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며칠이 지났다. 우리는 중간중간 교대로 균열을 통해 어르신의 집으로 물자를 실어날랐는데 그간 김우태의 짐에서 재능마켓 생수로 만든 쉐이크가 대박을 치면서 쏠쏠하게 돈을 벌어주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다시 모였다.
“대량으로 만들어서 팔아도 될 것 같아. 이건 확실해! 절대 망할 일 없다고!”
하루 500잔을 파는데 아침부터 줄을 서서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동이 난다고 한다. 이미 헬스 커뮤니티에 소문이 쫘악 퍼져서 김우태의 짐은 성지처럼 되어가고 있었고 쉐이크만 먹으면 12시간 운동도 가능하다는 인증 글이 나돌면서 관심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확실히 생수를 조달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생수는 1병에 10포인트로 재능마켓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이걸 쉐이크에 한 병 다 섞는 것도 아니었기에 몇 포인트면 1인분을 만들 수 있었다.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가 포인트를 조달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도 있잖아요.”
“하, 너는 나이답지 않게 조심성이 많다니까? 장사란 건 일단 물 들어올 때 몰아치고 뒷일은 그때그때 수습하는 거야!”
말이 쉬워도 우리 중 누구 하나라도 잘못되면 사업은 접어야 하는 거다. 게다가 가장 큰 걱정은 생존을 위한 재능마켓에서 장사로 변질하기 시작하면 돈 욕심에 포인트 노예가 될 수도 있었다.
내가 이런 부분을 설명하자 도화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건 민준이 말이 맞아요. 근데 돈을 많이 벌면 좋을 것 같긴 해요. 할머니도 더 좋은 곳에서 모실 수 있고.”
“그렇지? 세상은 돈이라니까? 없으면 불편해도 있어서 나쁠 건 절대 없다고!”
김우태의 말에 내가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면 형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일단 포인트를 계산해보자. 쉐이크 제조에 들어가는 생수를 하루 1,000병까지 늘리면 1만 포인트야.”
1만 포인트. 몇 달 전이라면 엄두도 나지 않았을 단위였지만 이젠 우리 셋이 들어가면 그 정도는 기본으로 벌어온다.
“그 이상은 나도 힘들다고 보는데 천 병으로 쉐이크를 만들면 최대 3배까지 늘어나거든? 이건 내가 이것저것 배율 맞춰서 해보니까 그래.”
“가격은요?”
“9천 원!”
“그게 팔려요? 한 잔에 9천 원이?”
“요즘엔 커피도 분위기 좋은 곳에 가면 만 원씩 해. 기적의 쉐이크가 9천 원이면 괜찮지! 만원 넘으면 심리적으로 비싸다고 인식할 거니까 9천 원이 좋아.”
그러면 한잔에 9천 원이 3,000잔이니까 270만 원의 매출이 단순 계산으로 나온다.
“꺄악! 그렇게 많아? 한 달이 아니라 하루라고?”
도화지가 어마어마한 액수에 깜짝 놀랐다. 고등학생이 생각해볼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SNS에 장난 아니야. 3천 잔도 하루만 다 팔릴걸? 몇 잔 사서 쟁여두는 사람도 많다고.”
“순수 마진은 얼마 남아요?”
“인건비에 뭐에 다 빼도 60%는 남아.”
하루 150만 원이면 한 달에 4,500만 원이다.
“와… 미쳤다.”
도화지가 혀를 내둘렀다. 처음에 김우태가 장사 잘되고 있다는 얘기를 했을 때는 이 정도일 줄 몰랐다. 그런데 숫자로 현실감 있게 듣자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근데요. 포인트가 들어간다고요. 공짜로 만드는 게 아니에요.”
내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포인트를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건 좋네요. 제가 볼 때 앞으로 우리가 더 강해지면 포인트 단위도 올라갈 것 같거든요? 지금은 1만 포인트가 많아 보이지만 몇 달 후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지! 내 말이 그거야! 포인트는 벌면 돼! 이건 완전 대박 물장사라고!”
한 달에 4,500만 원.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사서 쓴다고 해도 다 소비하지 못할 큰돈이었다. 셋으로 나눠도 연봉 1억! 이전의 삶에선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신의 직장이나 마찬가지였다.
도화지가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안정적으로 포인트를 어떻게 벌어? 미션이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말에 김우태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매일 하나씩 미션을 하는 건 무리겠지?”
“당연하죠! 오빠! 그렇게 되면 돌아가면서 3일에 한 번씩 여기서 1,000시간을 써야 한다고요! 돈 벌기 전에 미쳐버릴걸요?”
내가 피식 웃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큰돈은 필요 없어요. 차근차근해요. 그리고 돈보단 우리가 강해지는 게 우선이잖아요. 모든 포인트를 그렇게 쓸 순 없어요.”
『드링크 명인(유니크):모든 드링크 효과 두 배 상승, 40만P.』
나는 이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40만 포인트가 필요하다.
“후우…. 장사란 게 될 때 해야 하는 건데….”
김우태가 아쉬운 듯 말하자 나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단순히 포인트 벌이 용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해요.”
고깃집에서 알바 뛴다고 생각하면 그 몇십 배의 시급을 챙길 수 있는 유일한 길.
“뭔데?”
“그런게 있어?”
내가 웃었다.
“오크요.”
도화지가 깜짝 놀라 손뼉을 쳤다.
“오크?”
김우태도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설명했다.
“오크 한 마리가 100P에요. 열 마리면 1,000포인트, 100마리면 하루 할당량이잖아요.”
오크가 귀하면 모르겠는데 전에 보니까 널리고 널려서 하층이 다 오크로 덮이게 생겼다.
“한 사람에 30마리씩만 잡으면 되네?”
도화지의 말에 김우태가 껄껄 웃었다.
“훈련도 될 거고! 어차피 그놈들 때문에 골치라고 하지 않았냐?”
수호자의 돌이 있으니 미션이 없어도 지정된 곳으론 매일 갈 수 있었다.
‘어차피 광산도 확인하러 가야 했으니까.’
내가 목소리를 진지하게 깔았다.
“하지만 이거 하난 명심해야 해요. 우린 돈이 목적이 아니에요. 필요하니까 지금은 하겠지만 언제든 상황이 변할 때 주저 없이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는 거.”
“그래!”
단숨에 동의하는 김우태를 보며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
“돈 욕심에 사로잡혀 적장 중요한 일을 놓칠 수 있으니까 당분간은 하루 3,000잔 이상은 판매하지 말 것.”
“오케이!”
김우태가 말했다.
“쉐이크 덕분에 짐 손님이 늘었어. 회원권 많이 팔리면 거기에서도 수익 떼줄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짐을 쌓아둔 곳으로 걸어갔다.
“말 나온 김에 가죠. 어르신과도 상의해봐야겠어요.”
군장 같은 가방을 챙기고 양손엔 각종 생필품과 식료품을 가득 담은 상자를 두둑하게 들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본체로 변한 범이의 등에도 산더미처럼 쌓았다. 며칠 동안 쉐이크로 번 돈을 여기에 다 투자했는데 어르신만 쓸 게 아니라 우리도 하층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표류하게 되었을 때를 가정해서 미리미리 보급해두려는 것이었다.
『안전지대에 입장하셨습니다.』
균열을 넘어가자마자 근처에서 쪼그려 앉아 놀고 있는 드워프를 보았다.
“우와! 형! 누나!”
녀석이 공룡 모형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벌떡 일어났다.
도화지가 꺄르르 웃으며 꼬마 드워프를 품에 안았다. 이 녀석의 이름은 칸인데 며칠간 도화지와 정이 들었는지 친누나처럼 따랐다. 그러니 장난감도 사다 주고 더 챙겨줄 수밖에.
“야, 이것 봐라!”
짐우태도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변신 로봇이다! 어때? 막, 막! 심장이 벌렁벌렁하지?”
상자를 내밀자 칸이 도화지 뒤로 숨으며 주저했다. 김우태의 강력한 마이너스 매력은 아이에게도 치명적인가보다.
물건을 내려놓고 범이의 등에서 짐을 풀 때 어르신이 다가왔다.
“허허! 이거 너무 과한데?”
“저희가 쓸 것도 가져왔어요.”
어르신의 동굴은 넓고 길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확장도 가능했기에 창고로 쓸 공간은 넉넉했다.
“이 물건은 뭔가?”
“텐트에요. 마트 갔는데 할인판매를 하길래 샀어요.”
신문물을 접할 때마다 어르신은 유쾌하게 웃었다. 어느 정도 짐 정리를 마치자 나는 어르신과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
“칸은 어때요?”
“마음의 상처가 있긴 해도 잘 적응하고 있어. 아이의 장점이라면 금세 잊는다는 거겠지.”
“그분은요?”
“…여전히 나를 어려워하고,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무엇보다 자네들이 가져다준 음식들을 요리하는 재미가 아주 좋아서 식사 시간만 되면 다들 행복해한다네.”
조리법을 몰라도 재료만 넣고 끓이면 되는 밀키트가 많아서 어르신도 곧잘 만들었다.
밖으로 나오자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내가 말했다.
“오크들을 사냥할까 해요.”
“위험하지 않겠나?”
“동료들과 상의했는데 저희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오크가 세력을 계속 확장하면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될 것 같아요.”
“그건 그렇지만 자네가 간과한 게 있네.”
“네?”
“오크가 강한 축에 끼는 종족은 아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 마법을 부리는 오크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지?”
“네.”
“오크는 인간을 흉내 내길 좋아한다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드워프와 엘프도 가리지 않지. 무엇보다 성장이 빨라서 금방 배우니까 도시도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지.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아. 자기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면 다른 종족을 잡아서 그 일을 하게 한다네.”
“노예.”
“그렇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오크 중에서도 강한 개체가 있다는 거야. 그런 놈들을 만나면 자네들이라고 해도 버거울 수 있어.”
내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자네 뜻이 그렇다면….”
『돌발 미션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놈들의 무자비한 확장을 막아주게. 어떤 세상이든 균형이 깨지면 파괴만 남을 거야.”
『쿤드라를 막아라
쿤드라는 오크의 왕국입니다. 하층의 절대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오크가 무섭게 번식하고 있습니다. 구심점인 쿤드라를 제거하면 오크들은 자연스럽게 곳곳으로 흩어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오크 중에선 아주 강력한 것들도 있을 거야. 무턱대고 싸웠다간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거라네.”
“네, 일단 쿤드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볼게요.”
그보다 먼저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아 참, 어르신. 광산에서 가져올 광물이 없을까요?”
“철광석 같은 게 있다고 했나?”
“그것 말고도 다양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직접 가서 보면 빠르겠지만 원석의 성분이야, 많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으니까 조금씩만 채취해오게. 그것들로 무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보지.”
“쿤드라는 왜 광산을 개발할까요?”
“무기를 만들려고 하는 거겠지. 오크는 자네들처럼 쇠붙이로 된 무기를 즐겨 쓰니까. 체력도 좋아서 무거운 갑옷도 걸칠 수 있고. 그런 것들에 다 금속이 쓰일 거네.”
놈들의 무장을 막으려면 어차피 그 광산은 내 수중에 넣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범이의 등에 올라탔다.
“다녀올게요.”
“조심해!”
“정찰만 한다니까요.”
웃으며 고삐를 쥐었다. 아리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면 빠르겠지만 그러면 놈들의 눈에 띌 수 있었다. 은밀한 기동은 범이가 최고였다.
‘쿤드라….’
보자, 놈들이 뭘 하고 있는지.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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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39-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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