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히이이이이이익!
광산으로 돌아왔다. 얼쩡거리던 오크가 우릴 보더니 부리나케 도망쳤다.
“아직 유지되네?”
도화지가 자신의 손을 보며 말했다. 외형변경이 계속 적용되고 있었다.
“효과가 떨어질 때까지 이대로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히히! 나는 이것도 재미있어!”
도화지가 웃으며 저쪽으로 뛰어갔는데 김우태가 말했다.
“오늘은 더 안 오겠는데? 돌아갈까?”
“그러네요.”
이미 한차례 초토화되어서 그런지 광산엔 남은 오크가 별로 없었다. 저 녀석들을 쫓기보다는 돌아가서 쉬는 편이 났다고 판단했다.
용암지역으로 돌아가서 균열로 이동했다. 이 사이, 우리 외형이 본래대로 돌아왔는데 이게 낯설기도 하면서 익숙하기도 한 이상한 기분이었다.
【재능마켓에 입장했습니다.】
오피스텔로 돌아오자마자 김우태가 후다닥 뛰어갔다.
“보상! 보상! 특별한 보상!”
긴급 미션을 완수했기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붙박이장 문을 열자 수많은 돌이 반짝거리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엥? 이게 뭐야?”
【조력자의 목걸이(유니크): 조력자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다.】
“아까 그 누나?”
“그런가 봐요.”
김우태가 입맛을 다시며 목걸이를 내게 내밀었다.
“그 누나가 우리한테 중요한 사람인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번 미션이 나왔다는 건 반복해서 비슷한 미션이 또 나올지도 모른다는 거니까.”
“흠…. 다른 건 별거 없네.”
아이템은 소재거나 고만고만한 것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진짜 보상은 포인트라 할 수 있었다. 광산에서 오크도 잡았고 조력자를 구하면서 죽였던 바퀴벌레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뭣보다 풍뎅이 같은 놈이 9,000포인트를 줬는데 이래저래 합산해보니 10만 포인트가 넘어갔다.
‘조금만 더 모으면 살 수 있겠어.’
최근 광산을 오가면서 번 포인트가 이제 30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재능마켓 아이템은 30만 포인트부터 진짜다. 내가 정한 기준이기는 하지만 성능 설명만 봐도 어마어마하다.
“흐아아아암, 민준이 너는 어떻게 할래? 나는 한숨 자고 갈란다.”
김우태가 피곤한지 기지개를 켰다.
“전 가볼게요.”
“그래, 내일 보자.”
“민준아! 잘 가!”
도화지가 손을 흔드는 걸 보며 범이를 불렀다. 녀석이 냉큼 안기는 걸 보면서 밖으로 나가 핸드폰을 들었다.
‘역시 아무것도 안 나와.’
그 난리가 났었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지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윤일권이나 강나은이 정보를 노출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들 이야기도 없는 것 같네.’
피의 군주와 퀸이 궁금했지만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나침반을 꺼내 보아도 바늘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얻은 목걸이를 손에 들었다.
‘이렇게 표시되는 건가?’
펜던트에 작은 점이 찍혀 있었고 중심은 내가 있는 위치 같았다. 거리는 모르겠지만 점의 방향을 알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력자라.’
그녀가 우리에게 무얼 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 사람 동료가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푹 잤다. 피로가 쌓였었는지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학생 신분이지만 지력이 늘어서인지 공부는 어렵지 않았고 시험 전에 바짝 며칠 투자하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업과 집, 그리고 재능마켓으로 이어지는 내 일상은 이제 다른 것이 개입할 여유가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할 일을 마무리한 뒤 재능마켓으로 가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여어.
“형.”
-강남 오고 있냐?
“막 출발하려고 했어요.”
-쉐이크 대박 터졌다. 손님들이 아침부터 오픈런 하고 있어.
오픈런이란 건 명품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 아니었나?
-그거 말해주려고 전화했어. 이따 보자.
“네.”
장사가 잘된다니까 다행이었다. 우리는 저쪽 세상으로 물자를 나르려면 돈이 필요했다. 김우태가 장사수완이 좋아서 적은 노동으로 큰돈을 벌고 있으니 유지만 잘하면 돈 걱정은 하지 않고 미션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막 통화를 마쳤는데 또 전화가 왔다.
-민준아.
예원이었다.
“오랜만이네.”
-응! 바빴어! 너는 어때?
“똑같지 뭐. 조만간 학교 소집일이야. 방학 끝나면 다시 등교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아, 그래? 알았어. 선생님께 전화해볼게. 아 참, 전에 그 PD님 있지?
“응.”
-어제 우연이 잠깐 만났는데 네 이야기를 하더라. 전화할수도 있어.
“왜?”
-모르겠어. 새로운 예능 준비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제세한 건 들어봐.
“알았어. 고마워.”
-응! 또 전화할게!
예능이라. 이제 그런 걸 할 이유가 없었다. 전엔 돈이 급해서 했던 거지만 지금은 김우태가 돈을 벌고 있으니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강남역 5번출구에 도착했다.
“어? 누나? 왜 안 들어가고 여기 있어요?”
빌딩 앞 화단에 기대있는 도화지를 발견했다.
“바람 쐬고 있었어.”
“아….”
“오늘도 광산 갈 거지?”
“아마도요? 피곤하시면 저 혼자 다녀와도 되고요.”
“아니야. 나도 재미있어.”
도화지가 웃자 주변을 지나는 남자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녀가 지닌 매력 수치가 높아져서도 있지만 싱그러운 미소는 시선을 절로 잡아끌었다.
“이거, 먹을래?”
사탕 하나는 내미는 도화지를 보면서 내가 웃었다. 꼬마나 갖다줘야 할 것 같다.
【재능마켓에 입장했습니다.】
하루 한 번,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몸 좀 풀 테니까 할 일 하고 있어!”
도화지는 곧장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예쁜 얼굴도 눈에 띄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탄력 있게 변하는 그녀의 몸도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야야, 하지 마. 다쳐.”
반가운지 범이가 쪼르르 가서 아리를 덮쳤다. 깨물고 뒹굴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내가 유리 벽으로 걸어갔는데 새로운 아이템이 보였다.
“…어?”
【강력한 그물: 매우 특별한 그물이라서 찢어지거나 타지 않는다. 50,000P.】
“이거?”
보자마자 용도를 알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용처도 있겠지만 내겐 해결하지 못한 미션이 하나 있지 않았나?
“좋아!”
포인트는 오크를 사냥하면 되니까 언제든지 얻을 수 있지만 이런 아이템은 보일 때 얼른 챙겨둬야 했다.
‘운이 좋은데?’
용암 속에 사는 괴물을 잡을 수 있는 수단이 생겼으니 마음이 초조해진 것일까?
“누나! 저 먼저 가볼게요! 우태 형 오시면 같이 넘어오세요!”
“응!”
범이가 아리와 잘 놀고 있는 게 보여서 나 혼자 2층으로 올라갔다. 가방과 물건을 챙겨서 균열로 들어가니 어르신이 저쪽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어르신!”
“왔는가?”
“제가 이걸 가져왔어요!”
그물은 얇지만 커서 무게가 상당했다. 물론 이 정돈 내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오오…! 상당히 튼튼히 보이는 그물이군? 이거라면 그 녀석을 사냥할 수 있겠는걸?”
“일단 도전해보려고요.”
“그래, 뭐든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고.”
“네!”
물건을 내려놓고 무기와 그물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후끈한 열기와 유황 냄새가 나를 반겼다. 하지만 내 목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암 속에서 살고 있는 괴수였다.
‘용암상어….’
놈을 사냥하면 뭔가 굉장한 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 안에 있는 물고기만 해도 그 맛이 환상적이지 않았나?
우선 화살통에서 화살을 몇 개 뽑아뒀다. 주작의 깃털 효과 덕분에 황금색 깃을 가진 화살들이 보기 좋게 바닥에 꽂혔다. 그물이 있다지만 언제 전투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미리 세팅을 해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방 속에서 몇 개의 드링크도 꺼냈다. 김우태가 없기에 유사시에 회복을 도울 것들과 긴급 탈출을 위해 쓰일 것들이었다.
‘만만치 않은 놈일 거야.’
전에 잠깐 봤지만 용암상어는 백상아리만큼 위협적이었다. 바다에서 상어를 만나는 것만큼 최악의 상황이 없는 것처럼 나도 지금 그런 괴물과 마주하려는 것이었다.
‘일단 밖으로 끌어내면 승산이 있어.’
자칫 내가 저 안으로 딸려가면 곧장 게임 오버다. 녀석이 저 뜨거운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1초도 견딜 수 없을 거다.
‘비싼 그물이니까 절대 놓치면 안 돼.’
내 힘이 관건이었다. 낚시란 게 보통 물고기와의 힘겨루기인데 상어나 고래 정도 되는 것들은 사람 혼자서 낚기엔 매우 어렵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힘과 체력을 계속해서 누적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부글부글.
준비를 마치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용암상어라….’
그 맛이 어떨지 매우 궁금한 순간이었다.
.
.
.
강나은 경위는 CCTV를 바라보다가 피곤한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눈꼬리에 물기가 맺혔다.
“뭐 좀 나왔어?”
“팀장님! 몸은요? 이제 괜찮으신 거예요?”
“의사가 며칠 더 있으라곤 했는데 지겨워서 말이지.”
팀장이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미 몇 번의 통화로 경과를 알려주었기에 지금 그녀가 무얼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없어?”
“네. 다른 두 사람은 몰라도 그 할머니는 눈에 안 띌 수가 없는데 전혀 보이지 않아요.”
강나은은 잠실에서 넘어온 CCTV를 전부 뒤지고 있었다. 그날 그곳에 그들이 반드시 있었을 거란 확신을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 난리가 벌어지지도 않았을 거였다.
“직접 만나니까 어땠어?”
“장난 아니었어요. 영화처럼 휙휙 날아다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몰라요.”
“그 괴물은?”
소녀를 말하는 것이리라.
“못 찾았어요.”
“참 요리조리 잘 숨는단 말이야.”
“그래도 제 눈으로 모두 직접 봤으니까 앞으론 어렵지 않게 특정할 수 있을 거예요.”
“사람들은 어때 보였어?”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나쁜 사람들 같진 않았어요.”
“하아…. 그날 나도 봤어야 하는데 하필….”
“무사하신 것만으로도 다행이죠. 앞으로 기회가 더 있을 거고요.”
“국과수에서는?”
“아직이요. 그런데 그분들이라고 뭘 알아낼 것 같진 않아요. 태창이 워낙 교묘하니까.”
그녀는 이번 일도 태창의 짓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나 걸리는 점이라면 그 소녀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어린 소녀가 태창 같은 회사에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그녀 역시 실험체인 건가?
“그만 봐. 더 봐도 안나올 것 같으면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는 게 나아. 밥은 먹었나?”
“아직이요….”
“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야? 나가지, 내가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살 테니까 먹고 해.”
“고맙습니다. 팀장님.”
강나은 경위가 배시시 웃으며 마지못해 일어났다. 그런데 무심코 눈으로 훑은 모니터에서 이상한 게 들어왔다.
“아앗?”
“왜? 뭔데?”
“이것 보세요! 여기요!”
화질이 왜 이렇게 좋지 않은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강나은은 마침내 원하는 걸 찾아낸 것 같았다.
“이 활이었어요!”
“돌려봐! 어서!”
“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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