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살다 보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사이코패스든 소시오패스든 남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세상을 자신의 중심으로 보고 살아간다. 이운명도 그런 부류였던 것 같다. 앞으로 그가 피해를 입힌 아이들에게 얼마나 속죄할진 두고 봐야 하겠지만 계속 지켜볼 생각이었다.
“여어! 왔냐?”
『재능마켓에 입장하셨습니다.』
“아직 안 가셨어요?”
“어, 운동하고 있었어.”
생각해보니 김우태는 전문 트레이너였다. 도화지의 자세를 봐주고 있었던 것 같은데 확 떨어진 매력 때문인지 직장에선 그 일을 할 수 없으니 근질근질 한가 보다.
“민준아, 일은 다 한 거야?”
“네.”
“그래.”
두 사람에게 걸어가면서 내가 말했다.
“혹시 이상한 일 없었죠? 누가 따라온다거나, 지켜보고 있는 느낌 같은 거.”
박쥐로 변했다가 붉은 안개를 두르고 도망쳤던 뱀파이어를 떠올리며 노파심에 물었다.
“없었어.”
“아마 우릴 못 찾지 않을까?”
두 사람이 고갤 갸웃하며 말하자 나는 웃으며 짐을 정리했다. 잠깐 일상이었지만 이제 다시 판타지로 진입할 시간이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겪는 모든 일이 다 현실인 것인가? 어차피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마저도 점차 당연해지는 것이 이상한 기분이었다.
“자! 오늘도 힘내보자고!”
“오크 사냥! 아자!”
문득 생각이 났다. 최근에 포인트 때문에 너무 광산에만 갔던 것 같았다.
“형, 조만간 차우산에도 가요.”
“아, 병 떨어졌어?”
“아뇨. 잘 지내는지 보려고요.”
“오케이! 일단 오늘은 광산으로 가서 포인트 확실히 벌어놓고 내일 차우산으로 가자!”
김우태는 포인트 벌이에 신이 났다. 표정만 봐도 그가 얼마나 흥분해있는지 알겠다.
‘못 말리겠다니까.’
어쩌면 매력 때문에 일상에서 행복을 전혀 느끼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도화지는 점점 더 빛이 나고 있었다. 주머니가 많이 달린 조끼를 걸쳐도 광고 모델 같았다.
그러다가 새로운 게 시선에 잡혔다.
“어? 그게 뭐예요?”
“아! 오다가 샀어!”
손에 든 꾸러미를 내리자 안에서 이것저것 육류가 나왔다.
“아! 맞다! 미끼!”
“헤헤, 너 아까 바쁜 것 같아서 내가 사 왔지!”
“오! 고마워요! 정말!”
“이 정돈 마음이 맞아야 할 때 아니야? 우린 파티잖아!”
이운명 일 때문에 정신을 잠시 놓았던 것 같다.
“제가 들게요.”
“그 상어인지 뭔지 잡으면 나도 지분 있는 거다?”
“그럼요!”
“히히! 할아버지가 용암 안에서 사는 것들은 다 맛있댔어!”
김우태가 팔짱을 끼고 웃으며 말했다.
“어이, 돈은 내가 냈다고.”
“하하! 고맙습니다!”
드워프가 처음 맛본 라면에 흠뻑 빠진 것처럼 용암상어도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에 낚였으면 좋겠다.
‘오늘은 반드시 잡는다.’
미건 미션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오기가 생겨서 어떻게든 놈을 낚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안전 구역에 입장하셨습니다.』
균열을 통해 넘어오자 마침 어르신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내가 미끼로 사 온 고기를 조금 잘라서 전해줬다.
“오오오! 전에도 느꼈지만, 확실히 그쪽 고기가 맛이 좋아! 이거라면 그 녀석도 군침을 흘릴 거야!”
“하하! 그렇죠?”
나는 장비를 챙겨서 먼저 밖으로 나갔다. 낚싯대는 그냥 내 활을 쓰면 될 것 같았고 낚싯줄은 활줄을 썼다. 이거라면 절대 끊어지지 않을 거니까.
‘자주 해보진 않았지만….’
고기에 구멍을 뚫고 줄을 단단히 감았다.
“아!”
바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야 놈의 주둥이가 딸려 올라오지 않겠는가?
급히 들어가자 어르신이 뚝딱 만들어준다. 역시 이래서 솜씨 좋은 장인이 곁에 있으면 좋다.
“나도 그놈과 힘겨루길 해본 건 아니라서 이게 얼마만큼 버틸 수 있을 진 모른다네. 용암에 넣으면 녹아버릴 거고.”
“주의할게요. 고맙습니다!”
이제 낚싯대와 줄, 바늘과 미끼까지 완벽하게 구성되었다. 남은 것은 기다림!
“후… 걸려라.”
낚싯줄을 드리웠다. 용암에 가까이 닿으면 고기가 타버릴 수 있기에 적당히 치켜들었다. 만약 놈이 미끼를 물면 그때부터는 힘 싸움이었다. 스킬을 쓸 준비까지 다 해두고 용암을 바라보았다.
부글부글.
저기 떨어져서 견딜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 속에 놈이 있다. 과학적으론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이니 그러려니 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잠시 후 김우태가 혼자 나왔다.
“여어, 잘 돼가?”
“아직 모르겠어요.”
내 옆에 앉으며 그가 말했다.
“너, 진짜 아무 일 없었냐?”
“일은요….”
시시콜콜하게 학교 일까지 말할 이유는 없었고 그건 온전히 내 판단에 의한 문제였다. 앞으로 이운명과 어떻게 되든 다른 이들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다.
“혹시라도 도움 필요하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언제든 말해.”
“네.”
“지금도 마찬가지야. 상어한테 져서 저기 빠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혼자 해? 도와달라고 말하면 그만인데. 너는 지나치게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
“알았어요. 도와주세요.”
“그럴까? 하하하하! 진작 그랬으면 좋잖아!”
김우태가 껄껄 웃으며 내 손아귀의 활 낚싯대를 보았다.
“잘 만들었네. 어설프긴 해도 튼튼하겠다.”
“이게 제일 손에 익어서 잡기도 좋아요.”
“저건? 소고기야?”
“네, 등심이래요.”
“하, 저 비싼 걸!”
“용암상어만 잡으면 본전 뽑고 남을걸요?”
“그렇겠지? 이렇게 잡기 힘든 놈인데. 뭐라도 나오지 않겠냐?”
“….”
“….”
아무리 친해도 남자끼리 있을 땐 가끔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곤 한다.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랄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이랑 낚시하는 건 처음이네요.”
“그러게.”
“형은 왜 채린이 좋아요?”
“음, 좋은데 이유가 있으면 그건 진심이 아니잖아?”
“그래요?”
“아무 이유가 없어야지.”
김우태가 후후, 웃었다.
“그냥 처음 봤을 때부터 반해버렸어. 내가 채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아는데 그렇다고 포기하면 이도 저도 아니잖아.”
타인에게 이렇게 한결같을 수 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부럽다. 그만큼 순수한 열정이 아직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것 같기도 하고.
“잡고 싶지?”
“네?”
“저놈 말이야.”
“아, 네!”
“나도 같은 마음이야.”
채린의 성격이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이렇게도 좋다는데 내가 더 개입할 건 아닐 것 같다.
“쉿!”
김우태가 손가락을 입에 붙였다.
“뭔가 있어!”
“…!”
부글부글 끓는 용암 사이로 표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온다….”
긴장감이 극한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불쑥 얼굴을 내민 것은 용암상어가 아니었다.
“하! 뭐야? 피라미잖아?”
“쟤들도 미끼에 반응을 보인다는 건 상어한테도 효과가 있다는 거 아닐까요?”
“맞아! 더 기다려보자. 저것들이 못 따먹게 좀 더 높이 들어봐.”
열기가 위로 올라오고 있어서 고기 표면이 익어가고 있었다. 아주 먹음직한 레어로 변하고 있었는데 그 냄새 때문일까? 작은 녀석들이 더 모여들고 있었다.
“호오…. 형, 그거 아세요? 저것들도 포인트 꽤 줘요. 요리로 만들면 맛도 기가 막히고요.”
“그래?”
“이렇게 잘 모이면 꼭 오크가 아니라도 여기 근처 돌면서 낚시해도 되겠는데요?”
“오오오…!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포인트를 벌 수단은 많을수록 좋다. 게다가 이 근처엔 이런 용암 구덩이가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민준아, 그거 꺼내 봐.”
“네?”
“고기, 꺼내 보라고.”
낚싯줄을 당겨 고기를 들었다.
“하, 푹 익었네?”
“왜요?”
“낚시엔 밑밥이라고 있거든? 이 말이 맞나? 떡밥인가? 아무튼 물고기를 유인하려면 일단 저놈들에게 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지. 아! 뜨거!”
김우태가 손을 후후 불었다. 고기가 조금 식자 조각을 내더니 하나씩 구덩이에 던졌다.
“흐흐흐! 먹어라! 이것들아! 자고로 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다!”
고기가 떨어지자 물고기가 뛰어오르며 고기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몇 개는 용암에 떨어졌는데 불타오르는 그것마저도 먹어 치웠다.
“반응 좋지?”
“오…. 낚시해보셨어요?”
“아니, TV에서 봤어.”
나는 놈들을 유심히 보다가 그물을 들었다.
“마침 잘 됐어요. 연습해보고 싶었는데.”
“아, 그래! 저것들 다 잡아봐!”
그물은 재능마켓 물건답게 물리법칙을 가볍게 무시했다. 팔목에 팔찌처럼 감은 부분과 그물의 중간 부분을 연결하는 끈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든다. 확! 펼쳐지게 던지기만 하면 잡아당기면서 목표물을 감는 구조다.
‘활 덕분에 원거리의 거리감이 생겨서 좋아.’
이걸 처음 던져보면 상당히 고생해야 했을 것 같았는데 힘도 넉넉했고 요령도 대강 알았다.
“던집니다!”
“오케이!”
그물을 잡은 팔을 휘익! 휘두르며 그물을 아래로 던졌다. 활짝 문어처럼 펼쳐지면서 그물이 용암으로 날아갔다. 아무리 뜨거워도 견딜 수 있는 물건이었기에 조금 잠겨도 안심이다. 하지만 첫 실전이어서 그런지 당기는 타이밍이 늦었다. 오므려지는 그물 끝으로 물고기가 쏙쏙 빠져나갔다. 하지만 언제나 운이 없는 녀석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오오오오! 두 마리 잡았네! 처음 치곤 대단한데?”
“아후, 열 마리는 있었는데!”
“야야, 더 하면 돼. 머리 나쁜 애들을 왜 붕어 대가리라고 부르겠냐? 놔줘도 또 문다고!”
“그래요?”
“흐흐, 이젠 이거로 해보자.”
『300P를 얻었습니다.』
『파티 플레이로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퍼덕거리는 생선을 김우태가 제압하곤 돼지고기 뭉텅이를 낚싯줄로 둘둘 감았다.
“네 말대로 포인트 짭짤한데?”
“그쵸? 같이 하니까 경험치도 같이 먹네요.”
“좋아, 좋아. 다음엔 나도 그물 쓰는 거 익혀둬야겠다. 교대로 하게. 흐흐흐흐!”
소고기가 좋은가? 돼지고기가 좋은가는 완벽히 주관적인 기호에 달렸지만, 물고기한테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것 같았다.
지글지글.
고기가 조금씩 익으며 기름이 줄줄 떨어지니 아래에서 대환장 파티가 열렸다.
펄떡! 펄떡! 어떻게든 따먹어보겠다고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보면서 내가 다시 타이밍을 잡았다.
‘이번엔 확실하게 뭉텅이로 잡아봐야겠어.’
같은 노동을 할 때 최대효율이 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한방에 5마리, 10마리씩 낚을 수 있다면 어쩌면 이게 광산에서 오크 사냥하는 것보다도 포인트 벌이에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목에 더 힘을 주면서 반 박자 빠르게 감아야 해.’
지력이 올랐다고 해서 모든 일을 마음 먹는 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재능마켓을 드나들면서 육체의 사용법을 디테일하게 알아가니 이런 작업을 처음 해보더라도 능숙해지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저놈이 더 안쪽으로 올 때….’
가장자리의 녀석이 더 중심으로 이동하는 순간을 노리며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원하는 포인트에 물고기들이 모여들었을 때 내가 움직였다.
그런데 이때였다.
푸아아아아아악!
용암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중앙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솟구치면서 물고기들을 삼켰다.
“미, 민준아! 지금!”
“알아요!”
놈이었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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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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