 간단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퀸을 만난 후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는 생각을 바꿨다. 혼자만으론 퀸을 상대할 수 없다면 전혀 다른 각도로 세력을 모을 필요성을 느낀 거다.
그것이 바로 이곳이었다.
대한민국에선 이런 곳을 사이비 단체라고 하는데 이만큼 무언가를 몰래 도모하기도 좋은 곳이 없었다.
그의 충실한 하녀가 다가왔다.
“로드, 시간 되셨습니다.”
“알았다.”
그가 앞으로 나서며 신도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새로 시작할 왕국의 백성들이다. 이제 세상은 우리를 중심으로 변할 것이며 내가 왔으니 기존의 모든 법과 질서는 바뀔 것이다.”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
원래의 교주를 죽이고 그 자릴 차지했지만, 신도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화르르르르륵!
로드의 앞으로 불꽃이 타올랐다. 불길인데도 열기가 없다. 하지만 이걸 본 신도들은 신이라도 강림한 듯 감탄했다.
그래, 그는 신이었다.
그럴듯한 말 몇 마디와 자질구레한 마법을 보여주면 이들은 그를 경배했다.
“나를 믿으면 지상낙원에서 살 것이고 믿지 않으면 영혼까지 타버려서 영원히 소멸할 것이다.”
사이비답게 단체로 숙소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외부에서 활동하는 신도의 수도 제법 많았다. 이걸 키우면 머지않아 수만, 수십만의 부하를 거느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남을 믿다니. 쯧.’
하층에선 오로지 약육강식이다. 힘이 강한 자가 모든 걸 차지한다. 그런데 이 웃긴 세상은 혀만 잘 놀려도 남의 위에 설 수 있었다. 고작 이딴 마법이 뭐라고 저리 넋을 놓나?
화르르르륵!
이번엔 푸른 불꽃이 나타났다.
-오오오오오!
-신이시어!
겉모습은 조우진 형사였지만 이제 그는 이곳에서 신이었다.
“심판의 날이 곧 다가온다. 너희의 가족, 지인, 동료 그 누구라도 그날 단죄당하지 않도록 하루라도 빨리 설득하라.”
TV 같은 곳에 나가는 건 경계해야 한다. 퀸이 찾아올지도 몰랐으니까.
“너희는 기적을 목격하고 있다.”
로드가 훌쩍 뛰어올랐다. 그러자 푸른 불꽃이 그의 발아래 맺혔다.
-오오오오!
-공중부양!
-진정 신이셨다!
-와아아아아!
어떠한 장치 없이 허공에 뜬 로드를 보며 사람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본래 누군가를 속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정신적 충격을 주는 거다. 혼란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사람은 한번 믿으면 그것에 심취한다.
애초에 마음이 허해서 여기까지 모인 사람들이다. 로드는 그걸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가서 전파하라! 내가 너희를 구원하러 왔노라고!”
-와아아아아아!
-불신지옥! 불신지옥!
신도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로드는 그런 그들을 만족스럽게 보다가 하녀에게 물었다.
“아파트 사람들도 왔다고?”
“네, 부녀회부터 로드를 모시던 사람들이 다 오늘 입교할 예정입니다.”
“크크….”
신도들 앞에선 근엄했지만, 하녀와 둘만 남으니 본모습이 나왔다.
“머리를 써야 하는 거야. 이렇게 쉬운 걸 어렵게 돌아갈 필욘 없지.”
이 나라엔 종교의 자유가 있고 서로 경멸하긴 하지만 억압할 순 없었다. 종교인이 얼마나 될까? 500만? 1,000만? 그 반만 모아도 로드는 신보다 위에 군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후엔 세계로 나아간다면?
‘퀸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거야.’
그 무식한 괴물은 오직 힘으로 찍어누르려고만 할 거다. 그런데 이 세상은 그렇게 접근해선 전쟁만 날 뿐이었다. 더 영리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 시작이 바로 이곳이었다.
“교주의 실종으로 경찰이 올 수도 있습니다.”
“오라고 해. 시체는 영원히 찾지 못할 거니까. 피해자를 찾아야 죄를 입증할 수 있잖아.”
그의 몸은 조우진 형사였다. 법에 관해서라면 이미 빠삭했다.
“지배력이 더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수만 이상 동시 지배는 힘들어. 그 이상은 저들 스스로가 믿고 움직이게 해야 해.”
“모두 로드를 신처럼 모시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전 세계인이 다 로드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진 않을 거야. 제 밥그릇 챙기려는 놈들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로드께서는 특별하시지 않습니까? 몇 가지 권능만 보면 그들도 따를 것입니다.”
“알아. 하지만 갑자기 노출되면 퀸 같은 것들이 찾아올 거야. 세력은 확장하되 나는 겉으로 드러나선 안 돼. 신도들도 여기 오기 전엔 꼭 카메라 같은 거 있는지 확인해.”
“…퀸이 그렇게 강합니까?”
“애초에 종자가 달라. 그 괴물은 처음부터 무언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야. 우리처럼 생존이 아니라 파괴가 목적인 생물이라니까?”
“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겠지. 그 괴물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몇 없으니까. 힘들게 모은 세력을 그 괴물에게 갖다 바칠 순 없어. 철저하게 나를 숨겨.”
“퀸이 신도들을 빼앗으려 한다는 건가요?”
“아니, 제 새끼들 밥으로 줄 거다.”
“그, 그런….”
“그러고도 남아.”
군대를 모으는 방식이 모두 다르겠지만 로드는 기본적으로 힘을 마법에 두고 있으니 더 많은 동료가 필요했다. 마법이란 건 자연에서도 떠돌지만,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기도 한다. 오죽하면 원한이 깊어 섭리조차 거스르고 한곳에 머물겠는가? 그것이 저주와 흑마법의 근간이 된다.
로드가 몸을 돌렸다.
“출출하군.”
“차려두었습니다.”
로드는 식탐이 강했다. 특히 이 세계엔 먹을 것이 너무도 많아서 하루 다섯 끼를 먹어도 부족한 기분이었다.
“기대되는군.”
웃으며 자신의 거처로 향하는 그에게 저쪽에서 누군가 달려오며 말했다.
“신님!”
얼굴과 이름을 아는 신도였다.
“무슨 일인가?”
“경찰입니다!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그게 이렇게 호들갑 떨 일인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 경찰들이 조우진 형사를 만나러 왔다고 했습니다!”
“…나를?”
뒤에서 하녀도 움찔했다. 이전 교주의 실종 때문에 온 게 아니란 건가?
“알았다. 너는 가보도록 해라. 헛소문 돌지 않게 주의하고.”
로드가 밖을 향해 걸었다. 하녀가 뒤따르며 물었다.
“그들일까요?”
“몰라. 보면 알겠지.”
철문 밖으로 팀장과 강나은 경위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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