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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마켓-192화 (192/277)

#192화

【물 폭탄 드링크: 반경 10미터에 홍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드링크까지 써야 했다. 놈을 막으려면 이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순 없었으니 물을 선택했는데 혼란을 틈타 몇 번의 공격도 성공한 것 같았다. 내 화살은 물살의 영향을 받지 않는 효과가 있었다. 그걸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지만, 어느 정돈 먹혔다.

“괜찮아?”

벌컥 연 문 안으로 예원이와 일행이 보였다.

“뭐였어?”

“불이 났나 봐. 스프링클러가 작동한 것 같은데 이제 괜찮아. 나와도 돼.”

“불?”

“불이 났다고?”

문틈으로 물이 흘러들어오긴 했다.

“어서 가! 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을지도 몰라!”

내 외침에 매니저가 서둘러 예원이와 채린을 챙겼고 스타일리스트 같은 스태프들도 겁에 질려 뛰었다.

“민준아! 너는? 같이 안 가?”

“난, 누나 찾아야 돼!”

“아직도 못 찾은 거야?”

“먼저 가! 연락할게!”

물로 한차례 청소했다지만 아직 놈이 남아 있었다. 예원이부터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야 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꺄아아아아아!

-빨리 나가자!

-불이 났대!

객석에서도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는지 소란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일이 이렇게 크게 번질진 몰랐지만 ‘그놈’이 나타났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민준아!”

뒤에서 도화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뻑 젖은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네가 했어?”

“네! 그놈이 왔어요! 피의 주인! 어쩔 수 없었어요!”

“헙…!”

“우태 형은요?”

“몰라!”

그런데 저쪽 바닥에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아이템이 왜?’

어찌나 오색찬란하게 빛이 나는지 도무지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디가? 민준아!”

“잠깐만요!”

그쪽으로 급히 뛰어가서 돌을 잡았는데 순간적으로 벼락을 맞는 줄 알았다. 너무 놀랐다는 얘기다.

【엘프의 가지를 획득했습니다.】

【엘프의 가지(신물)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다.】

“커헉?”

“왜! 뭔데 그래?”

“가, 가지를….”

“어? 뭐라고?”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

【난입 장소로 돌아가면 본래의 위치로 귀환할 수 있습니다.】

맙소사! 그놈이 가지를 떨군 건가?

“가지를 찾았어?”

“이, 일단 우태 형 찾아서 빨리 나가요!”

그놈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여길 떠야 했다. 가지가 없어진 걸 알면 눈 뒤집혀서 무슨 짓을 해댈지 몰랐다.

“전화해볼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가까운 출구를 향해 뛰면서 외쳤다.

“밖으로 오라고 해요!”

“알았어!”

이런 기연이 다 있나? 하지만 여기서 탈출하지 못하면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재수가 더럽게 없는 거였다. 줬다가 뺏는 게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 아니던가?

‘무조건 튀어야 해.’

놈에게 발각되면 아주 큰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팍팍 드는 순간이어서 전력으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오빠! 어디에요? 아, 그러면 밖에서 만나요! 빨리요!”

다행히 통화가 연결된 것 같았다.

“누나! 그냥 형한테 택시 타고 아까 거기로 오라고 하세요! 우리 먼저 가요!”

“아까 거기?”

“그 빌딩이요!”

“알았어!”

기다리다가 오라는 우태 대신 피의 주인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최악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엄청난 인파가 밖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누나! 저쪽으로!”

굳이 문으로 갈 필욘 없었다.

“응!”

담장 쪽으로 가서 범이를 가방에서 꺼냈다.

“범아!”

내 뜻을 이해했는지 순식간에 본 모습을 회복한 범이의 등에 나와 도화지가 올라타는 순간 훌쩍! 범이가 담장을 넘었다. 그리곤 착지하는 순간 오토바이로 변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는데 도로는 꽉 막혀있었지만, 오토바이는 요리조리 움직일 수 있었고 잠실을 벗어나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형은요?”

“막 나와서 지하철 탔대!”

이 시간이라면 지하철이 더 빠를 수도 있겠다.

“냄새나요?”

“아니!”

그놈이 붉은 안개로 우릴 추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긴장을 풀지 않고 계속해서 나침반을 확인했다. 바늘이 조금씩 움직이는 게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범아! 저쪽으로!”

미션 자체가 가지 회수였고 어떤 방법으로든 가지만 가져가면 되는 일이었다. 만약 피의 주인을 사냥하란 미션이었다면 몇 년이 걸려도 어려웠겠지만 가지만 손에 넣는 건 어찌어찌 되어버렸으니 이제 복귀만 하면 된다.

“누나.”

“응?”

“마셔요.”

빌딩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가방에서 드링크를 꺼내 도화지에게 주었다.

“이게 뭔데?”

“은신 드링크요.”

그놈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서 뭐라도 해야 했다.

“반만요. 하나밖에 없어요.”

“응.”

드링크를 나눠마시자마자 나는 범이를 가방에 넣고 빌딩을 향해 걸어갔다. 김우태가 오면 저 빌딩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까 일이 있어서 그런지 빌딩은 완전히 폐쇄돼 있었는데 불 켜진 창문이 하나도 없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김우태가 나타났다.

“야!”

그가 반갑게 웃으며 달려오자 나는 곧장 빌딩으로 뛰어가며 외쳤다.

“시간 없으니까 가면서 말할게요!”

“너넨 어디 있었어?”

도화지가 대신 말했다.

“가수 대기실에요!”

“…설마 채린이 대기실 말하는 거냐?”

“네!”

“허어어억?! 나는?”

“뭐가요?”

“나는 왜 빼놓고 너네만 거길 갔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도망쳐야 해요!”

“아아악! 채린이! 채린이이이!”

“아! 쫌!”

도화지가 김우태의 멱살을 잡고 질질 끌었다. 나는 그사이 빌딩으로 접근해 아이템을 꺼냈다.

【마스터 키를 사용합니다. 모든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습니다.】

이건 사기 아이템이나 다름없었다. 하층에선 최첨단 자물쇠가 별로 없어서 그닥 쓸 일이 없었지만 현실에선 세상 모든 도둑이 간절히 바라는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열렸어요! 어서요!”

로비를 뛰어가면서 엘리베이터로 곧장 향했다.

띵!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활을 꺼내 CCTV를 부쉈다. 그런데….

“아아앗?”

문이 닫히기 직전에 로비로 몰려드는 붉은 기운을 보고 도화지가 뾰족하게 소릴 질렀다.

“따라왔어!”

그나마 다행인 건 문이 닫히며 엘리베이터가 상승했다는 것이었고 불행인 건 놈의 등장에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떡하지?”

“빨리 도망가야죠!”

엘리베이터가 쭉쭉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띵!

목적지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는데 그놈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가슴이 쫄깃하게 오므라드는 기분이었지만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며 우린 복도로 뛰었다.

‘거의 다 왔어!’

놈이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거나 다른 엘리베이터를 탔다면 우리보다 빠를 순 없을 것이다.

‘됐다!’

대표이사실이 보이자 긴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미 문은 박살 나 있었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막 방향을 틀어 안으로 들어가는데 도화지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 있잖아!”

저쪽 끝에 균열이 보였다. 그런데 방의 중앙에 그놈이 서 있었다.

휘이이이잉.

깨진 외벽 창에서 바람이 들어왔다.

‘저쪽으로 들어온 건가? 제기랄.’

놈이 우릴 보며 피식 웃었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군.”

그가 신기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너희는 이걸 언제든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어디로 연결되지?”

“그걸 내가 대답할 의무라도 있어?”

그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우선 손가락을 하나 뽑을 거다. 열 개가 다 뽑히면 그다음엔 팔을 뽑을 거고 그래도 입을 열지 않으면 발가락으로 간다.”

태연하게 말하는 저 말이 거짓으로 들리지 않았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내놔.”

역시 가지가 없어진 걸 알고 죽도록 쫓아온 거다.

“너희 같은 잡것들은 가져봐야 쓸모도 없는 물건이다. 괜히 죽음을 재촉하지 마.”

“돌려주면 살려주기라도 하려고?”

“누구 밑에서 일하지? 내게 온다면 나를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마. 나쁜 조건은 아닐 거야. 이 세상을 지배할 날이 머지않았으니까.”

도화지가 움찔했다.

“히익! 깨물려고 그러지? 이 흡혈귀가! 어디서 수작을 걸어?”

놈이 움찔하며 입술을 닫아 송곳니를 감췄다. 정곡을 찔린 모양이다.

‘….’

‘가지는 흘렸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처럼 재능마켓 창고에 넣어두면 절대 떨어뜨릴 일이 없었겠지만, 놈은 물살에 휩쓸리는 와중에 화살까지 맞았으니 경황이 없었을 거다.

‘정면승부로는 승산이 없어.’

미션만 생각하자. 오늘 우리가 할 일은 피의 주인과 싸우는 게 아니었다.

내가 가방에 손을 넣었다. 양손에 하나씩 물건이 잡혔다. 가지를 꺼내 뒤로 숨겼다. 다른 손에 쥔 것을 보지 못 하게 하려고 몸을 조금 틀었다.

“잘 생각했다. 내가 너희를 특별히 거둬주는 걸 영광으로 생각해라.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런 자비를 절대 베풀지 않았을 것이다.”

거만하게 말하는 녀석을 향해 내가 가방에서 꺼낸 걸 획! 던졌다.

“민준아! 안돼! 그러지 마!”

도화지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입을 헙! 다물었다. 내가 던진 게 가지가 아니라 드링크라는 걸 본 것이다.

“뛰어요!”

내가 말하는 동시에 드링크에서 불길이 터져 나왔다.

【불바다 드링크: 반경 10미터에 불길을 일으킬 수 있다.】

【드링크 효과가 사용자의 파티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 이이이이! 이이이이이놈! 크아아아아아!”

피의 주인이 불길을 버텨보려고 했지만 ‘불바다’의 위력은 가공할만한 것이었고 순식간에 화라라라라락! 방안을 가득 채우는 것도 모자라 창문과 문밖으로 불길이 넘실거렸다.

우린 이 틈에 균열로 달려갔다.

‘신기해.’

온통 불바다인데 뜨거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전부 다 불타고 있는데 우린 머리카락 한 올조차 그을리지 않았다.

“와하하하하! 꼴좋다!”

김우태가 크게 웃어 재꼈다. 피의 주인은 창문 밖으로 쓸려나갔는데 내가 균열에 닿자마자 메시지가 울렸다.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

갑자기 바뀐 풍경에 나는 침을 겨우 삼켰다.

“하아, 하아, 하아.”

얼마나 긴장했는지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여기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꿈에도 몰랐네.”

도화지가 말했다.

우린 피라미드에 와있었다. 이어서 김우태까지 나오자 균열이 닫혔다.

“나이스! 미션 성공! 와하하하하!”

고작 하루도 안 돼서 엄청난 일을 겪어버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온 정글이었는데 난입 미션으로 이어지고 피의 주인까지 마주쳤다. 결과적으론 예원이 콘서트도 봤고 가지도 찾아왔으니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었지만, 심장이 아직도 거세게 뛰는 걸 보면 그만큼 위험했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우린 해냈다.

【피라미드 내부를 수색하세요.】

애초에 받은 미션이 가지를 사용해 숲을 복원하라는 것이었다. 이 피라미드 안에 무언가 있으니 수색하라는 것이겠지?

“누나, 혹시 뭐 있어요?”

“전혀. 아무 냄새도 안 나.”

“좋아요. 흩어져요.”

피라미드는 엄청나게 크고 넓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하.’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었다. 갈수록 미션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 같아서 불안했지만 우린 이겨내고 있었고 이번 미션도 거의 다 끝나간다는 기분에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런데….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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