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콰곽!
칼끝이 괴물의 눈동자를 찔렀다.
-키에에에에에에에!
괴물이 비명을 지르자 봇물 터지듯 공격이 박혀 들어갔는데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지 그저 히어로 영화를 감상하듯 강나은 경위는 입만 멍하니 벌리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 같아.’
세 사람의 조화는 완벽했다. 눈에 박힌 칼의 손잡이 부분을 도화지의 망치가 때렸다. 뇌까지 박힌 작은 칼은 괴물을 혼비백산하게 했고 아무리 강한 놈이라도 내부가 당하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화르르르륵!
불붙은 화살이 빈틈을 노리며 괴물의 배에 박혀 들었다. 괴물이 고통에 떨면서 몸을 까뒤집자 연약한 부분이 노출되었는데 그 틈을 노리고 화살이 파고든 것이다.
‘불이 어떻게 붙은 거지?’
보면서도 마술 같았다. 불화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윤일권도 옆에서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강나은 경위가 물었다.
“특수훈련을 받으면 다 저렇게 되나요?”
“불가능합니다.”
광수대 특성상 여러 직군의 사람을 만나봤지만 저런 움직임은 인간으로선 절대 할 수 없었다. 일단 점프력부터가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었다. 활은 든 사내가 훌쩍훌쩍 뛰는데 2미터 이상 쉽게 날아오르지 않나? 그렇게 몸을 띄운 채 쏜 화살이 백발백중 명중하는 것도 기가 막혔다.
어느새 괴물이 추욱 늘어졌다.
타닥, 탁, 탁.
배에 박힌 불화살이 괴물의 살점을 태우며 꺼져갔다. 강나은 경위와 윤일권이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건… 뭐죠?”
그녀의 질문에 민준이 대답했다.
“우리도 모릅니다. 이런 형태는 처음 본 거거든요.”
거짓말할 이유는 없었다.
김우태가 괴물의 눈에서 칼을 뽑아냈다. 그걸 인형에게 쥐여주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고작 이게 끝일 리 없는데?”
그의 말에 도화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 있어요. 냄새가 나요.”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걸까? 강나은 경위가 자신도 모르게 코를 벌름댔지만, 단백질 타는 냄새 말곤 전혀 찾지 못했다.
“고민할 필요 있어? 가다 보면 알게 되겠지.”
몸을 일으킨 김우태가 슬쩍 눈치를 보다가 윤일권에게 손짓했다.
“저랑 같이 가죠.”
“네? 저희요?”
“지금부턴 후방을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따라오세요.”
“아, 네.”
김우태가 먼저 두 사람과 출발하자 민준이 씨익 웃으며 재료 수집망을 꺼냈다.
“우태 형이 점점 더 능숙해지는 것 같은데요?”
도화지가 킥킥 웃었다.
“저번에 지력 올랐잖아.”
“아…. 그래서 그런가?”
“나도 요즘 공부하는 거 쉬워졌어. 그래도 하긴 싫지만.”
민준이 괴물을 저장했다.
『퀸의 군대를 수집했습니다.』
“역시 퀸이었어요. 이런 놈들을 얼마나 더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막지 않으면 큰일이 날 거예요.”
도화지가 저쪽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저 여자가 조력자라고 했잖아? 그러면 우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인가?”
“아마도요?”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전투를 꼭 몸으로만 하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정보라던지 아니면 경찰을 피해 다닐 수 있게…뭐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아…. 역시 민준인 똑똑해! 알았어. 상황보다가 내가 슬쩍 꼬셔볼게.”
“아직 완전히 믿을 순 없어요.”
“재능마켓이 그런 거라면 그런 거잖아. 미션이 틀린 적 있니?”
그 말도 맞다. 한때 민준은 재능마켓이란 시스템 자체가 혹시 ‘신’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도 반쯤은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가죠. 저쪽에서 냄새 나는 거죠?”
“응.”
“알겠어요.”
두 사람이 일행을 뒤쫓을 때 강나은이 김우태에게 꼬치꼬치 캐묻고 있었다.
“당신들은 아까 그 괴물?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것들에 익숙해 보이던데. 이 일을 얼마나 한 거죠?”
김우태가 찌릿, 노려보자 강나은이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도 저희의 사정을 이해해주셔야 해요. 그간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할머니라는 단어에 김우태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뭔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그런데 그건 강나은과 윤일권도 마찬가지였다. 보면 볼수록 이 할머니에겐 호감이 생기지 않았다. 악당 같진 않은데 괜히 싫은 사람이랄까?
“내가 알려줘야 할 의무도 없고, 나도 이 일 한 지 얼마 안 돼서 아는 것도 없어요.”
“그런 것치곤 너무 능숙하시던데요? 그리고 그거… 로봇인가요?”
인형이 혼자 움직이는 걸 똑똑히 봤다. 지금도 흥건하게 괴물의 피가 묻어 있는 걸 보니 소름이 끼쳤다.
“편할 대로 생각하세요. 난 대답할 의무 없으니까.”
“…협조 좀 해주세요. 사람들이 계속 죽고 있다고요.”
“나도 그걸 막으려고 이 고생을 하는 거예요. 이미 협조하고 있다고요. 우리 방식대로.”
윤일권이 나섰다.
“저희와 공조하시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경찰을 믿으라고요?”
“절대 여러분의 신상이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 민간인을 헤치거나 하진 않으셨죠?”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하마터면 ‘네’라고 대답할뻔했다. 그만큼 할머니가 풍기는 분위기는 굉장히 거북했는데 일단 대화를 텄으니 이 기회를 날릴 순 없는 윤일권이었다.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진 모르겠지만 여러분끼리 해결하시는 것보다는 공권력이 합쳐지면 훨씬 좋지 않겠습니까?”
김우태가 크크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두 사람이 흠칫 놀랐다. 이렇게 기분 나쁜 웃음이라니!
“당신들은 우리가 뭘 하는지 전혀 모를 거예요. 상상도 못 할 만큼 굉장하니까.”
아까 싸우는 것만 봐도 보통이 아니란 건 알겠다. 특히 이들이 무기를 다루는 방식은 기존의 통념을 아득히 벗어났다.
“아! 하나 알아두셔야 할 게 있는데요.”
두 사람의 귀가 쫑긋했다.
“놈들은 하나가 아닙니다. 적어도 셋이에요.”
“괴물이 셋이라고요?”
“아니, 아니. 이런 괴물을 조종하는 대가리가 셋이라고요.”
귀한 정보였다.
“세 조직이 있다는 겁니까?”
“조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제가 말씀드릴 건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은 그 셋과 연관이 있으니까 잘 찾아보세요.”
강나은 경위가 머릴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천천히 얼굴을 끄덕거렸다. 이제까지 풀리지 않던 실타래의 일부가 사르륵 머릿속에서 풀려가는 기분이었다.
“저, 할머니! 하나만 더요! 딱 하나만요!”
스윽 돌아보는 김우태의 눈빛이 참으로 꼴을 보기 싫었지만 강나은 경위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이들의 목적이 뭐죠?”
김우태가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잖아요.”
“네?”
“정복. 그것 말고 또 있겠어요?”
악당들이 항상 하는 말. 그게 이렇게 어색하게 들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
.
.
나는 김우태와 경찰들을 앞지르며 달려갔다. 도화지한텐 저들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여기선 전혀 쓸모가 없는 것도 사살이었다.
‘묘하게 이 모습이 더 익숙하네.’
고등학생보단 중년으로 갈수록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묘했다.
‘드링크를 더 많이 만들어둬야겠어.’
역시 드링크는 다다익선이다. 만들어두면 어떻게든 써먹는다.
‘아까 그 괴물….’
뇌가 빠르게 돌았다.
‘배가 약점이었어.’
눈 같은 부위는 어떤 생물이든 공통으로 약한 부위다. 그걸 노리기가 어려우니까 쉬운 곳을 타격해야 하고.
‘배까지 외피로 덮였다면 처리하기 까다로웠을 거야.’
그런 괴물이 더 있을까? 내가 불안한 건 아까 그놈이 완성형이 아니란 느낌이 들어서다.
‘퀸은 지네를 만들려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어. 그러니까 이번엔 더 조심할 거야.’
퀸이 정확히 뭔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정보를 종합해보면 피라미드에서 얻은 생체지식으로 곤충 같은 걸 진화시킬 수 있었다. 벌레도 그중에 하나였고 때론 인간을 이용해서 융합까지 하는 것 같았다.
‘왜 곤충일까?’
내가 퀸이 아닌 이상 정확한 답변을 도출할 순 없겠지만 여러 가정은 세울 수 있었다. 곤충은 번식이 빠르다. 게다가 곤충은 다른 동물과 달리 딱딱한 외피가 있다. 만약 개미가 코뿔소처럼 커진다면 코뿔소와 싸웠을 때 누가 이길까? 거미가 코끼리만 하면 코끼리와 싸웠을 때 누가 이길까?
‘막아야 돼.’
확실한 건 코끼리가 한 마리 태어날 때 개미는 수백, 수천 마리가 부화할 거란 거다.
‘어떻게 보면 퀸이 가장 위험할 수 있어.’
피의 주인인지 뭔지 하는 놈은 어차피 인간의 피에 기생하는 녀석이었다. 그러니 인간의 씨를 말릴 생각은 하지 않을 거다. 본래 기생충이란 건 숙주를 죽이지 않는다. 로드는 모르겠지만 퀸의 벌레는 공격성만 있었다.
도화지가 옆에서 외쳤다.
“저 앞이야! 지독해!”
“알았어요! 조심해요! 누나!”
“응! 너도!”
세 마리 강아지가 열심히 우릴 따라왔다. 좁은 길이 이어지다가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
“…으힉!”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멈췄다.
“…저거죠?”
“…그, 그런 것 같은데… 우리 그냥 돌아갈까?”
도화지가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저쪽을 보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산에서 곰을 만나도 물러서지 않을 그녀였지만 이런 종류엔 참으로 약했다.
이때 뒤에서 세 사람이 도착했다.
김우태가 저쪽을 보며 말했다.
“아, 쒸…. 바퀴벌레냐….”
그랬다. 저 아래, 바글바글한 것들은 크기가 사람보다 큰 바퀴벌레같이 생겼다. 그 수가 몇백은 됐다.
“이런…미친….”
윤일권이 허허,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태어나서 저렇게 큰 바퀴벌레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무더기로 있는 걸 보니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이미 강나은 경위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속을 진정시키고 있다.
“저것들, 날겠죠?”
“아마도?”
바퀴벌레가 일정 수준으로 커지면 비행을 한다. 지금은 우릴 발견하지 못해서 잠잠히 있는데 흥분하면 죄다 날아오를 것 같다.
“삼백 마린 넘겠는데요?”
전이었다면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광산에서 오크들을 상대했던 경험이 이렇게 우릴 무디게 만들었다.
“100포씩만 해도 저게 다 얼마냐.”
나는 주저 없이 드링크 하나를 꺼냈다.
“저놈들, 이빨이 있어요.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겠어요.”
바퀴벌레의 얼굴을 자세히 본 적은 없었지만 개량된 것 같았다. 거미처럼 어금니가 삐죽 튀어나온 게 보였다. 저것들이 사방에서 달라붙어 물면 참 끔찍할 것 같다.
윤일권이 총을 들고 말했다.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수가 너무 많아요.”
김우태가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지원요? 세스코라도 부르시게요?”
“….”
“저것들은 살충제를 들이부어도 안 죽을 겁니다.”
김우태의 말에 윤일권이 난감한 듯 말했다.
“그러면 어쩌죠?”
김우태가 나를 보며 웃었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죠.”
내가 팔을 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연기 조심하세요.”
“오케이!”
휘익!
드링크가 날았다. 그게 정확히 바퀴벌레들의 중심으로 날아갈 때 내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서 드링크를 깼다.
파삭!
이 순간!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불길이 사방을 집어삼켰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