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오크의 광산에 입장하셨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놈들을 향해 활을 쐈다.
슉슉!
【오크를 사냥했습니다!】
“쿠에에엑!”
날벼락을 맞은 오크들이 픽픽 쓰러졌다. 나를 태운 범이는 빠르게 광산을 질주했는데 우리가 달릴 수 있을 만큼 광산이 넓어서 깊은 곳까지 쑥쑥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오크는 대략 이십.
‘별로 강하지 않아.’
아니면 내가 강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크는 생긴 건 무섭지만 오히려 사람처럼 생겼기에 어디가 급소인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 상대하기 수월했다.
“저쪽으로!”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안에서 뭘 캐는 건진 모르겠지만 광산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하층에 이만한 오크 무리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이 괴물들이 광산을 만들 정도로 문명이 발전했다는 것도 의외였다.
‘지배자들이 모두 떠나서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원래 세력을 이루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정도 규모를 통솔하려면 그만큼 강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리라.
‘오크들의 수준은 하급 뱀파이어 정도, 숫자가 많다고 해도 위험하진 않아. 문젠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경우인데.’
그렇다고 해도 든든한 동료들이 있으니 겁나진 않았다. 일단 가이만 해도 밖의 수천 오크를 혼자 커버하고 있지 않나?
슉슉슉!
화살이 날아갔다. 벽을 향해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던 오크들이 화살에 맞아 즉사했다. 활이란 무기는 이렇게 원거리에서 기습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놈들에겐 재앙이겠지만 내겐 가장 편한 전술이었다.
이렇게 10분쯤 나아가자 시야가 탁 트일 정도로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와, 바글바글하네.”
축구장 몇 개를 합친 것처럼 드넓은 공간에서 수많은 오크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드문드문 일꾼 오크와 다른 도끼든 오크들이 보였다.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놈들은 버럭버럭 소릴 지르며 일꾼들을 독려했다.
-쉬지 말고 일해라! 일!
-내일까지 납품해야 한단 말이다!
하, 일꾼의 삶이란 여기도 다르지 않구나. 저렇게 무섭게 생겨도 꾸역꾸역 곡괭이를 들고 무기력하게 몸을 움직이는 걸 보니 가련할 지경이었다.
‘곧 밖의 상황이 여기에도 알려지겠지.’
그 전에 정리해야 했다.
“아리.”
꾸꾸?
“한바탕 휘저어보자.”
꾸우우!
애초에 숫자론 상대가 안 된다. 이럴 때는 숫자를 씹어먹을 강력한 화력이 필요했고 내겐 그런 존재가 둘이나 있었다.
화르르르르르륵!
닭처럼 생겼던 아리가 저쪽으로 푸드득 날아올랐다. 작은 몸에 달려 푸들대던 날개가 갑자기 화악! 커졌는데 녀석을 치킨 따위로 생각하면 곤란했다.
무려 주작이 아닌가?
-키아아아아아아아!
우렁차게 고음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주작은 차라리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일 것이다.
콰곽!
한 놈이 아리의 발톱에 짓밟혔다.
-허억! 괴물이다!
-어어억? 갑자기 뭐야?
-으아아악! 도망쳐!
전의라는 것도 대상을 골라가며 타오른다. 홍수가 났는데 자연과 싸우려는 사람은 없다. 태풍이 오는데 내가 이겨보겠다고 버티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가이나 아리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우린 저기로 가보자!”
아리가 휘젓자 나는 수레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오크들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사방으로 우르르 도망치며 아리에게서 벗어났는데 그건 통제하던 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놈이 기세 좋게 아리에게 덤볐다가 산 채로 먹힌 뒤론 그 어떤 오크도 나서지 않았다.
‘이거 뭐지?’
수레에 쌓인 돌덩이를 잡아보았다.
【불순물 섞인 철광석을 얻었습니다.】
“아….”
놈들은 철을 캐고 있었던 것 같다. 혹시나 해서 재료 수집망을 꺼냈다.
【수집할 수 없습니다.】
역시 안된다.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아깝네.’
다 가져가면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균열!”
이 광산의 크기는 대단했다. 오크만 내쫓으면 당장 광물을 옮길 수 없어도 누가 가져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수호자의 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크크….”
괜히 악당 같은 웃음이 났다.
‘아무도 못 들어오게 입구만 막아버리면 이건 내 거잖아.’
행여 놈들이 다시 얼쩡거려도 또 깽판을 치면 될 거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다. 가이와 아리면 차고 넘친다.
‘여차하면 팔아도 될 거고.’
그게 아니면 드링크 재료로 써도 될 터.
‘횡재했네.’
그냥 정찰 미션인 줄 알았는데 오크를 발견했고 광산까지 찾았다.
-끼아아아아아아아!
아직도 날뛰는 아리를 보며 나는 주변의 구멍을 찾았다. 오크들이 다 나가려면 시간이 필요할 거니까 좀 더 둘러볼 요량이었다.
범이에게서 내렸다. 이쪽 동굴 입구는 높이가 낮았다. 활을 들고 걸어 들어갔다.
‘이만한 광산을 개발하려면 얼마나 걸리는 거야?’
중장비를 동원해도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오크들은 곡괭이 같은 기초적인 장비로 이만큼이나 했다.
‘아니면 지하 도시라도 만들 생각이었던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몸이 굳었다. 내 의지가 아니라 진짜 움찔! 몸이 굳은 거다.
“흡…?”
내 앞을 범이가 막아서며 으르렁댔다.
그리곤 보았다. 저쪽에서 오크 하나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손엔 지팡이를 쥐었다. 얼굴론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하얀 털이 듬성듬성 보였다.
“넌 누구냐!”
재능마켓의 힘인가? 저런 괴물과도 소통이 된다니 그저 놀랍다.
“너는 누군데?”
“나는 쿤드라의 재무당담관이다!”
“쿤드라가 뭔데?”
“이놈! 감히 쿤드라를 모욕하는 것이냐!”
“모른다니까….”
나는 활을 들었다. 그러자 놈이 흠칫하며 지팡이를 들었다.
“자, 잠깐! 말로 하자. 네가 원하는 게 뭐냐?”
“없어.”
“원하는 게 없는데 왜 이러는 거냐?”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냥?”
미션을 받았으니 할 뿐 딱히 이유는 없었다.
“노예를 주마. 어때? 비싸게 팔 수 있을 거다.”
“노예?”
“안쪽에 있다.”
“안내해.”
“나는 보내줘라. 약속할 수 있나? 나는 이런 곳에서 죽을 오크가 아니다.”
“생각해보고.”
이놈이 강했다면 이런 흥정도 하지 않았을 거다. 무엇보다 내 옆의 범이가 놈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 같았다.
“약속하지 않으면 절대 노예를 내어줄 수 없다!”
“그냥 내가 가서 풀어주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없인 구속을 해제할 수 없다!”
이놈, 마법사인가? 아까 몸이 굳은 것도 이놈 때문인 것 같은데….
“흠, 좋아. 나는 너를 건드리지 않겠다. 됐지?”
“흥! 내가 그 속셈을 모를 줄 알고? 그 괴물에게도 약속을 받아라.”
“아아, 알았다고. 우리 둘은 너를 해치지 않겠어. 그러면 노예를 보여줘.”
이런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오크는 안심한 듯 숨을 내쉬더니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막다른 길이군.’
다른 길이 없으니 나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녀석을 따라가자 책장이 보였고 각종 실험 도구와 용도를 알 수 없는 병들이 보였다.
‘진짜 없네.’
작은 방엔 뭘 감춰놓을 공간도 없었다.
“이곳에서 뭘 하는 거지?”
“보면 모르나?”
“아니, 너 말고. 철광석을 캐는 것 같던데.”
“흔한 경제 활동이다. 나무가 있으니 베고 광물이 있으니 캐는 게 이상할 일이냐?”
똑똑한 것 같은데 묘하게 어리숙한 것 같다.
“노예는?”
“저기 있다. 노예를 끌고 돌아가라. 어떻게 왔는지 몰라도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오크가 벽에 붙어서 지팡이를 흔들자 안쪽으로 새로운 공간이 스윽 나타났다.
“누가 있다는 건데?”
“저 구석에 있다! 봐라!”
“아….”
쇠창살 안으로 들여보니 모서리에 웅크린 큰 덩어리가 보였다.
“귀한 종족이라 비싸게 거래할 수 있을 거다. 데려가라.”
나는 안쪽을 유심히 봤다.
“죽었잖아.”
“안 죽었어!”
오크가 지팡이를 내밀었다. 그러자 지팡이 끝에서 스스스스, 묘한 기운이 뻗어 나가더니 덩어리에게 닿았다.
-아아아아악!
-히이익!
분명 한 덩어리였는데 목소리가 둘이었다. 자세히 보니까 큰 것이 작은 것을 안고 있었다.
“아….”
드워프였다.
“아비는 며칠 전에 죽어버렸다. 얼마나 고집이 센지 원….”
“드워프를 왜 잡아 왔지?”
“당연하잖아? 이 정도 규모의 광산을 유지하려면 드워프는 필수라고! 왜? 탐이 안 나나? 엘프보다 비싼 게 드워프인데?”
놈에게 필요한 남자 드워프가 죽어버려서 쓸모없어진 두 드워프를 내게 떠넘기려는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좋은 거래일 텐데? 딱 봐도 돈 되는 건 다 하는 떠돌이 용병인 것 같은데 쿤드라와 적이 되는 것보다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어때?”
“어차피 무거운 광물을 옮길 수도 없었겠지….”
“당연하지! 수레에 싣고 가다간 우리 추적대에게 잡혀 죽을걸? 여기까진 용케 숨어들어왔겠지만, 언제까지 그런 운이 따를 것 같나?”
얘, 바본가? 내가 숨어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열어. 저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좋다! 그러면 나부터 나가겠다! 그건 괜찮나?”
“마음대로 해.”
“크크크! 알았다!”
오크가 기뻐했다. 나가서 병사들을 끌고 올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빤히 보인다는 게 어이가 없다. 저 머리로 어떻게 마법을 쓰는 거지?
쩌엉!
지팡이가 움직이자 쇠창살이 사라졌다. 실존하던 게 아니라 마법이었나보다.
크르르르르.
범이가 낮게 울자 오크가 히이이익! 소릴 지르며 저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놔둬. 약속했잖아.”
우리 둘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 ‘둘’은.
나는 감옥처럼 생긴 곳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드워프와 아기 드워프가 며칠 먹지도 못했는지 탁 풀린 눈으로 멍하니 웅크리고 있었다.
가방에서 생수를 하나 꺼냈다. 마개를 따서 내밀었다.
스르르륵.
겁을 먹었는지 더 구석으로 몸을 밀어 넣는 걸 보며 내가 말했다.
“그러다가 죽어. 아이는 살려야지.”
“…살아도 노예가 될 뿐이야. 이미 마을도 없어졌고 돌아갈 곳도 없어.”
그녀의 얘기는 ‘쿤드라’가 생각보다 엄청나다는 걸 뜻하고 있었다.
“오크들은 모두를 집어삼키고 있어. 드워프와 엘프는 모두 노예로 끌려가고 있고 오크의 숫자는 너무 빨리 늘어나서 감당할 수 없어.”
인간이 아이를 하나 낳아 키울 때 오크는 다섯을 낳아 10배 빨리 성장시킨다. 본랜 다른 천적이 오크의 확장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천적이 사라지자 고삐가 풀려버린 거다.
“세상은 멸망할 거야.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건 네 생각이고. 죽으려거든 혼자 죽어. 난 절대 그럴 생각 없으니까.”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네 아이라고 해서 네가 같이 죽어도 좋다는 권한은 없어. 그건 살인이야.”
“아니야!”
“물어봐. 걔도 죽을 건지.”
내 말에 입을 꾹 다문 드워프의 품에서 팔이 쏘옥 튀어나왔다.
생수를 빼앗듯 잡고 가져가 벌컥벌컥 마셨다.
“….”
나는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세상이 멸망해서 네가 불행한 게 아니라 네가 불행하다고 여기니까 세상이 그렇게 보이는 거다. 하려면 혼자 해. 삐뚤어진 눈으로 자식한테 강요하지 말고.”
파아!
드워프 꼬마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엄마! 이거 약인가 봐! 아픈 게 사라졌어!”
바짝 마른 입술을 보면 한 번에 원샷하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녀석은 엄마를 위해 절반 넘게 물을 남겼다.
“빨리 먹어봐! 응? 어서! 엄마도 아프잖아!”
그게 어떤 물인데. 메이드 인 재능마켓이다. 귀한 거라고.
나는 돌아서며 범이의 목을 쓸었다.
“….”
그녀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선택이란 건 언제나 본인의 몫이니까.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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