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고래가 한꺼번에 작은 물고기들을 집어삼키듯 쩍 벌어진 아가리로 뛰어오른 용암상어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물론 그동안 워낙 큰 괴수들을 봐왔었기에 상대적으로 충격은 덜했지만 저 구덩이 안에 저렇게 큰 놈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아래에 다른 곳과 연결된 통로가 있는 건가?’
용암이란 게 흐르는 것이기에 그럴 수도 있단 생각을 하며 떨어지는 용암상어를 보았다.
“와… 대박이다. 저거 뭐냐. 잡을 수 있긴 할까?”
김우태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다 자란 백상아리보다도 큰 것 같았는데 돌고래처럼 매끈한 게 아니라 공룡처럼 뾰족한 등지느러미가 칼날처럼 돋아 있었고 이빨도 무시무시했다.
“물기만 하면 끌어올릴 순 있을 거예요.”
웬만한 낚시꾼이라면 혀를 내두르며 엄두도 못 내겠지만 우리는 힘 하나만큼은 일반의 범주를 훨씬 넘어선 사람들이었다.
“후…. 다시 해보자. 놈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미끼를 잘 쓰면 또 타이밍이 올 거야.”
“네엡!”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형.”
“응?”
“낚시할 필요가 없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놈이 뛰어오르는 순간에 그물로 잡죠. 낚싯바늘에 꿸 필욘 없을 것 같아요.”
용암상어가 물고기들을 먹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우리가 할 일은 녀석의 밥이 되는 미끼를 모으는 것이었다.
“형이 이거 잡고 계세요.”
활을 넘겨주며 나는 그물을 던질 자세를 취했다.
“오케이! 알았어!”
닭고기가 내려가자 또 작은 물고기들이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저 안에서 이런 먹음직한 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을 테니 효과는 대단했는데 김우태가 놈들이 먹지 못하게 줄을 아슬아슬하게 조절하면서 유도했다.
‘방금 당하고 또 모이네.’
지능보다는 본능으로 움직이는 녀석들이었다.
‘와라….’
침이 절로 넘어갔다. 활을 쏴서 죽인 다음 건져 올려야 하나? 생각도 해봤지만 그랬다가 시체가 가라앉으면 답이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올 거야.’
녀석이 경계심을 가지기 전에 포획해야 했다. 저 안에 숨어버리면 우리로선 찾을 방법이 없었다.
“후….”
긴장을 풀었다. 심호흡하는 나를 보며 김우태가 말했다.
“힘으로 안 될 것 같으면 그물 놔버려. 저기 빠지면 즉사야.”
“네.”
“흐흐, 또 바글바글하게 모였네. 하긴 치킨은 못 참지.”
생닭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기름이 줄줄 떨어지는데 그거라도 받아먹겠다고 물고기들이 엎치락뒤치락 싸웠다.
“느낌이 좋아. 준비해.”
“알았어요!”
발밑 앞쪽으로 솟은 돌을 단단히 지지하며 밟고 구덩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왔다!”
김우태가 활을 들어 올리며 외칠 때 나도 그물을 빠르게 던졌다.
촤악-!
아까처럼 용암상어가 입을 크게 벌려 물고기들을 삼켰는데 녀석을 향해 날아간 그물이 펼쳐지며 머리부터 감았다.
“좋아! 정확했어! 놓치지 마!”
김우태가 소리 질렀다. 이런 흥분 때문에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걸까?
후욱-!
줄을 당기자 용암상어를 감싼 그물이 오그라들었다. 그러면서 놈의 등지느러미에 단단히 걸려들었는데 곧장 육중한 무게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민준아!”
김우태가 활을 내려놓고 내게 와서 함께 줄을 잡았다.
“이 정돈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활을 쓰면 시위를 계속해서 당기니까 근력이 늘 수밖에 없었다.
‘잡을 수 있어.’
초반부터 끌려갔다면 당장 그물을 놔버렸겠지만, 놈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는데도 견딜 수 있다는 건 힘이 비슷하다는 거였다.
“당겨! 완전히 들어가 버리면 더 힘들어질 거다!”
“으아아아압!”
목에 핏대를 세우며 젖 먹던 힘까지 짜내자 그물이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됐어! 끌어냈다!”
“크윽…!”
용암상어가 몸부림칠 때마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얼마나 힘이 좋던지 일반 그물이었다면 찢고 나갔을 것 같았다.
“올라온다!”
무기를 안 쓰고 순수한 힘만으로 무언가를 잡는 건 이렇게 어렵다. 잠깐만 방심하거나 삐끗하면 이쪽이 당할 것이다.
이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뭐야? 잡았어?”
도화지가 뛰어오고 있었다.
“화지야! 빨리!”
딱 맞춰 나온 도화지가 줄을 덥석 잡았다.
“우와! 저거야? 그 상어가?”
“네!”
“엄청나게 크다!”
도화지도 힘은 만만치 않았다. 셋이 줄을 당기자 그물이 계속해서 올라왔는데 마침내 구덩이 밖으로 완전히 끌어내자 그 위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퍼덕퍼덕!
당황했는지 다시 구덩이로 들어가려고 계속해서 몸을 흔드는 용암상어를 보면서 도화지가 망치를 쥐고 뛰어갔다.
“이얍!”
장난스럽게 휘두르는 뿅망치였지만 저거에 맞으면 바위도 깨진다.
“얌전해져라!”
빠악!
정확하게 머릴 얻어맞은 용암상어가 크게 한번 펄떡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으하하하! 나이스 샷! 도화지 최고다!”
“잘했어요! 누나!”
【용암상어를 사냥했습니다.】
【7,000p를 얻었습니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하아, 하아, 하아….”
긴장이 풀렸는지 힘이 쫙 빠졌다.
“우와! 7천! 이거 열 마리면 7만이네? 짱이다!”
김우태가 감탄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놈의 주둥이에서 반짝이는 돌이 툭 튀어나왔다.
도화지가 그걸 집더니 깜짝 놀랐다.
【용암 원석. 각종 제련에 이용할 수 있다. 매우 귀하다.】
“우왓!”
도화지가 놀랄 때 김우태가 말했다.
“빨리 가져가서 어르신한테 보여드리자!”
그물을 질질 끌며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세 드워프가 깜짝 놀랐다.
그런데 정작 어르신이 가장 놀란 것은 용암상어가 아니었다.
“오오오오! 이렇게 귀한 것을!”
용암 원석을 보며 그가 감탄했다.
“마력이 느껴져! 이걸 이용하면 자네들 무기에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요?”
“그건 지금부터 연구해봐야지!”
용암 원석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변화를 줄지 모르겠지만 어르신이라면 굉장한 걸 만들어낼 것 같았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용암 상어를 해체하기로 했다.
“이놈의 비늘은 뜨거운 용암도 견디는 것이라서 잘 활용하면 좋은 물건이 나올 거네. 특히 이 가시는 보면 알겠지만, 바늘처럼 뾰족하지. 자네의 화살로 만들 수도 있겠는데?”
“부탁드립니다.”
“허허…. 기다려보게나. 일단 먹을 수 있는 부위부터 선별해보고 차차 만들어가자고.”
그의 주식도 물고기여서 그런지 능숙하게 용암상어를 다뤘는데 김우태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가서 한바탕하고 올까?”
“다녀오게나. 내가 맛있는 저녁을 차려놓을 테니!”
미션도 했겠다, 이렇게 홀가분한 기분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습니다! 가죠!”
“하하하! 기다려라! 오크들아! 형님이 가신다!”
.
.
.
뚝, 뚝, 뚝….
갈라진 수도관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닥을 적셨다. 서울의 지하.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오고 싶지 않을 음습한 공간에 한 사내가 웅크리고 있었다.
“크크크…크크크크!”
기괴한 웃음소릴 내며 만족스러운 듯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그는 퀸의 추적을 완전히 벗어난 피의 주인이었다.
“과연, 대단해! 크하하하!”
그에게 피는 힘의 원천이나 생명줄이었다. 사람마다 다양한 피를 가지고 있고 어떤 이들은 매우 특별한 피를 지녔는데 퀸은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지금까지 마신 피 중에 제일이었어!”
워낙 짧은 시간이어서 충분히 마시지 못했음에도 그의 몸에 들어온 퀸의 피는 거대한 강물처럼 흘렀다. 만약 그녀의 피를 다 마실 수 있었다면 그는 과거의 힘을 다 되찾았을 수도 있었다.
“크흐흐흐….”
우는 건지 웃는 건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쾌락에 사로잡혔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이를 갈았다.
뿌드득!
“그놈들….”
모습은 바뀌었지만, 활, 망치, 인형이라는 조합을 그가 몰라볼 수 없었다. 외형이야 마법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가지’를 잃은 것도 모자라서 하마터면 죽을뻔했다. 이런 치욕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절대…!”
그의 증오가 뜨겁게 끓고 있을 때 저 앞에서 한 여자가 걸어왔다.
“주인님.”
“잘 찾아왔구나.”
“일은 잘되셨나요?”
“그래. 퀸의 피는 최고였다. 이제 세력을 더 확장할 수 있겠어.”
“축하드려요.”
“내가 강해질수록 너도 느낄 수 있겠지.”
그는 일족의 지주였기에 그의 능력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태창은 어떻게 됐나?”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아요.”
“경찰이 귀찮게 굴진 않고?”
“아직까지는요.”
“잘됐군. 하지만 놈들이 또 언제 공격해올지 몰라.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가지. 배를 채워야겠어.”
퀸의 피를 마셨지만, 워낙 소량이어서 포만감이 없었다.
“그러실 것 같아서 제가 준비해 두었습니다.”
“오? 제법인데?”
그가 웃었다. 이래서 수족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싱싱해?”
“만족하실 것입니다.”
10분쯤 걷자 하수도 끝에 한 사람이 손과 발이 묶인 채 쓰러져 있었다.
“…악! 아아악! 너희들! 가만 안 둘 거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내 말 한마디면 애들이 백 명씩 모인다고!”
인기척에 발악하며 소릴 지르는 남자, 몸은 다 자랐지만, 얼굴은 앳되어 보였다.
“대단한데?”
사내가 웃었다.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입을 막을까요?”
“아니야. 재미있잖아. 백 명씩 모을 수 있다는데.”
사내가 히죽 웃으며 앉았다. 힐끗 명찰을 봤다.
“이운명?”
“…나, 나를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우리 집, 돈 없어. 돈이 필요하면 내가 만들어줄게!”
“오…. 능력 좋은데? 사람도 모으고 돈도 벌어주고?”
그가 웃으며 돌아봤다.
“어디서 잡아 온 거야?”
“거리에 있었습니다.”
“뒤탈은 없고?”
“새벽 2시에 골목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핸드폰을 확인한 결과 지금까지 찾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망나니네.”
“왜, 왜 이래? 누가 시켰어? 서, 설마 그놈?”
이운명이 누군가를 떠올리며 말했지만 사내의 관심은 오직 하나였다.
“이제 잠들 시간이다.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라.”
쩌억-!
벌어진 입에서 긴 송곳니가 번뜩였다.
“…허억? 뭐, 뭐야? 하지 마! 저리 가! 으아아아아악!”
버둥거려보지만 사내를 피할 수 없었다.
콰악!
목을 물리자 이운명이 금세 얌전해졌다. 몽롱하게 변한 눈동자엔 초점이 사라졌고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는 손가락이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쫘악, 쫘악!
순식간에 이운명의 피가 그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다른 뱀파이어보다도 훨씬 대식가인 그는 한 사람의 피를 모조리 빨아 마시는 것에도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꿀꺽꿀꺽 피를 넘기던 그가 이운명의 목에서 입을 뗐다.
털석!
옆으로 쓰러진 이운명은 눈도 감지 못하고 즉사했다.
“좋군.”
“부족하시면 더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야. 이 정도면 돼. 당분간 눈에 띌 행동은 하지 말아야지.”
그가 밖을 향해 걷자 여자도 따라나섰고 아무도 찾지 않는 지하엔 이운명만 싸늘하게 식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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