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인간과 엘프가 반씩 섞인 새로운 이종족.
‘하프는 처음 보네.’
아까 느낀 아름다움이 위화감이 든 게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후우….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그녀가 일어났다. 피곤한지 어깨를 손으로 주물렀다.
“뭔가…출정식까지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나도 쫓겨날 텐데.”
학자들 사이에서 대대적인 숙청이 불 거라는 말이 나돌고 있었다. 기한은 이제 보름! 돈이 될만하거나 투자할 가치가 있는 연구가 아니면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처박힐 것이었다.
“어떡하지….”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녀의 연구는 순수한 학문적 접근이라서 관련자가 아니면 알아듣기도 힘든 분야였다. 당연히 성과를 내기도 힘들다.
“아, 몰라! 포도주라도 마셔야겠어!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하자!”
생각보다 활기찬 사람이었다.
‘흠?’
뭐지? 왜 이 여자에게 이끌릴까? 아름다워서? 아니다. 호감이 있어서? 그것도 아니었다. 하프라서 신기해도 그건, 거기까지다. 하층에서 더 놀랍고 굉장한 생물을 수없이 봤는데?
마침 저쪽에서 내로으는 김우태를 보며 말했다.
“형! 저는 이 사람 따라갔다고 올게요! 이따가 숭에서 만나요! 황제 방이요!”
“왜? 뭐 있어?”
“아뇨, 그냥 느낌이요!”
“알았어! 나는 화지랑 여기 더 둘러볼게! 뭔가 남아 있는 것 같은데 구석구석 찾아봐야겠어! 혹시 알아? 비밀통로라도 있을지! 아직 금 제조법을 못 찾았다고!”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랬다면 왜 오크가 땅을 파고 있었겠나. 너도나도 다 연금술사 하지.
“흑마법사 조심하고!”
“네! 형도요!”
여자를 따라 1층으로 나가자 갑자기 미션이 나타났다.
『개인 미션: 특별한 하프의 피.』
『하프를 지켜라,를 수락하시겠습니까?』
‘허?’
『개인 미션엔 하나의 펫만 대동할 수 있습니다.』
『개인 미션엔 파티플레이가 불가능합니다.』
‘이런 미션도 있었나?’
범이 말고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그래.”
말을 하며 활을 뽑아 들었다. ‘지켜라’라고 했으니까 분명히 그녀에게 위험이 닥칠 것이 분명했다.
“아…시원하다.”
탑을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향했다. 이곳에 가로등 따윈 없었다. 이미 해는 저물어서 뭐가 보이지도 않고 구름이 많아 달빛도 가렸다. 하지만 그녀는 익숙한 듯 길을 찾았다. 민가가 모인 곳까지 30여 분을 걸어가서 작고 허름한 건물로 들어갔다.
“…음.”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탑이야 공공시설이니까 드나들었지만, 그녀 혼자 사는 것 같은 집에 따라 들어가는 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들어가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설마 이대로 밤을 새워야 하는 건 아니겠지?’
고민하는데 이상했다.
‘왜 불이 켜지지 않지?’
밖이 이렇게 어둡다면 집안도 칠흑 같을 것이었다. 이상함에 집을 보는데 창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곤 우당탕, 뭔가 인기척이 났다.
‘어?’
나도 모르게 반쯤 열린 창문으로 뛰어갔다. 그리곤 봤다.
‘침입?’
건장한 사내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중 한 놈이 여자를 붙들고 있었는데 손으로 여자의 입을 막고 번쩍 들었다. 허공에서 방을 동동 구르는 그녀는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이런!’
미션이 이거였나?
내가 막 화살을 뽑아 겨눴을 때 말소리가 들렸다.
“재워. 조용히 가야하니까.”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의 명령에 다른 사내가 여자의 코에 병을 댔다. 그러자 스스륵 여자가 축 늘어졌는데 더 참지 못하고 화살을 쐈다.
“…!?”
“…음?”
사내들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화살이 사내의 등판을 그대로 통과해 저쪽으로 날아갔다.
“뭔가 느끼지 않았나?”
“바람이었나봅니다.”
“그런가?”
나는 내 화살이 저들에게 물리적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젠장!’ 욕을 하면서 여자를 살폈다. 아직 살아 있는 것 같다.
“가지.”
사내들이 여자를 들쳐메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인적은 전혀 없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대놓고 납치를 당하는데도 방법이 전혀 없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놈들을 따라나섰다. 놈들은 대로까지 가더니 여자를 마차에 실었다. 그리곤 말을 몰았는데 나도 슬쩍 마차의 외부에 올라탔다. 발판이 있어서 버티는 것엔 문제가 없었다.
“이랴!”
마부석의 남자가 마차를 몰자 두 마리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여자를 뒤쪽에 눕히고 앞쪽에 나란히 앉은 두 사내가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당한 미인이네요.”
“아서, 의뢰받은 물건이다.”
“그럼요! 당연하죠! 절대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아깝긴 하네요. 흐흐.”
“이번 일만 성공하면 막대한 돈이 들어올 거야. 그때 즐기면 돼.”
“압니다. 암요!”
부하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요. 형님. 연금술사를 잡아가서 뭐에 쓰려는 걸까요?”
“저렇게 예쁘니까 노예로 부리거나 하려는 거겠지. 특이 취향을 가진 변태에게 팔아넘길 수도 있고. 뭐든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차라리 몰라야 나중에 안전하기도 하고.”
두 남자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곧 의뢰를 마칠 생각에 만족감이 큰 것 같았다.
“형님.”
“또 왜?”
“우리도 이번 출정에 갑니까?”
“아니. 개죽음당할 일 있냐? 황제가 악몽의 바다를 너무 쉽게 보는데 그 바다는 미쳤어. 사람이 지날 곳이 아니라고.”
“아, 형님도 악몽의 바다에 가보셨다고 하셨었죠?”
“그래. 12년 전이었지. 나는 그날 일을 지금도 악몽으로 꿔. 살아 온 게 기적이었어.”
치가 떨린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떤 대장은 천천히 말했다.
“그 바다엔 폭풍만 있는 게 아니야.”
“인어도 사람을 홀란다고 하지 않습니까?”
“고작 인어 때문에 내가 이러는 것 같나?”
대장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거기엔 더 무서운 괴물이 살고 있어….”
“형님이 보셨습니까?”
“그 일부만 보았지.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고. 괴물을….”
트라우마가 강했는지 대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남에게 말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충격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입이 열렸다.
“내가 이번 의뢰를 맡은 거다. 이 여자만 넘기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틸 돈을 확보할 수 있어.”
“그렇군요. 저도 갑자기 형님이 부르셔서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그 바다에 가면 죽어. 절대 돌아오지 못할 거다.”
“저야 형님이 하란 대로 하는 놈이라 잘은 모르지만, 말씀만 들어도 거긴 가고 싶지 않네요.”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바다는 평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덧 마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멈췄다.
성 외곽의 외딴 건물. 이층집이었는데 내가 여기 와서 본 집중에 가장 허름하고 음침했다.
마차가 서자 안에서 사람이 나왔는데 나는 급히 마차 뒤로 돌아갔다.
‘이크!’
검은색 로브. 그게 특별할 건 없지만 로브의 형태나 모자 부분의 모양이 눈에 익었다.
‘흑마법사!’
사내들이 마차에서 내려 흑마법사 앞으로 걸어갔다. 사내들에게 집중하느라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물건을 가져왔소.”
“마차에 있나?”
“그렇소. 하지만 돈부터 주셔야 합니다.”
“하! 내가 떼먹기라고 할까 봐?”
“당신은 흑마법사입니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나? 나랏일 하는 사람한테?”
“…그래도 돈부터 확인하고 싶습니다.”
“쯧. 편견에 사로잡히면 큰 사람이 될 수 없는데. 아쉽군.”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며 흑마법사가 혀를 찼다. 흑마법사는 언제나 공포의 존재였다. 사실 그들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랬는데 황제가 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됐나?”
대장이 주머니를 받아보자 안엔 반짝이는 금화가 가득했다.
“오….”
“…형님, 됐습니다!”
세 남자의 눈동자가 황홀하게 변하자 흑마법사가 말했다.
“물건을 집안으로 옮겨주고 돌아가. 나는 힘이 없어서 못 들어.”
“알겠소.”
주머니를 품에 넣고 만족한 듯 웃는 대장이 턱을 까딱하자 옆의 사내가 마차로 가서 여자를 끌어냈다. 아직도 여자는 축 늘어져 있었다.
업힌 여자를 보며 흑마법사가 웃었다.
“확실히 하프군.”
흑마법사가 섬뜩하게 미소 짓자 대장이 크흠! 마차에 올랐다.
“그럼 이만. 우리는 가보겠소.”
“차라도 한잔 안 하겠나?”
“세상 그 누가 흑마법사가 내주는 차를 마시겠소?”
“쯧, 서운하게 계속 이럴 건가?”
“일은 끝났소. 다신 볼 일 없을 겁니다.”
사내 하나가 여자를 업고 들어갔는데 흑마법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지. 우린 다신 볼 일 없을 거야.”
흑마법사가 뒷짐을 지고 있는데 여자를 옮기러 들어갔던 사내가 나오질 않았다. 대장이 이상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어억?”
마차 앞에 있던 사내가 갑자기 쓰러졌다.
“뭐야?”
대장이 놀라 외쳤지만 쓰러진 사내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그의 발목을 문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입을 벌리더니 대가릴 치켜들고 마차 안으로 스르륵 기어 올라갔다.
“허어어억?”
뱀을 본 대장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뱀이 더 빨랐다.
슈우우우우욱!
날아드는 뱀을 쳐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으, 으아아아악! 당신! 이러기요!”
“옛날에 이런 말이 있지. 흑마법사를 절대 믿지 말라고. 크크크크.”
뱀이 대장의 목덜미를 물었다.
이내 축 늘어진 대장이 마차 바닥으로 굴러떨어지자 흑마법사는 미소 지으며 가까운 사내의 다리를 잡아서 질질 집안으로 끌고 갔다. 힘이 없다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를 따라 뱀이 꾸물꾸물 기어왔다.
나는 그걸 보며 바짝 긴장했다.
‘혼자인가?’
만약 그렇다면 해볼 만하다. 활과 화살에 도료를 발랐으니 흑마법사와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상이라면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괜히 나섰다간 협공을 당할 수도 있었고 내 미션은 여자를 지키는 거라서 놈들이 경계심을 가지면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 흑마법사가 두 남자를 집안으로 옮겼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창문에 바짝 붙어 안을 바라보았다.
“크크크. 피는 많을수록 좋지.”
흑마법사가 로브에 달린 모자를 벗었다. 풍성한 백발이 나타났는데 베토벤 같다. 60대로 보이는 흑마법사는 남자들을 한곳에 모으고 여자는 소파에 눕혔다.
그러더니 저쪽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
아니다. 나는 여자를 만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까 내 화살이 저 사내들을 그냥 지나친 것을 보면 물리적인 어떤 일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일한 가능성은 하나. 흑마법사를 제거하는 것이다.
‘미션까지 나올 걸 보면 저 여자가 아주 중요한 단서일 거야.’
지난 과거라고 해도 재능마켓은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하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것 같지만 아까 그 강렬한 끌림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결정적일 때 처리하자.’
그렇게 집안을 주시하는데 방에 들어갔던 흑마법사가 여러 도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말했다.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니 뱀이 보였다. 평소에도 뱀과 대화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의 피론 절대 마법을 완성할 수 없지. 멍청한 것들! 이 마법은 내가 종결할 것이다! 황제? 크크크크! 영생은 내 것이다!”
재능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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