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202화 (202/277)

#202화

넓은 곳으로 나오자 마법사 오크가 들고 다니던 지팡이가 땅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약속 지켰다. 근처에서 본체로 변한 거대한 아리가 나를 보았다. 오크들이 모두 도망쳐버려서 심심한 것 같았다.

‘오크라….’

산에서 호랑이가 사라지면 다른 동물의 개체 수가 늘어난다고 했었다. 로드와 퀸, 피의 군주까지 모두 사라졌으니 대격변의 시대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자!”

아리에게 손짓하니 몸집이 점차 줄어들었다.

‘상황을 더 지켜봐야겠어.’

쿤드라라는 것도 그렇고 왠지 이곳에 자주 와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광산에서 나가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

“….”

드워프가 꼬마를 데리고 졸졸 따라왔다. 노예로 잡혀서 오래 갇혀 있었으니 날카로워졌을 수도 있다.

‘이제 정신 차렸나?’

아리가 나무 위에 올라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가이에게로 뛰어갔다. 일대를 초토화시킨 녀석들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천진난만하다.

벌목장과 광산.

나는 주변을 스윽 보곤 끄덕거렸다. 놈들이 어떻게 할진 나중에 다시 와보면 알게 될 거다.

“…저….”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어디로 가시나요?”

“…서쪽으로 갑니다.”

진정이 됐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나긋해졌다.

“저희도 같이 갈 수 있나요?”

“그건 가서 여쭤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제가 안 되면 이 아이만이라도 머물 곳이 필요해요.”

아깐 매몰차게 말했지만 이렇게 나오는데 두고 갈 생각은 없었다.

“날아갈 겁니다. 무서울 거예요.”

“참을 수 있어요.”

.

.

.

오팔을 캐서 드워프에게 세공을 배우기 시작한 도화지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초반엔 저주 인형이 몇 개의 오팔을 용암으로 떨어뜨리기도 했지만 익숙해지니 작업속도가 빨라졌다.

“와아…. 예뻐….”

반짝거리는 오팔을 들고 도화지가 감탄했다. 드워프가 그런 도화지를 보며 말했다.

“이건 시작도 안 한 거라네. 겉에 붙은 불순물만 제거한 거니까 이제부터가 진짜 세공에 들어간다고 봐야지. 세공을 할 때는 두 가지 법칙이 있는데 하나는 원형 그대로를 살리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보석을 어디에 쓸지 생각한 뒤 깎는 작업이 있지. 이 세상의 모든 보석엔 마법이 깃들어 있는데 마력을 끌어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니까 허투루 배워선 안 되는 것이야.”

“네! 할아버지! 그런데 매력을 높이는 보석도 있어요?”

“그건 어떤 보석이 어떠한 마법을 품고 있는지를 구분해야겠지. 그 방법은 내가 따로 알려주겠네.”

『보석 감별을 배웠습니다.』

도화지는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은 것처럼 세공지식을 흡수해갔다. 정석대로 익히려면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재능마켓 덕분에 스킬을 익히면 놀라운 성취를 보인다.

도화지가 배운 대로 열심히 보석을 깎기 시작하자 이번엔 김우태가 무기 제작을 배웠다.

“처음엔 단순히 각종 무기 형태를 만들겠지만, 나중엔 마력이 담긴 보석을 넣을 자리도 남겨두면 좋다네. 일반 무기와 보석을 박은 무기의 가치는 천차만별이니까.”

“오…. 그러면 제 무기도 보석으로 강화할 수 있나요?”

“그 인형의 눈깔을 보석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그건 너무 무서울 것 같은데요….”

“하하하! 편견을 버리게! 강해질 수 있다면 무엇이 대수인가? 무기 제작사는 언제나 세상을 직관할 수 있어야 하고 최고의 효용을 뽑아내는 것에 열중해야 한다네.”

“이 녀석 가슴에 단추 같은 것만 달아줘도 좋을 것 같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눈을 번쩍거리게 하는 건 싫다는 듯 김우태가 말했다. 자다 깨서 눈이 마주치면 심장마비 오겠다.

“나중엔 무기의 미관도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작업을 하게되겠지만 기초부터 쌓고 가야지. 자넨 무기가 뭐라고 생각하나?”

“적을 죽이거나 내 몸을 지키려고 사용하는 물건이겠죠.”

“맞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무기란 건 애초에 내가 상대할 수 없는 포식자를 죽이려고 개발한 거야. 인간이 어떻게 자기보다 강한 맹수를 사냥하는 게 가능했겠나? 창을 쓰고 활을 만들면서 그리된 거지.”

“아….”

“그렇듯 제작사는 사용자에 맞는 무기를 떠올리고 그것이 가장 잘 쓰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네.”

『무기 제작 이론을 배웠습니다.』

‘이거, 묘하게 어렵네.’

차라리 민준이처럼 드링크나 만들면 머리가 덜 아팠을 것 같다.

“하하!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세상 모든 일이 한걸음부터고 어떤 무기도 한 번의 망치질로 만들어지는 건 없으니 차근차근 배워가면 될 것이야.”

“어르신께선 이런 걸 어떻게 다 아시는 겁니까?”

“어머니께 배웠지. 우리 종족 특성상 광물을 잘 다루긴 하지만 배우지 않고선 무엇도 만들 수 없어.”

문득 김우태가 물었다.

“혼자… 괜찮으세요?”

김우태는 사람을 좋아했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기 빨린다고 녹초가 되는 이들도 있었지만, 김우태는 그 반대였다. 그로선 이 동굴에서 몇백 년이나 살라고 하면 미쳐버릴 거다.

“이제 가족들 얼굴이 기억도 안 나…. 그래서 견딜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자주 놀러 올게요.”

김우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다음에 올 때는 그 비빔면도 넉넉히 부탁하겠네. 매콤한 게 딱 내 입맛에 맞아.”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마트를 통째로 털어올게요!”

.

.

.

“내일까지 이곳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태창 바이오 대표는 정중하게 말했다. 하지만 앞의 사내는 짜증을 삭히지 못했다.

“내가 왜 그 잡것들 때문에 이런 수모를….”

피의 군주라는 엄청난 신분을 가진 그였지만 하층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힘만 복구했다. 수천 마리의 오크가 있는 도시도 홀로 파괴하곤 했던 그였지만 이젠 피가 모자랐다.

“편히 보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놈들이 불쑥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안 이상 한 곳에 계속 머무르시면 위험합니다. 저희 회사가 노출되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요.”

본사 건물이 통째로 불타버리는 건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였다.

“이곳에선 돈보다 중요한 게 없습니다. 이번 일엔 주가가 떨어지지 않았지만 반복되면 회사 가치가 폭락할 것입니다.”

“그놈의 돈! 돈! 그만 좀 할 수 없겠나?”

“…죄송합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빼앗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놈의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어서 전처럼 막살다간 꼬릴 밟힐 것이다.

“그렇지만 놈들이 예상보다 강합니다. 저는 주인님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하고요.”

“후우…. 빌어먹을. 하층에 내 금광이 몇 갠데….”

그러고 보니 광산이 생각났다. 금 따위 쓸모도 없어서 파다 만 금맥이 있었는데 그조차 아쉬워질 지경이라니.

“잊으셔야 합니다.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적응만 하면 여기가 조건은 더 좋습니다. 나약한 인간들만 있는 세상이잖습니까?”

그가 분노를 억누르며 소파에 기댔다.

“…핵 맞으면 죽겠지?”

“죽습니다.”

“…그래, 내 힘을 다 되찾아도 그건 못 견딜 거야.”

인간들이 이렇게 영리할 줄이야. 오크들처럼 무식하게 숫자만 늘리는 게 아니었다. 과학이란 건 마법조차 씹어먹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래서 현명하게 대처하시면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핵의 지배권을 가지시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답답하시겠지만, 어느 정도만 견디시면 이 나라부터 접수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 정치한다는 놈은 언제 만나기로 했다고?”

“다음 주 주말입니다.”

“좋아, 하나씩 하자. 그놈부터 데려와.”

“알겠습니다.”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이 있다. 거리의 수많은 인간들을 잡아 와 봐야 쓸모도 없었다. 사회지도층을 노려야 했다.

“나가봐.”

대표는 호텔에서 나오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조급함만 버리시면 좋을 것인데.’

시간이 흐르면 절로 과거의 권능을 되찾을 거다. 이 세상에 널린 게 인간이었으니 피를 마시다 보면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놈들이 누군진 몰라도 그 기습 때문에 주인님이 흔들렸다.

‘개자식들!’

퀸일까? 로드일까? 그들이 넘어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벌써 이렇게 강한 세력을 만들었다는 건 미처 몰랐다.

‘마법을 썼으니 로드쪽 인물이겠지.’

콘서트장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강력한 마법!

‘그 정도의 화력은 로드 말곤 불가능하니까.’

빌딩을 한순간에 불태워버릴 불길을 일으키는 건 하층에서도 대마법사 정도 돼야 발휘할 힘이었다.

지이이잉.

진동이 울리자 그가 핸드폰을 꺼냈다.

“나다.”

-광수대가 계속 감시 중입니다.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아…별 날파리가 죄다 꼬이는구나.”

-죄송합니다.

로드와 퀸도 골치 아픈데 경찰까지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알아내지 못할 선이 있다. 놈들은 상식이란 틀에 맞춰져서 평생을 살았으니 권능이나 마법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뭘 추적하고 있지?”

-저희가 로봇이나 최첨단 무기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 뭐?”

이렇게 황당할 수가? 로봇?

-광수대의 정보에 의하면 경찰도 얼마 전부터 본격적으로 로드와 퀸을 추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필이면 그게 이번 일과 맞물리면서 저희를 의심하는 것 같고요.

“그놈들이 로드의 정보를 쥐고 있다?”

-히트맨이라고 부르는 놈들이 이번에 저희 본사를 공격한 그놈들인 것 같습니다.

“CCTV 같은 건 확보했고?”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광수대와 몇몇 경찰이 공조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계속 접촉해보겠습니다.

“놈들보다 우리가 먼저 놈들을 찾아 죽여야 해. 주인님께서 그걸 바라실 거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경찰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쓸어버릴 수 있다. 공무원이란 게 돈과 권력이면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었다. 하지만 하층에서 넘어온 존재들은 달랐다. 그놈들은 상식 너머에 있으니 최우선으로 제거해야 했다.

‘내 모든 자금력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의지가 그의 두 눈에 가득했다.

.

.

.

“….”

“….”

세 드워프가 마주했다.

“불쑥 찾아와서 죄, 죄송합니다.”

내가 보기엔 저 꼬마 드워프도 비슷하게 생겼다. 종족이 다르면 서로 알아볼 수 없는 디테일한 부분이 있는 거다.

“갈 곳이 없어서 무례를 범했습니다. 허락하지 않으시면 바로 떠날게요.”

여자 드워프가 공손하게 말했는데 어르신은 말이 없었다.

“제게 시키실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할게요. 청소든 망치질이든 뭐든 다 잘하거든요.”

밖으로 떠돌면 또 오크에게 잡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

그래서 여자 드워프는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여자 드워프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사정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불안했던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였다.

“혹시….”

“네?”

어르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라면… 드시겠습니까?”

아…. 드워프의 얼굴도 빨갛게 변하는구나.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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