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223화 (223/277)

#223화

【비홀더를 발견했습니다.】

거대한 눈알이었다. 동그랗고 불쾌하게 생긴 녀석은 둥실둥실 떠서 나를 빤히 바라봤는데 마주친 시선에서 변화가 생겼다.

“…으읍?”

무언가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끌어당기는 기분이 들자마자 의식이 녀석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비홀더는 둥실둥실 다가와서 내 몸 위에 자리를 잡았다.

【비홀더의 보호를 받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것을 볼 수 없었다.

.

.

.

“꺄아아! 뭐야?”

“뭐긴, 저주지!”

서큐버스가 놀라 자빠졌다. 인형이 그녀의 목덜미에서 떨어져 내리며 바닥을 굴렀지만 만족한 듯 고갤 치켜들었다.

서큐버스가 당황할 때 김우태가 일어나서 바닥의 인형을 집어 들었다. 서큐버스는 날개를 허우적거리며 허공에서 이리저리 날뛰었는데 공황에 빠져서 김우태를 공격할 생각을 못 했다.

김우태가 계단을 뛰어올랐다. 잠시였지만 아주 끔찍한 경험을 했다. 다시 저 여자한테 잡히느니 오크랑 레슬링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김우태가 민준을 찾으려고 전력으로 달렸는데 그러다가 뒤로 훅! 밀쳐졌다.

“…어?”

뭐가 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어딘가에 눈길이 갔다.

“허억…. 저게 뭐야? 어어엇? 도민준? 야! 민준아! 괜찮냐?”

민준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위에 큰 눈알이 둥둥 떠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 막이 주변을 두르고 있어서 더는 접근조차 힘들었다.

“하하하! 맛이 어떠냐?”

위쪽 계단에서 오크가 한 마리 튀어나와 웃어 재꼈다.

“너희 중에서 가장 강한 녀석을 묶어뒀으니 이제 남은 네놈도 죽음뿐이다!”

“너! 민준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흐흐흐! 그 악마는 비홀더다. 눈이 마주친 대상을 악몽으로 끌고 들어가지. 그 악몽에서 자력으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영원히 못 나온다는 거야?”

“그건 아니다. 하지만 그 녀석이 꿈에서 깨어날 때쯤 너희는 다 죽어 있겠지!”

묘하게 친절한데?라는 생각을 하며 김우태가 더 질문했다.

“네가 여기 대장이야?”

“쿤드라께서 자릴 비우셔서 내가 관리하고 있다!”

“오오오! 대단한데?”

김우태가 엄지를 치켜들자 오크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었다. 다시 물었다.

“쿤드라는 어딜 갔는데?”

“인간들을 처리하러 갔다.”

“그렇구나. 언제 오는데?”

“최소 보름은 걸리시겠지.”

“그 인간들은 어디 있고?”

“동북쪽 먼 도시에 있다.”

“그렇구나.”

김우태가 웃으며 민준에게 접근하려 해봤지만, 무엇에 가려 절대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왜 접근할 수 없지?”

“비홀더의 ‘절대경계’는 마법에서도 최상위 보호마법이다. 꿈이 깰 때까지는 절대 접근할 수 없지.”

“와…. 부럽다. 너도 이런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야?”

“그 마법은 오직 비홀더에게만 허락된 권능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마법을 쓸 수 있지. 예를 들어서 이런…! 나와라! 메두사!”

허얼…. 메두사라면 내가 아는 그 뱀 머리 여자? 김우태의 표정만 봐도 알겠다.

사아아아아아.

허공이 핏빛으로 물들더니 그 안에서 한 여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눈이 마주치면 안 된다는 그건가?’

머리카락이 구불구불한 뱀으로 이뤄진 여자의 등장에 김우태는 몹시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오크에게 물었다.

“너는 악마들을 어떻게 그렇게 잘 부리지?”

“흥! 그것까진 알려줄 수 없다! 이제 죽어라!”

【메두사가 당신을 발견했습니다.】

【메두사가 당신을 보며 매우 불쾌해합니다.】

매력이 영향을 끼친 건지 메두사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김우태에게 날아왔다.

“히이익!”

김우태가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이때 빙글빙글 돌던 서큐버스도 머리를 흔들며 김우태에게 날아들었는데 두 여자가 괴성을 지르며 접근하자 김우태는 버럭 외치며 아래로 달려갔다.

“나한테 왜 이래!”

민준인 눈알이 지켜주고 있다니까 걱정할 거 없어 보였다. 일단 저 여자들부터 처리하자 생각한 김우태가 지원군을 찾아 밖으로 나갔는데 마침 도화지가 오크들을 주렁주렁 끌고 이리로 향하고 있었다.

“아앗? 오빠!”

“야! 쟤들 좀 어떻게 해봐!”

“헤엑? 저게 뭐야! 징그러워!”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망치를 붕붕 돌리며 김우태에게 접근해서 등을 맞댄 도화지가 물었다.

“민준인요?”

“눈알이 잡고 있어!”

“그건 또 뭔데요?”

“몰라! 오크가 계속 악마를 소환하고 있는데 민준인 괜찮을 거야. 그 녀석이라면 뭐든 이겨낼 거니까!”

“알았어요! 여기부터 정리하죠!”

그렇지 않아도 얼쩡거리는 오크 때문에 답답했던 도화지였는데 서큐버스와 메두사가 접근하자 목표를 바꿨다.

“그 남자를 내놔!”

“너는 비켜! 너와는 싸우기 싫어!”

서큐버스와 메두사는 도화지를 보며 앙칼지게 외쳤는데 그건 봄 김우태가 서럽다는 듯 말했다.

“와…. 진짜 억울하네.”

“호호호! 오빠가 힐러라서 그래요.”

오크들의 눈빛도 변했다.

“저놈, 기분 나쁘다.”

“죽이자.”

도화지에겐 얼씬도 안 하던 오크들의 눈빛이 변했다. 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 들어 아이템을 하나씩 장착할 때마다 ‘마이너스 매력’이 붙은 게 많다 보니 ‘어그로’가 더 심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도화지는 모든 생물이 호감을 보이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었는데 앞으로 몇 단계만 더 넘으면 길가의 나무도 그녀를 위해 그늘을 만들어줄 것 같았다.

-와아아아아아!

김우태를 향해 오크들이 우르르 모여들고 도화지 쪽으로 서큐버스와 메두사가 날아들 때 탑의 창문에서 오크가 이쪽을 내려보며 크흐흐, 웃었다.

“이제 끝이다!”

누가 봐도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

.

.

‘이건… 꿈인가?’

낯선 환경에 떨어진 나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당황하면 나만 손해다.

‘뭔진 몰라도 여기서 나가야 해.’

과거의 어디쯤인 것 같다. 활도 없었고 몸집도 작았다.

‘학교?’

그래, 여긴 초등학교다.

꿈처럼 선명하지 않아서 두루뭉술하게 배경이 인식되었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긴 기억에 있는 장소임이 확실하다.

“야, 도민준! 우리 집에 갈래?”

저 녀석 이름이 뭐였더라?

“그래.”

“가자.”

놀이터에서 내 손목을 잡고 이끄는 친구를 따라 학교를 나섰다.

이때 머릿속에 음성이 들렸다.

-가지 마!

이상한 일이었다. 이건 내 목소리다.

‘뭐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녀석의 집에 도착했다. 1층은 커다란 마트였고 2층에 친구의 집이 있었는데 현관문이 열리자 녀석의 엄마가 나왔다.

“얘는 도민준이야. 엄마.”

“…왜 이렇게 늦었어!”

“민준이랑 노느라고.”

아줌마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이 몇 시인지 알아?”

“7시!”

아들의 말에 아줌마는 표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민준이라고 했니?”

“네.”

“늦었다. 부모님 걱정하시니까 집에 가렴.”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아줌마는 자신의 아들을 집안으로 들이며 말했다.

“엄마가 아무나랑 놀지 말랬지! 학원은 갔어?”

“아니…. 민준이랑 놀다 보니까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콰앙-!

문이 닫히고 나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서 멍하니 문을 바라보았다.

이랬던 날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하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왜 아줌마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쟤가 놀자고 했었던 것 같은데.

‘내가 몇 살쯤 된 거지? 3학년? 4학년?’

몸집을 보니 그 정도 된 것 같다.

내 의식은 그대로인데 행동은 ‘오토’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집으로 향하는 골목 어귀에 접어들었는데 한 무리의 녀석들이 이쪽을 보며 손짓했다.

“야! 너, 이리 와봐.”

6학년? 어쩌면 중학생일 수도 있겠다.

“왜요?”

“오라면 와야지. 형들이 부르는데! 너, 어디 학교 다녀?”

이맘땐 아이들의 돈을 뺏는 불량아들이 많았다.

“돈 있으면 꺼내 봐. 나중에 뒤져서 나오면 십 원에 한 대씩이다.”

“저 돈 없어요.”

진짜 없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어린 나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백 원도 없다고?”

“네, 정말 없어요.”

“…너 어디 살아?”

“저쪽이요.”

“알았어. 그러면 내일 돈 가져와.”

“내일도 돈 없어요.”

“그럼 맞아야지!”

이렇게 갑작스러운 폭력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퍼억-!

걷어차여 뒤로 나가떨어진 나는 배를 잡고 우욱, 신음했는데 녀석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낄낄 웃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나도 그저 다른 애들처럼 신나게 놀고 공부하고 싶었는데.

“아후, 저거, 씻지도 않나?”

“거지새끼 아니야?”

“딱 봐도 구질구질한데 어디 고아원에서 탈출했나?”

세상 밑바닥엔 일반인이 모르는 시궁창이 있다. 그 더러움을 맛보면 치를 떨 수밖에 없었는데 놀랍게도 그건 사람이 만든다. 감정의 모든 배설물을 감당해야 하는 삶.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내 과거인 것 같은데 너무도 안타까워서 마음이 아팠다. 저 어린아이를 지켜줄 사람은 하나도 없고 벌레처럼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나도 엄마 있어!”

무엇이 그렇게 억울하고 서러웠나?

‘아니야. 그러지 마.’

벌떡 일어난 내가 울분을 토하며 녀석들에게 말했다.

“너네가 뭔데 이래!”

작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어대는 나를 보며 녀석들의 눈빛이 변했다.

“이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눈 안 깔아?”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오는 녀석들을 보곤 다리가 굳어서 도망칠 수도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엄마가 그랬다.

항상 어깨 펴고 기죽지 말고 다니라고.

짜악-!

뺨에 불이 난 것 같았다. 강한 힘에 옆으로 쓰러져 바닥에 처박힌 내게 발길질이 날아왔다.

퍽퍽! 퍼버버버벅!

작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놈들의 힘을 견뎌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엄마, 이건 아닌 것 같아.’

분명히 엄마가 하란 대로 했는데 계속해서 좋지 않은 일만 생긴다.

“야, 그만하자. 이러다 죽이겠다.”

“이 새끼, 독하네.”

“무슨 애가 울지도 않아?”

불량배라고 해도 녀석들 또한 애들일 뿐이었다. 때론 아이들이 가장 잔인해서 개구리 다리도 뜯어내고 잠자리 날개도 찢고 하는데 나는 그런 놀잇감이 되었다.

“으…. 거지새끼 때문에 신발 더러워졌네.”

한 녀석이 내 앞에 쪼그려 앉더니 신발을 손으로 닦았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가만히 있어. 제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절대 나서면 안 돼!’

녀석들에게 맞는 고통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일어나는 일은 살면서 다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만!’

내가 간절하게 외칠 때 웅크렸던 어린 내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어어억…?”

그리곤 쪼그려 앉아 신발을 문지르던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뭐, 뭐얏?”

“나는 거지가 아니야!”

외치면서 한껏 벌어진 입으로 녀석의 얼굴을 향해 접근해서 있는 힘을 다해 콱! 녀석의 코를 물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악!”

고작 내 주먹질이나 발길질로는 녀석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박치기? 의미 없다. 딱 하나 무기가 있다면 태어나서부터 물려받은 이빨, 모든 맹수가 사냥에 이용하는 그 수단이 유일했었다.

“허억!”

“이 새끼가 물었어!”

“떼어내!”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