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이제 엘프는 당신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수호자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경험치가 큰폭으로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세계수가 뭔진 모르겠지만 마법처럼 나타난 나무는 일대를 조금씩 바꿔놓고 있었는데 정글을 이룬 초록 나무들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와… 아름다워. 이런 건 처음 봐.”
도화지가 울먹거렸다. 슬퍼서가 아니다. 가슴 깊을 곳을 짓누르는 묵직한 감동은 생명력의 근간이었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면이었다.
“멋지네.”
김우태도 울컥했는지 손으로 코를 비비면서 감정을 추슬렀다.
【모든 파티원의 스텟이 +2 올랐습니다.】
【팻이 성장했습니다.】
부수적인 보상도 있었지만 우린 한참 동안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본래 이런 모습의 나무였는데 가지가 잘려 죽어있었던 것 같았다. 앙상한 것 같은데도 신비로웠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이 없음에도 생동감 넘치는 나무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이제 세계수의 힘을 끌어쓸 수 있습니다.】
【스킬: 강력한 집중(전설)을 얻었습니다.】
【강력한 집중: 24시간에 한 번 위대한 힘을 사용할 수 있다. 1분간 온몸의 세포를 폭발시켜 초인의 경지에서 관조할 수 있다.】
가슴이 뛰었다.
‘전설 스킬?’
더 좋은 건 이 스킬이 나만 생성된 게 아니란 거다.
“우와! 쩐다!”
김우태가 펄쩍 뛰었다.
“레전드래! 레전드! 꺄아!”
도화지도 흥분했다. 나만 1분간 초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적재적소에 스킬을 사용한다면 총 3분의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진짜 좋은데?’
피의 주인과 싸울 때 강력한 스킬 하나의 필요성을 너무도 절감했었다. 그걸 드링크로 대체하긴 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24시간이란 제한이 있긴 하지만 잘 맞춰 쓰면 될 것 같았다.
규우?
범이가 내게 다가와 머릴 비볐다. 녀석의 머릴 쓰다듬어주며 나는 빙긋 웃었는데 팻이 성장했다는 의미가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이번 여정에선 참으로 많은 것들을 얻었다.
“이제 돌아가자.”
범이도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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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으로 돌아왔다.
미션이 끝날 때까지 들어올 수 없었어서 그런지 이렇게 편하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
“와…! 집이다! 집!”
도화지도 옷을 벗으며 샤워실로 직행했는데 그런 그녀를 보다가 김우태와 내가 붙박이장으로 걸어갔다. 미션을 끝냈으면 당연히 전리품을 챙겨야지 관심도 없다는 듯 씻으러 가버린 도화지는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오…! 많다!”
문을 열자 수많은 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대부분은 드링크를 만들 수 있는 소재거나 빈 병이 등급별로 있었지만 몇 개의 아이템은 완제품이었다.
【엘프의 가호: 힘+1 매력+1 방어력+1.】
“이건 딱 봐도 화지거네.”
김우태가 웃자 다음 아이템을 보았다.
【엘프의 신뢰: 민첩+3.】
구구절절한 설명이 있었지만, 아이템의 능력만 보고 쓸 사람을 정했다.
“이건 민준이 네가 써.”
【엘프의 분노: 치명타 확률 증가, 매력-1.】
“하….”
김우태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를 위한 맞춤 아이템이었지만 계속 나락으로 떨어지는 매력은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치명타가 오른다는데.
대충 아이템을 선별해서 나누고 있는데 도화지가 밖으로 나왔다.
“오! 매력템! 좋아!”
아이템을 받은 도화지가 웃을 때 내가 말했다.
“모은 포인트로 정비하고요. 이제 상의해야 할 것 같아요. 잠시 집중해주세요.”
전이었다면 미션 하나가 끝나면 뿔뿔이 흩어져, 집에 가서 늘어지게 잠이나 잤겠지만, 오늘부턴 그럴 수 없었다.
“그놈이 우릴 알아내기라도 하면 곤란해요. 우리뿐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까지 위험해질 거니까.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바로 연락하고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으면 집으로 가지 마세요.”
피의 주인뿐 아니라 콘서트장에서 우리 모습이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경찰이라도 붙는 날엔 매우 피곤해질 것이 분명했다.
“알았어. 며칠 지켜볼까? 주말 동안만이라도.”
“네, 평범하게 생활하면서 누가 움직이는지 보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범이는 내가, 아리는 김우태가, 가이는 도화지의 곁에 머물게 했다. 비상 상황에서 녀석들이 있으면 어떻게든 탈출할 수 있으리라.
“진짜 힘들었다. 난입 미션.”
김우태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역시 이런 미션이 나오고 심지어 그 미션이 피의 군주에게 직행하리라곤 전혀 예측할 수 없었는데 그래서 앞으로 무작정 미션에 뛰어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운이 좋았지만, 다음에도 계속 운이 따르리란 보장이 없었다.
“수시로 연락하자!”
재능마켓에서 나와 지하철로 들어가며 헤어졌다. 나는 핸드폰으로 기사부터 훑었다.
‘여의도 태창 바이오 본사 건물 화재,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아.’
내가 던진 드링크 때문인 것 같다.
‘그놈은 본거지를 옮겼겠지?’
태창 바이오란 회사와 어떻게 엮여있는진 모르겠지만 집을 잃었으니 숨을 곳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약이 바짝 올랐을 거야.’
엘프의 가지를 빼앗겼으니까 나 같아도 짜증이 나겠다.
핸드폰을 보다 보니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있었다.
-민준아, 너 괜찮아?
예원이었다. 아, 생각해 보니까 콘서트장에서 있었던 일이 바로 오늘이었다. 이쪽저쪽을 하도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정신이 없다. 예원이에게 답장을 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지하철의 같은 칸 사람들을 주시하면서 나침반을 꺼냈다.
“….”
7시 방향을 가리키는 바늘은 지하철이 움직일수록 조금씩 움직였는데 피의 주인으로 고정해놓았으니 놈이 어느 쪽에 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거리를 모른다는 게 문제지만.’
뱀파이어 일족.
영화에서나 보던 흡혈귀들과 싸웠고 그 우두머리와 일전을 벌였다. 아직도 제대로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큰일이었는데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란 예감이 들었다.
“…후.”
건물 하나가 불탔고 콘서트장이 물바다가 되었다. 이런 엄청난 짓을 한 사람이 일개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우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형.”
-아무 일 없지?
“괜찮은 것 같아요.”
-내일부턴 쉐이크 팔 건데 너도 올래?
“아뇨. 며칠간은 각자 생활하는 게 좋아요.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고요.”
-그래, 또 통화하자.
김우태가 생수 섞은 쉐이크를 판매하면 우리에게도 여유자금이 생길 것이다. 재능마켓의 아이템 효과는 내가 보증한다. 누구라도 한 번 맛보면 절대 거역할 수 없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건 우리 어머니 가게에서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해.’
세상을 지키겠다는 거창하고 원대한 목적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세계수가 복원하는 광경을 목격하니 가슴이 벅차올랐고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만족감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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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이 지났다.
아직도 태창 바이오의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워낙 큰 불이었기에 연일 기사가 나고 있었다.
맞은편 건물의 광수대 안가.
윤일권이 강나은과 머릴 맞대고 있었다. 광수대 외의 사람이 이곳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녀는 위화감이 없었다. 이미 주말 간 차에서 잠깐 잔 것을 제외하면 가족처럼 붙어서 의견을 교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나은이 보드판 앞에서 말했다. 보드판엔 수많은 자료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태창 바이오 본사가 날아갔지만, 여전히 주가는 떨어지지 않았어요.”
이 난리가 났으니 월요일인 오늘 주식시장에서 태창 바이오가 곤두박질쳐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래프는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
윤일권이 물었다.
“태창에서 뭘 만들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광수대에도 유능한 자원이 많았지만 강나은은 핵심을 짚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공조하기로 한 이상 모든 정보를 공유했다.
“이걸 보시면 윤곽은 아실 수 있어요. 지난달 기사인데 기적의 신약이 곧 나올 거라고 했어요. 다음날 주가가 두 배 올랐고요.”
“신약이란 게 그렇게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런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학술지에서도 태창 바이오를 주시할 정도로 그들의 기술이 엄청난 것 같아요.”
“로봇에 관한 건 없습니까?”
“네. 오로지 신약에 관한 것만 노출하고 있어요.”
“정확히 어떤 신약입니까?”
“노화 방지요.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만약 그들의 말처럼 세포 단위에서 노화를 막을 수 있다면 이건 혁신이겠죠.”
연구 단계에서 모든 임상을 거치고 시판되는 약은 극히 드물었다. 사업성도 따져야 하고 시장에 나왔을 때 얼마나 관심을 받는지도 중요했다. 그런데 ‘노화’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나 마찬가지인 부분이라서 잘만 되면 태창 바이오는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을 것이었다.
“연구소가 몇 개 있습니까?”
“경기도에만 여섯 곳이요. 정식으로 등록된 업체가 아닌 곳에서 비밀리에 연구를 더 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런 로봇을 만들려면 연구소 규모가 작진 않을 건데요.”
“그래서 전국 단위로 최근에 생겼거나 다른 곳에 인수된 공장을 찾아보고 있어요. 주도면밀한 태창 바이오라면 쉽게 노출하진 않겠지만 계속 파다 보면 뭔가 나오겠죠.”
“대표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추가로 오늘부터 본사 직원들이 강제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잖아요? 핵심 인물 몇 사람에게도 미행을 붙이면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들키지 않게.”
“네, 그게 매우 중요하죠.”
윤일권은 태창 바이오 대표의 모습을 떠올렸다. 대표이사실이 박살 날 정도로 큰일이 벌어졌음에도 그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날 걸 미리 알았던 사람처럼.’
후엔 건물 전체가 불타버렸지만, 그 사람이라면 그리 당황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게 묘했다. 사람이라면 충격을 받을만한 일이 아닌가?
“잘됐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놈들의 꼬리를 잡을 기회가 생겼으니 어떻게든 살려야 합니다.”
대원 다섯이 죽었다. 인적 손실도 컸지만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야 했다. 반드시 범인을 잡아 철창에 가둘 것이라고 다짐하는 윤일권이었는데 태창 바이오도 추적해야 했지만 핵심은 역시 한 사람이었다.
“히트맨의 동선은요? 아직입니까?”
윤일권이 강나은을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보드판으로 얼굴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목격자도 없고 CCTV에 잡힌 것도 없어요. 활 같은 큰 무기를 들고 다녔다면 분명히 눈에 띄었을 텐데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저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후반까지, 장신이고 남성일 겁니다.”
완전히 헛다릴 짚고 있었지만 설마 히트맨이 고등학생일 거라곤 상상도 못 하는 윤일권이었다.
“어딘가에 분명히 그의 모습이 찍혀 있을 거예요.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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