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그녀가 걱정한 건 혹시 로드가 뒤를 치지 않을까였다. 아무리 퀸이라고 해도 로드는 까다로운 마법을 쓰기 때문에 그의 술수에 걸려들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이곳이 본래 살던 세상이라면 무시하고 싸우겠지만 예전의 힘을 다 되찾지 못한 그녀였기에 매사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감히 우리 귀여운 인형을 발로 찼어!”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며 도화지가 망치를 들고 퀸에게 달려갔다. 큰 풍뎅이와도 싸웠던 도화지였기에 자신감이 충분했다.
“안 돼요!”
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도화지는 웃으며 퀸에게 바짝 접근했다. 그리곤 망치의 머리 옆부분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뿅! 하는 곳이 아니라 이번에 새로 다듬은 뾰족한 곳이었다.
“아플 거야!”
그런데 도화지의 공격은 먹혀들지 않았다.
스윽.
퀸이 손을 들더니 망치 머리 부분을 잡아버린 거다.
“…우욱?”
도화지가 놀라서 퀸을 바라보았다. 삐쩍 마른 애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풍뎅이 뿔도 부러뜨리는 망치인데 그걸 솜사탕처럼 받아들고 서 있었다.
“….”
“….”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헤헤.”
도화지가 머슥한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놔줄래?”
“응.”
퀸도 순순히 미소지으며 손을 놓았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퍼억-!
퀸의 발이 도화지의 배를 걷어찼다.
“꺄아아아아아!”
풍뎅이한테 맞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충격에 도화지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뒤쪽으로 굴러갔다.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처음으로 망치까지 놓아버린 도화지였는데 축 늘어질 줄 알았던 그녀가 고갤 번쩍 치켜들며 분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걸 보며 퀸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그래?”
“뭐가?”
“이상하잖아.”
“네가 더 이상하다니까!”
도화지가 기어가듯 앞으로 뛰어가면서 망치를 낚아챘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을, 두 번으로 안 되면 세 번을 때리는 게 본래 망치질이 아니던가? 최근에 드워프의 작업실에서 무기를 제련하며 그런 점을 깨달은 도화지였기에 만 번이라도 칠 각오가 되어 있는 그녀였다.
“…흠.”
퀸이 다리를 움직였다. 신기하다는 듯 도화지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뒤통수에 화살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귀찮네.”
힐끔 뒤를 돌아보며 민준의 위치를 확인한 퀸이 자기도 모르게 아래를 내려보았다. 언제부터였나? 인형이 다리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
인형이 손에 든 칼이 심장을 철렁하게 하겠지만 퀸에겐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톡톡 두드리는 인형의 손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치명적인 저주가 터졌습니다. 대상이 생리불순에 걸렸습니다. 치명적인 저주는 효과가 상당히 오래 지속됩니다.】
“뭐, 뭣?”
퀸이 반응하기 전에 저주 인형의 손이 빠르게 그녀의 다리를 토닥거렸다.
【대상의 움직임이 둔해졌습니다.】
【대상의 회복력이 감소했습니다.】
【대상의 재생력이 감소했습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저주만으로도 강력하다. 그런데 오늘은 인형의 운이 좋은 날이었던 것 같았다.
【치명적인 저주가 터졌습니다.】
치명 저주는 도화지의 치명타만큼이나 무섭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특히나 자식을 낳아야 하는 퀸으로서 생리불순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지금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대상이 악성 불면증에 걸렸습니다. 치명적인 저주의 효과는 상당히 오래 지속됩니다.】
“…!”
퀸이 인형이 붙은 다리를 걷어찼다.
퍼억-!
저주 인형이 훨훨 날아가 바닥에 고꾸라졌지만 쓰러진 상태에서도 만족한 듯 손을 치켜들었다. 손가락이 있었다면 엄지가 보였을 것 같았다.
“아하하하하! 뭔진 모르지만 잘했어!”
도화지가 신이 나서 망치를 휘두르며 퀸에게 달려들었다.
“…마법? 아… 아니 저주?”
퀸이 복잡한 표정으로 연신 뒤로 물러나며 도화지의 망치와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냈다.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이 해결되질 않았다. 그녀의 강한 권능으로도 치명적 저주는 떨쳐내지 못했는데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아주 기분 나쁜 게 하나 있었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화가 난 그녀가 버럭 외칠 때였다.
후두두두둑!
“…?”
“…!”
“…!?”
천장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걸 본 민준이 자기도 모르게 나침반을 꺼내 들었을 때 시커멓고 통통한 그건 퀸의 등에 달라붙었다. 몸통은 주먹만 했지만, 날개는 몸집보다 큰 생물이었다.
“뭐야! 꺄아! 박쥐다!”
도화지가 징그럽다는 듯 외쳤을 때 퀸의 등에 달라붙은 박쥐의 송곳니 두 개가 퀸의 등을 물어뜯었다.
“…아아악!”
아파서가 아니었다. 퀸도 너무 당황해서 비명을 지른 거다. 손을 뒤로 움직여서 박쥐를 떼어내려고 해봤지만, 박쥐는 몸을 흔들며 퀸의 등에 매달려 쪽쪽 피를 빨아댔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퀸의 손에 날개가 잡힌 박쥐는 아쉽다는 듯 버둥대다가 갑자기 파악-! 하고 붉은 안개로 흩어졌다.
“이 기생충 같은 게! 아아아아악!”
분노한 퀸이 화기 치밀었는지 고함을 지르며 붉은 안개를 따라 뛰었다. 그 속도는 민준이 따라잡기도 어려울 정도였고 윤일권의 눈에는 퀸이 어디로 뛰는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붉은 안개는 바람에 떠밀린 것처럼 저쪽 출구를 향해서 필사적으로 이동했는데 퀸이 무섭게 따라붙으며 손을 휘저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
“….”
민준과 도화지는 그걸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피의 주인이….”
“설마 우릴 미행한 거야?”
“그건 아닐 거예요. 접점이 없었잖아요. 아마 여기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것 같은데요?”
“퀸을 공격하려고?”
“네.”
그게 아니면 그녀의 피가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도망가는 걸 보면 아직 퀸에겐 비빌 만큼은 아닌가 봐요.”
“내 생각도 그래, 저 퀸인지 뭔지. 아직 실력 발휘를 하지 않았어. 장난치는 느낌이야.”
두 사람이 버둥거리는 풍뎅이를 봤다.
【위험이 사라졌습니다.】
【‘조력자를 지켜라’ 미션을 최종 완수했습니다.】
“일단…. 나가죠. 피의 주인까지 나타났으니 우리가 뭘 해보기엔 일이 너무 커졌어요. 보는 눈도 있고….”
“그래, 튀자!”
.
.
.
민준 일행이 바람처럼 도망쳐버리자 강나은 경위와 윤일권은 어어어? 하다가 짐짝처럼 남겨졌다.
스으으으으으으.
어딘가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아까 본 박쥐가 갑자기 떠오른 강나은이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지원을 기다릴까요? 아니면 저쪽으로 끝까지 가볼까요?”
“아까 그 절벽을 우리끼리 올라가긴 어려울 것 같으니까 저 길이 어디로 이어졌는지 확인합시다.”
“좋아요.”
무슨 수를 썼는진 모르겠지만 그 큰 풍뎅이가 감쪽같이 없어졌다. 재료 수집망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모든 것이 이해 가지 않았다.
걸으며 강나은 경위가 말했다.
“이번 일, 보고는 어떻게 하죠?”
“…저도 그걸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대원들이 피습되어서 알 같은 것에 갇혀 있었던 것을 숨길 순 없었다. 워낙 많은 이들이 경험했고 광수대 뿐 아니라 강나은이나 팀장 같은 강력반 인원까지 개입된 일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겪게 된 두 사람의 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총을 썼으니까 보고는 하긴 해야 하는데….”
“큰 풍뎅이를 조종하는 중학생 정도의 애한테 쐈다고요?”
“…하아….”
“그 풍뎅이가 어디 있냐고 하면요?”
윤일권이 손에 든 뿔을 봤다. 혹시 잃어버릴까 봐 이거라도 들고 왔는데 국과수라고 한들 이걸 알아보기나 할까?
“경위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는 일단 함구해야 한다고 봐요. 우린 오늘 히트맨을 만났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들의 정보를 퍼뜨린다면 그들이 다음번에도 우릴 접촉하려고 할까요?”
이건 윤일권의 허를 찌르는 말이었다.
“…그렇겠군요.”
“소탐대실이라 했어요. 지금, 우리보다 아까 그들의 정보가 더 많다는 건 확실한데 어떻게든 다음을 노려서 더 친분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요? 계속 이렇게 사건을 추적하다 보면 그들을 머잖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괜찮은 생각이었다.
“그러면 팀장님께서 비밀로 하실 겁니까?”
“그분은 우리와 한배잖아요. 셋만 아는 거로 하죠. 당분간만요.”
“좋습니다.”
보고 누락은 경찰이 해선 안 되는 일이었지만 때에 따라선 늦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늘 겪은 일을 상부에서 믿어줄지가 관건이었다. ‘너희 둘이 마약 한 거 아니야? 피 검사부터 해봐!’ 이런 말이 더 신빙성 있게 들릴 것 같은 건 왜일까?
“팀장님은 괜찮겠죠?”
“강한 분이시잖아요.”
윤일권이 고갤 끄덕이며 저쪽으로 이어진 길을 봤다.
“어디로 통하는 걸까요?”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밖과 이어져 있겠죠.”
“히트맨이라…. 제가 상상하던 모습은 전혀 아니었네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심지어 노인이 있을 거라곤 예상 못 했고요. 제 실책이에요. 프로파일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했는데. 그랬다면 잠실이나 여의도에서도 저들을 특정할 수 있었을 거예요.”
“경위님 잘못이 아닙니다. 그 누가 강아지까지 데리고 다니는 그 사람들을 의심합니까?”
좀 더 걷자 물소리가 났다.
“으읍….”
악취도 풍겨왔다.
“아아아.”
윤일권이 말했다.
“오폐수처리장 쪽으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다른 출입구가 더 있을 진 모르겠지만 만약 여기로 드나들었다면 도심 한복판에서도 사람들의 눈을 완벽하게 피했을 것이었다.
“그러면 오늘 일은 태창의 소행으로.”
“그러죠.”
두 사람이 힘들었다는 듯 겨우 미소 지으며 밖으로 향했다.
.
.
.
【긴급을 완료했습니다. 재능마켓에 가면 매우 특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오…! 들었냐?”
“네.”
“쉿! 나왔어요!”
균열이 있는 곳까지 가야 했다. 저쪽에서 강나은과 윤일권의 모습이 보이자 우린 머릴 숙였다. 그들이 뭐라 뭐라 쑥덕이다가 사라지자 우린 다시 동굴로 향했다.
“따돌린 것 같아.”
김우태의 말에 나는 도화지와 냉큼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바늘이 계속 움직여요. 아직도 도망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바늘 끝이 심하게 떨린다. 피의 주인과 퀸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까지 가버렸는지는 모르겠다.
김우태가 혀를 찼다.
“한판 시원하게 붙지, 뭘 그렇게 꽁지 빠지게 도망가냐? 피의 주인인지 뭔지도 별거 아니었네.”
“그만큼 퀸이 강하다는 거겠죠. 오늘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빠르게 이동하면서 아까 풍뎅이와 싸웠던 곳에 도착했다. 아직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 같으니 빨리 균열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곧장 택시 타고 재능마켓으로 갈 생각도 해봤지만 재능마켓 이용은 하루 1번이었다. 못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거다.
도화지가 말했다.
“오늘 같은 수준이면 그래도 잘하면 우리가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어. 아리랑 가이도 있었잖아.”
내가 웃었다.
“맞아요. 저도 그 생각했어요. 조건만 맞으면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퀸이나 피의 주인이 더 강해지기 전에 빨리 추적해야 할 것 같아요.”
퀸도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번엔….’
그녀 또한 아주 놀라운 걸 보게 될 것이다.
재능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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