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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208화 (208/277)

#208화

UFC 선수처럼 우람한 근육질의 몸과 큰 키, 심지어 얼굴엔 수염까지 덥수룩한 모습으로 변한 도화지는 목소리도 괄괄했다.

“….”

“….”

우린 그런 그녀를 보다가 푸웃! 웃는 도화지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얼굴을 돌렸다가 흠칫했다.

“왜 그러는데?”

김우태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아하하하! 오빠 맞아요?”

“뭐야? 이 주름은?”

김우태가 자신의 손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듯 말할 때 나도 궁금증이 생겼다.

“저는 어떻게 보여요?”

“넌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러게, 민준이 넌 봐줄 만해!”

평범한 30대 회사원으로 보인단다. 입고 있던 옷까지 싹 변할 줄이야, 이 드링크 효과 확실한데?

“그만 웃고 하던 일, 마저 하죠.”

김우태와 도화지가 서로를 놀리며 깔깔거리는 걸 보고 내가 고치에서 사람들을 꺼냈다.

“으으으음….”

고치에서 나온 여자가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이 여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금세 잊고 계속해서 움직일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누, 누구….”

“정신이 들어요?”

“…네.”

“어떻게 된 거죠?”

김우태의 질문에 여자는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썼다.

“거미가…으음….”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흐읍,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자기가 저 고치 안에서 나왔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김우태가 말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왜 여기에 계신 거죠?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을 텐데….”

할머니라는 말에 김우태가 움찔했지만, 곧 넉살 좋게 허허허! 웃었다.

“오다가다 들렀어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네…. 다른 분들은 괜찮으신가요?”

“겉보기엔 그런 것 같은데 깨어나 봐야 알겠죠.”

혼란을 벗어난 여자가 우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조금씩 또렷해지는 그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마지막이에요!”

도화지가 모든 고치를 다 확인하며 외쳤는데 김우태가 말했다.

“놈들이 다시 올지도 몰라. 긴장 풀지 마!”

“알아요!”

우리 셋이 사람들을 다 옮길 순 없었기에 이들이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냥 두고 갔다가 또 거미 밥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어서 잠시 기력을 차릴 동안 곁에 있어야 했다.

“…웬 강아지들이….”

여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는데 김우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놈들하고 산책하던 길에 비명이 들려서 우연히 들어와 본 거예요.”

할머니와 근육질의 젊은이, 그리고 나는 평범한 30대 남자로 보였다. 이 셋의 조합이 썩 어울리는 건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이때 나는 그녀를 기억해냈다.

‘그때 그 뒷골목에서….’

나를 따라오던 경찰이었다. 예원이 회식 자리로 합류하면서 위기를 모면했던 적이 있었다.

‘외형변경 했으니까 괜찮겠지.’

이때 저쪽 벽에서 스윽, 무언가가 움직였다. 그걸 김우태도 본 것 같았다.

“제가 처리할게요.”

내가 활을 꺼내 겨눴다. 거미 한 마리가 우물쭈물하고 있었는데 괴물은 발견했을 때 무조건 처리해둬야 했다.

쌔애애액!

화살이 날아가서 거미의 몸통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키애애애액!

몸통을 관통한 화살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버둥대던 거미가 곧 축 늘어졌다.

-으으음, 어떻게 된 거지?

-히이이익! 싫어! 저리 가!

-이봐! 나야! 정신 차려!

사람들이 깨어났다. 몇 사람은 아직도 못 일어났는데 그런 이들을 다른 사람이 부축했다. 거미에게 습격당했던 당시의 기억이 충격적이었는지 사람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우리를 힐끔거렸는데 하긴…. 내가 봐도 수상하겠다.

여자가 내게 걸어왔다.

“강나은 경위입니다. 저분들은 광수대 대원들이고요. 우선 구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 네. 별말씀을…. 위험하니까 움직이실 수 있으면 빨리 나가시죠.”

강나은 경위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들었다.

“그 활, 당신 건가요?”

“…왜요?”

“…실례지만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나요?”

“모르는 게 좋으실 겁니다.”

물에 빠진 거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반응은 참을 수 없었다. 미션이니까 상대하고 있었지만 나도 그녀가 불편했다.

“저 할머니께서는 당신들이 산책하러 나왔다고 했지만, 이 구역은 통제되고 있어요. 어떻게 들어왔죠?”

“제가 말해야 할 의무라도 있습니까?”

내 목소리가 뾰족하게 들렸나?

“…죄송해요. 구해주셨는데…. 하지만 저희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그래요. 호주 같은 곳엔 큰 거미가 있다고 들었지만, 저거는…말이 안 되잖아요.”

조력자라…. 그녀가 어떻게 우리를 조력하게 된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관계를 나쁘게 할 필욘 없었다. 나는 팔짱을 끼면서 주변을 보았다. 사람들이 다 움직이려면 10여 분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뛰듯 걸어왔다.

“히, 히트맨!”

뭐냐 그건.

“흐읍….”

그가 나를 귀신 보듯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는데 강나은 경위가 말했다.

“이분은 광수대 윤일권 대장이세요.”

“아, 그러시군요.”

윤일권은 꿈꾸는 사람처럼 멍하니 나를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당신! 태창 바이오와 무슨 관계입니까?”

“…괜히 구해드렸나요? 그냥 갈 걸 그랬습니다.”

내 차가운 반응에 윤일권이 끄응, 앓는 소릴 냈다. 이들이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막 죽다 살아난 마당에 우릴 어쩔 순 없었고 지금도 거미가 얼쩡거리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내가 너무 흥분했군요.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처음 보는 거지만 왠지 참 익숙하군요.”

이 반응을 보면 나를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긴 그렇게 난리를 치고 다녔는데 모를 수가 있나.

“심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의 정보라도 주신다면 우리나라 국민을 위해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그, 거미…. 태창에서 어떤 실험을 하는 게 맞지요? 당신들은 그걸 막으려는 것이고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저쪽에서 도화지가 외쳤다.

“여기 뭐가 있어!”

내가 강나은에게 고갤 조금 숙이며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도화지 쪽으로 뛰어가자 강나은과 윤일권도 주춤거리며 따라왔다.

“뭔데요?”

“여기 봐.”

구석에 이상한 게 쓰러져 있었다. 먹다 남은 빵 조각처럼 몸의 일부가 깨끗하게 사라진 상태였고 죽은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뭐같아?”

“사람의 일부인 것 같긴 한데…이상한데요?”

“그렇지?”

마치 뭐로 변하기 직전에 죽은 것 같았다. 팔다리는 곤충처럼 얇게 변했지만, 몸은 사람의 그것과 흡사했다. 가슴부터 위쪽으로 상체는 전혀 없었다.

“뭐가 이렇게 했을까? 꼭 콱! 깨물린 것 같지 않아?”

내가 쪼그려 앉으며 시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도화지의 말처럼 거대한 무언가가 한입에 깨문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엄청나게 커야 하고 아가리 힘도 악어의 몇 배는 되어야 하지 않나?

‘아니야. 형태를 짐작하는 건 의미 없어. 그레이트 윔 같은 것들도 있으니까.’

지렁이처럼 몸은 얇은데 입만 무식하게 큰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게 뭐든 여기에 있었다는 건 확실하고 이 시체는 그것에 당했다.

“어떡하지?”

“찾아야죠.”

“알겠어. 내가 저쪽으로 가볼게.”

“조심하세요.”

“응!”

도화지가 움직이자 강나은 경위가 내게 물었다.

“당신들…뭐 하는 거죠?”

“…산책합니다.”

“장난하지 마시고요.”

그럼 뭐라고 설명하나?

내가 씁쓸하게 웃으며 일어나자 윤일권이 말했다.

“잠실에도 있었죠?”

“몰라요. 저는.”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이 죽었어요.”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여기도 사람이 죽어 있네요.”

“…희생자가 더 생기지 않게 놈들을 막아야 합니다.”

“하고 있잖아요. 지금. 그러니까 기운 차리셨으면 어서 나가세요.”

윤일권이 이마를 찡그렸다.

“나가라고요? 우리가?”

“그러면요? 또 놈들에게 잡혀서 죽기만 기다릴 겁니까? 다음번엔 도와드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린 경찰입니다.”

“그래서요? 그 총이 도움이 되던가요?”

“…아까는 경황이 없었어서….”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막아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하지만…!”

윤일권이 뭐라고 더 말하려는데 강나은 경위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러더니 얼굴을 흔들며 만류하다가 나를 보았다.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 나가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요. 우리도 시민의 안전을 위해 수사해야 해요.”

나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렸다. 말이 길어질수록 우리만 노출할 것 같았다.

김우태에게 걸어가서 물었다.

“된 거 같죠?”

“어, 저건 뭐였어?”

“모르겠어요. 근데 거미 같은 거 말고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긴 해요.”

“보스냐?”

“알아봐야죠.”

“오케이! 가자!”

“누나가 먼저 이동했어요. 그쪽에서부터 시작해봐요.”

이 동굴이 얼마나 길고 넓을지 모르기에 흩어지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애들은 다 어디 갔어?”

“나까 누나 따라갔어요.”

“하, 이놈들 빨빨거리고 잘도 다니네.”

우린 빠른 걸음으로 도화지를 따라 움직였다. 나를 보는 강나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일부러 무시했다.

조력자라…. 그녀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구했다.

.

.

.

강나은 경위는 팀장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다른 대원들에게 부탁해서 모두 지상으로 옮기라고 했다. 기진맥진한 대원들은 한강에 빠졌다가 겨우 나온 사람들처럼 힘겨워했는데 그녀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불길이 치밀어올랐다. 강력한 호기심이 육체마저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윤일권이 그녀에게 말했다.

“히트맨입니다. 확실해요!”

“알아요. 하지만 그들을 자극할 필욘 없잖아요.”

프로파일러답게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그녀가 말했다.

“대원들을 내보내고 지원요청 해서 병력을 모은 다음 제대로 수색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요?”

그녀가 씨익 웃었다.

“따라가야죠. 하지만 절대 그들을 적대해서는 안 돼요. 우릴 경계하는 거 보셨죠?”

윤일권이 흥분한 얼굴로 끄덕거렸다.

“그, 활. 틀림없습니다. 할머니가 계신 건 의외지만 그 젊은 사람도 피치컬이 장난 아니었어요.”

“그래요. 그가 든 망치는 제가 들지도 못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경위님, 강아지들은 왜 데리고 다니는 걸까요?”

“위장이겠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물에 관대하잖아요.”

“하긴…. 그렇겠군요.”

그 강아지들이 얼마나 강력한 생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머리를 모으며 계속 의견을 나눴다.

“우리가 여길 발견하자마자 저들도 왔습니다. 우리 정보가 샌 게 아니라면 저들도 태창을 추적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죠.”

“체포하실 건가요?”

“무슨 죄로요?”

“그러면 다행이고요.”

강나은이 한숨 돌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거든요. 그 사람들, 분위기가 굉장히 이상했어요. 큰 거미도 쉽게 죽이고 시체를 보면서도 놀라지 않았고요.”

“익숙하다는 뜻일 겁니다.”

강나은이 저쪽을 보면서 말했다.

“가요. 팀장님께서 의식이 없으시니까 우리 둘이서라도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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