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216화 (216/277)

#216화

“화질이 너무 안 좋은데?”

“그러네요….”

길쭉한 걸 든 사람이 보이긴 하는데 이걸 활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보는 사람에 따라 빗자루나 다른 물건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고.”

“네….”

강나은은 아쉽다는 듯 팀장을 따라 걸었다. 히트맨을 잡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와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것이 강나은의 심정이었다. 그녀가 배워왔던 모든 지식을 다 깨부수는 사람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강 경위.”

“네, 팀장님.”

“내가 병원에서 생각해봤는데 이번에 우리가 겪은 일도 그렇고 전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말이야.”

“네?”

“종교나 마약과 관련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잖아? 아닌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처음부터 다시 접근해야겠어.”

팀장의 말에 강나은 경위도 고갤 끄덕거렸다.

“지하에 동굴이 버젓이 있으니까 서장님께서도 반신반의하긴 하시는데 다 믿으시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우리가 자체적으로 조사해야 할 것 같아.”

“알겠어요.”

“강 경위가 더 힘내줘.”

“그럴게요.”

하지 말라고 해도 이제 그녀는 이 사건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아? 맞다. 팀장님! 혹시 그쪽에선 연락 없나요?”

“어디?”

“조 형사님이요!”

“없는데? 그렇지 않아도 철수할까 생각 중이었어. 사람도 없는데 둘이나 붙여둘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아….”

왠지 아쉬운 그녀였지만 딱히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실제로도 조우진 형사를 감시하는 일보다는 히트맨의 단서를 하나라도 더 찾는 게 시급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후우우우우….”

조우진 형사의 아파트에서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퀸이 그에게 서울을 떠나라고 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의식을 느끼고 더 연구에 몰두했는데 무려 3일간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며 앉아서 하나만 무념무상에 잠겨있었다.

‘이 세상은 고통과 상처가 넘칠 만큼 포화상태야. 그걸 하나로 모으는 것이 힘들지만 완성하기만 한다면 퀸도 죽일 수 있어.’

그는 자신이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퀸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퀸은 오래전부터도 강했지만, 지금은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벌어져 있었다.

‘그냥 할 순 없고….’

그가 선택한 것은 마법진이었다.

‘함정을 파고 유인해야 돼. 하지만 그 영악한 녀석이 걸려들까?’

퀸이 멍청하게 보이지만 상당히 까다로운 적이었다. 그녀는 언제든 자신의 둥지를 버리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육체적 능력은 매우 강하며 언제든 새끼를 낳는다.

‘지금쯤이면 새끼들이 아주 많아졌을 거야. 그것들은 퀸이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하니까 무시해도 되겠지만 전면전이 발생하면 내가 불리할 수밖에 없어.’

그가 계산하기엔 온전한 힘을 다 찾으려면 1년이 넘게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지식은 그대로 있다. 육체적 능력보다는 지식을 이용해서 퀸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았다.

스윽.

3일 만에 눈을 뜬 그가 앞을 바라보자 시녀가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 또한 그의 곁을 지키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가 물었다.

“얼마나 됐지?”

“사흘 지났습니다.”

“그렇게나? 흠, 별다른 일은?”

“형사들이 철수했습니다.”

“그래? 그거 잘됐군.”

감시하는 녀석들이 있다는 건 골치 아프다.

“그들이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뭔데?”

“서울숲 지하에서 괴이한 일이 있었는데 경찰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요. 진입했던 경찰들이 뭔가에 습격당해서 죽을뻔했답니다.”

“자세히 말해봐.”

알 같은 것에 감싸여 잡혀있었고 그걸 누군가 구했단다. 큰 거미나 괴물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퀸이군.”

그가 쉽게 단정했다. 벌레 비슷한 것을 부리는 건 퀸이 아니면 그렇게 능숙하게 못 한다. 몇 가지 마법으로 동물의 정신을 컨트롤 할 순 있지만, 퀸과 그 새끼들만큼 유대가 깊을 순 없다.

“제가 다녀올까요?”

“이미 사람들이 발견했다면 가봐야 아무것도 없을 거다. 그래도 정보는 얻었으니까 수확이 없는 건 아니지. 퀸이 굴을 깊게 팠다는 건 이제 본격적으로 전쟁을 알리는 거야.”

“인간들의 무기로 그녀를 막을 수 있을까요?”

“가능은 하지. 피해가 클 게 문제지만.”

외피가 딱딱한 벌레들은 총알도 튕겨낼 것이다. 그것들을 제거하려면 더 강한 화기가 도심에 진입해야 하는데 그러는 순간 서울의 경제활동은 끝장난다.

그가 일어섰다.

“여길 벗어나야겠어.”

“어디로요?”

“인적이 드문 곳. 그러면서도 서울과 그리 멀지 않아서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곳.”

“경기도요?”

“그래, 그쯤이면 되겠지. 가서 찾아보자. 적당한 곳이 있는지.”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아파트 주민들 중에서 상당수가 로드의 추종자가 되었다.

“놔둬. 가서 다시 만들면 돼.”

“네.”

퀸을 사냥할 덫. 그것은 완벽할수록 좋았고 그의 모든 것을 투자해야 했다.

.

.

.

며칠이 지났다.

처음엔 그물이 있으니 쉽게 용암상어를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놈이 얼마나 예민한지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다렸고 다음 날도 또 기다렸다.

이 기다림이 낚시의 묘미라곤 하지만 나는 취미를 붙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경험치가 쌓이면 어렵지 않게 된다.

촤아아아아아악!

그물이 날아갔다. 손목에 그물과 연결된 끈이 달려있어서 놓치진 않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용암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었다.

첨벙!

【포획에 실패했습니다.】

“아놔….”

아슬아슬하게 그물이 용암상어를 스쳤다. 활로도 쏴 보고, 우쭈주 어르고 달래도 보았지만 용암상어는 생선치곤 지능이 높았다. 절대 걸려들질 않았다.

“뭐 이런 게 다 있냐.”

내가 허탈하게 웃으며 그물을 건져 올리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쇠를 다루다 보면.”

“어르신?”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힘이 필요할 때가 있고 기술이 필요할 때가 있지. 두 가지가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달라. 그 그물을 던지는 것과 목표에 맞추는 건 다른 영역이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놈의 심리를 읽어야지. 그게 기술이라네. 그런 다음 목표한 시점에 정확하게 그물을 던지는 것이 힘이지. 지금처럼 보인다고 무턱대고 던져봐야 저놈이 더 빠르잖나?”

용암상어는 빠르기도 했지만,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저 부글부글 끓어대는 용암을 물이라 부를 순 없으니 수면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했지만 어쨌든 저 안에 있으면 놈을 찾을 수 없었는데 어제까진 호기심에 몇 번 주둥이를 내밀더니 오늘은 경계심이 더 강해졌다.

“무엇보다 자네는 아주 큰 걸 놓치고 있어.”

“그게 뭐죠?”

“낚시의 기분이 뭔가?”

“기다림이요?”

“아니지. 미끼라네. 미끼.”

“아…?”

“여기엔 먹을 게 별로 없지만, 자네가 온 세상엔 저놈을 홀릴만한 좋은 것들이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그렇겠네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이 좋은 머리가 한 대 맞은 것처럼 띵했다. 녀석이 나오지 않으면 나오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뭐가 좋을까 고민했다. 생닭이라도 사와야 하나? 깊은 생각에 빠지자 어르신이 집으로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자 저쪽 하늘에서 거대한 생물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언제봐도 참으로 멋진 주작 한 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날개를 접으며 내 앞에 내려선 주작 위에서 김우태와 도화지가 뛰어내렸다.

“민준아!”

도화지가 웃으며 달려오자 내가 물었다.

“어땠어요?”

“호호! 늘 똑같지! 오늘도 대박!”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며 웃는 도화지 옆에서 김우태가 말했다.

“걔들은 학습이 안 되나 봐. 나 같으면 진즉에 철수했을 텐데 계속 몰려오네.”

광산에 다녀온 두 사람은 오늘도 신나게 한바탕 하고 왔다.

“더 강한 놈들은 없었고요?”

“밑천이 없는 것 같던데?”

오크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아리와 가이가 있으면 개미들이나 다름없었다. 콱콱 밟아버리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 판세를 뒤엎으려면 강력한 무언가가 등장해야 하는데 오크들에겐 그럴만한 자원이 없는 것 같았다.

“잘됐죠, 뭐. 우린 손해 볼 게 없잖아요.”

“응.”

김우태의 쉐이크도 잘 팔리고 있었고 그걸 만들기 위한 포인트 역시 수월하게 얻고 있으니 이렇게만 계속하면 재능마켓의 값비싼 아이템도 하나씩 사들이면서 돈도 벌 수 있었다.

“너는? 잘 돼가?”

“미끼를 바꿔보려고요.”

“뭘로?”

“아직은 모르겠어요.”

돼지머리라도 가져오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용암상어를 낚고 싶었다.

“내일 학교 간다며?”

“네.”

“그러면 오늘은 철수하자. 할 일도 다 했는데.”

“저는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요. 먼저 가세요.”

“그래, 너무 늦지 말고.”

“네.”

“나도 오늘은 먼저 들어갈게! 할머니랑 시장 가야 해.”

“들어가세요.”

두 사람이 사라지자 나는 용암 구덩이를 보며 앉아서 팔짱을 꼈다. 사실 저 용암상어를 잡아서 뭘 할진 아직 생각해보지도 않았지만 이렇게 사냥하기 어려운 놈이라면 반드시 마땅한 보상이 따를 것 같았다.

부글부글.

끓는 용암을 바라보다가 몇 가지 방법을 떠올리며 나도 재능마켓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학교로 향했다. 이젠 원격수업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등굣길이 어색했다.

-민준아! 안녕?

-도민준! 오랜만이야!

오가는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피식. 절로 웃음이 났다. 모든 아이들이 나를 보면 손을 흔든다. 이런 인기는 전의 삶에선 상상도 못 했었다.

교문으로 들어가자 중장비가 보였다. 필사적으로 복구하는 학교 교정은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는데 부산하게 움직이는 작업자들이 우릴 보며 미소 지었다.

“후우….”

이렇게 학교에 오면 재능마켓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꿈같다. 저 애들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체육관으로 향하는데 이상한 게 보였다.

‘뭐지?’

평소엔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다.

‘박인성?’

몇 달 전, 내게 가장 처음 인사했었던 같은 반 친구. 박인성을 둘러싸고 몇 명이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분위기 한번 살벌하네?’

나는 직감적으로 따라갔다. 생사를 오가는 미션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어떤 무리를 보면 그 특유의 분위기를 읽게 되었다. 지금 박인성은 늑대 무리에 놓인 양 같았다.

‘왜 저러는 거지?’

박인성은 첫날부터 붙임성으로는 우리 반에서 최강이었다. 아이들 이름을 선생님보다 빨리 외운 녀석은 박인성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싹싹하고 유들유들한 성격이라 다른 아이들과도 잘 지냈었다.

학교 뒤편. 불에 탄 본관의 폐기물을 모아놓은 곳.

“내가 오늘까지라고 했지?”

한 녀석이 거만하게 앉아서 박인성에게 말했다.

“십만 원을 어떻게 구해요….”

“왜 못 구해? 학원 다닌다고 구라를 치던가, 독서실 끊는다고만 해도 십만 원쯤은 그냥 나오잖아!”

“…저 진짜 돈 없어요. 형….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쟤들은 2학년인가?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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