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잘은 모르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더 들어볼 것도 없겠다. 내가 빅인성과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칠 사이도 아니었다.
숫자는 다섯.
“여어, 인성아! 뭐하냐?”
내가 큰 목소리로 말하며 걸어가자 모두가 놀라서 이쪽을 바라봤다.
“…뭐야? 저 새끼는?”
“1학년?”
“야, 너! 이리 와봐.”
오라면 가야지. 오크 수백 마리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난데 고작 이런 고딩 앞에서 물러설 순 없었다.
“왜요?”
내가 태연하게 걸어 녀석들 앞으로 다가서자 몇 놈이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하, 이거 겁대가릴 상실했네?”
“너, 뭐야? 인성이 친구야?”
가까이에서 보니까 인성이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다. 턱에 든 멍은 꽤 오래된 것 같다. 이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란 증거다.
“그런데요?”
한 녀석이 씨익 웃으며 내 팔을 잡았다. 도망치지 못 하게 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녀석은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 때문인지 안색이 굳었다. 교복 안의 근육은 활을 당기며 만들어진 강철 근육이시다.
다른 놈이 말했다.
“잘됐네! 인성이가 우리한테 빚을 졌거든? 친구면 네가 대신 갚아줘도 되겠지?”
“무슨 빚이요?”
“그건 알 거 없고. 십만 원. 있냐?”
“있죠.”
“오! 있어? 하하하! 야! 쟤, 데려와.”
앉아있는 녀석이 손을 까딱거리자 나를 잡은 녀석이 팔에 힘을 주었는데 당연히 꼼짝할 내가 아니었다.
“흠.”
나는 가볍게 팔을 뿌리치고 인성이를 향해 걸었다.
“박인성.”
“으, 응.”
“돈 빌렸냐?”
“아니.”
“얼마나 맞았냐?”
“몇 번….”
“그래.”
내가 미소 지으며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한 녀석이 내 뒤통수를 때리려고 하고 있었다.
스윽.
상체를 뒤로 물리며 손을 들었다. 어떻게 때려야 죽지 않을까? 이 정도면 되려나?
철석!
혹시나 해서 주먹을 쥘 수도 없었다. 그냥 손을 들어서 녀석의 얼굴을 내리쳤다.
“…쿠흡!”
개구리처럼 바닥에 뻗은 녀석이 다릴 꿈틀거리더니 축 늘어졌다.
“이, 이 개새끼가?”
“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죽고 싶냐!”
놈들이 순식간에 내 옆을 둘러쌌다.
음…. 방금은 너무 강했나? 조금 더 힘을 빼야겠다.
“죽어버려!”
우르르 한꺼번에 달려드는 놈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뒤로 물러나며 다릴 가볍게 뻗었다.
퍼억-!
배를 걷어차인 앞의 놈이 투포환처럼 뒤로 날아가 데굴데굴 굴러갔고 옆의 녀석에겐 가슴을 툭! 밀어주었다.
“…커허허헉!”
그것만으로도 녀석은 상체를 숙이고 침을 질질 흘렸다. 달려오다가 명치를 맞았으니 숨이 턱 막혔을 거다.
“….”
“….”
순식간에 둘밖에 안 남았다.
“너…이 개새끼…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네, 그럴 것 같은데요?”
말을 하면서 걸었다.
주춤, 뒷걸음질 치는 녀석에게 바짝 붙으며 웃었다.
짜악!
콰악! 바닥에 처박히는 녀석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저 녀석이 이 무리의 보스일 거다. 다 서 있는데 앉아있었다는 건 권위를 상징하니까.
“이, 이….”
“도망가지 마세요. 찾으러 가려면 귀찮으니까.”
“왜 이러는 건데?”
“인성이 친구니까요.”
“…후회할 거다.”
“설마요.”
내가 웃으며 다가가자 녀석이 사색이 되었다. 당연하다. 아무리 폼을 잡아봐야 이 녀석들은 고작 고등학생이다. 오크 한 마리만 앞에 둬도 오줌을 질질 쌀 거다. 내가 지난 몇 달을 저쪽에서 살아보니까 싸움엔 두 종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싸움, 그리고 지금처럼 아무 의미도 없이 겁만 주려는 싸움.
철석-!
“크윽….”
파리채에 맞은 바퀴벌레처럼 자빠져서 바들바들 떨어대는 녀석을 보다가 내가 박인성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민준아….”
“돈 빌렸냐?”
“아니라니까.”
“알았다. 가면서 얘기하자. 늦겠다.”
“이, 형들은….”
“놔둬. 헛소리하면 내가 계속 찾아갈 거니까.”
쓰러진 몇 놈이 내 목소리에 흠칫거렸다.
딱 한 대씩 맞고 뻗어버린 놈들은 스스로도 자괴감에 치를 떨고 있을 거다. 심지어 후배한테 맞은 거 아닌가? 어디 가서 말도 못 할 것이다.
“어떻게 된 건데?”
“그게….”
학교가 난리 난 이후 ‘학교’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아이들은 번화가와 학원가에 자주 모였다. 그러다 보니 자유분방하게 놀기도 하고 다른 학교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점차 세력을 이뤘는데 본래 ‘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 법이었다.
“3학년?”
“응. 그 형, 되게 무섭대. 정학이었다가 풀렸다는데 2학년들 시켜서 돈 만들어오라고 했나 봐.”
3학년 중에 이운명이란 녀석이 있고 그놈이 이 모든 사건의 핵심인 것 같았다.
“상납이네?”
“응…. 한 사람당 십만 원씩….”
“허, 그게 다 얼마냐? 재벌 되려는 거냐?”
만원도 아니고 십만 원? 그게 100명이면? 요즘 애들 스케일 한번 크네?
“학교를 안 나오니까 아무래도 선생님한테 이를 수도 없고…. 돈 안 주면 학원 앞에서 기다리니까….”
“무섭네.”
내 말을 오해한 것 같다.
“도와줘서 고마운데 너 이제 어떻게 해? 그 형들, 오토바이도 타고 다녀.”
“오토바이는 나도 있어.”
“…응?”
“아냐. 걔들 오늘 학교 왔겠지?”
“아마도?”
학교에선 시끄러우니 밖에서 해결해야겠다.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민준아. 정말 괜찮겠어?”
“야.”
“응?”
“방금 못 봤냐?”
“그래도…. 3학년들은 다른데…. 특히 그 형은 소년원에도 갈 뻔했대.”
어이쿠, 무서워라.
내가 웃으며 박인성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려주며 교실로 향했다.
긴급 소집은 딱히 별것 없었다. 공사 진행 상황을 대충 알려주고 학업을 개을리하지 말라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이런 말 할 시간에 애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질 파악해야지.’
깡패 같은 놈 하나가 애들을 갈취하고 있는데 선생님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뭐, 내 책임도 있으니까….’
내가 불태운 건 아니지만 나 때문에 놈들이 학교로 쳐들어온 건 팩트였다.
‘이운명이라….’
나는 놈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보기로 했다. 2학년을 건드렸으니까 소식이 3학년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일정이 끝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예원인 안 오려나?’
워낙 바쁜 녀석이니까 소집일은 빠질 수도 있었다.
교문으로 향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저 민준이에요.”
-어! 곧장 올 거냐?
“아뇨. 오늘은 어디 좀 들렀다가 갈게요.”
-무슨 일 있어?
“전혀요.”
광산에 오크 잡으러 가는 일 보단 확실히 아무 일도 아니었다.
-알았어.
교문을 나와서 아이들이 주로 다닌다는 학원가로 향했다. 박인성에게 대략적인 정보는 다 들었기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흐으음….”
그 2학년들이 말을 안 했나?
일이 알려졌다면 저기 보이는 골목 같은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게 확실한데 어떤 낌새도 없었다.
‘쪽팔려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다들 나가떨어졌으니까 어떻게 할지 의논하고 있을 수도 있다.
‘기동력이 생명인 걸 모르네.’
차라리 잘됐다. 놈들이 나를 모른다는 건 이쪽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디 있으려나.’
예전이었다면 이렇게 활보하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재능마켓이 나를 바꿔놓았다. 이 도시에서 나를 어쩔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확신, 이건 자신감으로 변환되어 뭐가 기다리든 겁먹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 학교 교복이 보였다.
대형 오락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애들이 보였다. 3학년이다.
“….”
내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남자애들 여럿과 여자애들 몇이 보였다.
-어, 재?
-누군데?
여자들이 나를 먼저 알아보았다. 나도 나름 학교에선 ‘훈남’으로 통하고 있어서 인기가 많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부끄럽지만, 그간 버스나 지하철에서 쪽지도 엄청나게 받고 있다. 김우태가 알면 서러워서 펑펑 울겠지만, 그간의 극한 체험이 나를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성장시켰다.
“안녕하세요.”
“너, 1학년.”
“네.”
“무슨 일이야?”
“혹시 이운명 선배, 전화번호 아세요?”
“…운명이?”
“아시면 알려주세요.”
“운명이는 왜?”
“할 얘기가 있어서요.”
아이들의 얼굴에 공포가 맺혔다. 이운명이라는 이름이 갖는 파괴력이 이 정도나 되나 보다.
“…장난하냐? 네가 운명이를 왜 찾는데?”
“너, 죽고 싶어?”
한결같은 반응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어요. 곤란하시면 그냥 그 선배한테 제가 찾는다고 전해주세요.”
말하고 몸을 돌렸다. 이 근방 녀석들에게 다 말하고 다니면 입질이 오겠지? 다행히 오늘 소집일이라서 교복을 입고 있으니 알아보기 어렵지 않았다.
“야! 뭔데? 야!”
“하, 저놈 뭐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무슨 일인지 운명이한테 연락해봐.”
말보다 빠른 게 소문이라고 했다. 특히 일상이 심심해서 작은 일에서 시시덕거리는 청소년들에겐 이런 사건은 핫이슈였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보다가 빌딩과 빌딩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꽤 공간이 넓어서 땅엔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끼며 생각했다.
“뭐가 좋을까….”
족발? 생닭? 소고기라도 살까? 용암상어가 홀릴만한 군침 도는 미끼가 대체 뭘까?
‘냄새가 강한 게 좋겠지?’
생선 쪽으로 알아볼까? 고등어? 아, 더 큰 게 좋으려나? 아니면 아예 오징어 같은 거?
“에잇….”
그냥 이따가 마트에 들러서 죄다 사 가야겠다. 용암상어가 먹지 않으면 어르신의 반찬으로 훌륭하게 둔갑하겠지.
“닭이랑, 돼지랑, 소랑, 생선이랑….”
잊지 않기 위해 중얼거리는데 골목 입구에서 몇 사람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어…!”
내가 팔을 흔들었다.
-저 새끼 맞아?
-우리 학교 1학년이라던데?
-도민준이라고?
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내게 물었다.
“야, 너냐? 운명이 찾는다는 애새끼가?”
내가 아쉽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이운명이란 녀석은 오지 않았나 보다.
“으으음….”
내가 녀석들을 보며 고민했다. 얘들을 시작으로 다 여기로 불러 모을까? 아니면 그놈이 있는 곳으로 내가 직접 가야 하나?
“왜? 이제 쫄리냐?”
“너, 곱겐 못 죽을 줄 알아.”
“이 새끼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정도가 있지? 너, 조현병이라도 있냐?”
다들 한 마디씩 할 때 내가 손을 내밀었다.
“이운명 선배 번호 있는 사람, 핸드폰 줘보세요.”
“하? 뭐가 어째?”
“이게… 진짜…!”
두 녀석이 다가올 때 나는 팔을 가볍게 움직였다.
퍽퍽!
두 녀석은 자기가 어떻게 맞은 줄도 모르고 벽에 등을 처박았다.
“허억….”
“아아아악!”
등이 아픈지 곧장 쪼그려 앉아 괴로워하는 친구들을 보다가 한 녀석이 내게 고갤 돌렸는데 이미 나는 그의 팔을 잡고 있었다.
꽈악.
그냥 쥐기만 해도 된다. 오히려 내 쪽에서 뼈가 부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아, 아아아아아아악!”
“핸드폰이요.”
“아, 알았어! 알았다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내게 건네준 녀석은 서둘러 패턴을 풀었다. 이때 나도 팔을 놓아주었다.
“여기 있네.”
통화목록을 보니 내가 찾던 녀석의 이름이 가장 최근에 있었다.
“형들.”
“…어?”
“형들도 돈 걷었어요?”
“….”
이제까진 실실 웃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적’과 싸울 때의 감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돌려줘야 할 거예요. 아니면 내가 매일 형들을 찾아갈 거니까.”
그래도 안 되면?
김우태의 저주 인형을 밤에 보내드릴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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