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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222화 (222/277)

#222화

“민준아! 저놈 잡으면 되겠다!”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삿대질하는 김우태를 보면서 나는 실소했다.

“들어갈게요!”

탑의 입구로 뛰면서 활을 위로 들었는데 놈이 어느새 쏘옥 숨어버려서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내 앞으로 느닷없이 뾰족한 가시덤불이 자라나더니 막아버렸다. 마법이 아니라면 절대 자연적으로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속도였는데 아까의 그 오크가 수작을 부린 것 같았다.

‘마법을 왜 오크가 쓰냐고.’

내 상식으론 엘프나 인간 마법사들이 써야 하는 거 아니었나? 저렇게 무식하게 생긴 오크들이 마법을 쓴다는 게 내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매우 어색했다.

“조심해!”

“괜찮아요! 다 태워버릴게요!”

불화살을 가시덤불에 쏴댔다. 우리 파티에 저런 것을 날카로운 칼로 쳐낼 자원이 없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하지만 없으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되는 거다. 식물에게 가장 효과 좋은 건?

화르르르르륵!

불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도화지가 오크들을 혼자 막아내고 있었는데 그녀의 망치가 휘둘러지면 어김없이 오크들이 뻥뻥 날아갔다.

‘엄청나네.’

계속 보아온 모습이었지만 도화지는 망치를 더 능숙하게 다뤄갔고 방어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싸우니 일방적인 폭행이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형! 들어갈게요!”

어느 정도의 화기쯤은 내가 버틸 수 있었기에 불길이 사그라들자 가시덤불을 돌파했다. 와자작! 부서지는 덤불을 헤치며 1층 문으로 다가서자 멀리에서 봤을 때보다 더 높아 보였다. ‘성’보다는 ‘탑’에 가까운 형태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부지가 좁은 건 아니라서 한 층에 방 10개는 만들어둘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다.

‘피라미드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이래서 경험이 무섭다. 진입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거침없이 문을 걷어찼다.

콰앙!

“형!”

“알았어!”

들썩이긴 했지만 부서지진 않아서 김우태와 함께 박살을 냈다. 경첩 부분이 떨어진 게 아니라 문 자체가 여기저기 넝마처럼 뚫렸다. 이런 걸 보면 우리도 이제 사람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울 것 같다.

“됐어!”

구멍으로 팔을 넣어 문을 연 김우태가 말했다. 힘껏 밀자 문을 막고 있던 나무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활짝 안쪽을 보여주었다.

“이상한데요?”

“왜?”

“오크들이 너무 없잖아요. 광산에 오는 놈들 숫자만 해도 엄청났는데 정작 여기엔 이렇게 적다는 게….”

“그러네? 이사 갔나?”

“여기가 쿤드라는 맞겠죠?”

“아까 그놈을 잡으면 알게 되겠지. 올라갈까?”

벽을 타고 계단이 뱀처럼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고 사방으로 뻗은 복도엔 방이 배치된 형태였다. 우리가 오크를 너무 만만하게 여기는 경향도 없진 않겠지만 어느덧 부쩍 강해진 우리에게 오크는 정말이지 위협이 안 됐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고 싶다.

아까 놈이 7층에 있었으니 아직 내려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계단으로 향하는데 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겁한 놈들! 악마의 저주를 받으리라!

“뭐라냐?”

김우태가 위를 보며 말했다.

“또 무슨 짓을 하려나 본데요?”

“저주는 이미 충분한데. 여기서 더 나빠질 것도 없다고.”

김우태가 큭큭 웃었는데 뭔가가 계단을 타고 바쁘게 내려오는 기척이 들렸다.

“어라?”

“흠?”

“저게 뭐냐?”

“소… 같은데요?”

소는 소인데 몸은 사람이었다.

【소환수: 미노타우르스를 발견했습니다.】

머리는 소, 몸은 인간이고 양날 도끼를 손에 들었다. 소환수라는 말은 아까 그 오크가 저 소를 불러냈다는 뜻이겠지?

-워어어어어어어어어!

놈이 포효하며 무섭게 내려오고 있었는데 나는 김우태와 잠깐 눈을 맞췄다가 활을 들었다.

【인내가 발동합니다.】

그리곤 쐈다.

슈우우욱!

가슴에 한방,

티잉-!

배에 한방,

스아아아아악!

목 바로 아래에 화살을 맞은 미노타우르스는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자빠져서 데굴데굴 구르다가 옆으로 떨어졌다.

쿠웅!

바닥에 떨어진 미노타우르스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는데 내가 친절하게 녀석의 머리에 네 번째 화살을 보내주었다.

【악마를 사냥했습니다.】

【11,000P를 얻었습니다.】

“….”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김우태가 말했다.

“한껏 폼 잡길래 대단할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네.”

“그래도 포인트를 보면 약한 녀석은 아니었나 봐요.”

“저런 놈, 한 트럭만 줬으면 좋겠다. 포인트 쏠쏠하네!”

화르르륵!

미노타우르스가 이글이글 불타자 위에서 또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법이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어림도 없다! 나와라! 몽환의 군주여!

스아아아아아아.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번엔 계단이 아닌 저 위 허공에서 날개를 지닌 악마가 나타났다.

그런데 저 모습, 어디선가 한번 봤다.

“서큐버스?”

“오! 예쁜 언니네?”

심지어 옷차림도 매우 민망해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오호호호호호! 먹음직스러운 아이들이구나!

서큐버스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이쪽으로 날아왔는데 활을 쏘려다가 김우태가 앞으로 나서기에 옆으로 물러섰다.

“얼마짜리 누나일까나?”

김우태가 씨익 웃더니 달려드는 써큐버스를 보면서 외쳤다.

“민준아!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넌 가서 그놈 잡아!”

나는 대답 대신 범이의 등에 올라탔다.

“형, 서큐버스는 보기보다 힘이 세요!”

“걱정 말고 가!”

하긴 김우태를 이길 수 있는 괴물은 있어도 죽일 수 있는 녀석은 드물 거다. 최근 들어 김우태의 능력은 엄청나게 진보해서 이젠 상처가 나면 첫 부분부터 스물스물 아물어버린다. 지퍼가 잠기는 것처럼 칼에 베이면 몸에서 칼날이 떨어지기 전부터 즉시 재생이 되는 거다.

-튼튼해 보이는 아이네. 나와 함께 좋은 꿈을 꾸지 않을래? 너도 분명히 만족할 거야.

서큐버스가 매혹적인 표정으로 김우태에게 말하며 바짝 접근하자 김우태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임자가 있는 몸이라서.”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서큐버스와 지구상에서 가장 매력이 낮을지도 모르는 남자가 만났다.

.

.

.

“아휴! 끝이 없네!”

덤불을 보면서 도화지는 시간을 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크들이 계속 따라올걸 알기에 민준에게 시간을 벌어주려는 것이었다.

“끈질긴 녀석들이잖아! 너희! 그러면 여자한테 인기 없거든?”

오크들은 절반쯤 나자빠지자 작전을 바꿨는데 힘으론 도화지를 상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계속해서 자극하고 있었다.

“상대가 안 되는 걸 알았으면 꺼지든 숨든 하라고! 귀찮게 굴지 말고! 에이잇!”

도화지가 망치를 들고 달려들었지만 오크는 후다다닥 도망쳤다. 그러나 완전히 도주한 게 아니다. 도화지가 몸을 돌리자 슬금슬금 다시 온다.

“아으, 이래서 민준이처럼 멀리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좋은데.”

얄밉다는 듯 오크들을 노려보던 도화지가 망치의 머리 부분을 바닥에 놓았다.

쿠웅!

하지만 오크들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제까지 수없이 도화지는 공격했고 그중 치명적인 일격도 있었는데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는 걸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3살 아이가 전력으로 모든 힘을 모아 주먹으로 성인 남성의 손을 때린다고 해서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을까? 도화지의 방어력은 그런 개념이다. 재능마켓에서 부여받은 절대적인 공식은 공격력이 도화지의 방어력보다 높지 않으면 절대 위해를 가할 수 없었다.

-흐으으으….

-으으으, 괴물…. 인간 괴물….

-이렇게 무식한 여자는 처음이야.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오크가 약한 생물을 잡아먹듯 지금은 그 처지가 뒤바뀐 것일 뿐이었고 세계의 법칙이었다.

“뭐라는 거야! 이것들이!”

그녀가 망치를 들자 오크들이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하아…. 누나가 말인데. 평소엔 화를 안 내는 성격이거든. 근데 너네, 계속 이러면 진짜 재미없어진다?”

한 손엔 망치를 다른 한 손은 허리를 짚은 도화지는 오십여 마리 오크를 앞에 두고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누가 보면 오크 유치원에 간 선생님인 줄 알겠다.

“어느 쪽이든 빨리 정하라고! 나, 간다?”

싸울래? 말래? 도화지가 노려보자 오크들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받은 명령이 있으니 침입자와 싸워야 하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으니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때려도 주먹으로 솜이불을 퍽퍽! 치는 것 같은데 흥이 날까? 어떤 오크는 도화지의 팔을 깨무는 데 성공했지만 이가 부러졌다. 이빨은 전혀 피부에 박혀 들지 않았고 팔꿈치에 직격당한 것이다. 다른 오크들은 그걸 보며 이빨을 쓰는 것도 포기했다.

“아, 몰라! 몰라! 갈 거야!”

도화지가 그렇게 말하면서 돌아서려는데 우뚝 섰다.

‘가만….’

그녀가 오크에게 물었다.

“야. 그래, 너. 나랑 눈 마주친 애. 아까 나한테 무식한 여자라고 했잖아.”

오크가 흠칫했다.

“…나,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

“흐음, 그러셔?”

도화지가 당황하는 오크를 보며 웃었다.

“좋아, 그렇다고 칠게. 대신 내게도 말해줘. 그래야 공평하지.”

“뭘…말하라는 거냐?”

“여기가 쿤드라 맞아?”

“그렇다. 하지만 쿤드라의 상징이시자 주인이신 쿤드라께서는 떠나셨다.”

“…뭐? 떠나? 언제!”

“무란 산맥에 대규모 인간 서식지를 발견해서 군단을 이끌고 가셨다.”

“인간이 있어?”

이쪽에 넘어와서 이곳저곳 꽤 다녀봤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왠지 모를 반가움에 도화지가 물었다.

“나처럼 생겼어?”

“머리 색은 다르지만, 인간이 맞다. 인간들 수가 많고 저항이 심해서 군단 전체가 갔다.”

“오오오옷!”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도화지가 웃을 때 오크가 말했다.

“이제 공평한가?”

“뭐라니?”

“나도 하나 알고 싶다.”

“뭘?”

“어떻게 하면 너처럼 상처 입지 않을 수 있나?”

오크는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물리적 타격이 전혀 먹히지 않는 걸 처음 봤다.

“아, 이거?”

도화지가 훗! 웃었다.

“필라테스를 열심히 하면 돼!”

.

.

.

순식간에 5층 높이로 계단을 올랐다. 피라미드에서 이골이 난 덕분에 이런 형태의 계단은 밥 먹듯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이 근처일 텐데?’

다른 통로가 없다면 아까부터 목소리가 이쪽에서 들려왔으니 놈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누나는 괜찮겠지?’

조금 전부터 들어오던 경험치가 멎었다. 700~800씩 들어오던 거면 도화지가 전투 중이란 뜻이었는데 다 처리하게 탑에 들어왔나?

아래를 보았지만 서큐버스와 뒤엉켜있는 김우태만 보였다.

-야! 떨어지라고!

-호호호호! 그냥 받아들여! 그러면 편해질 거야!

-난 임자 있다니까!

“….”

뭐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김우태라면 지진 않을 거다. 그의 저주 인형은 나도 무서울 정도로 막강하니까.

스윽.

위로 한층 더 올라갔다. 악마를 소환하는 놈이니 긴장을 풀지 않으면서 뭐가 튀어나오든 즉시 활을 쏠 준비를 했다.

6층.

인기척이 없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한층 더 높이 가려고 계단에 발을 디뎠을 때 시선이 느껴졌다.

“…?!”

범인을 찾았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물과 눈을 맞췄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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