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98화 (198/277)

#198화

월요일.

우린 재능마켓에 모였다. 주말엔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모두 초조한 시간을 보냈던 것인지 이제야 한숨 돌리는 표정들이었다.

갸웅.

범이와 가이가 뒤엉켜 노는 모습을 보니 이제 현실로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이 비현실이 더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재능마켓이 우리에게 이만큼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도화지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한 바퀴 돌고 올게요! 결정되면 알려줘요.”

“적당히 해, 너무 기운 빼도 안 좋아.”

“네네!”

그녀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기구 쪽으로 걸어갔다. 1층에 있는 각종 기구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게 아마 그녀가 아닐까 싶다.

그런 도화지를 보며 김우태가 내게 말했다.

“어떻게 할래? 오늘은 들어가야지?”

“더 미룰 순 없으니까요.”

난입 미션 이후로 하층에 넘어가는 것이 다소 망설여진 분위기였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필라테스만 하면서 지낼 순 없었고 강해지려면 회피가 능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계획을 짜야만 했다.

“형도 아시다시피 미션 난이도가 갈수록 장난이 아니에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준비해야 하니까 생각나는 거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나야 뭐 있겠냐. 부딪히고 보는 거지.”

김우태의 ‘불끈 쉐이크’는 강남 짐에서 주말에 뜨거운 반응이 났다고 하니 곧 수익으로 직결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물건의 양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군인들이 필수품으로 군장을 준비하듯 우리도 최대 효율을 내는 물건을 수시로 꾸리고 있었고 편의보단 생존과 전투에 초점을 맞추려고 연구 중이었다.

“하, 올 스텟 +2가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네. 몇 날 며칠 샌드백 쳐도 안 지칠 것 같아.”

“대단한 거라니까요.”

게다가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까진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의 미션을 돌아가면서 해왔는데 주말 동안 몸이 편해져서 그런지 좋은 아이디어가 자주 떠올랐다. 그중에서 하나가 김우태와 도화지의 미션 순서를 똑같이 맞추자는 것이었다. 도화지가 먼저 재능마켓에 합류했기에 순서가 앞서 있었는데 그녀가 한 타임을 쉬든 아니면 김우태가 따라잡든 하게 되면 똑같은 곳에 가서 두 사람의 미션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매우 좋은 의견이었기에 김우태는 이미 오늘 아침 일찍 재능마켓에 들어와서 시간을 다 소모 중이었다. 도화지 역시 나보다 먼저 와서 훈련 중이었다.

“피곤하시면 형도 좀 주무세요.”

“아니야. 많이 잤어. 어질어질해서 누워도 못 잘 것 같고.”

나도 해봐서 알지만 재능마켓에서 장기체류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24시간이나 48시간 정돈 어렵지 않아도 그게 240시간, 480시간이 되면 우울증이 올 정도였다. 1,000시간이면 무려 40일이 넘어간다. 사람이 그립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았다. 그걸 이겨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요소는 오직 강해지겠다는 일념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김우태의 모습은 평소 그답지 않게 나른해 보였다. 한 단계 성장한 분위기였는데 시간은 모두에게 시련과 성장을 동시에 선물하는 것 같았다.

“아 참, 오면서 뉴스 보니까 태창 얘기가 많더라.”

“콘서트장 사건도 시끄럽더라고요.”

경찰이 몇 명 죽었다고 했는데 죄책감도 들었지만, 우리가 막지 않았다면 더 큰 희생이 있었을 건 확실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놈은 흡혈귀다. 우리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 같은 것이라 존재 자체가 민폐였다.

“우리 얘긴 한 마디도 없다는 게 다행이겠지?”

“그럼요. 근데 조심하긴 해야 해요. 전에 이 근처에서도 경찰을 봤거든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오피스텔 주변을 잘 봐야 해요.”

“후…. 미션도 벅찬데 경찰까지. 어째 우리 편이 하나도 없냐.”

“어쩔 수 없잖아요. 이건 누가 이해해줄 것도 아니고.”

내가 씁쓸하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우린 적응을 했지만 여길 처음 보는 사람은 무척 낯설 것이다. 일단 저기서 노는 표범과 원숭이는 이 세상에 없는 생물이었고 우리 근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새는 전설의 주작이다. 나도 가끔 이런 걸 떠올리면 어이가 없는데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콘서트장은 물탱크 폭발, 태창 바이오는 합선에 의한 화제로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이거, 좀 찝찝하지 않냐?”

우리가 그렇게 싸웠는데 수상한 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 자체가 더 이상했다.

“누군가 고의로 덮고 있는 것 같긴 하죠?”

“그러니까. 사람이 죽었어. 우리가 죽인 건 아니지만 부검만 해도 물에 빠져 죽은 게 아니란 걸 알 텐데. 게다가 그 뱀파이어들, 우리가 회수하지 못했으니까 그것들 시체도 발견했을 건데 왜 그 얘긴 하나도 없어?”

경찰 쪽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슬쩍 물어보겠지만, 우리 인맥으론 한계가 뚜렷했다. 무조건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몇 시간 남으셨어요.”

“7시간.”

“알았어요. 그러면 우리도 쉬다가 2시간 전에 준비하죠.”

우린 요즘 ‘시간을 태운다.’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와 도화지 같은 경우는 필요한 공부도 하면서 미션과 필라테스를 수행하고 있었고 김우태는 헬스장에서 할 운동을 여기서 더 몰아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우태의 근육은 날이 갈수록 더 우람해졌고 도화지의 몸은 균형 잡힌 아름다운 매력이 풍겼다.

나는 유리 벽으로 걸어가서 팔짱을 꼈다.

최근에 미션들을 통해 포인트 벌이도 성공적이었고 필라테스도 더욱 단계가 올라가고 있었는데 세계수 미션에서 모든 스텟+2을 보상으로 받은 덕분에 지력이 더 올라가서 전보다 폭넓은 사고의 통찰이 가능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김우태와 도화지 역시 기억력이나 이해력이 좋아졌다.

‘웬만한 아이템의 효과는 드링크로도 커버할 수 있어.’

미션을 끝낼 때마다 빈 병은 계속 나오고 제조장까지 확보했으니 드링크를 많이 만드는 건 무조건 이득이었다.

‘이제 자잘한 아이템을 늘리는 것 보단 확실한 하나를 사는 게 좋을 거야.’

유리 벽 안엔 10만 포인트 대의 물건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가 미션을 하면서 얻는 아이템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때에 따라선 물폭탄 드링크 같은 것들이 훨씬 압도적인 성능을 내고 있었기에 나는 이제 더 위를 보게 되었다.

『기적의 산물(유니크):모든 스킬효과 두 배 상승, 50만P.』

가령 이런 아이템은 크기도 작은 액세서리 모양이라 소비도 간편하고 내가 보유한 일격필살들을 훨씬 더 강하게 해준다. 나 혼자 무작정 헤딩할 때는 50만 포인트를 상상도 못 했겠지만, 지금은 셋이 함께 미션을 돌다 보니 얻는 포인트도 많았고 전보다도 빨랐다.

『드링크 명인(유니크):모든 드링크 효과 두 배 상승, 40만P.』

이러한 물건도 있었다. 그저 군침만 흘릴 수밖에 없는 아이템들이 주로 40~50만 포인트 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100만으로 가면 넘사벽이 많았지만 그렇게까지 모으려면 몇 달은 걸릴 것이었다. 최대한 현실적으로 목표하기 좋은 것이 이 유니크 아이템 구간이었다.

『악마의 렌즈(유니크):눈이 마주친 대상을 짧은 시간 구속할 수 있다. 45만P.』

가끔 여기 서서 아이템을 보고 있자면 내가 게임을 하고 있나 착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 물건들은 사는 즉시 현실에서도 써먹을 수 있다. 포인트가 많으면 전부 다 사서 무장을 하고 싶다. 그러나 세상엔 공짜가 없는 법, 포인트를 벌려면 열심히 뛰어야 한다.

‘일단 이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해놓고 포인트를 벌자.’

내게 필요한 아이템을 점찍어두고 드링크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소재 아이템들은 김우태와 도화지가 내게 다 몰빵해주고 있었기에 부족해서 못 만드는 경우는 없었다.

『드링크를 숙성합니다.』

불바다나 물폭탄 드링크를 꽤 유용하게 써먹은 기억이 있었기에 무조건 많이 만들어서 다양하게 확보하는 걸 중점으로 하고 있었고 때에 따라선 어디에 써야 할지 난해한 효과의 드링크가 만들어졌지만 이것들도 어느 순간엔 꼭 필요할 거란 예감에 잘 챙겨두고 있었다.

“후…. 이제 좀 개운하네.”

5시간 동안 내리 운동을 하고 나서 저런 말을 할 정도로 도화지도 체력이 엄청나게 늘었다. 이번에 얻은 모든 스텟+2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김우태는 곰과 싸워도 이걸 것 같았고 도화지도 올림픽에 나가면 몇 종목 정도는 가볍게 석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싸우는 상대는 그 정도론 이길 수 없는 괴물들이었다.

“씻고 낮잠 자고 내려올게.”

“네. 몇 시간 남으셨어요?”

“1시간 59분!”

재능마켓 안에 있다 보면 철저하게 개인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김우태가 전문가라 가끔 자세를 잡아주거나 기구 활용법을 알려주긴 하지만 운동 자체가 혼자 이겨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각기 받은 미션도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와 이렇게 짧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 아무리 내성적인 사람이고 집돌이라 해도 혼자 일주일 넘게 처박히면 슬슬 미쳐버릴 것이다.

‘다들 잘 따라와 주고 있어서 다행이야.’

재능마켓에서 혼자 1,000시간을 태우려면 성향도 매우 중요하다. 전에 TV에서 어떤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섬에서 등대를 지키는 공무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고독이라고 했다. 능 똑같은 풍경과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인간의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지점을 아득히 지나버린다고 했다.

여기도 비슷하다.

그나마 내가 강해지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덕분에 이 악물고 버티는 거지 이게 월급 받고 하는 일이었으면 다들 진즉 때려치웠을 것이었다.

이런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약속한 시각이 왔다.

우린 커다란 가방을 메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모였다. 가방 하나에 40kg가 넘어갔지만 다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기에 추가로 손가방까지 들었다.

“마지막으로 체크할게요.”

두 사람이 나를 보았다.

“들어가자마자 흩어지게 되면 알아서 각자 살길을 찾으면서 누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보는 것.”

내 말을 도화지가 받았다.

“전처럼 난입미션으로 이어지면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동료를 찾을 것.”

김우태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션을 하면서 얻은 모든 정보를 서로 공유할 것. 됐지?”

지금까진 각자 본 것들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해주거나 했었지만, 피의 군주와 붙어보니 작은 것도 놓치고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작은 가시가 세계수를 되살릴지 누가 알았나?

모두 지력이+2가 올라서 그런지 이해가 빨랐다. 내가 처음 지력 스텟을 경험했을 때가 떠오른다. 교과서를 통째로 외울 수 있을 정도 아니었나?

“좋아요.”

나는 범이의 머릴 쓰다듬으며 계단을 올랐다.

“뭐가 나오든 지금의 우리라면….”

일행을 돌아보며 웃었다.

“할 수 있을 거예요.”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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