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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200화 (200/277)

#200화

깡! 깡!

망치를 두드릴 때마다 경험치가 쌓였다.

똑똑, 땀방울이 턱을 따라 흘러내렸지만 도화지는 인식조차 못 했다. 그만큼의 집중력이 최고로 발휘되고 있었고 어느 순간 그녀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올 때 드워프가 말했다.

“됐군.”

그녀가 옆을 돌아봤다.

“끝이에요?”

“왜? 더 하려고?”

“아뇨! 싫어요!”

분명 그녀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작업이긴 했지만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여기서 더 만져도 의미가 없으니 그만하는 게 맞지.”

드워프가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웬만한 드워프도 이런 작업량이면 지쳐 나가떨어질 텐데 인간 소녀가 해낸 거다. 아, 저쪽 우람한 청년은 강해 보이니까 그렇다 쳐도 도화지는 의외였다.

“이야! 끝이다! 히히!”

미션을 완료한 도화지가 기뻐서 폴짝폴짝 뛰었다. 확실히 전보다 강력해 보이는 그녀의 망치는 이제 2면이 아닌 4면으로 공격할 수 있었고 가시처럼 돋은 뿔은 무시무시했다.

“함부로 사람에게 휘둘러선 안 돼. 뼈가 부러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니까.”

“알아요!”

도화지가 망치를 들고 김우태에게 뛰어갔다.

“오빠, 멀었어요?”

“나도 거의 다 했어. 후우…. 이 부분이 골치 아팠는데 겨우 넘겼다.”

저주 인형이 들 수 있도록 앙증맞은 손잡이가 필요했다.

“참 끔찍하게 잘 만드셨네요.”

“작아도 쉬운 게 아니더라고.”

김우태가 칼을 들고 요리조리 보다가 인형에게 건네주었다. 인형도 그간 계속 김우태의 작업을 지켜보았기에 이 칼이 자신의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팻이 아이템을 장착했습니다.』

“와, 섬뜩하다!”

칼을 들고 아장아장 걷는 인형을 보며 도화지가 감탄했다. 밤에 마주치면 오줌 싸겠다.

“후후, 나도 이제 공격력이란 걸 보유한 건가.”

인형을 잡고 휘두르는 정도에 그쳤던 단순한 방법만 썼던 김우태였는데 앞으론 칼을 이용할 수도 있었으니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두 사람에게 드워프가 다가왔다.

“민준이 떠난 지 일주일째야. 자네들은 어떻게 할 텐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하는 드워프를 보면서 김우태가 피식 웃었다.

“그 녀석, 한 달 넘게 정글에서 살았던 적도 있어요. 고작 일주일이잖아요.”

도화지도 웃었다.

“민준이가 못하면 우리도 못 해요. 괜히 가서 방해만 될지도 모르고요. 길이 엇갈려도 골치 아프고.”

두 사람은 남기로 했다. 어떤 미션이 나오든 민준인 다 이겨낼 거란 강한 믿음이 엿보였다.

“흠흠, 좋네. 정 그렇다면 놀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자네들에게 부탁을 해도 될까?”

“말씀만 하세요!”

“좋습니다.”

두 사람도 망치질만 해서 그런지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나를 따라오게.”

드워프가 밖으로 나가자 두 사람도 그 뒤를 따랐다. 그 길에서 도화지가 물었다.

“우리가 얼마나 여기 있었죠?”

“보름쯤 됐나?”

규칙적으로 먹고 잔 게 아니라서 시간개념조차 잊었다.

밖으로 나오자 가슴이 탁 트였다.

“와! 시원하다!”

드워프가 저편을 보며 말했다.

“용암이 흐르는 곳에 가면 오팔이란 보석들이 있을 거네. 자네들이 그것을 10개씩만 갖다주게나.”

“…오팔이요?”

“민준이가 했다던 그건가?”

드워프가 물었다.

“이번에 자네들을 지켜보니 손재주가 남다르더군. 정식으로 세공을 배워볼 생각 없나?”

“아앗!”

도화지가 깜짝 놀랐다. 민준이가 드링크를 만드는 것처럼 보조직업이 생기는 것이다.

“좋아요!”

드워프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기술은 무기 제작과 보석 세공이라네. 한 사람이 둘 다 하기엔 버거울 테니 하나씩 익히는 게 어떤가?”

“저는 보석 세공할래요!”

보석이란 말에 도화지의 눈빛이 무섭게 반짝거렸다. 그걸 본 김우태가 픽 웃으며 자긴 무기 제작을 하겠다고 했다.

“좋네. 우선 오팔부터 따오게. 기술은 그것들을 가져오면 전수해줄 것이니.”

“네!”

“고맙습니다. 어르신.”

드워프가 뒷짐을 지고 돌아가자 도화지와 김우태는 오팔이 있을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움찔했다.

“저거야?”

“허얼….”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암 구덩이 안에 오팔이 쏙쏙 박혀 있었다.

“저걸 어떻게 꺼내?”

“모, 모르겠어요. 오빠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봐요.”

“야, 너도 같이 해야지.”

“전혀 떠오르질 않는걸요?”

“으으음….”

민준인 활을 쓰니까 어찌어찌 해결한 것 같은데 두 사람은 난감했다. 도화지의 망치는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고 저기까지 내려가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발판 같은 게 필요할 것 같은데.”

“그것들부터 만들어서 올까요?”

“그렇다고 해도 내려가는 것도 문제야.”

답답한 듯 오팔을 보던 도화지가 문득 김우태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김우태의 저주 인형을 빤히 봤다.

홱!

저주 인형이 얼굴을 돌려버렸다. 하지만 도화지는 후후, 웃으며 김우태에게 다가와 말했다.

“우린 못 내려가도 얘는 되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떨어지면 어떡하냐.”

“오빠가 떨어지는 것 보단 낫지 않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새 정이 들었다. 이젠 자다가도 인형이 없으면 허전할 지경이었다. 저주 인형에서 애착 인형으로 발전한 사이였기에 김우태가 망설일 때 도화지가 말했다.

“얜 가벼워서 괜찮을 것 같아요. 줄 묶어서 내려봐요! 우리 낚싯줄 있잖아요!”

칼도 만들어줬으니까 파내면 될 것 같다.

“후… 알았어. 그 방법밖에 없으면 해봐야지.”

줄을 단단히 잡고 있으면 놓칠 일은 없을 것이다. 오팔을 담을 가방을 인형에게 매주고 조금씩 내리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

.

.

일주일쯤 됐나?

“어렵네. 어려워.”

나는 용암지역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전에도 다른 지역에서 이쪽으로 넘어온 경험이 있었기에 지역을 이동하는 것엔 거부감이 없었지만, 어르신의 미션이 해결될 조짐이 없다는 것이 답답했다.

“아오…. 왜 저렇게 빠른 거야.”

아리에서 내려 걷고 있다. 초원처럼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는데 500미터쯤 저편에 괴상한 생물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일주일이나 따라왔다.

그르르르르.

범이도 침을 줄줄 흘리면서 혀를 빼물었다. 아리와 가이까지 총동원해봤지만, 놈은 얼마나 약삭빠른지 잘도 도망 다녔다.

‘저놈이 열쇠인 건 맞는데.’

미션이 갱신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저 녀석을 잡아야 한다는 직감이 왔다.

“망할 족제비 같으니라고.”

족제비처럼 길쭉한 몸은 얇은 틈이나 구멍에도 쏙쏙 들어갔고 어찌나 빠른지 일정 거리 이상을 좁히질 못했다.

활?

오지게도 쐈었다. 하지만 단 한발도 명중하지 않았고 이젠 내 활 솜씨에 의문이 들 정도였다.

“후우우….”

좀 쉬었으니 다시 추적해야 했다. 내가 움직이자 놈도 엉덩이를 바닥에서 뗐다. 그러고 보면 저놈도 참 이상하다. 우리를 완전히 따돌릴 능력이 있는 것 같은데도 저렇게 우리가 쉬면 지켜보고 있었다.

이젠 뛸 필요도 없었다. 녀석을 향해 걷자 족제비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이동했다. 마치 따라오라는 것 같았는데 반나절을 더 가자, 큰 나무들이 보였다.

‘여긴 처음 보는데.’

내가 그간 다닌 지역은 다섯 곳이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서 풍경이 변한 곳도 있었지만 설원부터 용암, 차우산 등지까지 많은 곳을 탐험했었다. 그런데 저런 형태의 숲은 처음 봤다. 캐나다나 북미 어딘가의 울창한 숲이 저렇던가?

“제길!”

족제비가 나무 사이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마음이 급해졌다. 평지에서도 못 잡는데 숲에 들어가 숨어버린다면 영영 찾지 못할 것 같았다.

‘나침반을 써야 하나?’

놈이 밟은 흙 따위로 설정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가 피의 주인을 잃을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아니야. 저 녀석, 멀린 가지 않을 것 같아.’

지금도 우리 쪽을 보면서 머릴 내밀고 있는 걸 보면 바라는 게 있는 거다.

나는 숲으로 진입하면서 족제비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나무 사이에 몸통이 가려있어도 꼬리가 보이거나 발자국 같은 것을 남겼다. 따끈한 똥도 보였다.

“….”

언제까지 술래잡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방법이 없었다. 며칠 전엔 아리와 가이, 범이와 사방에서 덮치려는 작전도 시도해봤지만, 놈이 땅속으로 들어가 버리면서 허무하게 끝났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숲은 넓고 울창했다. 슬슬 쉬어가야 하나 생각이 들 무렵 범이가 흠칫했다.

갸르르르릉.

나는 범이의 목덜미를 손으로 쓸어주면서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살금살금 앞으로 나갔다.

쾅! 쾅쾅!

소음이 들려왔다.

자세를 낮춘 뒤 주변을 돌아보았다. 족제비는 보이지 않았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더 전진하자 저 아래가 보였다.

“…?”

하층에 와서 저렇게 많은 ‘인간형’ 몬스터는 처음 봤다. 이족 보행하는 그것들은 나보다 1m이상 키가 컸고 피부가 짙은 갈색이었다.

【오크를 발견했습니다.】

오크라니?

【오크의 벌목장 때문에 숲의 짐승들이 집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족제비가 나를 여기로 데려온 게 저 때문이었나?

【오크의 벌목을 막으면 특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못해도 수천은 돼 보이는데….’

내가 혼자 오크들을 상대할 수 있나? 고민하다가 옆을 봤더니 원숭이가 코를 후비며 앉아 있었다.

아, 이 녀석이 있었지. 작은 족제비는 잡지 못했지만 저런 오크들쯤은 싹 쓸어버릴 수 있을 괴물이 내 옆에 있었다.

【오크의 광산을 발견했습니다.】

시선을 저쪽으로 돌렸다. 절벽에 난 큰 구멍이 보였다.

‘광산까지 있나.’

【광산을 탐험하면 특별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르신의 미션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지만, 벌목장에 광산이라니!

“크으….”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범이의 등에 올라탔다.

‘질질 끌 거 없잖아?’

오크가 얼마나 강할진 모르겠지만 저 많은 수를 하나하나 상대할 순 없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선빵이지.’

내가 활을 뽑아 들었다. 그러면서 가이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마음껏 놀아보자고!”

우워어어어어!

두 주먹으로 가슴을 치던 가이가 앞으로 불쑥 튀어 나갔다. 그러면서 마법처럼 쑥쑥 몸집을 키우더니 포효했다.

-쿠어어어어어어어어!

산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가이의 울음소리에 오크들이 날벼락을 맞은 듯 멈춰서 이쪽을 보다가 꿈을 꾸는 사람들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와아아아아악!

-커어어어억!

놀라자빠지기 시작했는데 오크가 크다지만 그건 내 기준에서지 가이에 비하면 꼬마들 정도로 보일 뿐이었다.

-쿠오오오오오!

가이가 달려들자 도끼를 쥐고 나무를 베던 오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괴물이다!

-으아아악! 도망쳐!

-저런 괴물이 어디에서 나온 거야?

너네도 괴물이거든?

밖은 가이에게 맡겨도 될 것 같으니 나는 범이를 타고 곧장 광산으로 향했다. 아리가 내 옆에서 우다다다닥! 뛰어오고 있었는데 거대 원숭이를 영접한 충격 때문인지 오크들은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콰앙!

가이가 손에 잡힌 나무들을 사방에 집어 던졌다. 말이 나무지 가이가 집어던지니 폭탄처럼 떨어졌다.

잘한다! 잘해!

가이가 날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렸다. 서울에선 저럴 수 없으니 갑갑했는데 여기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하! 가자!”

나는 범이를 독려하며 광산으로 직행했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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