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95화 (195/277)

#195화

태창 바이오 빌딩 인근이 소방차로 뒤덮였다.

-비키세요! 다칩니다!

-물러서요!

수많은 인파가 불구경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렇게 큰 빌딩이 통째로 불타는 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STN 서지수입니다! 저는 지금 여의도에 나와 있는데요. 서울의 모든 소방차가 모여들고 있고 이미 100대가 넘는 소방차와 소방헬기까지 동원되고 있지만, 불길은 더욱 거세지고만 있습니다! 당국에선 불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목격자를 찾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계속….

취재진도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카메라가 꺼지자 서지수는 급히 물었다.

“어땠어?”

카메라를 든 선배가 말했다.

“실수 없이 깔끔하고 깨끗했어.”

“좋아!”

서지수는 오랜만의 생방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건물이 불타고 있고 저 안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본래 기자라는 직업이 사건사고를 따라다녀야 하니 이중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마침 근처에 있어서 다행이야.”

서지수가 차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세상만사 모두 착하고 행복하게 산다면 그녀는 직업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특종이란 언제나 자극적이고 충격적이다. 기자로 살아온 지 9년. 그녀는 이제 사람을 믿지 않았다.

“이 건만 잘 잡으면 메인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선배가 웃었다.

“그냥 단순 보도로만은 힘들지. 불이 왜 났는지 밝혀내면 모를까.”

“후… 왜 불이 났을까?”

고민해봤지만 그녀가 아는 거라곤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의 눈에 누군가가 띄었다.

“어라? 쟤는?”

“누구?”

“잠깐만 기다려!”

서지수가 힘차게 달렸다. 여기서 오래전에 알던 얼굴을 볼 줄은 정말 몰랐다.

“나은아! 강나은!”

“…언니?”

“꺄하하! 이게 얼마 만이니! 오! 경찰 됐다는 소식은 들었었는데 멋지다!”

“언니는요? 아직 거기 있어요?”

“진작 때려치웠지! 지금은 STN에 있어.”

“아….”

과거에도 그리 친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세월은 마법을 부린다. 특히 어떤 목적이 있다면 더욱 반갑다.

서지수가 물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니?”

“몰라요. 저도.”

“에이, 아는 눈치인데?”

강나은의 표정은 묘했다. 이런 화재 현장에 경찰이 출동하면 사람들이나 통제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다반사인데 강나은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는 눈치였다.

‘뭔가 있는데?’

서지수는 껌처럼 강나은에게 달라붙어서 말했다.

“헤어졌다는 얘긴 들었어. 지금은 남친 있어?”

“아뇨.”

서지수의 남자친구와 강나은의 남자친구가 서로 친구였기에 알게 된 사이. 사랑이 끝나면 이런 관계는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예쁜데!”

“언니는요?”

“나는 먹고사느라 바빠서. 헤헷.”

“저도 그래요.”

“그러니까 왜 바쁜데?”

“취재하시는 거예요?”

“직업병이야. 직업병. 서로 돕고 살면 좋지 않아?”

경찰과 기자는 가깝고도 먼 사이다. 정보를 공유한다는 관점에선 친하게 지내야 하지만 뒤통수를 때리는 일도 심심찮게 있어서 조심해야 했다. 지금 두 사람의 관계처럼 거리가 있었다.

“태창 바이오, 내가 좀 알아봤는데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더라고. 너도 그래서 온 거니?”

“뭐가 이상한데요?”

강나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정치가랑 자주 만난다는 거?”

“정치인 누구요?”

강나은의 반응을 보며 서지수가 방긋 웃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제 정보는 말씀드릴 수 없는 것들이에요.”

“흐음, 그렇게 말하면 서운한데?”

강나은도 입술을 꼭 깨물었다.

‘정치인? 누가 관련된 거지?’

강남 고급 술집의 호스티스의 죽음부터 시작해서 태창 바이오까지 이어진 일련의 모든 사건이 다 어떻게든 거미줄처럼 엮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직감이기도 하지만 광수대도 냄새를 맡고 있으니 그녀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치 쪽 얘긴 처음 들었다.

‘히트맨의 정체를 밝혀내면 다 풀릴 거야.’

그러려면 모든 끈을 다 잡아 이어야 한다.

‘언론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을까?’

이건 팀장님과 상의를 해야 할 문제였지만 특정 정보만 흘리면 놈들을 당황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왜? 있지? 알지? 갑자기 막, 말하고 싶지 않아?”

“아뇨. 그건 아닌데 우리가 공조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공조! 멋지다! 하자!”

“허락을 받아야 해요. 언니, 번호 주세요.”

“응! 줘야지!”

그녀가 명함을 내밀자 강나은은 고갤 끄덕거리면서 이동했다.

“연락할게요.”

“기다릴게! 꼭 전화해야 해!”

강나은은 임시로 설치한 수사본부로 향했다. 경찰이 삼엄하게 통제하고 있는데 그냥 경찰만이 아니었다. 광수대 대원들까지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렇게 당했으니까….’

광수대 대원들의 눈빛엔 절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잠실에서 대원 다섯이 죽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범인은 또 사건을 일으켰다.

콘서트장도 모자라 빌딩까지 태워버린 것이다.

그녀가 들어가자 회의가 한창이었다.

강남서 팀장과 광수대 윤일권이 심각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고 여러 사람이 경청 중이었다.

“제가 말하면서도 이상하다는 건 알지만 히트맨은 낮에 여기서 한차례 일을 도모했었고 그게 여의치 않자 잠실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거기서도 끝이 나지 않자 다시 이쪽으로 노선을 변경한 것이고요.”

윤일권의 말에 팀장이 물었다.

“꼭 누굴 따라다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히트맨은 표적이 있었습니다. 낮에 그 표적을 대표이사실에서 만났고 잠실로 넘어갔죠. 그런데 그 표적이 대표이사는 아닐 겁니다.”

사건이 터진 후 나타난 대표이사를 딱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러면 누가 있었다는 걸까요?”

“거기까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어떤 정보를 찾으려고 대표이사실로 잠입했다가 태창 바이오 보안팀과 마주쳤을지도 모르고요.”

회의가 거듭될수록 놈들의 동선이 눈에 그려졌다. 태창 바이오 대표이사실을 시작으로 잠실, 다시 여의도로 히트맨은 무언가를 따라다니며 일을 벌였다.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다.

“본래 히트맨은 이렇게 드러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윤일권이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엔 서장님도 계시고 남산에서 온 자원도 있었다.

팀장이 물었다.

“그런 사람이 왜 그토록 사람 많은 잠실로 갔을까요?”

“그가 원한 건 아니었을 겁니다. 표적이 많은 사람들 속에 섞이려고 했을지도 모르고요.”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어야 했다.

이때 서장이 물었다.

“CCTV는 하나도 확보된 게 없나?”

“아직은 그렇습니다. 해당 시각에 인근을 지나던 모든 차량의 블랙박스도 수소문하고 있지만, 용의자의 모습을 담은 것은 없습니다.”

“강원도 산골도 아니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그게 말이 되나?”

그래, 말이 안 된다. 그런데 그 일이 지금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이렇게 모여 있는 것이고. 하지만 높은 자라의 사람들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결과를 원한다. 확실한 증거와 대중을 설득할 자료가 필요했다.

히트맨?

그 연쇄살인마를 뭐라고 정의해야 하나?

“그 붉은 안개를 만든 화학물질은? 국과수는 아직인가?”

서장의 말에 윤일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콘서트장에서 일어난 모든 괴상한 사건을 밝혀낼 수가 없다.

게다가 가장 심각한 일은 따로 있다.

“물은?”

스프링클러가 작동한 것도 아니었다. 물탱크의 물은 모두 그대로였고 상하수도가 터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물은 대체 어디에서 왔나?

이게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원인을 찾아야지! 사람이 몇이나 죽었는데! 밖에 기자가 얼마나 와 있는지 알아?”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잠실을 벗어나 여기까지 왔지만 곧 설명해야 할 때가 찾아 올 것이다. 불에 시선이 가려져 있지만 진화된 후에는 콘서트장의 일이 연기 위로 떠오를 것이었다.

회의를 지켜보던 강나은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프로파일러인 그녀의 시선으로 보면 이 사건, 너무도 어려웠다. 히트맨이라는 범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의 목적도, 이유도 모른다. 그런데 피해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고 이번엔 사람이 많이 죽었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는 것일까?

‘두 세력이 싸우고 있는 거야. 히트맨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어. 우리가 모르는 게 더 많을 테니까.’

히트맨은 일본에서 한 마을의 사람 전부를 죽였다는 의심을 사고 있었다. 그 사건도 충격적이었지만 콘서트장을 물바다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당일에 빌딩을 불태워버리다니. 세상에 이런 테러가 또 있었나?

“에잉….”

서장이 답답한 듯 팔짱을 끼고 얼굴을 돌려버리자 윤일권이 다른 이들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만한 불을 질렀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누군가를 죽이려고 한 건 아닐 겁니다. 이제까지 파악한 그의 공격성이나 활동 범위, 은밀함이라면 일을 크게 벌이지 않아도 표적을 제거할 수 있었을 겁니다.”

서장의 얼굴이 다시 돌아왔다.

“그 두 가지가 뭔가?”

“하나는 흔적 말살입니다. 자신이 남긴 자취를 전부 지워버리려고 돌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럴듯하군. 낮에도 일이 있었다니 뭔가 흘리고 갔을지도 모르고.”

“맞습니다. 또 하나는 사건을 둘로 나눠봐야 한다는 겁니다. 낮에 히트맨이 다녀간 것은 맞지만 불을 낸 것은 그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연이었다?”

“제3의 세력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히트맨 말고 누가 또 있다는 건가?”

윤일권이 이마를 찡그렸다. 이걸 말해도 될까?

“괴물이 있습니다.”

숨긴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괴물? 그건 또 뭐야?”

서장이 황당한 듯 물었지만, 쉬이 대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중학생 정도로 짐작되는 소녀 모습을 한 괴물이 히트맨만큼이나 강한 능력으로 모종의 일을 벌이고 있다고 하면 믿어줄까?

팀장이 그를 도왔다.

“놈들이 다시 오겠습니까?”

아까 수사본부를 이곳에 차릴 때 윤일권은 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을 지른 게 히트맨이 아니라면 그는 반드시 올 겁니다. 여기서 찾으려고 했던 게 있지 않았습니까?

설마 태창 바이오가 그걸 없애려고 자작극을 벌인 것은 아닐 테지만 이젠 그조차도 완전히 아니라고 말 못 하겠다. 워낙 비현실적인 사건이 계속되니까 상식으론 단정할 수 없었다.

이때 우연히 강나은과 윤일권의 눈이 마주쳤다.

윤일권이 고갤 갸웃하며 강나은에게 물었다.

“경위님,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이쪽은 강남서 프로파일러 강나은 경위입니다.”

모두에게 소개하자 강나은은 턱을 끌어당기며 정중하게 인사하곤 앞으로 걸어갔다.

“강나은입니다. 사건 초기부터 수사해왔고 이번 연쇄살인을 모두 추적해왔습니다.”

서장이 신음했다.

“연쇄살인이라는 건가.”

강나은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정하겠습니다.”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볼 때 그녀가 말했다.

“테러입니다.”

살인이 아닌 테러, 이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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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39-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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