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타앙-!
총성이 울렸다.
“….”
“…?”
퀸은 자신의 배를 보았다. 피부를 뚫고 들어간 탄환이 내장을 파고들었다.
총을 든 윤일권이 심각한 얼굴로 총구를 겨냥하고 있었는데 놀라운 사격 솜씨였다.
하지만 그는 곧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럴 수가….”
총 맞은 부위가 아물어버린 것이다.
“쳇! 모두 준비해!”
김우태가 버럭 외칠 때 퀸이 타고 있던 괴물이 날뛰기 시작했다.
-쿼어어어어어어!
‘상처가 아물었어. 저 정도 재생력은 기본이라는 건가?’
나는 활을 들고 옆으로 뛰어가면서 퀸을 보았다. 윤일권의 총이 장난감도 아닐 텐데 일반인이라면 그 한발에 치명상을 입었어야 정상이건만 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괴물의 위에서 우릴 내려보고 있었다. 저렇게 날뛰는 괴물 위에서도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서 있었다.
‘피의 주인보다 확실히 위야.’
피잉-!
화살이 날아갔다. 괴물의 외피는 무척이나 단단해서 화살이 깊이 박혀 들지 않았는데 두 번째부터는 관절이나 약한 부위를 찾아 활을 쐈다.
“저놈은 내가 맡을게! 민준아! 너는 퀸을!”
도화지가 망치를 들고 괴물에게 다가가 힘껏 휘둘렀다.
깡!
분명 괴물의 몸을 때렸는데 쇳소리가 난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는지 괴물이 성을 내며 도화지에게 달려들었는데 그녀 역시 만만찮은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피하지 않고 두 번째 망치질을 시도했다. 이번은 다리였다.
퍼억-!
괴물이 휘청거릴 때 나는 그 위를 보았다. 흔들리는 괴물 위에서 퀸의 모습이 보였다. 이때 내 손에서 시위가 튕겼다.
슈욱!
화살이 퀸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흥!”
퀸이 머릴 살짝 옆으로 움직여 화살을 피해내더니 재미있다는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제법인데? 하지만 이 정도론 안 돼.”
“그건 해봐야 아는 거고!”
좀 더 옆으로 돌아 활을 계속해서 날렸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퀸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에 벽 쪽으로 붙어 돌며 급소를 노린다. 하지만 퀸이 높은 지점에 있었고 머리만 숙이면 괴물의 몸에 가렸기에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순 없었다.
.
“저게…말이 돼?”
윤일권이 멍하니 싸움을 바라보았다. 그가 든 총은 이미 총구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쏠 의지마저 꺾여버린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움직여?”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이유는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옆에서 강나은 경위가 말했다.
“저 괴물은 뭘까요? 곤충 같긴 한데요.”
“뭐든 정상은 아닙니다.”
“이상하죠. 그런데 그렇게 치부할 순 없잖아요. 뭔지 알아내야 다음을 대비하죠.”
“경위님은 저들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그녀는 괴물에 더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총을 맞고도 멀쩡한 사람, 저런 큰 괴물하고 맞서는 사람들….”
“특수한 훈련을 받았겠죠. 상처가 아문 건 잘 모르겠지만 태창의 기술력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고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그건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저 사람, 망치 하나로 저 괴물과 싸우고 있어요.”
때마침 도화지가 괴물의 뿔에 맞아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그런데 상처하나 없이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괴물을 향해 돌진했다.
“…저는 수많은 케이스를 직접 보면서 현장을 뛰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요원들도 여럿 보았어요. 그 어떤 정예 요원도 저렇게는 못 합니다.”
총을 잘 쏘는 사람은 있다. 칼을 잘 다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도 저 괴물과 맞서는 건 어렵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아닌가?
“그렇다고 계속 부정하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우리가 밝혀야죠!”
강나은 경위는 괴물을 뚫어지게 보면서 말을 이었다.
“생긴 건 풍뎅이 같은데 저렇게 큰 걸 키우려면 비밀스럽고도 큰 시설이 필요했을 거예요. 바로 이곳 같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좋겠죠. 처음엔 이런 동굴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었는데 이제 알 것 같아요. 저 괴물을 양산하려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아까 그 거미도 그렇고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뭣보다 저 여자, 전에 본 적이 있어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런 날은 잊을 수가 없죠.”
팀장이 ‘괴물’이라고 부르는 소녀는 이 모든 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보였다. 풍뎅이를 보고 있자니 그녀의 존재감이 희석된 기분이었지만 풍뎅이에 올라타서 그걸 조종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위치는 확고했다.
“총을 맞아도 안 죽는데 무슨 수로 저 괴물들을 잡아야 할까요?”
탱크라도 와야 하나?
윤일권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는데 강나은 경위가 말했다.
“그건 저들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강나은의 시선 끝엔 도화지가 풍뎅이의 뿔을 향해 망치를 날리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퍼어어억-!
“나이스! 하하하하!”
풍뎅이 뿔이 부러졌다. 치명타가 그녀의 망치에서 터져나간 것이다.
강나은 경위가 그 모습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보세요. 저들은 어떻게든 할 거예요.”
“…하…. 기막힌 일이군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현장을 뛰는 그였기에 저 싸움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경험이나 기억에 기반한 모든 상식을 뒤엎고 있었고 망치 사내는 게속해서 풍뎅이의 공격에 날아가고 처박혔지만, 상처 하나 없이 다시 싸웠다. 김우태가 그녀의 상처를 흡수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퀸도 그런 도화지를 보며 감탄을 했다.
“꽤 단단하네. 너?”
“그걸 이제 알았어? 냉큼 내려오지 못하니?”
도화지가 말하자 퀸이 목을 틀어 화살을 피해냈다. 계속해서 날아오는 민준의 화살이 성가셨지만, 퀸은 지금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네.”
“뭐가? 그리고 네가 더 이상하다고!”
“너희만 있는 거야?”
“그럼 또 누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아는 로드는 이런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거든.”
퀸이 시선을 주변으로 보냈다. 하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내려와! 나랑 싸우자!”
두 사람이 티격태격할 때 강나은 경위가 말했다.
“지원요청 했었죠?”
“진즉에 했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죠. 게다가 지원이 온다고 해도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 진 모르겠습니다.”
“아뇨. 제가 걱정하는 건 도움이 아니에요. 괜히 누가 왔다가 개죽음당하지 않을까 걱정돼서 그랬어요.”
그녀의 언사가 거칠어졌다는 건 그만큼 흥분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마치 화재 현장을 중계하는 취재원처럼 말했다.
“또 피했어요. 저 남자, 괴물의 움직임에 적응한 것 같아요.”
도화지가 여자란 걸 전혀 짐작하지 못한 강나은 경위였기에 망치든 사내가 고도로 훈련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판단력이 빨라요. 괴물이 오른쪽 다리를 자주 쓴다는 걸 알고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어요.”
분석이 직업인 그녀답게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윤일권은 도화지보다 민준에게 시선이 가 있었다.
“화살이 다 어디서 나오는 거지?”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떠올릴 의문은 아닌 것 같았지만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벌써 50대는 넘게 쓴 것 같은데 저 화살통에선 화살이 끊임없이 나왔다.
강나은도 그 점을 떠올렸는지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다른 관심사로 돌렸다. 이상하게도 망치 남자에게 계속 눈길이 갔다.
“아앗! 위험해요! 피해!”
그녀도 모르게 외쳤을 때 도화지가 풍뎅이의 등에 부딪혀 날아갔다. 풍뎅이는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여서 도화지를 받아버렸는데 공격하려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던 도화지로서는 피할 수 없었다.
콰아아아앙-!
도화지가 10미터 이상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얼마나 강한 충격이었으면 후두둑! 그녀의 주위에서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아, 안돼…!”
강나은이 뾰족한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입을 막을 때 도화지가 벽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도화지는 이 순간에도 손에서 망치를 놓지 않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착지하면서 다시 뛰었다.
“아오! 아파! 너, 가만 안 둬!”
도화지가 다시 풍뎅이를 향해 달려들자,
“….”
“….”
강나은 경위와 윤일권은 기막힌 표정으로 도화지를 바라보았는데 사람이라면 일어나지도 못할 충격을 받고도 또 싸운다.
윤일권이 자기도 모르게 저쪽을 봤다.
김우태가 서 있었다. 그런데 김우태의 폼에도 손에도 인형이 없다. 본능적으로 풍뎅이를 봤지만 큰 몸에 가려서 인형이 어디 있는지 보이진 않았다.
‘뭘 하는 걸까?’
할머니의 모습이기에 김우태가 싸우지 않는 것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김우태도 지금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아내는 중이었다. 도화지의 방어력이 대단하다지만 그녀도 맞으면 아프다. 치명타를 맞으면 그녀도 다친다. 그럴 때마다 김우태는 도화지의 모든 상처를 자신에게 가져와 회복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저주 인형을 은밀하게 침투시켰다. 윤일권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 인형이 풍뎅이에게 거의 다 접근해있었고 풍뎅이의 딱딱한 외피 때문에 인형의 칼은 쓸모가 없지만 사실 인형의 진정한 공격 수단은 다른 것이지 않았다. 이름 자체가 ‘저주’ 인형이었으니까.
【고통에 익숙해졌습니다.】
【축하합니다! ‘인내’ 스킬이 생겼습니다!】
민준의 그것관 다르지만, 김우태에게도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다.
【이제 일정 수준의 고통은 효과적으로 참아낼 수 있습니다.】
【파티원 회복 범위가 늘었습니다.】
【저주 인형이 ‘인내’ 효과를 공유합니다. 이제 저주 인형도 일정 범위의 고통을 버텨낼 수 있습니다.】
김우태의 눈빛이 반짝거릴 때 강나은 경위가 말했다.
“그…영화 같은 거 보면 군인한테 실험해서 생체병기로 만들고 그러잖아요. 혹시 저 사람들, 우리가 모르는 특수부대 소속이 아닐까요?”
그녀의 추론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였다.
“정부에서도 태창이 비밀리에 불법적인 실험을 한다는 걸 알고 저들을 급파한 거, 그러면 말이 되지 않아요?”
“그런 기관은 우리나라에 없습니다.”
광수대 대장이기에 그는 확신하며 말했지만 목소리가 크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런 풍뎅이가 버젓이 눈앞에 있는데 설명조차 못 하고 있지 않나?
“그것도 아니라면….”
강나은 경위가 민준을 보았다.
“재벌인가요? 돈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우린 알 길이 없잖아요.”
태창 역시 그런 부류였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이렇게 무력해 보긴 처음이군요.”
공권력도 범과 질서가 있을 때나 먹히는 거지 이런 지하에서 풍뎅이에게 써먹을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순간 싸움의 균형이 기울어졌다.
【대상이 균형 장애에 빠졌습니다.】
【대상의 시력을 잠시 잃었습니다.】
【대상의 호흡이 곤란해졌습니다.】
풍뎅이의 뒷다리를 저주 인형이 집요하게 때리고 있었다.
기우뚱!
풍뎅이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자 그 위에 타고 있던 소녀가 훌쩍 옆으로 뛰어내렸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착지한 곳은 저주 인형의 근처였는데 퀸이 신기한 듯 저주 인형을 보다가 발로 걷어차 버렸다.
휙-!
저쪽으로 날아가 처박힌 저주 인형을 보며 퀸이 말했다.
“역시 로드는 재미있는 마법을 쓰네.”
그녀가 얼굴을 옆으로 기울이자 우드득! 소리가 났다. 빙긋 웃는 퀸이 말했다.
“이제 진짜로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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