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위기가 감지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형.”
“…….”
김우태도 말없이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잠시 기다리는데 저 앞에서 뭔가 반투명한 게 스르륵 이쪽으로 다가왔다.
‘유령?’
전에도 이런 것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더듬이가 작동했다는 거다.
“흐으으으으으.”
온다!
나는 활을 뽑자마자 쐈다.
슈욱!
날아가는 화살이 유령을 관통했는데 말 그대로 뒤로 지나가 처박혔다. 전혀 대미지를 주지 못한 것이다.
“흐으으으으!”
유령이 화가 났는지 두 팔을 뻗으며 더 빠르게 달려왔다.
‘공격이 통하질 않아?’
내가 당황해서 움찔하는데 김우태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더니 다가오는 유령을 인형으로 후려쳤다.
“흐아아압!”
휘익!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상의 인지능력에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분명히 인형은 유령을 관통하며 지나갔는데 인형의 저주는 남아서 유령에게 먹혀든 것이다.
“오오오! 된다!”
김우태는 신이 난 듯 인형을 휘둘렀다.
휙휙휙!
“으어어어어어어!”
유령이 고통스러운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온갖 저주에 걸린 유령은 벽을 통과해서 옆으로도 갔다가 다시 바닥에서 불쑥 솟기도 했는데 놈을 자세히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물리력은 안 먹혀도 저주 계열은 되는 것 같네.’
김우태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게다가 한편으론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할지 모르니 나도 정신계 공격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놈, 별거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유령이 쏘다니는데 다시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이동해요.”
저주만 걸렸을 뿐 유령을 완전히 죽인 건 아니었기에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복도를 가로지르며 계단이 있는 중앙 통로로 나왔는데 저쪽에서 도화지가 우릴 불렀다.
“민준아!”
“누나! 뭐 있었어요?”
“아니! 아무것도 없더라!”
도화지와 합류한 우린 아까 만난 유령에 대해 말해주었다.
“움. 혹시 그 유령이 열쇠가 아닐까? 이렇게 뒤졌는데 아무것도 없다면 그놈이 뭔가 해결책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
일리 있었다.
“갑자기 공격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해요.”
“응! 가보자!”
듣고 있던 김우태가 말했다.
“그럴 필욘 없을 것 같아.”
“왜요?”
말하며 돌아선 도화지의 눈에 유령이 들어왔다.
“아, 쟤였어?”
유령은 18세쯤 되어 보이는 소녀였는데 눈동자에 초점은 없었고 표정도 음침했다.
도화지가 유령에게 걸어갔다.
“너, 말할 수 있어?”
이쪽으로 오면서도 몸이 뜻대로 잘 안되는지 빙글빙글 돌며 오던 유령이 입을 열었다.
“아우우우아우.”
“말을 못 하는 것 같은데?”
유령을 빤히 보던 도화지가 손을 내밀었다.
“나랑 친구 할래?”
가끔 보면 도화지의 머릿속은 우리완 전혀 다른 세계로 이뤄진 것 같았다. 뜬금없이 친구 하잔다고 유령이 그 말을 들을까?
“으으으으으!”
어라?
“착하네.”
듣네?
유령이 도화지의 앞에서 주춤거렸다. 도화지가 내민 손을 잡으려고도 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손이 스쳤을 때였다.
“아앗!”
도화지가 뾰족하게 외칠 만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억울해요. 억울해.”
유령의 목소리가 들린 거다.
“너, 말할 줄 아네?”
정확히 말하면 두 사람의 몸이 스치는 순간 뭔가가 작동한 것 같았지만 뜻이 통하니 뭐든 상관없었다.
“뭐가 그렇게 억울해?”
“숲이 망가졌어. 우리 숲이….”
나는 유령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워낙 불투명해서 이목구비만 구분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제까지 머리칼에 가린 그녀의 귀를 보지 못한 것이다.
‘엘프였어.’
도화지가 유령을 달랬다.
“천천히 말해봐. 너 혼자니?”
“피라미드가 숲을 망쳤어. 가지를 잃어버려서 복구할 수도 없어. 모두 죽었어.”
문장과 문장 사이가 매끄럽게 이어지진 않았지만, 뜻은 대충 통했다. 무엇보다 ‘가지’라는 단어가 중요했다.
“이거?”
내가 가방에서 가지를 꺼내 엘프에게 보여줬다.
“오오오오! 가지! 가지가 왔어! 가지를 찾았어!”
내가 가지를 내밀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퀘스트를 끝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유령은 손을 뻗어 가지를 쥐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물체를 만질 수 없는 거다.
“어떻게 해?”
도화지가 묻자 유령이 당황하면서 허둥대다가 말했다.
“왜지? 왜 가지를 잡을 수 없지?”
유령은 자기가 죽은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너는 할 수 없지만 우린 가능해. 방법을 알려주면 되잖아.”
“아아아… 방법.”
“그래 숲을 되돌릴 방법, 알아?”
“응. 따라와.”
유령이 훅 꺼졌다. 사라진 게 아니라 아래로 내려간 것 같다.
“…혼자 가면 어떡하냐.”
“제정신이 아닌가 봐요. 불쌍하게. 우리가 이해해줘요.”
도화지의 말에 내가 끄덕이며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오겠죠. 아래쪽인 것 같으니 가면서 얘기해요.”
30분쯤 지났나?
유령이 다시 나타났다.
“한참 찾았어….”
유령의 말에 도화지가 피식 웃었다.
“우리는 너처럼 이동할 수 없어. 길을 가야지. 안내해줄래?”
“…이쪽이야.”
유령이 미끄러지듯 계단을 내려갔다. 그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우린 숨이 가쁘도록 뛰어야 했는데 바닥을 1층으로 기준 한다면 2층쯤에서 유령이 멈춰 섰다.
‘여기엔 별 게 없을 텐데?’
피라미드라면 자면서도 구조를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드나들었다. 자주 온다고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목숨 걸고 탈출하려던 시간들이 있다 보니 더 선명한 것이다.
유령이 복도를 가로질렀다.
“저긴가 봐.”
도화지가 유령을 따라가며 말하자 내가 김우태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저런 게 나타나면 형이 나서주세요. 저랑 누나는 공격이 통하질 않아요.”
“오케이! 나만 믿어! 하하!”
한 건 했다는 표정으로 김우태가 웃을 때 유령이 벽을 통과해서 쏘옥 들어갔다. 그리곤 다시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미안해.”
“아니야. 우린 문으로 가면 돼. 여기니?”
“응.”
“알았어. 곧 갈게.”
도화지가 웃으며 얘기하자 유령도 차분하게 기다렸다.
스르르르륵.
닫힌 문이 열렸다.
그리고 우린 볼 수 있었다.
‘저런 게 있었던가? 아니야. 이 피라미드에만 있는 거야.’
방안엔 어지럽게 도형이 가득 바닥에 그려져 있었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물건들이 벽에 빼곡했는데 그 중심의 기계를 유령이 손으로 가리켰다.
도화지가 이끌리듯 그곳으로 가서 작은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우리 앞으로 영상이 떠올랐다.
“엇?”
홀로그램처럼 작동한 영상은 피라미드가 이곳에 오던 날을 녹화한 것 같았는데 음성이 들려왔다.
【테라포밍을 시작합니다.】
【테라포밍까지 100시간 남았습니다.】
김우태가 물었다.
“테라포밍이 뭐야?”
의외로 도화지가 대답했다.
“우리가 화성에 가서 살려면 거길 지구처럼 만들어야 숨도 쉴 수 있고 물도 마실 수 있잖아요? 그런 작업을 하는 거에요.”
“오, 똑똑한데?”
“영화에서 봤거든요!”
그게 진짜인진 모르겠지만 하늘에 뜬 피라미드는 지상을 향해 빛을 쏘았다. 그 빛은 점차 넓게 퍼지더니 구름을 모았고 대지의 토양까지 바꿨다.
“조화가 무너졌어. 토끼도, 사슴도, 나무도, 뱀도 모두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데 온통 키 큰 나무뿐이야. 온 세상이 이렇게 변하면 특정 생물만 살아갈 거야.”
유령의 말에 내 고개가 순간적으로 갸웃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그럴 것 같기도 했다.
“정글로만 이뤄진 세상?”
썩 좋을 것 같진 않았다.
“가장 큰 재앙은 균형이 무너지면 이곳이 풍성해질수록 다른 곳은 바짝 말라. 누구도 살 수 없는 사막이 늘어나고 대지가 불로 뒤덮여. 강물은 모두 마르고 폭풍은 더욱 거세질 거야. 마침내 큰 얼음들이 녹아버리게 되면 모든 곳이 물에 잠겨.”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긴데.
이후로도 유령의 얘기가 한동안 이어졌고 홀로그램도 피라미드가 테라포밍하는 모습을 한동안 보여줬는데 종합하자면 놈들이 숲을 파괴했다는 거다. 더 울창해지는 숲을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유령이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영상이 변했다.
유령은 더 침울해진 얼굴로 말했다.
“가지를 잃어버린 이후 숲을 되돌릴 방법이 없었어. 우리 종족은 어떻게든 가지를 찾으려고 온 세상을 돌아다녔지만 가지는 종적을 감춰버렸어.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서 수백 년이 흘렀어. 이제 포기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유령이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녀가 웃는 건 처음 봤다.
“네 덕분에 이제 숲을 돌릴 수 있어. 그러면 우리 마을 사람들도 다시 모일 수 있겠지?”
영상엔 숲에 살던 엘프들이 모두 떠나고 황량하게 남은 마을조차 정글에 잠식되어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얼핏 생각할 때 나무를 떠올리면 그다지 강할 것 같지 않다. 땔감으로도 쓰고 집도 짓고 베면 넘어진다. 하지만 그 나무의 뿌리는 홍수에도 견뎌내며 바위도 쪼개고 숲을 이뤘을 때는 모든 흔적을 지워버릴 수 있는 강력함을 지녔다.
‘숲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대도 엘프가 돌아올 것 같진 않지만….’
미션을 받았으니 해결하자.
“내가 뭘 해야 하지?”
질문에 유령이 도화지를 이끌어 다른 단추를 누르게 했다. 홀로그램이 정글의 어딘가를 비췄다.
“이곳에 가지를 두면 돼.”
정글이란 게 다 비슷비슷해서 저렇게 보여주면 어딘지 찾을 수가 없다.
“네가 안내해줘.”
유령은 머릴 흔들었다.
“나는 여길 벗어날 수 없어.”
지박령인가. 큰 원한을 품고 죽으면 그 장소에서 머물게 된다는 귀신 얘길 들어봤다. 자유로 귀신도 그런 종류던가?
“어어?”
김우태가 팔을 뻗었다.
“나, 저기 어딘지 알 것 같아?”
“형이요?”
“응, 전에 가이에게 잡혀서 돌아다닐 때 저 바위, 본 적 있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맞는 것 같기도 한데? 하늘에서 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기억에라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가보죠.”
유령도 우리에게 더 보여줄 게 없어 보였고 전처럼 무작정 정글을 헤매지 않아도 되니 아리를 타고 수색해보는 게 빠를 것이다.
“고마워! 꼭 숲을 되돌릴게!”
도화지가 팔을 흔들며 유령에게 인사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그간 정이 들었는지 도화지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걸 김우태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래?”
“불쌍하잖아요. 쟤 혼자 계속 저기 있을 거니까.”
자기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떠도는 유령의 기분이 어떤진 감히 상상도 못 하겠지만 그녀를 도와줄 유일한 길은 미션을 마치는 것이었다.
피라미드 밖으로 나왔다.
“아, 이제 살겠네!”
맑은 공기를 마시니까 가슴이 탁 트였다. 그런데 숲을 바라보면서 나는 피라미드가 여길 바꿔놓았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이놈들의 목적이 뭘까? 1차적으론 실패해서 돌아간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놈들이 다시 올 수도 있다는 건가?
‘어떻게든 막아야 해.’
서울 상공에 피라미드가 나타나서 테라포밍을 해버리면 경기도까지 정글이 되어버릴 거다. 모든 문명은 사라지고 수많은 이들이 죽을 것이다.
‘내가….’
손에 든 가지를 바라보았다. 이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과연 그런 힘을 가지고 있을까?
모르겠지만 이제 거의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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