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긴급! 데몬이 출현했습니다!】
【긴급 미션은 꼭 완수하지 않아도 되지만 클리어할시 특별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데몬?’
나는 탐에서 뛰어내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나타났다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김우태와 도화지부터 구해내야 했다.
피피피피피핏!
화살이 날았다. 뱀파이어 날개가 펼쳐지며 하늘에서 저쪽 아래를 향해 화살을 쐈다.
-꺄아아아아아!
등에 화살이 박힌 서큐버스가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머리가 뱀처럼 구불구불한 여자도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민준아!”
“하하하! 깨어났냐!”
기묘한 싸움판이었다. 수십 마리의 오크와 여성체 몬스터 두 마리는 김우태와 도화지를 물고 깨물며 어떻게든 죽이려 했지만, 기본적으로 도화지의 방어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김우태는 재생력이 탁월하다. 이러다 보니 똥에 꼬이는 파리처럼 달려드는 놈들을 도화지가 망치로 쳐냈는데 때마침 내가 등장해서 균형을 깨버린 것이다.
“데몬이 뭐야?”
“너도 들었지?”
대화는 나중에. 지금은 남은 녀석들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파파파파파팟!
공중에서의 연사는 각종 스킬에 힘입어 더욱 빨라졌다. 거의 1초에 한발씩 화살이 날아가는데 통에서 화살을 뽑자마자 시위에 걸어 쏴버렸고 대충 조준해도 명중률 보정 덕분에 완전히 빗나가는 화살이 없었다. 물론 이것도 상대적이라서 퀸 정도 되면 화살을 쳐내거나 피할 수 있겠지만 저기 있는 오크들은 그럴 능력이 없었다.
【700P를 얻었습니다.】
【900P를 얻었습니다.】
【오크가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히이이이익! 도망치자!
얼마 남지 않은 오크들이 후다닥 도주하자 나는 바닥에 내려서며 저편을 보았다. 커다란 원숭이가 닥치는 대로 건물을 부수고 다니고 있고 공중에서는 주작의 폭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신났네.’
그러고 보니까 범이가 어딜 갔지?
“와…. 진짜 끈질긴 여자들이었다. 죽을 뻔했네.”
김우태가 치를 떨며 쓰러진 서큐버스를 바라보았다.
“역시 원거리 딜러가 있어야 한다니까! 파닥파닥 날아다니니까 망치로 때릴 수가 없더라고!”
도화지도 웃으며 달려왔다.
우리 셋은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도화지가 탱커라면 김우태는 힐러고 내가 딜러다. 셋이 모였을 때 가장 높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혹시 범이 봤어요?”
“아까 너랑 같이 갔잖아?”
그랬나? 그 비홀더인지 뭔지 때문에 정신이 한번 날아가서 경황이 없었다.
‘어디서 놀고 있나?’
도망치는 오크를 따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탑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숨이 막혔다.
“…헛….”
김우태와 도화지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홱! 돌아섰다.
“…지독해….”
도화지가 손으로 코를 잡았다.
“저게 아까 그 데몬이란 건가? 긴급 미션?”
김우태가 인형을 가슴에 안으며 말했는데 도화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허억! 범아!”
데몬이 입구에 서서 우릴 보다가 손에 잡고 있는 걸 휙! 던졌다.
“으아아아악! 범아!”
날아오는 범이의 거구를 도화지가 받아들었다.
“괜찮아요?”
“응! 숨은 쉬어!”
내가 다급히 묻자 도화지가 범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외쳤다.
“정신 차려! 범아!”
생각 같아선 나도 범이의 상태를 가까이에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겨눈 활을 내릴 수 없었다. 데몬이란 놈이 주는 위압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어디서 갑자기 저런 놈이?’
데몬이 탑에서 나오며 우릴 보며 웃었다.
“크크크크…. 이거 놀랍군? 인간 따위가….”
그러더니 저쪽을 바라본다.
“호오…저런 괴수도 존재했던가?”
놀랐다는 듯 가이와 아리를 보던 데몬은 다시 내게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나는 관대하다. 내가 받은 목숨은 하나, 너희 목숨도 하나면 된다. 시간을 주지.”
데몬은 즐거운 듯 말했다.
“뭐라는 거야?”
김우태가 황당한 듯 말했지만 나는 그 뜻을 파악했다. 우리 셋 중에 하나의 목숨을 주면 가겠다는 뜻이다.
“내가 응할 것 같아?”
어림도 없다는 듯 말하자 데몬이 크게 웃었다.
“그래야지! 암! 얼마 만에 나왔는데 몸은 풀어야 하지 않겠어?”
하층에서 로드나 다른 절대자들을 만난 적이 없으니 그들의 본 실력이 얼마나 강한진 모르겠지만 녀석들을 제외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적 중에서 가장 강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이놈들은 불에 약해.’
여기 와서 만난 악마들은 불화살이 특효약이었다.
‘타이밍만 맞으면 돼.’
내가 말했다.
“형, 누나.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알았어! 가만 안 둘 거야!”
벌떡 일어난 도화지가 머리끝까지 화난 표정으로 망치를 들었다. 저런 표정은 처음 본다.
“오케이! 마음껏 싸워! 뒤는 내게 맡기고!”
도화지의 뒤에 서면서 김우태가 외쳤다. 말은 그렇게 해도 시시각각 인형을 이용해서 저주를 걸려고 노력할 거다.
“성직자 하나 없이 너희만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데몬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세가 아니야. 진짜 강한 놈이다.’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들을 앞에 둔 어른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갑자기 아까 꾼 꿈이 생각났다. 경찰서에서 무력하게 있던 아이였던 나.
‘아니지.’
기죽을 필요 없다.
‘조심하지 않으면 그 코, 물어뜯긴다고.’
놈이 뭔진 모르겠지만 싸워야한다면 전력으로 간다.
“형!”
“응?”
“제가 새로 얻은 스킬이 있어요! 형만 무사하면 우린 버틸 수 있으니까 써볼게요!”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엔 늦는다.
【대상에게 ‘절대경계’를 사용하시겠습니까?】
화악!
김우태의 주변으로 반원이 그려졌다.
【오직 대상 하나에만 효과가 적용됩니다. 파티원이라고 해도 경계에 침범할 수 없습니다.】
“어라? 이건 아까 그 눈탱이가 쓰던?”
내가 빠르게 외쳤다.
“그 안에서 나오시면 안 돼요!”
“알았어! 마음껏 싸워!”
우리 힐러를 보호할 좋은 수단이 생겼다.
“범이의 원수!”
아직 범이가 죽은 것도 아닌데 도화지는 그렇게 말하며 데몬에게 달려들었다.
“마력이 깃든 망치인가?”
데몬이 재미있다는 듯 도화지를 보며 검을 들었다.
깡!
“…이이익!”
전력으로 휘둘렸는데 망치를 막아선 데몬의 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엄청난 힘이었다.
나도 가만있지 않았다.
슈슉!
뱀처럼 허점을 노리고 화살이 날아갔다. 놈이 도화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옆구리를 노렸는데 두 발의 화살이 불길을 머금고 놈에게 정확히 다가갔다.
하지만….
화르르르륵!
움직인 놈의 날개가 화살을 쳐냈다.
‘저렇게 쉽게?’
5살짜리 아이가 아무리 힘을 써도 40대 중년 남성을 이길 순 없다.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고 지금 우리 상황이 딱 그러했다. 데몬은 쉽게 쉽게 우리 공격을 막아냈는데 도화지가 미친 듯이 망치를 휘둘러도 모조리 녀석의 검에 틀어막혔고 내 화살은 놈의 날갯짓에 힘을 잃고 바닥으로 처박혔다.
“…미친….”
퀸도 저 정돈 아니었는데 데몬은 진짜 괴물이었다.
‘약점이 반드시 있을 거야.’
기회를 노리며 놈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머리의 뿔에 끼워놓은 해골이 보였다.
‘저게 뭐지?’
수상했지만 무턱대고 활을 쏴봐야 맞지도 않을 거라서 놈의 뒤로 이동했다.
‘크고 강해. 그런데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
놈의 키는 3미터 정도 된다. 손발은 우리의 몇 배는 더 컸고 손에 든 검이 도화지보다 컸다. 무엇보다 핏빛 근육질 몸은 내 화살도 튕겨낼 것처럼 압도적이었는데 전투만을 위해 태어난 생명체가 있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힐끔.
가이와 아리는 이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거리가 워낙 멀어서 부른다고 해도 듣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해. 놈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 역시 재능마켓이 있어.’
머릴 굴려보자. 세상 모든 것엔 상성이란 게 있다. 물리력으로만 놈을 넘어서려면 어려울지 몰라도 우린 각종 드링크와 스킬이 있고 경험 역시 풍부하다.
“슬슬, 지루하군.”
도화지의 공격을 받아내던 데몬이 말했다. 그리곤 그 즉시 도화지의 비명이 터졌다.
“꺄아아아아아!”
데몬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도화지의 배를 걷어찬 것이다. 저편으로 날아간 도화지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놈이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
이미 내 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놈을 보기 전까진 이 정도의 속도를 내는 생물이 있다는 걸 몰랐다.
콰앙!
활을 들어 놈의 검을 겨우 막아냈다.
“호오, 쓸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군?”
잘라낼 수 있을 줄 알았다는 듯 감탄한 데몬이 나를 보더니 웃었다.
“너희는 뭐지? 마법사의 후손인가?”
나를 찍어누르며 말하는 녀석의 뒤로 그림자가 생겼다. 데몬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날개를 뻗었다.
“아아아아아악!”
뒤를 노리며 뛰어들던 도화지가 또 튕겨 나갔다. 하지만 착지하자마자 곧장 땅을 박찼다. 전혀 다치질 않았다.
“놀랍군….”
정확히 말하면 오크 따위의 공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찌르는 날개에 도화지의 피부가 베였지만 순식간에 아물어버려서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걸 데몬도 본 것이다.
“트롤을 삶아 먹었나…?”
놈의 눈빛이 기괴하게 변했다. 이번엔 더 강한 공격을 도화지에게 하려는 것 같은 분위기에 내가 옆으로 구르며 주머니에서 병을 꺼내 놈에게 던졌다.
퍼억-!
피하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손으로 던져서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강력한 믿음과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놈의 실수였다.
【끈적 드링크(유니크)를 사용했습니다.】
【대상에게 끈끈이가 달라붙었습니다.】
이건 초강력 접착제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 잡화점에서 파는 그것과는 성분이 다르겠지만 끈끈이가 묻으면 한동안 아주 불쾌하고 귀찮은 상황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
데몬도 옆구리에 흥건히 묻은 끈끈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위험한 것 같진 않은데 내가 침을 뱉은 건 아닐 테니 뭔가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뭐,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진 않았다.
휘익-!
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러 도화지의 망치를 막아낸 데몬은 나를 보며 물었다.
“이게 뭐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놈이 인식했으니 이제 드링크를 던져서 놈의 몸에 맞추는 건 어려울 수 있겠다.
“나도 몰라.”
“모른다고?”
사용해본 적 없으니까 알 턱이 있나? 하지만 그 효과는 대략 알고 있고 지금은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이나 불같은 걸 싸봐야 통하지도 않을 것 같으니까.’
다양한 공격 루트를 찾으려면 최대한 많은 밑밥을 깔아두어야 했다.
내가 외쳤다!
“형! 누나! 이대론 힘들겠어요! 그걸 쓰죠!”
내 목소리에 두 사람이 반응했다.
“그거?”
“아! 맞다! 그게 있었지!”
전에 우리 셋은 만일을 대비해서 막대한 포인트를 투자해 스킬을 하나 샀다. 그런데 이 스킬은 우리가 처음으로 보유한 파티형 스킬이었고 세 사람이 다 한자리에 있어야 쓸 수 있었다.
주작의 깃털을 얻은 뒤 확보한 ‘필살기’.
‘아낄 때가 아니야!’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