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장면이 바뀌며 경찰서에 와 있다.
엄마가 운다.
잘못했다며, 다신 이런 일 없도록 주의를 주겠다며 다른 아줌마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 애 코 어떻게 할 거예요! 완전히 뜯겨 나갔다고요!
아직도 알싸한 그 피 맛과 물컹하면서도 불쾌한 감각이 입안에 가득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마음을 거북하게 만드는 건 우리 엄마가 왜 저렇게 고개 숙이고 있냐는 거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쟤들이 먼저 때렸는데!’
이건 악몽이었다.
더 잔인한 것은 반복되었다는 거다.
놀이터다.
‘빌어먹을….’
“야, 도민준! 우리 집에 갈래?”
또 여기서부터다. 끝나지 않는 오늘 하루가 끊임없이 되풀이될 모양이었다.
이건 기억이다. 이미 지난 일이라서 절대 바꿀 수도 없고 내가 개입해서 멈출 수도 없었다.
‘아니.’
여기서 저 녀석의 집에 가지 않으면 저녁에 그놈들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우리 엄마가 경찰서에 오지 않으실 수 있었다.
“그래.”
“가자.”
혹은 이 녀석 집에서 문전박대당하지 않고 밥을 먹었으면 다른 미래가 내 앞에 나타났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래서 뭐? 그게 바뀐다고 이미 벌어진 일이 없어지나?
아찔한 두통이 엄습했다.
‘달라지는 건 없잖아.’
악몽을 기준 하는 건 뭘까?
감정일까? 불쾌함? 두려움일까?
녀석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 1층의 마트가 보였다. 아, 이제 기억났다. 이 녀석 부모님이 저 마트의 주인이었다. 잊고 살던 것들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마음속 트라우마가 꿈틀거렸다.
‘아줌마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
누가 악인이고 누가 잘못했다는 그런 관점으로 나눌 수 없었던 일이었다. 내가 부모라도 편견이 생길 수 있었다. 나는 꼬질꼬질했고 가난했으며 저 녀석은 학원을 빠지고 나와 놀았다. 몰랐다고 해도 아줌마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든다. 이것도 내가 중년에 접어든 사고를 하고 있으니 바뀐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억울할 필요가 있었나?’
아까보다는 좀 더 객관적으로 아줌마의 시선을 보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도망쳤었는데 지금은 묘하게 평온했다.
‘괴로워할 필요 없어.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고 내가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었어.’
다시 거리.
불량배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아까처럼 싸움이 시작되고 나는 녀석들에게 맞을 것이다.
‘사고는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야.’
따지고 보면 나는 이날 이후 독종이 되었다. 누가 놀리면 싸웠고 중학교가 돼서도 그 독기 덕분에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심하게 왕따를 당해서 자살까지 하는 아이들보단 나았으니까.
‘이건 악몽인가?’
기억하기 싫었던 날이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나라는 놈을 구축한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게 나쁜가?
‘아니야. 나는 별 볼일 없이 살았지만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었어.’
다시 경찰서.
엄마가 울고 있었다.
‘그래, 아마 저 모습이 가장 싫었던 것 같아.’
나 때문에 우는 엄마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서. 나 때문에 성난 아줌마들 앞에 무릎을 꿇은 엄마를 보고 있기 힘들어서.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
나도, 엄마도, 저 아줌마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싸움에 부모가 왔을 때는 누군가 이 들끓는 감정을 식혀야만 했다. 그게 우리 엄마 역할이었을 뿐이다.
‘내가 코를 물어뜯었으니까.’
쌍방이라고 해도 녀석은 코가 잘렸다. 이후의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큰 수술을 해야 했을 거다. 애들 돈이나 뺏고 다니는 녀석이었으니까 ‘잘됐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과응보라고 단정할 수 있나?
‘적어도 내가 아파할 일은 아니었는데.’
어린 마음에 난 상처는 곪아서 오기가 독기로 변했다. 돌이켜보면 그 독기는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었고 가끔은 누군가를 돕기도 했던 것 같다.
‘엄마….’
나는 웃었다.
‘미안했어요. 앞으로 더 잘할게요.’
이때의 죄송함을 다 갚을 순 없겠지만 요즘 엄마는 장사도 잘되고 학교에서 봉사도 하면서 인생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도 이날의 기억을 상쇄하고자 봉사를 자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오늘에서야 들었다.
각자의 사정.
각자의 기억이 만들어 낸 미래.
피식.
미소가 걸렸다.
-이 새끼가 웃어? 너, 지금 웃었어?
아저씨가 나를 보면서 화를 냈다. 이건 뭘까? 있었던 일인가?
-웃었다고? 얘, 정말 안 되겠네!
-어머, 어머, 쟤, 눈 똑바로 뜨는 것 좀 봐!
모르겠다. 아까는 저런 말을 못 들었던 것 같은데.
엄마도 고개를 들어 나를 돌아본다.
마주친 눈에서 엄마의 눈동자 속에 원망의 감정이 요동쳤다.
그리고 나는 이때 알았다.
“아니잖아.”
-뭐라는 거야?
처음으로 내 생각이 육성으로 나왔다.
내가 엄마를 보며 더 진하게 웃었다. 그리곤 말했다.
“너, 우리 엄마 아니잖아.”
-얘 봐! 어머, 어머!
-엄마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옆에서 아줌마들이 화를 내며 떠들었지만 나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
“우리 엄만, 나를 그렇게 볼 리 없거든.”
비록 가난했지만, 엄마는 단 한 순간도 나를 원망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 순간!
와장창!
내가 보면 모든 장면들이 유리처럼 깨져나갔다.
“….”
위를 보았다.
비홀더가 당황했는지 커다란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는데 그 눈빛이 아까 경찰서에서 우리 엄마가 보던 것과 같았다.
“너였냐?”
누운 자세 그대로 활을 들었다.
무언가를 느낀 듯 허둥지둥 움직이려는 녀석을 향해 화살이 날아가 박혔다.
퍼억-!
【비홀더를 사냥했습니다.】
【19,000P를 얻었습니다.】
사람의 기억을 가지고 노는 놈이라 그런지 포인트도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우 희귀한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스킬북:절대경계를 얻었습니다.】
【절대경계
지정한 대상을 보호하는 결계를 소환할 수 있다. 단, 대상이 결계 밖으로 이탈하면 보호는 사라지며 강력한 외부공격을 받으면 지속시간은 짧아진다. 24시간에 한 번 사용할 수 있다.】
“호오오….”
화살을 맞은 비홀더가 바닥으로 떨어져 불타고 있었다. 무서운 녀석이었지만 방어력은 형편없는 것 같다.
“꽤 쓸만한데?”
나는 비홀더를 보며 일어나서 웃었다.
“덕분에….”
뭐든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좋은 꿈 꿨다.”
.
.
.
“이럴 수가….”
오크는 충격을 받았다. 비홀더의 꿈에서 자력으로 깨어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니!
“만일을 대비해야겠어.”
탑의 맨 꼭대기.
오크는 까마귀에게 말했다.
“가서 쿤드라께 전해라. 내가 침입자들을 막지 못할 수도 있다고.”
어차피 놈들을 막지 못하면 쿤드라는 자신을 죽일 것이다. 제사장 후보는 널렸고 능력은 다 고만고만하다.
까악-!
까마귀가 날아가자 그는 선반 위의 해골을 들었다.
“이것만은 지켜야 해.”
이 해골이 언제부터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이것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쿤드라는 마법을 싫어해서 제사장에게 해골을 주었지만, 오크가 이렇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해골 덕분이기도 했다.
“두고 보자 이놈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소환을 준비했다. 메두사나 서큐버스 같은 것들은 그냥 지팡이만 있으면 불러낼 수 있었지만 이번에 하려는 것은 해골이 필요했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그러고 보면 실수를 했다. 광산을 자꾸 쳐들어오는 인간들을 처리하고자 놈들의 본거지로 직접 쿤드라가 출정했는데 지금 여길 온 놈들을 보니까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왜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저놈들만 죽이면 쿤드라도 용서할 것이다.
“나와라! 내 목소리에 답해라! 악마여!”
해골이 빛났다.
-나를 깨우는 게 누구냐.
“썩 나와서 내 명령을 받아라!”
오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오크가 모르는 게 있었다. 오크의 머리론 딱 여기까지였다.
-대가는 알고 있겠지?
“뭐든 주겠다! 그러니까 와서 놈들을 해치워라!”
-그러지.
해골이 빛나며 연기가 화악! 피어올랐다. 그런데 이때 해골을 잡은 두 손이 갑자기 바짝 말라 갔다.
“허어어어억?”
느닷없는 고통에 해골을 놓아버리려고 했지만 달라붙은 손부터 팔, 어깨와 몸까지 빠른 속도로 말라가는 오크는 진행을 막을 수가 없었고 끝내 털썩 바닥에 쓰러진 오크 위에서 연기가 형태를 갖췄다.
-크크크크크…. 대가는 받았다.
본래 악마를 부리는 것엔 대가가 따른다. 아무리 해골의 능력이 탁월하다지만 적정선을 넘는 수법엔 위험이 동반했다.
육체가 갖춰지자 목소리가 나왔다.
“이게 얼마만의 외출인가….”
그가 신기한 듯 손을 바라보다가 뭐라고 중얼거리자 스스스스스, 검이 나타났다.
만족한 듯 웃는 그의 전신은 붉은빛이었고 한 쌍의 날개가 있었으며 머리엔 두 개의 뿔이 있었다.
그가 바닥의 해골을 보았다.
허리를 숙여 해골을 잡고 선 그가 말했다.
“리치의 해골이군?”
타락한 대마법사가 자신의 영혼을 봉인한 귀한 물건이다. 이 정도 소환술을 쓰려면 생전에 엄청난 마법력을 지녔을 것이었다. 오크가 악마를 소환할 정도라면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운이 좋은걸?”
해골을 자신의 왼쪽 뿔에 끼웠다. 그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었지만 값비싸게 거래할 수 있으리라.
“우선 받은 의뢰부터 해결해야겠지?”
거래는 거래.
목숨을 받았으니 목숨을 취해야 돌아갈 수 있었다.
.
.
.
“…크흐흐흐흑!”
왕의 머리가 오크의 발에 밟혀 있었다.
“그놈들을 어디에 있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왕궁은 불타고 도시는 함락되었다. 인간들은 저항했지만, 오크의 군대는 무자비했고 숫자가 너무도 많았다. 하층엔 곳곳에서 인간들이 도시를 이루고 살고 있었지만, 워낙 강력한 괴수와 몬스터가 많아서 번성하고 있지 못했다. 특히 뱀파이어나 퀸의 자식들이 주로 노리는 타겟이 인간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는데 최근 들어 그것들이 사라져서 이제 숨통이 트이나 했더니 오크가 침략한 것이다.
“흠, 다른 곳에서 온 놈들이었나?”
오크는 코를 벌름거리며 고갤 돌려 창문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발에 힘을 주었다.
콰직!
박살 난 머리, 인간의 왕은 이렇게 죽어버렸고 도시는 오크의 손에 떨어졌다.
군단장이 피가 흥건한 도끼를 들고 쿤드라에게 걸어왔다.
“놈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
쿤드라가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쓸모있는 것들만 추려서 돌아간다. 병든 것들이나 늙은것들은 모조리 죽여라.”
“네!”
약탈과 사냥은 오크의 삶이었다. 늑대가 무리를 이뤄 사슴을 사냥하듯 오크는 원래 이렇게 산다.
‘광산으로 가야겠군.’
괴수를 부리는 인간들 때문에 광산 일이 더뎠다. 그렇다고 출정을 미룰 수도 없는데 계속해서 이렇게 약탈하지 않으면 도시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가 창가로 걸어갔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오크의 영웅!
피의 군주나 퀸, 로드에 비하면 본신의 능력은 떨어지지만, 그들이 없는 세상에선 지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노예와 세력이 필요했다.
“좋군.”
점령한 도시를 보며 흡족하게 웃던 그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저쪽 하늘에서 날아오는 까마귀를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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