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깽판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일 거다.
“오오오! 내 포인트들! 또 충전됐네!”
김우태가 광산을 보면서 낄낄 웃었다. 우린 하루가 멀다고 오크를 탈탈 털고 있었는데 불끈 쉐이트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하루 3천 잔이 다 팔려나갔다.
“약한 놈들이라고 방심하지 마요.”
“내가 언제 방심했다고 그래.”
“어제도 엉덩이에 화살 맞았잖아요.”
“아, 그건 뭐 싸우다 보면 그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는 거잖냐.”
김우태가 힐러였으니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일반인이었다면 평생 절뚝거리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광산이 내려 보이는 야산에서,
“그럼 가볼까?”
김우태가 나서려는데 도화지가 말했다.
“잠깐만요. 쟤들 냄새가 달라요.”
“오옹?”
얼마 전에도 꽤 강한 놈들이 한 천마리 왔었다. 그 열 배가 온다고 해도 가이나 아리가 날뛰면 답이 없겠지만 일반 오크와는 확실히 다를 만큼 무기를 잘 다뤘다. 그래봐야 도화지의 몸엔 흠집도 못 내긴 했지만.
“더 센 놈들이야? 오호라! 포인트 대박 터지겠구나!”
일반 오크가 100포인트면 엊그제 오크들은 200포인트를 줬다. 그걸 1,000마리나 잡았느니 로또 맞은 것처럼 포인트를 벌었는데 오늘 그보다 많이 번다면 당분간 포인트 걱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하던 아이템을 재능마켓에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가만. 근데 계속 이러다가 쟤들이 더는 애들 안 보내면 우린 포인트 어떻게 버냐?”
이 광산이 중요하긴 한 건지 오크들은 끊임없이 왔다. 내가 저놈들이라면 아리나 가이를 본 순간 이쪽은 얼씬도 안 할 텐데 오크들은 계속 나타났다.
“그땐 쿤드라인지 뭔지를 쳐야죠.”
“음…. 그건 좀 아까운데. 자고로 황금알을 계속 얻으려면 거위의 배를 가르면 안 된다고 했거든.”
저 많은 오크를 앞에 두고서 이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파티는 강해졌다. 특히 우리 옆의 귀여운 동물들은 본체로 변하면 지상 최강의 생명체들이 된다.
“누나, 괜찮아요?”
“으, 응.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자. 기분 나쁜 냄새가 섞여 있어.”
“알겠어요.”
김우태가 물었다.
“작전은 전처럼 동일하게?”
“넵!”
작전이라고 해봐야 거창한 건 없었다. 아리와 가이가 날뛰면 우린 주변 정리를 한다. 그러다 보면 다 도망가고 없었다.
“가자!”
김우태의 말에 가이가 즐거운 듯 가슴을 치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
.
.
서울숲.
몇몇 구역을 제외하면 24시간 개방되는 서울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도심 한복판의 쉼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전체가 폐쇄됐다. 전례 없는 일에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깁니다.”
광수대 대원들도 모두 와 있었고 강나은 경위와 팀장도 급히 불려왔다.
수도박물관.
“성분은 분석했습니까?”
“막 국과수에 보냈습니다.”
팀장과 윤일권은 핏물처럼 빨갛게 변한 물을 보면서 신음했다.
“관리인 두 명이 실종되었다고요?”
팀장의 질문에 윤일권이 끄덕거렸다.
“신고가 들어온 직후 실종자들의 집을 탐문 해봤지만 귀가한 흔적이 없습니다. 핸드폰 신호도 여기에서 끊어졌고요.”
“하….”
윤일권이 일어났다.
“근데 보셔야 할 건 이거 하나가 아닙니다.”
윤일권을 따라 팀장과 강나은 경위가 움직였다. 사슴 방사장으로 향하는 길. 강나은 경위가 물었다.
“공원 전체를 폐쇄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윤일권이 씁쓸하게 웃었다.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방사장까지의 거리가 꽤 되었기에 강나은이 계속 질문했다.
“현재까지 새로운 소식은 없는 거죠? 히트맨이라든지 태창쪽이요.”
“없습니다. 잠실에서의 일과 태창 본사의 주변 cctv도 계속 보고 있는데 전혀 없어요.”
“철두철미한 놈들이네요. 그렇게 완벽하게 감추기 힘들었을 텐데. 아무래도 저희 예상처럼 조력자가 있는 것 같아요.”
강나은의 말에 윤일권은 숨을 푹 내쉬었다.
“더는 언론을 막기도 힘듭니다. 잠실에서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어요. 우리 대원들이야…어떻게든 하고 있는데 태창 소속 직원들이 어렵습니다. 유가족들도 난리에요.”
“이번 일이 엮이면 큰일이겠는데요?”
“저도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하지만 사슴 방사장에 도착하는 순간 강나은 경의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저게 뭡니까?”
팀장의 질문에 윤일권이 자기도 어이 없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사슴입니다.”
“아니, 저게 어떻게 사슴입니까? 피폭이라도 된 겁니까?”
마취제를 대량으로 투여해서 비틀거리며 걷는 사슴은 본래의 크기보다도 더 커졌고 눈은 충혈되어있었는데 털이 모두 벗겨져서 끔찍한 형상이었다. 꼭 화상을 입은 것 같달까?
“저놈들이 공격하는 바람에 관리사 네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모르죠…. 환경 단체가 알면 그들 시선으로 해석할 거고 우리가 보면 저건….”
“아까 그 수도박물관의 물과 관련이 있을 거고요.”
“이쪽으로 오시면 제가 왜 두 분을 급히 모셨는지 아실 겁니다.”
윤인권을 따라가자 방사장 안쪽으로 기괴한 것들이 보였다.
“아, 저건?”
“익숙하시죠?”
홍대 기숙사 지하에서 본 그 혈관 같은 수상한 물체가 있었다. 거미줄처럼 구불구불한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정확히 말하면 움직임이 있는 게 아니라 박동하는 것 같았다.
“저게 사슴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아….”
강나은이 입을 떡 벌리다가 물었다.
“혹시 태창의 연구와 관계가 있을까요?”
“그것까진 알 수 없습니다.”
“신약을 개발 중이라던데요!”
“그랬다면 이렇게 드러난 장소에서 하진 않았을 겁니다. 은밀하게 연구소 한에서 했겠죠.”
그도 그렇다.
“따라오십시오.”
윤일권이 더 안쪽으로 이동했다. 사슴들의 먹이통을 지나자 관리사들이 사용하는 창고 같은 게 보였다.
그곳에선 광수대 대원들이 작업을 한창 하고 있었다.
“만일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전처럼 이 아래에 지하공간이 있고 거기에서 뭐가 튀어나오면 시민들이 위험해질 겁니다.”
“아….”
이해했다는 듯 강나은 경위가 고갤 끄덕일 때 광수대 대원이 윤일권에게 다가와 물었다.
“준비됐습니다.”
“가지.”
세 사람이 다가서자 대원들이 삽과 망치를 이용해 바닥을 파냈다.
“….”
“….”
미묘한 긴장감이 엄습했고 숨죽여 작업을 보고 있을 때 마침내 바닥이 와르르 무너졌다.
“있습니다! 아래가 비었어요!”
“역시!”
윤일권이 서둘러 뛰어갔다.
“느낌이 좋지 않더라니!”
대원이 물었다.
“진입합니까?”
윤일권은 자신이 먼저 내려가려고 했는데 강나은 경위가 그의 팔을 잡았다.
“잠깐만요. 이렇게 무턱대고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요.”
“왜요?”
“저 아래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무장병력과 동행하세요. 만약 아래가 비밀 연구시설 같은 거라면 침입자를 막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을 거예요.”
“으음….”
사건이 벌어지면 몸부터 뛰어드는 광수대였기에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대원들 모아.”
“넵!”
총기를 소지한 대원들이 모여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강나은 경위가 물었다.
“계속해서 서울 곳곳에 이런 지하 시설이 생기는 이유가 뭘까요?”
“잘은 몰라도 이거, 상당한 인력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게다가 여긴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에요. 시작점이 여긴 아니었을 겁니다.”
“다른 곳에서부터 파고 왔다는 뜻이겠죠?”
“간혹 해외에서 이런 땅굴을 파고 은행 아래까지 접근하거나 국내에서도 정유시설 지하로 파고들어 기름을 훔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긴 훔칠 게 없는데요?”
사슴밖에 없었다.
“저도 그게 이상하긴 한데 들어가 보면 알게 되겠죠.”
강나은 경위가 흐음, 고민하다가 말했다.
“어쩌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무언가 하기에 가장 좋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처럼요.”
“접근성도 좋고 올림픽대로와도 가까워서 드나들기도 편합니다.”
대원들이 모이자 윤일권은 구멍을 좀 더 넓게 판 뒤 사다리를 내렸다.
“높이 2미터쯤 됩니다!”
“진입해.”
대원들이 빠르게 내려가 플래시를 들었다.
“뭐가 있어?”
“아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두 사람이 실종되었고 포악한 사슴에 몇 명이 다쳤다. 이게 그냥 벌어진 사건이 아닐 것이다.
윤일권이 내려갔다. 대원들이 조심스럽게 거릴 넓히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갈까요?”
통로의 중간에 떨어졌으니 양방향 중에서 골라야 했다.
“꽤 넓네.”
윤일권은 우선 벽을 손으로 만져보면서 사람이 더 내려오길 기다렸다.
강나은이 내려왔다.
“세상에…. 홍대의 것과 똑같아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단면을 보면 자연적으로 생긴 것도 아니고 사람이 판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삽이나 곡괭이 같은 도구 없이 야금야금 뜯어낸 것 같았다. 홍대 지하 시설은 아직도 연구 중이었는데 또 이런 게 생기다니!
“대체 서울에 이런 게 얼마나 많은 걸까요?”
“찾아봐야죠.”
어떤 미친 사람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스케일이 너무 컸고 북한 간첩의 소행이라고 하기엔 모자람이 있었다. 그랬다면 무기 같은 걸 숨겨두어야 했는데 홍대에서는 식량조차 없었다. 왠지 여기도 마찬가지일 거란 예감이 든다.
“이쪽부터 가보죠. 자네는 지원 요청하고.”
“알겠습니다!”
윤일권이 방향을 정한 뒤 먼저 걷기 시작했다. 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고 강나은 경위와 팀장도 뒤를 돌아보며 경계했다.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았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위나 아래에서 불쑥 유령이라도 나타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길게 이어진 동굴은 구불구불 500미터 넘게 계속됐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확! 넓어진 공간이 나타났다. 이것 또한 홍대와 비슷한 패턴이었다.
“…?”
“…!”
모두가 놀라서 주변을 비춰보았다. 윤일권이 뛰어가서 바닥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아직 축축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여기에 뭐가 있었던 것 같아요.”
축구장처럼 넓은 공간. 이만한 굴을 파려면 대체 얼마의 인력과 시간이 필요할까?
“우리가 온 걸 알아차린 걸까요?”
강나은 경위의 말에 윤일권이 얼굴을 흔들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놈들이 나간 뒤 문제가 터진 것 같아요.”
“실종자나 사슴이요?”
“네. 여긴 밀폐된 공간이었습니다. 어제까진 아무도 몰랐잖아요. 그런데 이 안에 있던 것들이 이동하면서 어떤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갔을까요?”
“지금부터 따라가 봐야죠. 멀리 가진 못했을 겁니다. 땅이 이런 걸로 봐서는….”
“하나가 아니었던 것 같죠?”
“많았습니다. 바닥의 흔적이 규칙적이에요. 여기서부터 저 끝까지 그렇습니다.”
사람이 서 있다고 생각한다면 최소 수천이었다.
‘뭐였을까?’
윤일권은 복잡한 눈빛으로 일어났다. 어떤 놈들이 계속해서 이런 시설을 만들고 있는데 홍대에선 히트맨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발견했었다.
‘발각되어서 이동했나?’
그럴 수도 있고 히트맨이 조력자일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것도 태창과 관계가 있을 것 같아.’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천장에서 벽에 딱 달라붙어 있던 무언가가 스멀스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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