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미성년자라고요?”
광수대 대장 윤일권은 혀를 차며 물었다.
“네. 학교에 알아보니까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아이였다고 해요. 실종 당일 CCTV를 찾아보니까 편의점에서 술을 산 시간이 새벽 1시 22분이었어요.”
아이들의 탈선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지만 왜 이런 곳에서 피가 쭉 빨린 채 발견되었느냐다.
“어떻게 보십니까? 경위님은.”
“당연히 그들과 연관이 있죠. 보세요. 혈액이 전부 목의 구멍을 통해서 뽑혀 나갔어요. 이 자국, 익숙하지 않으세요?”
“…하아.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합니까? 그들과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는데 우리끼리 수사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그들이 이 일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죽었으니까 우리도 손 놓고 있을 순 없겠죠.”
윤일권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쪽은 단속 잘 되고 있습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기자가 가끔 찾아오긴 하지만 팀장님은 전혀 알려주지 않으시니까요. 저도 계속 이렇게 외부활동을 하고 있고요.”
그날 서울숲 지하의 경험을 공유해서일까? 두 사람은 좀 더 가까워져 있었다.
“대장님은요? 견딜만하세요?”
“올해까지는 어떻게든 막아보자고 했습니다. 이거, 터뜨리면 난리 나요.”
사람의 피를 뽑아가는 괴물이 서울 도심을 누빈다고 하면 당장 경찰과 정권이 집중포화를 당할 거다. 그저 연쇄살인마의 소행이라고 몰아가기엔 잠실과 여의도에서의 사견까지 얽혀있었으니 기자들이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하면 다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다.
“전에 그들을 특정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보신다던 건 어떻게 되셨습니까?”
“…없었어요. 몇 번이나 돌려봤지만, 잠실에선 그들의 모습이 담긴 자료를 찾는 건 불가능해요.”
“여의도는요?”
“태창이 협조하지 않아요. 영장도 안 나오고요.”
“태창은 그렇다고 해도 영장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예상대로 누군가 높은 사람이 엮여있다는 거겠죠.”
“저는 그 사람을 찾아보는 게 먼저겠군요.”
윤일권이 몸을 돌리자 강나은 경위가 따라붙으며 물었다.
“인력 충원은 되셨나요?”
“전혀요.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후우…. 뭐하나 쉽게 되는 게 없네요.”
“우리끼리라도 해봐야죠.”
이 일을 속 시원히 밝히고 지원을 받으면 되겠지만 그랬을 때의 파급력이 너무도 컸다. 지금은 어떻게든 덮을 수 있는데 사건이 더 터지면 광수대도 어렵다.
“학생 부모님은요?”
“경찰서로 오신대요.”
“알겠습니다. 뒤는 광수대에서 맡겠습니다. 후우, 나중에 한가해지면 소주나 할까요?”
“그렇게 한가할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CCTV를 얼마나 봤는지 눈알이 빠질 것 같았다. 며칠의 고행 끝에 강나은은 결심했다. CCTV를 보느니 사건 현장을 더 다니면서 그들과 만날 날을 고대하는 게 낫다고.
“모셔드릴까요?”
“아니요. 지하철 탈게요. 머리도 식힐 겸.”
“그러면 또 뵙겠습니다.”
윤일권이 떠나자 강나은은 천천히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정말 사람 피를 마시는 걸까?’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절로 몸이 떨렸다. 그런 괴물이 존재할 리 없지 않은가?
‘아니겠지. 장기밀매나 특수한 혈액이 필요해서 그랬을 거야.’
애써 부인했지만 최근 들어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걸 부인할 수 없는 그녀였다.
지하철에 탔다.
빈자리가 하나 있어서 앉았는데 다음 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탔다. 한 정거장만 늦었으면 서서 갈 뻔했다.
소소한 행복에 작게 웃던 그녀의 앞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
그녀가 고갤 들었는데 앞의 학생은 핸드폰을 내려보고 있었다.
‘잘생겼네. 근데….’
왜 어디서 본 것 같을까? 연예인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녀는 얼굴을 숙였다. 너무 빤히 바라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이이이잉.
전화가 왔다.
“네, 팀장님. 현장 보고 가는 길이에요. 실종되었던 이운명, 맞아요. 확인했습니다.”
그녀의 앞에서 학생이 흠칫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편의점에서 새벽 1시 22분 이후로 납치된 것 같아요. 광수대에서 맡기로 했습니다. 네, 지금 들어갈게요.”
통화를 마친 그녀가 앞을 보았을 때는 이미 학생은 없었고 다른 사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
.
“대박이네.”
나는 지하철에서 내리며 가슴을 쓸었다. 재능마켓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떠오른 미션에 심장이 철렁했다.
【조력자가 근처에 있습니다.】
설마설마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녀가 있었다. 내 모습이 바뀌었으니까 몰라보겠지만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조력자라서 알려주는 건가?’
뒤이어 오는 지하철에 오르며 나는 기회가 되면 그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침반을 꺼냈다.
‘어디 처박혀 있는 거냐.’
무엇보다 아까 그녀가 말했던 이운명이란 이름이 거슬렸다. 그런 대한민국에 이씨가 아무리 많아도 운명이란 이름까지 붙는 것은 드물 거다.
‘내가 아는 그 이운명이 당한 거면… 놈이 내 주위에 있다는 뜻인데?’
전에도 피의 주인은 안개처럼 스며들거나 박쥐로 변해서 우릴 따라왔었다. 그게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추적을 당한 건지는 몰라도 더 조심해야 했다.
‘나쁜 녀석이긴 했어도….’
죽을죄를 진 건 아니었는데 입맛이 씁쓸했다. 아직 정확한 건 아니니까 일단 오늘 일부터….
김우태에게 전활 걸었다.
-도민준. 오고 있냐? 우린 마트에서 장 보고 있어.
“제가 사갈 건 없어요?”
-어. 몸만 와.
김우태가 차가 있어서 확실히 편했다. 쿤드라 보물의 비밀 미션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려는 것이다.
“포인트 어떻게 쓸지 정하셨어요?”
-일단 모으는 거로.
“알겠어요. 금방 갈게요.”
데몬이라는 악마와 붙어보니까 우리가 더 강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쿤드라 보물의 비밀을 풀면 무언가 좋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느껴졌다.
‘차우산도 가야 하는데, 할 일이 태산이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서 있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또 메시지가 들려왔다.
【조력자가 근처에 있습니다.】
‘뭐?’
문이 열렸다. 그러더니 강나은이 탔다.
“….”
“….”
메시지 때문에 그랬는지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허얼, 뭐야?’
내렸다가 탄 건가? 대체 왜? 내가 무슨 단서라도 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없었기에 슬쩍 눈을 돌리면서 모른 척하려고 했는데 강나은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전철이었기에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
그녀가 바짝 접근했다. 치마 정장 차림의 그녀였기에 눈에 쉽게 띄었는데 예뻐서 그런지 남자들이 힐끔거렸다.
덜컹!
지하철이 흔들리자 그녀가 내게 살짝 몸을 기댔다. 그러면서 말했다.
“맞네. 역시.”
그녀가 웃었다.
“오늘은 이렇게 위장했네요?”
“….”
“그때 골목에서. 맞죠? 그 통엔 화살이 들어 있나요?”
“제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내가 모른 척 묻자 그녀가 웃었다. 그러더니 상의 주머니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서 내 가방에 넣었다.
“추궁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우린 할 이야기가 많지 않나요? 제가 도울 수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 때문인지 가까운 사람들이 우릴 힐끔거렸다.
“…연락드리죠.”
“고마워요. 기다릴게요. 저는 믿으셔도 돼요.”
“그건…제가 판단하죠. 그러면 이만.”
마침 문이 열리고 있었기에 냉큼 내렸다. 그녀가 서서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기다릴게요!”
손까지 흔드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감이 좋은 사람인데?
‘조력자라….’
재능마켓이 그리 판별했으니 믿어도 되려나?
40분 후.
재능마켓에 도착하니 김우태와 도화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강나은을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와, 내렸다가 다시 탔다고? 눈썰미 실화냐?”
김우태가 놀랐다.
“전에도 몇 번 스친 적이 있었거든요.”
“괜찮겠어?”
도화지가 묻자 내가 웃었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정보를 그분이 아실 수도 있어요. 계속 엮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정체는 숨길 거지?”
“당연하죠.”
“혹시 모르니까 네 번호로 연락하지 말고. 아, 맞다! 전에 저기서 본 적 있는데! 잠깐만!”
도화지가 유리벽으로 뛰어가서 유심히 무언갈 찾는 것 같았다.
그사이 나는 김우태와 짐을 정리했다.
“이만하면 보름은 버틸 거다.”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니까 생존을 위한 것과 전투, 응급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이상하네.”
도화지가 돌아왔다.
“분명히 봤는데.”
“뭐가요?”
내가 묻자 그녀가 말했다.
“핸드폰 같은 게 있었거든. ‘추적할 수 없는 효과’를 지닌. 근데 없네.”
“있었다가 없었다가, 하잖아요. 다시 나오겠죠. 뭐.”
강나은과의 소통이 당장 시급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미션부터 하자.
최종 장비 점검을 마친 우리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랐다.
“준비됐지?”
김우태를 보며 우리가 끄덕이자 긴장감이 흘렀다.
【미션에 진입합니다.】
【주의, 해당 미션은 안전 구역이 없습니다. 입장하면 사망하실 수 있습니다.】
“들었지?”
“네.”
“와, 이런 건 또 처음이네!”
“바짝 긴장하자.”
침을 꿀꺽 삼키며 균열을 통과했다.
“여기가 어디지?”
도화지가 두리번거렸다. 잔뜩 움츠렸던 그녀의 어깨가 펴졌다. 안전 구역이 없다기에 숨도 못 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주변이 고요했다.
“저기, 빛이 있어.”
우리는 어떤 방 같은 곳에 있었는데 약 5미터 저쪽으로 틈이 있었고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살금살금 김우태가 걸어갔다.
“괜찮아. 안전해.”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인기척은 없었는데 문을 열고 나가자 아련하게 소음이 들려왔다. 음악 소리 같은 게 아니라 무언가 굉장히 어수선한 소리였다. 김우태가 좀 더 걸어서 창문으로 갔다. 그리곤 밖을 내다보곤 놀랐다.
“…뭐야?”
우리도 그를 따라 밖을 보았다.
“아….”
“전쟁이라도 났나?”
잿더미로 변한 도시. 아직도 사방에선 간간이 불길이 치솟았고 성한 건물이 없었다.
“어떤 미션일지 종잡을 수가 없네.”
김우태는 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부터 뒤져볼까? 아니면 나가볼까?”
다른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기에 일정 조건을 만족시켜야 진행이 될 것 같았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발로 뛰는 거다.
“여기가 어딘지부터 알아보죠.”
밖을 한참 봤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저쪽으로 가자.”
쭉 뻗은 복도를 향해 우리는 무기를 꺼내 들고 걷기 시작했다. 인적은 없었지만 뭐가 갑자기 우리 앞에 튀어나올지 몰랐다.
복도엔 장식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모조리 파괴되어있어서 그림 같은 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처참하게 짓이기기도 어렵겠다. 저기 보이는 벽화는 참으로 공들여 뭉갠 것 같았다.
‘왜 이렇게까지 했지?’
좀 더 넓은 홀로 나오면서 멀쩡한 게 있나 보는데 범이와 아리가 저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 뒤를 가이도 뒤뚱뒤뚱 따라갔다.
“아앗! 얘들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
도화지가 녀석들을 부르며 뛰어가려는 그때였다.
쿠르르르르릉.
홀 전체가 흔들렸다.
재능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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