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민준아! 그쪽으로 간다!”
“예압!”
『쿤드라의 오크 마법사를 사냥했습니다.』
『300P를 얻었습니다.』
도망치던 마법사가 등에 화살을 맞고 고꾸라졌다. 300포인트짜리 귀한 녀석이었는데 일꾼 오크보다는 강했고 귀찮은 마법도 부렸지만, 방어력이 형편없었다.
“안쪽으로!”
“형 먼저 가세요!”
광산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김우태가 먼저 뛰어들었고 도화지가 뒤를 따랐다. 나는 뒤를 바라보았다.
‘신났네. 신났어.’
가이는 깡패나 다름없었다. 오크로는 죽어도 저 녀석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미 몇 번이나 겪어보았으면서도 계속해서 병력을 보내는 오크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아, 그러니까 오크인가?
어쨌든 밖은 녀석들에게 맡겨두면 될 것 같았다.
나도 일행을 따라 광산으로 들어가는데 느닷없이 메시지가 떠올랐다.
『돌발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
『곧 난입 미션이 시작합니다. 준비하세요.』
『미션을 위해 이동합니다. 10분 남았습니다.』
『9분 59초 남았습니다.』
‘이게 뭔…?’
난입 미션?
내가 멈춰서서 얼떨떨해하고 있는데 김우태가 서둘러 달려왔다.
“뭐야?”
“몰라요! 강제로 시작하는 것 같은데!”
“빨리 나가자! 애들 모아야 돼!”
“알았어요!”
지금까지의 경험상 난입 미션이라고 하면 괴물의 코앞에 떨어진다. 재능마켓으로 넘어오는 몬스터도 그러했고 우리가 만났던 피의 주인도 서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긴급 미션이기에 완료하면 매우 특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션을 위한 준비 시간이 6분 11초 남았습니다.』
광산 속 오크를 정리하려던 차에 등장한 미션 때문에 우린 혼비백산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으미! 또 뭐야! 환장하겠네!”
“오빠! 아리 잡아 와요!”
훨훨 날아서 하늘 높이 솟구친 아리가 까마득하게 보였다. 나는 범이를, 도화지는 가이를 데리러 갔다.
‘피의 주인에게 가는 건가?’
한동안 잠잠했었는데!
‘그때와는 달라.’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보다 우리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무기도 성장했고 우리 역시 오크와 싸우며 실전 경험을 늘렸다. 부산물로 만든 드링크도 넉넉했고 소소한 아이템도 다량 확보했었다.
“됐어! 하아, 하아! 얼마나 남았지?”
“2분이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긴장을 풀어보려고 했다.
“어떻게 될 것 같아?”
김우태의 말에 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았지만 가보기 전까진 전혀 모른다. 재능마켓의 미션은 늘 우리가 예상하던 것보다 위에 있었다.
“혹시 쿤드라로 가나?”
그럴 수도 있다. 오크를 이만큼 잡아댔으니 다음 단계로 진행시킬 수도 있었다.
“아오! 한참 재미 보고 있었는데!”
전사나 마법사 오크를 사냥하면 300포인트. 1천 마리면 무려 30만 포인트였다. 우리만으론 한세월 걸리겠지만 가이나 아리의 전투력은 1만 마리가 있다고 해도 다 밟아 죽일 거다.
“내 돈! 크으윽!”
광산 입구에서 슬금슬금 나오는 오크를 보며 김우태가 치를 떨었다. 한 마리에 생수 30병이니까 그걸 쉐이크로 만들어서 팔면….
“집중하세요! 넘어갑니다!”
“오케이! 얘들아! 형아 올 때까지 딱 기다려라!”
김우태가 오크들에게 손을 흔들 때 우리 앞에 균열이 발생했다.
『입장하세요. 지체할수록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페널티? 절대 안 되지!
나는 활을 들고 곧장 뛰어들었다. 언제나처럼 풍경이 거짓말처럼 바뀌었다.
『미션! 조력자를 구출하세요.』
‘조력자?’
일단 어두웠기에 불을 비췄다. 모두 휴대용 플래시가 있었기에 곧 주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굴인가?”
“그런 것 같아요.”
최소한 적의 코앞에 떨어지진 않을 것 같았는데 김우태가 말했다.
“어느 쪽? 화지야, 냄새나냐?”
“냄새는 사방에서 다나요. 뒤엉켜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예요.”
“그럼 아무 방향으로나 가도 된다는 얘기네. 이리로 가자.”
김우태가 성큼 나서자 우린 그 뒤를 따랐다. 고민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이런 지형이면 가이와 아리가 힘을 못 쓰는데.’
동굴은 높이와 폭이 어른 하나가 지날 수 있을 정도였다. 범이조차 본체로 변하면 마음껏 뛸 수 없을 것이다.
‘하층일까?’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이곳이 어딘지 확인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이 흐르는지 보면 되는 거다.
“터지진 않는데 폰이 작동해요!”
이 뜻은 이 동굴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어딘가라는 뜻이었다.
“허얼!”
김우태도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다들 조심하자.”
도화지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물었다.
“조력자가 누굴까요? 우리한테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민준아, 너는 뭐 아는 거 있어?”
“없어요. 우리 말고는.”
나와 연관된 두 사람이 재능마켓에 합류한 이후론 딱히 교류했던 일반인은 없었다.
김우태가 속도를 높였다.
“구하라고 했으니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서두르자. 가보면 알겠지.”
뛰다시피 10여 분을 이동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동굴은 끝이 없을 것 같았는데 도화지가 말했다.
“이거, 전에도 본 것 같지 않니?”
나도 아까부터 그 생각을 했었다. 홍대 기숙사 지하. 거기도 이렇게 생겼더랬다.
‘퀸인가?’
피의 주인에 이어 퀸의 등장이라면 집중력을 더 끌어올려야 했다.
‘잔챙이들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절대자들과 부딪히고 있어. 방심하다간 죽을 거야.’
피의 주인을 만났었는데 퀸이라고 마주하지 말란 법이 없었다. 오크나 잡으면서 좋을 세월 보내고 있었는데 평화는 이렇게 갑자기 끝났다.
“저기!”
김우태가 버럭 외쳤다.
“봤어요!”
새애애애애액!
내 손을 떠난 화살이 곧장 앞으로 날아갔다. 7미터 앞에서 얼쩡거리던 뭔가가 화살을 맞더니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뭐였지?’
멀고 어두워서 자세히 볼 수 없었는데 도화지가 두 손으로 망치를 쥐고 뛰어갔다. 전이었다면 위험하다고 말렸겠지만, 오크와 싸우면서 도화지는 강력한 방어력을 생생하게 확인했기에 우리 중에서 탱커를 해야 한다면 그녀가 적격이었다.
“꺄아!”
“왜요?”
그런데 기세 좋게 뛰어갔던 도화지는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다.
“징그러워!”
“….”
나는 그녀를 지나치며 저쪽을 봤다. 나만큼 큰 거미가 화살에 맞아 배를 질질 끌며 도주하고 있었다.
‘저거, 어디서 본….’
아, 기억났다. 피라미드!
크기는 작았지만 그때 본 녀석이랑 똑같이 생겼다.
슈욱!
날아간 화살이 녀석의 꽁무니부터 가로로 파고들었다.
-끼르르르륵!
내부가 뒤집혔는지 거미가 축 늘어졌다.
『퀸의 아이를 사냥했습니다.』
『200P를 얻었습니다.』
역시! 퀸!
“퀸이 근처에 있을지도 몰라요! 조심하세요! 누나, 수상한 냄새 나면 바로 알려줘요!”
“응!”
내가 앞장서서 뛰었다.
‘또 지네 같은 걸 만들려고 하는 건가?’
속도를 더 높였다. 쿤드라의 오크도 그렇게 많은데 퀸이 작정하고 부하를 만들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 시내에 폭탄 하나만 떨어져도 도시가 마비될 것인데 퀸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약하지 않을 것이다.
뛰다 보니 공간감이 넓어졌다. 그러다가 확! 확장된 시야는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담았다.
‘다섯 마리?’
낯선 곳에 진입하면 먼저 적을 살펴야 했다. 나머지는 그다음이다.
‘많지 않아.’
거미가 벽 곳곳에 붙어 있었다. 피라미드의 때보다 훨씬 작아서 두렵진 않았다.
‘처리부터!’
원거리의 적을 상대할 때 활만 한 무기도 없었다. 놈들도 나를 발견했는지 다리를 바르르 떨었는데 이미 이때 한발의 화살이 가장 가까운 녀석의 얼굴로 날아가고 있었다.
수르르르르륵!
화살은 강력한 회전을 하고 있기에 철판도 뚫을 수 있었다. 스쳐도 가죽 정돈 갈가리 찢어버렸다.
콰과곽!
머리에 정통으로 화살을 맞은 거미가 추락했다.
-키에에에에엑!
다른 거미들이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 성장하면 저것보다 훨씬 단단한 외피를 지니고 끈적한 거미줄을 쏘아내겠지만 아직은 어른 것들이었다.
“민준아! 이건가 봐!”
도화지가 저쪽 벽에 나란히 붙어 있는 하얀색 꼬치를 보고 외쳤다.
“딱딱해!”
그 수가 30개가 넘었는데 배추흰나비알같이 가지런했다.
“내가 해볼게.”
김우태가 인형을 고치에 올렸다. 그러자 인형이 칼을 섬뜩하게 들더니 꼬치 외부를 찢었다.
“…얘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네.”
도화지의 말에 김우태가 큭큭 웃었다.
“친해지라고 하루 빌려줄까? 잠도 자고 밥도 먹고 하다 보면….”
“됐거든요?”
끔찍하다는 듯 고갤 돌려버리는 도화지를 보다가 김우태가 잘린 단면에 손을 넣었다. 그리곤 양쪽으로 힘껏 젖혔다.
쩌어어어억.
“허엇? 사람이다! 사람이 들어있어!”
그의 말에 도화지가 입을 떡 벌리고 옆을 보았다.
“이게 다…사람이라고?”
고치에서 꺼낸 사람은 의식이 없었다. 축 늘어져 있었지만 숨은 쉬었고 온몸엔 질척한 액체가 묻어 있었다.
“빨리하자!”
김우태가 인형으로 고치를 찢으면 우리가 그 틈을 벌려 사람을 꺼내 내기 시작했다.
“눠뒀다가 먹으려던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어린 거미들의 식량으로 쓸 수도 있었겠지만, 왠지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뭔진 몰라도 그 전에 발견했다는 게 다행이었다.
“퀸이 오기 전에 다 구하고 나가야 해요!”
“오케이!”
김우태가 더 빨리 움직였다. 순식간에 10여 명의 사람이 고치 밖으로 나왔다.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었는데 손에 총을 든 사람도 있었다.
“경찰인가보다!”
이런 동굴이 있다는 신고가 있었다면 가장 먼저 경찰이 진입했을 거다.
“여기! 여자도 있어!”
도화지가 고치에서 어떤 여자를 발견했을 때 메시지가 떴다.
『조력자를 발견했습니다.』
『조력자를 구출해 안전 구역으로 이동하세요.』
“으으음….”
여자가 신음할 때 도화지가 말했다.
“이 사람인가 봐!”
“누나가 돌봐드리고 있어요! 우린 다른 사람들 마저 구할게요!”
“응!”
도화지가 조력자를 바닥에 눕히고 가방에서 생수를 꺼냈다. 억지로라도 조금 생수를 먹이면 기력을 금세 회복할 것이다.
‘아차.’
나는 순간적으로 가방을 내려놓고 드링크 3개를 꺼냈다. 아무리 조력자라지만 우리 정체를 발각되면 안 된다.
“형! 누나! 이것부터 마셔요! 범아, 아리야! 너희들도 어서!”
전에 썼던 유니크 등급의 변신 드링크보다는 효과가 떨어지지만, 최근에 만든 드링크는 이럴 때 요긴하게 쓸 것이어서 챙겨뒀다.
『외형변경 드링크(레어): 24시간 동안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단, 대상의 능력을 카피할 순 없으며 외형도 무작위로 바뀐다. 중복으로 복용해도 지속 시간 동안엔 모습이 바뀌지 않는다.』
“범아, 어서.”
드링크를 받아먹는 건 워낙 익숙한 녀석들이었다.
할짝.
혀로 입가의 드링크를 닦아내는 범이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갔다.
“헤에, 귀여워!”
원래도 그랬지만 범이가 강아지로 변했는데 꼬리를 살랑거리는 백구의 모습에 도화지가 냉큼 안아 들었다. 이어 아리와 가이도 드링크를 마셨다. 홍구와 흑구로 변한 녀석들은 삼 형제 같았는데 자기들도 신기한 듯 서로를 깨물며 뒹굴었다.
“이제 우리 차례에요!”
“나부터 마실게!”
도화지가 재미있다는 듯 드링크를 마셨다.
“….”
“….”
우린 그녀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흐읍….”
그녀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쥐었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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