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실험은 이미 피라미드가 날아다니던 시절에 끝났고 이 벌레들은 자연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쪽 생태계에 매우 치명적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내가 말했다.
“길은 저거 하나예요. 우린 들어갈 건데 두 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갑니다.”
“저도요.”
두 사람이 말하자 도화지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안아 들었다. 나도 범이를 안았는데 남은 한 마리가 부러운 듯 우릴 물끄러미 보다가 김우태와 눈이 마주쳤다.
“이리 와.”
하지만 김우태의 목소릴 듣더니 고갤 홱 돌려버리곤 강나은 경위에게 다가가서 다리에 매달렸다.
“….”
김우태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바라볼 때 강나은 경위가 강아지를 안아 들었는데 세상 모든 생물에게 미움받는 기분이 어떤 걸진 모르겠지만 김우태니까 견디는 거다.
“제가 앞장설게요.”
김우태를 위로하는 눈빛을 보내며 내가 나섰다. 품에 안긴 범이가 코를 벌름거렸는데 먹성 좋은 범이도 바퀴벌레는 안 먹었다.
“배고파?”
규우우웅.
“내려가서 줄게. 아니면.”
네가 먹을만한 게 나올지도 모르고.
쓰게 웃으며 구멍을 보았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구조가 아니어서 일단 다리부터 밀어 넣고 앉다시피 내려갔다.
‘좁네.’
바퀴벌레가 드나들기엔 어려워 보였다. 아무리 좁은 곳도 잘 다니는 곤충이라지만 놈들 수백 마리가 왔다 갔다 했다면 이것보단 넓어졌을 거다.
‘그렇다고 자연적으로 생긴 것도 아니고.’
보통 지하의 동굴은 물 때문에 생긴다. 지하수가 길을 만들고 그게 점차 반복되면서 넓어진다. 하지만 이 동굴은 누군가 파낸 것 같았다. 매끈하지도 않았고 물이 흘렀던 적도 없어 보였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북한군이 만든 땅굴도 아니고…. 이게 언론에 알려지면 세상이 발칵 뒤집히겠네.”
윤일권은 생각할수록 놀라운 것 같았다. 강나은이 말했다.
“언제까지 감출 순 없잖아요.”
“그렇긴 하겠지만 놈들을 일망타진할 때까지는 숨기는 편이 좋습니다. 해외로 튀어버리면 곤란하잖아요.”
“이렇게 잘 숨는 놈들이 굳이 다른 나라로 도피하려고 할까요?”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지하에 왕국을 만드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놈들이었다. 지난번 홍대 지하도 그렇고 이곳도 규모만 놓고 볼 때 수천 명이 거주해도 되겠다.
도화지가 말했다.
“냄새가 나.”
“여차하면 피해요.”
“응.”
우리 중에서 가장 강한 전투력은 내가 보유하고 있었고 순발력도 좋았다. 위기 대처 능력만큼은 날 따를 사람이 없었기에 내가 나서는 게 당연했다. 엄밀히 따지면 전투력이 더 센 녀석들이 있지만 이렇게 좁은 곳에선 녀석들도 힘을 못 쓴다.
“출출하네. 나가면 떡볶이 먹을래?”
“좋아요.”
“순대도 먹어야지. 히히!”
도화지는 영락없는 여고생이었다. 겉모습은 우락부락한 청년이었지만 그 속은 우리만 안다.
“….”
“….”
뒤에서 듣고 있던 두 사람이 잠시 말이 없어졌을 때 나는 속도를 높였다.
사르르르륵! 사륵!
흙이 부서져 내리며 우린 점점 더 아래로 향했는데 10미터쯤 더 내려가자 끝이 보였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지점이었다.
“허어…. 뭐야?”
“헐….”
속속 내려온 사람들이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쩐다….”
“여기, 묘하게 예쁜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넓은 공간이 있었다. 한쪽으론 물이 넓게 고여 있었고 종유석처럼 삐죽삐죽한 것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우리가 비추는 플래시 불빛에 푸르스름한 빛이 반사되며 반짝거렸는데 그게 참 신비로웠다.
그러나 마냥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여기야. 냄새.”
도화지가 긴장했다.
“물러서세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강나은과 윤일권에게 말했다. 도화지와 김우태가 앞으로 나가며 무기를 잡았다. 전투 모드로 돌입한 두 사람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변했다.
강나은과 윤일권이 주춤거리며 벽으로 붙는 걸 보면서 나도 활을 빼 들고 도화지의 옆에 섰다.
“저 앞이요?”
“응.”
여긴 상당히 넓었는데 축구장보다도 클 것 같았다.
이때 메시지가 우리 모두에게 날아들었다.
【주의! 수호자의 등급보다 높은 적이 주변에 있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런 메시지는 재능마켓을 만난 뒤로 처음 들어봤다.
“히이익?”
도화지가 기겁했다. 저 앞의 땅이 들썩였기 때문이다.
“뭐였어?”
김우태가 물었다.
“몰라요! 기분 나빠!”
내가 더 앞으로 걸어가서 활을 겨냥했다. 바닥이 움직였다. 그리곤 곧 소리가 들여왔다.
츠츠츠츠츠츠츠츠.
“어엇! 바퀴벌레다!”
“또 나왔어!”
바닥에서 기어 나온 것들은 아까 우리가 만났던 그 바퀴벌레였는데 색깔이 훨씬 더 검고 덩치도 컸다.
“흐익! 징그러워!”
“아까는 잘도 잡더니만!”
“그건 아까고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할 때 내가 먼저 선공했다.
슈우우욱!
화살이 날았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기에 빗맞을 린 없었다.
퍼억-!
-끼이이이이익!
괴상한 소리와 함께 바퀴벌레 한 마리가 벌러덩 누웠다. 다리를 바르르 떨며 죽어가는 놈을 보다가 우리는 서로의 거릴 좁히며 등을 마주했다.
“더 있어.”
“알아요.”
땅이 온통 들썩거리고 있었다.
‘또 불을 질러?’
불바다 드링크가 하나 더 있긴 했지만 잘못 쓰면 우리 쪽도 피해를 입을 것 같았다.
‘일단 버텨보자.’
츠츠츠츠츠츠츠츠츠.
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는데 내가 뛰어오르며 범이에게 외쳤다.
“놀아보자!”
뭐가 나올지 몰라도 바퀴벌레라면 소극적일 이윤 없었다.
캬우우우우웅!
강아지 모습이던 범이가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며 은빛으로 변했다.
슉슉!
불붙은 화살이 곳곳으로 날아갔다.
“너무 멀리 가지 마!”
김우태의 목소릴 들으면서 나는 자세를 낮추고 달렸다. 바닥이 계속해서 들썩거렸다. 바퀴벌레들이 우리 발밑에 있는 거다.
‘많아. 하지만 이런 놈들은 얼마든지 잡을 수 있어.’
바퀴벌레의 이빨이 위협적이라도 도화지의 피부조차 뚫지 못한다. 시간만 허락하면 결국 이기는 건 우리다.
‘시야부터 확보하자.’
피잉! 핑핑! 피피피피핑!
계속해서 화살이 날았다. 삽시간에 밝은 불이 사방에서 타올랐고 그 과정에서 화살에 맞은 바퀴벌레가 쇳소릴 내며 버둥거렸다.
그렇게 정찰 겸 사냥을 동시에 수행하는데 앞에서 뭔가 불쑥 치솟았다. 이미 화살을 쏜 상황이라 다시 겨누기 어려웠다.
푸욱-!
그래서 활대로 찔렀다.
-케에에에에엑!
벌떡 일어선 바퀴벌레의 가슴에 활 끝부분이 박혀 들었다. 이런 순간을 위해 뾰족하게 만든 거다.
그런데 지금까지보다 더 큰 진동이 느껴졌다. 지금까진 보글보글 물이 끓는 것처럼 바퀴벌레가 튀어나왔다면 이번 건 지진이 난 것처럼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조심해!”
“뭐지?”
도화지와 김우태가 소릴 지를 때 내 앞에서 거대한 것이 솟구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엔 대가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뒤이어 큰 갈고리 같은 앞발이 나오더니 쑤우우욱! 빠져나온 몸통은 엄청나게 컸다.
“….”
“….”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거대한 괴물의 등에 한 사람이 올라타 있었다는 것이다.
중학생쯤 되었나?
“아아아앗! 저 애!”
강나은이 비명처럼 소릴 지를 때 도화지가 말했다.
“저거야! 저게 지독한 냄새의 진원지였어!”
“괴물이? 아니면 저 꼬마가?”
김우태의 말에 도화지가 삿대질을 했다.
“저 애!”
우리가 당황해서 말할 때 소녀가 우릴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였구나? 내 아이들을 잡아 죽인 게.”
소녀의 목소리는 공허했는데 분위기가 참으로 특별했다. 저렇게 큰 괴물의 등에 올라탄 상태였지만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위화감이 없다.
“로드가 보냈니?”
“…너는 누구지?”
김우태의 말에 옆에서 도화지가 말했다.
“딱 봐도 퀸이잖아! 으아아악! 어떡하지?”
도화지의 말에 소녀가 웃었다.
“당황할 거 없어. 어차피 여기가 너희의 무덤이 될 건데 급할 거 없잖아? 궁금한 게 있는데 대답해줄래?”
퀸이다. 퀸!
그녀가 나를 노려보며 웃었다.
“로드의 마법이라면 여기까지 추적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녀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굳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경고했었거든? 다음에 보면 죽일 거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무모해? 이 넓은 세상, 나눠 먹어도 충분하잖아. 왜 이러는데?”
“우리는 몰라.”
“그래, 너희 같은 아랫것들은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
피의 주인을 만났었다. 하층의 절대자를 둘이나 만나본 감상을 말하자면 현시점에선 퀸이 훨씬 더 위험했다.
‘제기랄, 큰일인데?’
그녀를 상대하면서 머릴 빠르게 굴렸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바퀴벌레들은 별문제가 안 될 것 같지만 장수풍뎅이 같은 저 큰 괴물하고 퀸이 위험해 보였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기회도 없을 것 같다. 여기라면 우리 전부가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싸울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퀸을 잡을 수 있다면 강력한 적 하나는 제거하는 거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로드와 잘 지내려고 했어. 그런데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둬.”
“그렇게 전하지.”
“아니, 너희는 오늘 여기서 다 죽을 거야. 로드에겐 내가 직접 말하면 돼.”
갑자기 피라미드가 떠올랐다. 저 퀸은 중학생 여자아이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피라미드의 모든 기술이 응집된 괴물이었다. 벌레를 만든 것도 퀸이고 엄청난 것들이 날뛰는 하층을 지배하던 것도 퀸이었다.
“인간들이 이렇게 강할 수도 있구나. 의외야.”
그녀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내 속을 구석구석 살피는 것 같았다.
“로드의 부하니까 당연히 엘프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타락한 엘프 말이야. 그도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너희처럼 강한 애들을 길러낸 거지?”
얘기가 길어질수록 우리가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근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혀 모르는 소리만 해대고 있지 않나?
이럴 때는 이쪽에서 주도권을 잡는 게 좋다.
“피의 주인도 이미 세력을 많이 키웠다.”
“…아? 그도 만나봤니?”
“몇 번….”
“대단한데? 그를 만나고도 살아남았다니! 너희, 정말 강하구나?”
보통 저런 말을 할 때는 긴장을 해야 하는데 그녀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는 어땠니?”
“흡혈귀였지.”
“그건 다 아는 사실이고. 내가 궁금한 건 그의 힘이 얼마나 회복되었느냐야.”
“몰라. 거기까지는.”
퀸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괴물의 등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사뿐사뿐 걸어서 괴물의 머리 위에 섰다. 그곳에서 고고한 눈동자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본래 누굴 살려두는 편이 아니었는데 여기 와선 마음이 약해지네. 딱 한 번만 물어볼게. 너, 나를 위해 일할래?”
이걸 거짓말로 넘길 수 있을까? 힘들겠지?
“곧 세상이 내 것이 되면 이 나라 정도는 네게 줄 수도 있어.”
“로드도 있고 피의 주인도 있는데….”
“그들은 오래전부터 나를 넘지 못했어. 이 세상에선 더욱 힘을 쓰지 못할 거고.”
“어떻게 장담하지?”
“여긴 그렇게 설계되었으니까.”
알 수 없는 얘길 하며 미소 짓는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거절하지.”
“그럴 줄 알았어.”
그녀가 웃었다.
“이제 죽어.”
그녀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괴물이 앞발을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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