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어이쿠! 어서 오게나!”
외로운 드워프는 손님을 반겼다.
“안녕하세요!”
“우와! 여기서 혼자 사시는 거예요?”
라면 한 상자를 내려놓으며 나는 어르신과 손을 잡았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일이 많았어요.”
“아니야, 나한텐 엊그제 보고 또 보는 것 같은 기분인걸?”
하긴 수백 년을 혼자 살았는데 최근 내가 드나들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좋을까?
“다들 앉지! 내가 오랜만에 요리실력을 뽐내봐야겠어!”
왁자지껄한 식사가 끝나고 우린 둘러앉아 얘길 했는데 자연스럽게 무기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흠, 그 망치. 참으로 특이하게 생겼구먼.”
“이래 보여도 되게 좋아요! 뿅뿅! 때리는 맛도 있고요!”
“잠깐 봐도 되겠나?”
도화지가 망치를 건네주자 어르신은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도화지에게 말했다.
“이거라면 더 강하게 할 수 있겠는데.”
“정말요?”
“하지만 시간이 걸릴 거야.”
“기다릴 수 있어요!”
“내가 만든다는 게 아니라 자네가 직접 두드려야지.”
“아….”
내가 쓰게 웃었다. 나도 여기서 무기를 만드는데 한 달 넘게 걸렸었다. 그 고생을 떠올리면 아찔하지만, 둔기가 주무기인 도화지에겐 굉장히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김우태가 물었다.
“저도 하나 만들면 안 될까요?”
어르신이 김우태의 품에 있는 인형을 가만히 보았다.
“자네는… 짐작조차 못 하겠군. 그 인형이 무기인가?”
“아, 네.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그러면 차라리 그 인형에게 망치나 도끼, 칼을 쥐여주는 게 어떤가?”
“오…! 그거 좋겠네요!”
칼이라니… 사탄의 인형이냐?
“좋아! 소화됐으면 바로 시작해보세나!”
“오오오! 좋습니다!”
저 인형에게 칼까지 들리면 어떤 대참사가 벌어질지 감히 예상조차 못 하지만 더 강해질 수 있다니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
“저는 둘러보고 올게요.”
두 사람은 무기 미션을 받았으니 그것만 해결하면 되겠지만 나는 이곳에 온 이후로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 때는 무작정 돌아다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범아, 가자!”
갸웅!
범이가 따라붙자 나는 빠른 걸음으로 밖을 향했다.
최근에 온 것 같은데 아주 오래된 기분이다. 수호자의 돌로 균열을 만들어뒀으니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었지만 재능마켓 자체가 하루 1회 이용에다가 다른 미션들 하느라 정신도 없었다.
‘여긴 묘하게 평화로워.’
사방에서 용암이 부글부글 들끓고 있었지만 풀 한 포기 없다는 게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알고 보면 저 용암 안에 물고기까지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개미 한 마리조차 없는 지역이었다.
반나절쯤 돌아다니다가 다시 어르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오, 마침 왔군! 라면 먹으려고 했는데!”
“호호호! 제가 맛있게 끓여드릴게요!”
“아니야, 손님에게 그러면 쓰나. 내가 해물라면으로 기가 막히게 끓여주겠네!”
어르신의 어휘력이 늘었다…. 김우태와 도화지의 영향을 받았나?
“호호호호! 라면이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 죽을 때까지 이것만 먹고 살 수도 있지!”
다음엔 더 다양한 라면들로 구성해서 가져와야겠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기분이다.
내가 앉아서 물었다.
“뭐 만들기로 했어요?”
“나는 뿅망치 다듬을 거야! 더 강한 뿅망치로!”
“난 어차피 인형이 내 손에서 안 떨어지니까 작은 칼 만들어서 얘한테 주려고.”
결국 사탄의 인형 트리로 가는 구나.
“그러면 필요할 때 얘가 스윽 잠입해서 뒤에서 칼로 콱!”
아, 생각해도 끔찍하다.
“이번에 콘서트장에서 싸웠을 때 그런 점이 아쉬웠거든. 저주 자체는 좋은데 타격했을 때 파괴력이 부족하니까. 근데 얘가 칼을 쥐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어르신이 물었다.
“피의 주인을 만났다면서?”
“네, 아찔했어요.”
“살아 있는 게 기적이지. 허허허! 하지만 그들의 힘이 다 회복하기 전에 끝장을 봐야 하네. 절대자들은 온전한 힘을 지녔을 때 나라 하나를 쉽게 부숴버릴 수도 있고 종족 하나를 전멸시킬 때도 있었다고 하니까 그렇게 성장하기 전에 결판을 내야 하네.”
“그럴 생각이에요.”
그래서 미션을 다시 시작하고 있고.
“자네 활 말인데.”
“네?”
“그 활대 부분을 양쪽으로 날카롭게 다듬으면 급할 때 휘두를 수 있지 않을까?”
“아…?”
“언제나 원거리에서만 싸우는 게 아니라면 그 자체로도 파괴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최근 망치를 쓴 적이 있나?”
그러고 보니 그렇다. 활을 쓰다가 다른 무기를 꺼내는 것도 힘들었고 내 스킬 자체가 죄다 활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고정관념을 깨면 얼마든지 다양한 무기가 만들어지지. 보통 사람이라면 다루기 어렵겠지만 자네들의 체력과 힘이라면 능히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한번 해볼게요.”
『미션을 갱신합니다.』
『무기 제련: 드워프의 기술력으로 무기를 강하게 다듬을 수 있다.』
이번엔 난입 같은 극강의 난이도의 미션은 아닌 것 같았다.
‘다행인가.’
하지만 이어 등장한 잊고 있던 미션이 떠올랐다.
『용암상어를 사냥하세요.』
‘아….’
이게 있었다. 놈을 사냥하려면 용암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어르신의 낚싯대론 놈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다 보면 되겠지.’
뭐든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으니 일단 무기 제련부터 시작하자.
“아! 배부르다!”
“그러면 이제 다시 해볼까!”
첫날이라서 그런지 두 사람은 활기가 넘쳤다. 저게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넘어가면 녹초가 되겠지만 지금은 굳이 말해줄 필욘 없을 것 같았다.
『시위를 해제했습니다.』
나도 활에서 부품을 분리했다. 항상 쓰는 물건이었지만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이것 자체가 무기가 된다라….’
가능성은 충분한 이야기다. 내 힘은 저번 미션에서 +2가 추가되어서 이젠 몽둥이만 휘둘러도 위력적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순발력이나 모든 능력이 다 증가했으니 근거리 전투도 혼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힐러가 있다. 다소 부상을 입어도 김우태를 믿으면 회복할 수 있지 않나?
‘이 위쪽 끝부분을 창처럼 뾰족하게 만들자.’
칼처럼 날을 세울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활 대가 기니까 한쪽을 손잡이처럼 잡고 다른 부분으로 찌를 수만 있어도 급할 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도 얼마 안 걸릴 거고.’
가방에서 망치를 꺼냈다. 그리곤 익숙하게 작업을 이어갔는데 드워프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린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을 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사흘이 지나자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다.
깡! 깡! 깡!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처음엔 웃고 떠들던 김우태와 도화지도 어제부터 점차 말을 잃어갔다. 지루해서가 아니다. 몰입하고 집중하는 장인의 얼굴이었다. 특히 도화지는 망치를 두드리면서 자신의 타격점을 일관되게 찾고 있었는데 그녀에겐 보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라면을 넉넉하게 가져오길 잘했어.’
다음엔 몇 상자를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린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일주일째.
“후….”
예상대로 내 작업이 가장 먼저 끝났다.
“오…! 멋지구먼!”
“다 어르신 덕분입니다.”
나 혼자였다면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조심히 다뤄야 해. 날이 없다고 하지만 이 부분이 자네 배를 찌를 수도 있어.”
“넵!”
『무기 제련에 성공했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무기란 게 본래 타인을 상하게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지만 송곳처럼 뾰족한 활의 윗부분을 보니 섬뜩했다. 아래쪽으로 시위를 걸 수 있는 홈을 파두었고 두 손으로 활대를 잡아보니 창처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뭐, 급할 땐 그냥 후려쳐도 되겠지만.
나는 활을 놓고 김우태에게 다가갔다.
“잘 돼 가요?”
“응. 며칠만 더 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생각보다 쉽질 않네.”
칼이란 건 작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날을 벼르는 작업은 어차피 똑같았고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인형에 맞춰야 하니 바닥에 질질 끌리지 않게 적당한 크기를 잡는 것도 중요했다.
“너무 큰가?”
“약간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조금만 더 줄여야겠다. 재수 없으면 이게 날 찌르겠어.”
저주 인형은 김우태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도 망치질 하는 김우태의 등에 매달려 있다. 저 녀석의 손에 칼까지 들려있다면….
‘흐미.’
등에 칼을 꽂는 거로 보일 것 같았다.
보면 볼수록 정이 사라지는 인형을 뒤로하고 이번엔 도화지에게 걸어갔다.
“어때요?”
“어려워. 근데 재밌어.”
도화지의 망치는 더욱 커졌다. 어르신의 조언으로 기둥 부분을 늘리고 머리의 중간 부분에 가시처럼 뾰족한 뿔을 달았다. 항시 뿅뿅! 때리는 것 말고도 다양한 공격 방법을 구사할 수 있도록 육중한 둔기 본연의 쓰임을 찾으려는 것이다.
‘철퇴 같네.’
저 부분으로 절대 맞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두 사람의 무기를 보고 있자니 미완이었지만 벌써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깡! 깡!
도화지가 집중하자 나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는데 어르신이 내 뒤를 따라왔다.
심심했는지 범이와 아리, 가이도 우릴 따랐다.
휘이이이이잉.
밖으로 나가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대장간 같은 어르신의 집에서 며칠을 처박혀서 일만 했더니 삭신이 쑤셨다.
내가 서자 어르신이 내 옆에 멈추며 말했다.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네?”
“뭐든 말이야. 자네처럼 끈기 있는 사람은 드무니까.”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오팔을 땄다. 그런데 지금은 능숙하게 무기를 만들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았는데 이만큼이나 삶이 달라진 것이다.
“떠나고 싶지 않으세요?”
도화지와 잘 어울리는 어르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혼자였다면 계속 뭣 모르고 살았겠지만 이젠 행복이란 맛을 봐버린 것이다.
그가 피식 웃었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야지. 이 나이에 동족을 찾는다고 해도 꼰대 소리밖에 더 듣겠나?”
꼰대라니, 어휘력이 더 늘었다.
“나는 지금이 편해. 자네들도 종종 찾아오니까 더할 나위 없고.”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저 웃을 수밖에.
“아, 그보다 말이네.”
“네.”
“최근 이상한 무지개가 저쪽 하늘에서 보였는데 수백 년간 그런 일이 없었거든?”
“무지개요?”
“자네가 세계수를 복원한 것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이곳 기후가 변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그래요?”
“마침 자네 친구들이 작업하려면 시간이 걸릴 터이니 자네가 한번 돌아봐 주겠나?”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
‘아?’
무기 제련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늙은 몸으로 다니기 힘드니 답답하네.”
“제가 돌아볼게요. 저 녀석이 있으니까 금방이에요.”
저쪽에서 놀고 있는 아리를 보면서 내가 말했다.
“고맙네. 자네를 만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어.”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하!”
내가 아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미션을 받은 김에 바로 시작하자.
“친구들에겐 내가 전하겠네. 무사히 다녀오게.”
“네엡!”
이땐 미처 몰랐다. 여길 중심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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