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저놈도 영생을 노리고 있단다. 황제의 뒤통수를 치려 하다니 간도 큰데? 그만큼 영생이란 게 주는 매력이 대단했겠지.
‘저 여자가 핵심이란 건가?’
흑마법사는 도구를 거실에 늘어놓더니 흥분된 듯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인간 셋에 하프 하나, 이 정도면 충분해.”
가방에서 피가 든 유리병들을 꺼내 늘어놓고 피를 뽑기 위한 도구처럼 보이는 물건 몇 개를 사내들 주변으로 가져갔다. 흔들리는 촛불이 위태로웠다. 여자는 여전히 정신을 잃었고 사내들은 간헐적으로 팔다리를 움찔거렸는데 뱀의 독이 강한 마비를 일으킨 것 같았다.
“잠시나마 행복했을 거야. 네놈들에겐 그걸로 족하지.”
대장의 품에서 금화 주머니를 꺼낸 흑마법사가 실실 웃었다.
“지나친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불러온다는 걸 저승에 가면 꼭 되새기거라.”
흑마법사가 칼을 꺼냈다. 넓은 양동이를 대장의 팔 아래 두고 몇 가지 가루를 안에 뿌렸다. 그러더니 칼로 사내의 손목을 그으려고 했다.
‘안돼!’
더 두고볼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서 활을 들고 시위를 당기자마자 놓았다.
솨아아아아아악!
“…어엇?”
흑마법사가 내 쪽을 보며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대장의 팔을 잡고 있어서 무방비상태였고 내 화살은 무척 빨라서 피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흑마법사의 앞을 가로막으며 뛰어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푸욱!
『흑마법사의 뱀을 사냥했습니다.』
『3,000p를 얻었습니다.』
‘이런!’
화살을 맞은 뱀이 흑마법사와 함께 나뒹굴었다.
“웬 놈이냐! 이런! 카일! 카이이이일!”
뱀 이름이 카일이었나보다.
‘젠장!’
첫발에 명중했어야 하는데 일이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생각도 없었다.
스악!
두 번째 화살이 날아갔다. 하지만 어느새 빼든 작은 지팡이가 흑마법사의 손에 들려 있었고 그게 번쩍 빛을 내자 놈의 앞으로 반원의 막이 형성되었다.
‘늦었어!’
화살이 허공에서 멈췄다.
“가, 감히! 나의 카일을 죽이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내 쪽으로 시커먼 무언가가 날아왔다.
콰아아아앙!
창문틀이 동째로 날아가며 파편이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나는 옆으로 몸을 날리면서 세 번째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도료가 발라진 화살이 많지 않아. 무한정 싸울 수 없어.’
공격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했다. 이때 흑마법사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네놈이었구나! 망자 따위가 감히 내 일을 방해하다니! 너를 잡아 영원히 고통받게 내 시종으로 부려야겠다!”
저놈에겐 내가 유령처럼 보이나 보다. 혹시 말도 통하나?
“하프로 영생을 노리나?”
“…네놈이 그걸 어찌?”
“황제가 알면 가만두지 않을 텐데?”
“흥! 나는 오늘 밤 마법을 완성하고 제국을 떠날 거다! 네놈은 누가 보냈지? 공작인가? 황제쪽은 아닌 것 같은데? 흐음, 그 화살촉에 빛나는 건 연금술사들 짓인가? 하긴 그게 아니었다면 내 카일을 죽일 수 없었겠지. 단단히 준비하고 왔구나! 언제부터 나를 미행한 거지?”
“그건 알 거 없고 지금이라도 그냥 간다면 죽이진 않겠어.”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죽어라!”
지팡이가 또 흔들렸다.
놈이 사용하는 마법은 검은 구체 같은 것이었는데 그게 불처럼 이글이글 타는 것 같으면서도 색이 검어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옥의 불길에 닿기만 하면 네놈은 영혼까지 타버릴 거다!”
친절하게 지옥의 불길을 알려주면서 놈이 나를 향해 계속해서 구체를 쏘아댔다.
나도 지지 않고 응사했다.
‘저 막을 뚫지 못하면 놈을 타격할 수 없어.’
화살을 계속 쏘았지만, 놈의 방어막은 견고했다.
펑! 펑펑펑!
놈이 쏜 구체가 여기저기에 닿으며 폭발했다. 불길이라지만 물리력도 상당해서 나무가 꺾이고 벽이 허물어졌다.
‘저걸 맞으면 즉사하겠는데?’
위기란 건 언제나 기회를 동반한다. 그런데 내겐 어떠한 탈출구도 없었다. 도주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저 여자는 피를 모조리 뽑혀 죽을 것이고 미션은 실패할 거다.
‘지팡이가 문제야.’
저것만 해결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놈이 단단히 쥐고 있으니 빼앗을 수가 없었다.
나는 건물 옆으로 돌며 고민했다. 적당한 드링크가 없을까? 활로 안 되면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했다.
‘웬만한 건 저 방어막에 다 막힐 건데.’
놈이 흑마법사라는 것도, 아직 놈에겐 더 많은 흑마법이 있을 것이란 것도 드링크를 고르기 힘들게 했다. 뭘 쓰던 다 막아버릴 것 같달까?
“크크크크! 여기까지다! 그곳은 막다른 길이니까!”
흠칫 놀라서 뒤를 보니 어둠 끝에 벽이 보였다.
“누가 보냈지? 실토하면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마.”
“흑마법사의 말을 믿는 바보도 있어?”
“…이번엔 약속하마. 절대 고통은 없을 거다.”
“어차피 죽는다는데 내가 왜 알려줘야 하지?”
“쯧, 멍청한 놈이로구나. 영혼을 태우는 고통을 알지 못해서 그렇겠지. 그때 후회해봐야 돌이킬 수 없을 거다.”
“죽기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황제를 본 후부터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던 의심 하나.
“뭐냐?”
“뱀파이어.”
“…뭐?”
반응만 봐도 알겠다.
“없군.”
흑마법사가 뱀파이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저런 표정이라는 건 이놈들이 하려는 일이 최초의 뱀파이어 제작이었다.
‘피의 주인은 그 후손쯤 되는 건가?’
어쩌면 이 마법은 완성되지 않고 후대에 진정한 뱀파이어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재앙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다는 것이다.
‘재능마켓이 이걸 보여주려고 했던 거겠지.’
하지만 어쩐다. 이제 도주할 방법도 없어졌다.
‘놈이 공격하면 옆으로 피하면서 화살을 쏘고 활대로 직접 타격해보는 수밖에.’
그사이 틈이 생기면 반대편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끝이다!”
이글이글! 불덩이가 아까보다 몇 배는 더 커졌다. 지팡이 앞에 맺힌 불덩이 크기가 점점 팽창하더니 내 키를 훌쩍 넘겼는데 이쪽을 완전히 막아버리면서 덮치려는 것 같았다.
“허어!”
다급히 활을 쐈지만, 화살은 불덩이를 뚫지 못했다. 놈의 흑마법은 대단해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와하하하! 죽어라! 망자!”
놈이 만족한 듯 지껄일 때였다.
휘익-!
놈의 뒤에서 은색 무언가가 덮쳤다.
콰악! 뒤에서부터 목을 물린 흑마법사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으아아아아악!”
지팡이를 놓치자 불덩이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는데 흑마법사의 목을 물고 늘어진 건 은빛 갑옷으로 온몸을 두른 범이였다.
“범아!”
“…으아아아아아아악!”
흑마법사가 발광하다가 축 늘어졌다. 우득! 목이 부러진 것이다.
“범아!”
나는 범이에게 뛰어가면서 메시지를 들었다.
『강력한 흑마법사를 사냥했습니다.』
『매우 특별한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재능마켓에서 확인하세요.』
『20,000p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무려 2만 포인트!
하지만 그것보다 더 흥분되는 건 범이가 흑마법사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까….’
범이가 두른 은빛 갑옷.
‘이거 혹시 도료인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앉은 범이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털 위로 갑옷이 덮여 차가운 감촉이었지만 범이의 표정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잘했어!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칭찬이 좋은지 내 손에 머리를 비비는 범이를 잠시 두고 흑마법사를 내려보았다.
앉아서 놈의 몸을 뒤져봤지만 특별한 건 나오지 않았다. 저 지팡이도 흑마법사의 손에 들렸을 때나 특별한 거니 내가 쓸 수 있는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저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사람.
그 여자였다.
“…흣?”
여자가 흑마법사를 보며 놀랐다. 누구에게 설명을 들은 건 없었지만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건 인지했는지 얼굴이 흙빛이었다.
“주, 죽었나?”
흑마법사가 미동도 하지 않자 여자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범아, 가자!”
나도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가 향한 곳은 집이 아니었다. 집에서 봉변을 당했으니 다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한참을 뛰어 연금술사의 탑으로 갔다.
“허억, 헉헉, 헉…!”
얼마나 놀랐으면 여기까지 오는데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무려 2시간 이상을 뛰면서 걸으며 도착했는데 연금술사의 탑에서도 인적은 별로 없었다. 밤이 깊어 다들 돌아간 것이다.
“후우….”
그래도 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숨이 진정되었다. 그녀를 따라 나도 탑으로 들어갔는데 김우태와 도화지는 보이지 않았다. 약속장소로 간 것 같았다.
‘아직 미션이 완료되지 않았어.’
흑마법사가 죽었고 그녀가 탑에 도착했는데도 미션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무언가 위험이 더 남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어떻게 하지? 누구에게 알려야 할까? 그 사람, 분명 흑마법사였는데.”
마음을 차분하게 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흑마법사에게 납치되었었다.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흑마법사를 죽였고 정신을 잃었던 나는 깨어나서 도망쳤다. 내 집에서 나를 납치한 사람들은 나처럼 정신을 잃고 모여 있었다. 그들 역시 제거하려는 것 같았다. 겨우 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나를 왜 노린 것인지, 왜 납치했는지 알 수 없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문서가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그녀가 종이를 접어서 옆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부탁해.”
믿을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했는지 입을 꾹 다물더니 돌아섰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그녀 앞에 서 있었다.
“가지 마. 이곳에 있어.”
내가 말했지만, 그녀가 들을 순 없었다.
“…흑마법사는 황제가 부리는데 그러면 황제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걸까?”
“아니야. 황제는 네게 관심이 없어.”
그녀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당분간 여기였다. 괜히 밖으로 나돌다가 더 끔찍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치안이 좋지 않은 이곳에서 그녀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홀로 돌아다니면 노리는 범죄자들이 많을 것이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까?”
그녀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혹시 아침에 되면 황제가 병사들을 보내는 건 아닐까?”
떠나든지 여기 남든지.
“…어차피 출정식까지 나는 연구를 마칠 수 없었을 거야. 떠나야 한다면 지금이 나을지도 몰라.”
그녀가 마음을 먹었는지 책상 옆의 가방에 자신의 자료들을 담기 시작했다. 아주 멀리 가려는지 보이는 건 다 담았다.
‘이거, 좋지 않은데?’
그녀는 오해하고 있다. 흑마법사 혼자 한 일을 황제가 시켰다고 확대했다.
와르르르.
가방에 책들을 쓸어 넣고 번쩍 들었다.
“끄응.”
무거운지 잠깐 가방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책을 좀 빼면 될 것인데 학자라서 그런지 그럴 생각은 없어 보였다.
“말을 구해야 해.”
도시를 완전히 벗어나려는 걸까?
창가로 간 그녀가 하늘을 보았다. 여전히 어두웠지만 몇 시간 지나면 해가 떠오를 것이다. 그녀가 저편을 응시하다가 말했다.
“어머니께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녀의 귀 끝이 쫑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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