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두 사람이 빠르게 걸어 민준 일행을 따라잡았다. 김우태가 벽의 흔적을 손으로 만지고 있었고 도화지는 코를 쉴새 없이 벌름거렸는데 강나은이 볼 때는 정상인으로 생각할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저 할머니, 보통 사람이 아니겠죠? 수상한 인형도 들고 있어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도화지는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 건장한 남자가 큰 망치 같은 걸 들고 있으니 누가 봐도 싸움 좀 하게 생겼다. 그런데 할머니는 무슨 역할을 하는 건지 프로파일러의 눈으로 봐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저 할머니가 대장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본래는 형장을 뛰진 않지만, 오늘은 직접 확인하려고 나왔을지도 모르잖아요. 혹은 자금을 댄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성인 남성들로 이뤄진 집단에서 할머니는 짐만 될 뿐일 건데요.”
“그렇겠죠. 이유가 있으니 왔을 겁니다. 어쨌든 저들을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건 큰 수확입니다.”
“할머니는 저도 의외였으니 CCTV를 봤다고 해도 놓쳤을 것 같은데 이상한 건 저 젊은 남자, 눈에 안 띌 수 없지 않나요? 활을 든 사람도 평범하게 생겼지만, 활 자체가 숨기기 어려운 물건이고요.”
“나가게 되면 CCTV를 다시 분석해봐야겠습니다. 그러면 뭐라도 나오겠죠.”
조금 멀리 떨어져서 민준 일행을 따라가며 대화하는 두 사람은 보면 볼수록 위화감을 감출 수 없었다.
“총기가 아니라 저런 구시대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요?”
“총을 쓰면 반드시 흔적이 남으니까요. 탄피에도 일련번호가 다 있어서 추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완벽하게 총과 탄을 무한대로 공급받을 수도 없고요.”
“아….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거군요.”
“저는 저들을 눈으로 보기 전엔 특수부대 출신이거나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습니다. 자경단에 더 가까울 것 같아요.”
“자경단이요?”
“나쁜 사람들 같진 않습니다. 그랬다면 우릴 구하지도 않았겠죠.”
“그러면 태창이 어떤 나쁜 일을 꾸미고 있고 그걸 포착한 저들이 태창과 싸우고 있다, 이 가정이 제일 신빙성 있겠군요?”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들 말고 다른 히트맨이 얼마나 더 있을까 하는 건데요. 저희가 발견한 족적이나 인상착의가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는데 할머니의 것은 아니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노인의 족적은 분명히 다르거든요.”
“저들 말고도 히트맨이 더 있을 거란 가정은 배제할 수 없겠어요. 더 붙읍시다. 이러다가 놓치겠습니다.”
두 사람이 서둘러 앞으로 뛰어가자 민준 일행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그런데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저 강아지들은 뭐죠?”
천방지축 강아지들은 주인이 통제하기 힘들다. 그런데 저 녀석들은 잘도 따라다녔다.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겠죠. 훈련이 아주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플래시를 비춰가면서 한참을 이동한 민준 일행은 어느 기점에서 멈춰 섰다. 그리곤 의논했다.
본랜 형이나 누나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그런 단어들은 뺐다.
“저 앞에 뭔가 있어요.”
“우리가 얼마나 왔지?”
“1KM 정도요.”
“꽤 멀리 온 것 같네.”
“서울 한복판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어이없지만, 놈들을 생각하면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여기, 생긴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어쩌지?”
“깨부숴야죠. 미션은 끝났지만 저 앞에 있는 걸 알면서 그냥 갈 순 없잖아요.”
“좋아. 근데 조심하자. 우리, 노출이 너무 됐어.”
도화지가 끼어들었다.
“냄새가 지독해.”
“얼마나 돼요?”
“모르겠어. 한 놈의 것인지 아니면 여러 놈이 같은 냄새를 풍기는 건지.”
민준이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놈은 아니에요. 아마 여긴 ‘그녀’의 소행일 것 같아요.”
“그런데 그놈들, 서로 편 먹고 그러진 않나?”
“저쪽에서 했던 일을 보면 아닌 것 같아요. 세력이 확실하잖아요.”
오크는 오크끼리, 뱀파이어는 뱀파이어끼리 집단을 이룬다. 타 종족을 노예로 삼을 순 있어도 절대 손잡는 일은 없었다.
도화지가 주먹을 부딪치며 말했다.
“뭐든 한주먹거리야! 쫄지 마! 우린 강하다고!”
“그래, 넌 오늘따라 몇 배는 더 세 보인다. 야.”
“호호호! 그래요? 호호호!”
강나은 경위가 가까이 오는 걸 보며 민준이 말했다.
“따라오는 것까지 이래라저래라할 생각은 없지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급할 때 우리가 도와주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거릴 두세요.”
윤일권이 물었다.
“저기, 뭐가 있는 겁니까?”
“우리도 몰라요. 가봐야 알게 되겠죠.”
거짓말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윤일권이 총을 뽑으며 고갤 끄덕였다. 강나은 경위가 민준에게 물었다.
“실험이 맞죠? 세상이 모르는 이상한 실험이 진행되는 거죠? 지난번에 한강에서 발견된 개구리 같은 거! 그것도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거죠?”
속사포처럼 쏘아내는 강나은을 보며 민준이 피식 웃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 총이 여러분을 지켜주진 못할 거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서지 마세요. 아시겠습니까?”
겁을 잔뜩 주는 민준을 보며 윤일권이 살짝 자존심 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대한민국 광수대 대장입니다.”
이제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경찰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럼 뭐하나, 거미 하나 어쩌지 못해서 산 채로 잡혔던 것을.
민준이 그 점을 지적해주었다.
“아까같이 허약한 게 기다리고 있진 않을 겁니다. 운이 좋으셨던 거예요. 보통 이런 괴물들은 먹이를 살려두는 법이 없으니까.”
먹이란 말에 윤일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민준은 더 할 말 없다는 듯 몸을 돌려 걸어갔고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강나은이 곧장 따라붙으려고 했지만 윤일권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잠깐만요. 저 사람들 말대로 합시다. 우리가 근처에 있다가 곤란한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습니다.”
“…알았어요.”
지금은 저들이 갑이었다. 괜히 거슬렸다가는 사라질지도 몰랐다.
윤일권이 천천히 걸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를 적대하진 않으니까 조금씩 친해지는 방향으로 가봅시다. 모든 열쇠는 저들이 쥐고 있어요. 태창도, 살인사건들도, 실종자들도 저들이라면 알고 있을 겁니다.”
“잠실에서의 일도요.”
“그렇습니다.”
긴장감이 엄습했다. 어두운 동굴을 계속해서 걷고 있으니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히트맨을 저 앞에 두고 돌아갈 순 없다. 몇 달을 추적했고 그간 기이한 사건을 목격했었다. 무엇보다 저들이 가는 길 끝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커다란 단서가 있을 것 같았다.
“….”
“….”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저 멀리 보이던 그들의 형체가 갑자기 훅! 사라졌다. 앞으로 뛰어간 거다.
“뛰어요!”
윤일권도 급히 속도를 높였다. 강나은 경위는 침을 꿀꺽 삼키며 저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뭐지? 뭔데 이런 소리가 나?’
오래전 SF영화라고 해야 하나 그걸 공포영화라고 불러야 하나? 외계의 괴물이 우주선의 인간들을 공격하는 걸 어릴 때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괴물이 등장할 때 저런 소리가 났었던 것 같다.
‘소름끼쳐!’
우리는 어려서부터 각종 동물의 울음소릴 듣고 자라왔다. 일정 수준이 되지 않으면 개미나 거미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생물의 크기는 우리의 상식과 비례한다. 그런데 지금 들리는 소음은 너무도 낯선 것이라서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나 피할 순 없었다.
“저기예요! 저기! 맙소사! 저게 뭡니까!”
저 앞의 윤일권이 플래시를 비추며 입을 떡 벌리고 서 있었다. 강나은 경위도 빠르게 달려가서 보았다.
“허억…. 저, 저…?”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민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이놈! 외피가 딱딱해요! 관절을 노려보세요!”
김우태가 대답했다.
“오케이! 약점을 찾자!”
“아! 뭐가 이렇게 단단해? 이게 말이 돼?”
도화지가 망치로 놈을 때려봤지만, 민준의 화살조차 박히지 않는 단단한 외피는 물리법칙을 넘어섰다.
“지네? 사마귀? 아니, 둘을 합친 건가?”
몸통은 수많은 다리가 달렸고 길다. 그런데 대가리 부분엔 낫처럼 길쭉한 앞다리 두 개가 있었고 그게 어금니가 변한 건지 아니면 팔처럼 쓰는 건진 몰라도 무척 위협적이었다.
핑! 핑핑핑!
화살이 계속해서 날아갔다. 괴물은 필사적으로 세 사람을 공격했지만 가벼운 상처는 김우태가 커버했고 도화지와 민준은 괴물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며 계속해서 허점을 찾고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빠르죠?”
강나은 경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할머니다. 두뇌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저 위험한 곳에 직접 뛰어들어서 싸우고 있지 않나?
윤일권이 말했다.
“더 놀라운 건 저 화살입니다.”
“네?”
“화살이 회전하고 있어요. 자세히 보세요. 총도 아닌데 화살이 저렇게 회전하는 게 말이 됩니까?”
활이란 무기는 시위의 힘으로 화살을 밀어내는 원리다. 한데 저 화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릴처럼 회전하며 목표를 파고들었다. 엄청난 관통력에 더해서 저거에 맞으면 갈가리 찢길 것이다.
“활에 특별한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요.”
그간 경험했던 흔적들 중에서 콘크리트를 파고들었던 화살의 흔적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저렇게 강한 화살을 쏘는데 콘크리트라고 버틸까?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군요.”
저 건장하고 젊은 남자는 두 손으로 큰 망치를 휘둘렀다. 저기 맞으면 사람 두개골은 단박에 박살 날 것 같았다.
그래…. 여기까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자. 훈련을 했다면 망치도 휘두르고 활도 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가장 어처구니없는 건 저렇게 강력한 무기로 공격하는데도 타격을 입지 않는 저 괴물이 무엇이냐는 거다.
“확실히 태창에서 생체병기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저런 게 풀린다고 생각해보세요. 누가 막겠습니까? 무엇보다 저거, 곤충이 베이스입니다. 곤충이 특징이라고 한다면 번식력 아닙니까? 현대화기를 만들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지만….”
“저 괴물은 그냥 풀어두면 늘어나겠네요?”
윤일권이 주변을 둘러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동굴,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한 공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저런 것들이 엄청나게 많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잖아요!”
“이거, 생각보다 일이 클지도 모르겠어요. 단순히 실험이나 하겠거니 했는데 저런 괴물이 만 마리…. 아니, 천마리만 있어도 국가전복까지 가능할 겁니다. 서울 도심에 풀어놓는다고 생각하면 도시가 하루아침에 마비될 겁니다.”
이때였다.
빠아아악-!
도화지의 망치가 괴물의 이마를 정확하게 때렸다.
“좋았어! 치명타 들어갔다!”
괴물이 휘청거렸다. 그런데 이 순간, 윤일권과 강나은 경위의 상식으론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할머니가 들고 있던 인형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괴물의 몸을 기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섬뜩한 칼을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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