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와악-!”
김우태가 대굴대굴 굴렀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이곳 사람들에게 우리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도 똑같이 물리력을 적용받고 있었다.
“오빠! 괜찮아요?”
도화지가 서둘러 뛰어갔다.
“나 탱커잖아.”
“힐런데요?”
“아, 그랬지?”
김우태가 주섬주섬 일어났다. 계단 아래엔 횃불이 있어서 시야가 확보되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저 황제란 사람, 이미 묘한 능력이 있어. 아주 수상하단 말이야.”
김우태가 걸어가는 황제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도 느꼈어요. 놓치기 전에 따라가죠.”
황제의 비밀이 곧 미션의 열쇠일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게 뭔지 아직은 모르지만 거의 다 온 것 같다.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
『주의, 흑마법사는 예민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어서 플레이어가 노출될 수 있습니다.』
『흑마법사의 공격에 사망할 수 있습니다.』
“흐읍….”
“입 다물자. 사망할 수 있단다.”
“우리가 영혼 같은 거라서 우리를 감지할 수 있는 건가?”
“다물자니까.”
김우태가 도화지에게 핀잔을 주며 나를 보았다. 눈을 맞춘 내가 활을 꺼내 들고 앞장섰다.
황제가 왼쪽 방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방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곳은 저 아래의 거대한 공간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 같은 형태였다.
“…?”
“…!”
황제의 뒤에서 저쪽을 무심코 보았다가 하마터면 으악! 소리칠 뻔했다.
‘엄청나잖아?’
축구장보다 큰 공간이 있었고 수많은 마법사들과 더 많은 이종족이 있었는데 철창마다 갇혀있는 이종족들 주변으로 마법사들이 달라붙어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끔찍… 해….”
“쉿!”
김우태가 도화지의 입을 막았다. 김우태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이곳 전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마치 응급실 같았는데 삶보다 죽음이 더 짙게 깔려있었고 마법사들이 뭘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결코, 평범하진 않았다.
황제가 만족한 듯 웃더니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향했다. 몇몇 마법사가 황제를 발견하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중에서 늙은 마법사가 황제에게 서둘러 달려왔다.
“폐하.”
“진전은 있었나?”
“그렇습니다. 엘프의 피를 줄이고 드워프의 것을 늘렸더니 안정되었습니다.”
“그러면 완성된 건가?”
“아닙니다. 아직도 불완전합니다. 아무리 봐도 한 가지가 부족해서인 것 같습니다.”
엘프, 드워프, 오크, 소인족의 것까지 피를 섞어 배율을 찾고 있지만 안정화되지 않았다.
“그 한 가지가 전에 말했던 그건가?”
“맞습니다. 인간의 피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으으음….”
지금까지 피의 배합을 찾으라 수백의 오크와 그보다 많은 엘프, 셀 수 없는 소인족과 드워프가 희생됐다. 만약 인간으로 실험하려면 족히 일백은 있어야 뭐라도 해볼 것이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실험을 잠시 중단하고 전쟁 이후로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전쟁통에선 피를 수급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건 불가하다. 나는 마법을 완성해서 전쟁을 나갈 생각이야. 그러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다.”
“그렇지만 그 많은 인간의 피를 어디에서 구한단 말입니까? 만약 확보할 수 있다고 해도 이것이 밖으로 알려지면… 봉기가 일어날 겁니다.”
“조용하게 처리할 방법이 있다.”
“있습니까?”
“그래. 죄수들을 이용하면 된다.”
“…아.”
마법사가 ‘오호?’ 긍정적인 눈으로 눈을 깜빡이자 황제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탈영한 자, 혼란을 틈타 유부녀를 간살한 자, 도둑놈, 사기꾼…. 죽을 놈들을 셀 수 없이 많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면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사온데 정녕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런 놈들의 영혼과 피엔 더러운 것이 달라붙습니다. 그게 폐하께 영향을 줄 수도 있고요.”
“크큭, 상관없다. 내 정신력이 그런 저급한 것들에 휘둘릴 것 같나?”
“…알겠습니다. 사형수가 오는 대로 곧장 추진하겠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다. 출정식 전까지는 반드시 완성해야 할 것이야.”
“저희도 최초로 시도하는 마법인 만큼 반드시 성공해서 역사에 남기고 싶습니다.”
황제가 저쪽에 손짓했다. 마법사들을 호위하는 경비병이었지만 실상은 감시 역할도 겸한다.
“사형수들을 데려와라.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한 사람씩.”
“넵!”
경비가 뛰어가자 황제는 옆으로 이동해서 의자에 앉았다. 익숙한 걸 보니 저 의자를 자주 사용해왔던 것 같았다.
“으으음…. 어떡하지? 내려가면 바로 걸릴 것 같은데? 마법사가 저렇게 많잖아!”
우린 발코니에 숨어서 황제와 마법사들을 보고 있었는데 흑마법사에게 발각되면 상당히 좋지 않을 전개가 예상되기에 피해야 했다.
“저 사람, 어딘가로 간다.”
“따라가자!”
작게 속삭이면서 경비병을 따라 뛰었다. 흑마법사만 아니면 우릴 볼 사람은 없었다.
“아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저놈들 대체 뭐 하는 거야?”
“마법 어쩌고 한다잖아요.”
“근데 왜 피를 뽑아대고 있는데? 헌혈하는 것도 아니고!”
피를 이용한 마법, 아니 그건 저주이지 않을까?
‘설마….’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지만, 일단은 무시했다.
경비병은 몇 개의 문과 복도를 지났는데 어느 순간 풍경이 확 바뀌었다. 더 우울하고 음침하며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곳.
“열어라!”
터엉!
두꺼운 철문이 열리며 경비병이 감옥으로 들어갔다. 규모가 큰 제국이었기에 감옥은 만원이었다. 작은 공간에 수십 명씩 앉아 서로의 몸에 기대있었는데 누울 공간도 없었다. 죄를 지었으니 여기 있는 것이겠지만 사람보다는 짐승 우리 같았다.
경비병은 철창 안을 스윽 둘러보더니 말했다.
“너, 나와.”
간수가 와서 창살 문을 열었다.
“…어, 어디로 가는 겁니까?”
“알 거 없다. 따라와라.”
경비병이 차갑게 죄수에게 말하고 성큼 앞장섰다. 겁먹은 죄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간수를 봤지만 간수는 말이 없었다. 저 경비병이 황제의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붙지마라. 더럽다.”
“…죄송합니다.”
경비병과 죄수가 나가자 우리는 감옥을 보며 신음했다.
“애도 있어….”
“이 자식들, 이제 사람까지 쓰려는 것 같은데?”
“계속 두고 볼 거야?”
엄마 품에서 잠들어 있는 작은 아이가 보였다. 많아야 5살이나 되었을까? 무슨 죄로 잡혀 왔는지 상상조차 안 된다.
내가 김우태에게 말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한다고 해서 미래가 바뀔까요? 여긴 이미 벌어진 일이잖아요. 과거….”
“몰라. 그딴 거. 근데 이렇게 지켜보고 있으면 내가 스스로 죄책감이 들 것 같아.”
“나도!”
두 사람의 말에 나는 고민했다. 최대한 조용히 미션을 완료하고 빠져나가면 좋겠는데 우리가 나서기 시작하면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었다. 어쩌면 이 제국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할 수도 있다.
“후우…. 마음 약해서 탈이라니까.”
우리도 오크를 사냥한 적이 있다. 그간 수많은 싸움을 했고 살아남기 위해 적을 죽였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두고 보면 저 아이까지 잡혀갈 것 같다. 엄마와 함께 온몸의 피를 모조리 빨려 죽을 거고.
“흑마법사부터 잡죠. 그놈들이 없으면 마법도 중단될 거예요. 우릴 발견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거고.”
“좋은 생각이야. 근데 아까 거기, 상당히 넓은데 한번에 처리할 수 있을까?”
“멀리서 저격해볼게요. 소란을 틈타서 우리가 전부 달려들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내 말에 도화지가 망치를 들며 입술을 벌렸다.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자. 이상한 마법을 쓸 수도 있어. 흑마법사잖아! 나를 개구리로 만들지도 모른다고!”
“음…. 놈들이 쉴 때를 기다릴까요? 새벽이 되면 잠을 자기는 할 텐데. 24시간 일하는 건 아닐 거고요.”
“그것도 좋겠다. 놈들의 숙소가 있을 건데.”
우리가 이런 논의를 하며 감옥을 나가는데 저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
그러더니 사내 하나가 우릴 보았다.
“…언데드! 허어!”
사내가 지팡이를 들었는데 저딴 막대가 이렇게 섬뜩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소멸하라!”
『흑마법사에게 발각됐습니다.』
“으이이익!”
“헛! 들켰다!”
파앙-!
지팡이에서 나온 기운이 우릴 훅! 밀어냈다. 물리적인 것에 맞은 것 같진 않은데 바람 같은 게 밀쳐낸 기분? 하지만 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슈슉!
화살이 날아갔다.
“에에엥?”
반응은 도화지에게서 먼저 나왔다. 화살이 흑마법사를 그대로 통과해버린 것이다.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흑마법사는 지팡이를 흔들며 다음 마법을 준비했는데 도화지가 달려갔다.
“…어딜! 가소롭다!”
지팡이에서 얇은 막이 펼쳐지며 흑마법사를 보호했다.
콰앙-!
망치가 때렸지만 부서지지 않았는데 흑마법사 하나가 이런 신위를 보일 줄은 미처 몰랐다.
아마 그 해답은 저 말에 있을 것 같았다.
“언데드 주제에 날뛰는구나! 얌전히 소멸해라!”
물리력을 쓸 수 없어서 약해진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확실한 건 저 흑마법사는 우리 천적이라는 거였다.
“주제에래…. 아, 짜증나네! 언데드 아니라고!”
“일단 튀자! 저놈, 너무 강해!”
“이쪽으로요!”
놈이 출구를 막고 있어서 왔던 길로 가는 건 어렵다. 감옥을 거슬러야 했다.
-무슨 일이지?
-언데드가 나타났다는데?
-마법사님이 계시니 곧 처리되겠지. 흥분하지 말고 자리 지켜!
-워낙 죽어 나가는 놈들이 많다 보니 언데드가 출몰하는구먼.
-죄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지. 전쟁으로 그렇게 죽어 나가는데도 이렇게 꽉 찬 걸 보면.
간수들을 지나치며 정신없이 뛰는데 뒤에서 흑마법사가 노발대발했다.
“이놈들! 게 섰지 못할까!”
지팡이를 흔들며 따라오는 사람이 이렇게 무섭다니. 놈이 어떤 마법을 쓸지 모르고 그게 우리에게 치명적이며 우리 공격은 다 막힌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으아! 이래서 그 많은 흑마법사랑 어떻게 싸우냐? 한 놈도 힘든데! 아우! 이거나 먹어라!”
김우태가 돌아서면서 인형을 던졌다.
“오오오! 어쩌면 쟤는 되겠는데? 저주 쓰잖아!”
도화지가 반색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이런 요망한 것이 어딜!”
흑마법사가 지팡이로 인형을 공중에서 때렸다. 나자빠진 인형이 바르르 떨었다. 지팡이와 닿았을 때 무언가 물리력이 아닌 다른 부분의 타격을 입은 것 같다.
“와! 저놈, 잘 싸우네! 오크 마법사랑은 차원이 다르잖아!”
“이 시대 인간 마법사들이 강했던 것 같아요! 저쪽에 문 열렸어요! 빨리요! 이러다가 잡히겠어요!”
인간이 제국을 이루며 번성한 만큼 마법은 창대해졌고 우린 하필이면 언데드 취급을 받고 있어서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이건 진짜 힘든데?’
힘 대 힘으로 부딪혀서 밀리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영혼이나 언데드 이런 부분은 문외한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린 그렇게 미친 듯이 도주했다.
“헉헉…. 끈질긴 놈.”
“갔나?”
흑마법사도 지쳤는지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놈이 경비병이었다면 지금도 뛰고 있었겠지만, 마법사라서 체력이 약한 것 같다.
“흑마법사를 상대할 방법을 찾아야겠어. 이대로는 불가능해.”
김우태의 말에 도화지가 고갤 들었다.
“어긴 어디에요?”
어느덧 지하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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