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콰앙!
“아아아악!”
광수대 대원이 날아가 처박혔다. 현장을 조사하던 사람들 대부분이 피습됐다.
“….”
남자는 짙은 안개 속에서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바라봤다.
“이런 마법도 쓸 줄 아는 건가?”
조금 지나면 없어지겠거니 했는데 자욱한 안개는 자신의 붉은 안개조차 덮어버렸다.
“뭐, 상관없겠지.”
비웃으며 그가 계속 걸어갔다. 경찰도 마주쳤지만, 그에겐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안개 덕분에 그의 움직임은 완벽하게 가려졌고 이곳의 경찰들은 웬만하면 총을 쓰는 일이 없었기에 너무도 쉬웠다.
“쯧, 허약한 것들.”
그의 뒤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주인님.”
“어떻게 됐어?”
“아직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잘됐군.”
피를 충분히 흡수하고 왔기에 아까완 전혀 다른 전투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경찰들이 계속 모이고 있습니다.”
“그건 네가 처리하면 되잖나. 경찰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놈들을 죽여야 돼. 이런 마법을 쓸 수 있는 놈들이야. 우리에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위협이 될 거다.”
“알고 있습니다.”
“로드나 퀸, 어느 쪽이 놈들을 부리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오기 전에 처리하고 떠난다.”
“네!”
태창 바이오 대표가 안갯속으로 사라지자 사내는 좀 더 걸어 안쪽으로 향했다. 이제 주차장엔 선 사람이 없었다. 그의 손에 수많은 이들이 희생된 것이다.
그러나 이건 시작이었다.
“인사를 할 땐 확실히 해줘야겠지.”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감히 먼저 건드리다니! 누군지 모르겠지만 산채로 가죽을 벗겨주겠다고 생각한 그가 복도로 진입했다.
스윽.
그의 손이 움직이자 붉은 안개가 자욱하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CCTV가 무용지물이 되고 붉은 안개는 살아 있는 것처럼 영역을 넓혀갔다.
마침내 그가 하얀 안개를 완전히 벗어나자 세상은 온통 붉은빛으로 변했다.
‘저런 마법이라면 로드 쪽이 더 가깝겠군.’
안개는 뱀파이어 일족이 즐겨 쓰는 마법이었는데 몸을 박쥐로 변하게 하거나 어둠 속에 자취를 숨기는 것 같은 고위 마법은 백작급 이상에서도 몇몇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까다로운 권능인데 놈들이 비슷한 걸 사용한다면 쉽게 볼 것들은 아니란 뜻이었다.
-헛? 갑자기 뭐야?
-안개 같은데?
-이런 빨간 안개가 세상에 어디 있어? 화학약품이라도 터진 거 아니야?
저쪽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안요원들은 당황해서 이런저런 얘길 하고 있었는데 사내가 그들을 향해 느긋하게 걸어가서 간단하게 쓰러뜨렸다.
퍽, 퍽퍽.
그의 손이 닿을 때마다 가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은 그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 단단한 벽도 부숴버릴 수 있는 강인한 힘은 연약한 인간의 뼈를 쉽게 부러뜨렸다.
“허억….”
안갯속에서 사내를 마주치면 그 순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지나는 길엔 수많은 사람이 쓰러지고 있었고 붉은 안개는 더욱 영역을 확장했다.
-대장님!
-무슨 일이야?
-모르겠습니다! 안개가 짙어졌는데 저쪽으론 보이지가 않습니다!
-누가 수작 부리는 거 아니야?
-그리고 대원들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어디 대원들?
-현장 조사하던 쪽입니다!
-이런 염병! 히트맨이 움직인 거 아니야?
사내는 스산하게 웃으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붉은 안개는 그의 분신이자 마찬가지라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시야가 가리겠지만 그는 선명하고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귀찮은 놈들.’
저들도 경찰인 것 같았다. 사내는 광수대에 다가가 팔을 휘둘렀다.
“누, 누구…?”
윤일권의 눈이 급히 뜨였을 때 이미 사내의 손이 그의 가슴을 때리고 있었다.
후욱!
뒤로 몇 미터는 날아가 벽에 처박힌 윤일권이 축 늘어졌다. 근처의 대원들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손을 쓸 수 없었다.
“헉?”
“누가 있다!”
“조심해!”
가죽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나자 광수대 대원들도 긴장했지만, 사내를 막을 순 없었다. 엄청나게 빨랐고 강했으며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다.
“끄륵….”
턱을 얻어맞은 서현덕 팀장의 눈이 까뒤집혔다. 뇌가 흔들린 거다.
“한심하군.”
서현덕 팀장의 손엔 총이 들려 있었지만 쏴보지도 못하고 당했다. 사내는 그걸 보며 웃은 것이다. 저렇게 좋은 무기가 있으면 뭘 하나? 사용도 못 하는 무용지물인데.
그의 얼굴이 스윽 돌아갔다.
인기척이 느껴진 거다.
“왔느냐.”
여자가 나타났다. 먼저 이쪽으로 보낸 뱀파이어 중 하나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무릎을 꿇는 그녀를 보며 사내가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어찌 됐느냐?”
모르겠다는 듯 고갤 흔드는 그녀를 보며 사내는 이마를 찌푸렸다.
“전부 당한 것은 아닐 텐데.”
놈들을 얕잡아본 걸까?
“가자.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여자가 그의 곁에 서자 사내는 좀 더 걸음을 빨리했다. 아직은 힘을 다 되찾지 못해서 백작급 뱀파이어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백작급이 되면 살아생전 기억도 모두 지닐 수 있고 인간과 똑같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으면 말도 할 수 있었다. 그런 부하를 사회 요직의 사람들로 전부 대체하면? 그때부터는 이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퍽, 퍼억! 퍽!
마주치는 사람들이 전부 쓰러졌다. 그런데 이때 무언가 빠르게 그를 향해 날아왔다.
“…?”
휙! 고갤 옆으로 피했다. 그의 볼에 가느다란 실핏줄이 맺혔다. 화살의 촉이 피부를 할퀸 것이다.
“여기 있었군?”
저 끝에 활을 든 녀석이 보였다. 그런데 놈이 휙! 사라져 버렸다.
여자가 움찔하자 사내가 말했다.
“놔둬. 다시 나타날 거다. 놈들의 수작에 놀아나지 마라.”
하나하나는 약해 보여도 저놈들이 뭉치면 제법 쓸만한 싸움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까처럼 당하진 않겠지만 조심할수록 좋았다.
-오늘은 마지막 무대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시끄럽군.”
노래하고 춤추는 게 뭐 그리 좋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나.
“쯧쯧.”
노예를 통제하려면 공포만으론 부족하다. 계속 억누르면 인간이란 것들은 언제고 터져 버린다. 그래서 문화나 종교가 필요하다. 기댈 것을 줘야 희망을 품고 죽을 때까지 의지한다. 그걸 알고 있기에 그는 애써 함성 소릴 무시하며 계속 걸었다. 그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수상한 놈들을 죽이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인간 세상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몇몇’을 데려가 자신의 수하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시간을 조금 들이면 ‘백작’을 만들 수 있으니 쓸만한 부하를 길러내야 했다.
‘저긴가?’
통제구역이 보였다. 그 앞을 지키는 건장한 남자들도 눈에 띄었다.
-VIP는?
-다들 무사하대!
-아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전혀 안 보이잖아!
-공연이 거의 다 끝났어. 10분 후에 이동하자. VIP부터 모셔.
앙코르곡까지 해도 길어야 10분이었다. 보이는 게 없더라도 벽을 더듬으며 주차장까지만 빠져나가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이 사내가 나타나기 전에 해야 했다.
“어억?”
사내가 보안요원의 목을 손으로 잡았다. 꽈악 조이자 비명도 못 지르고 얼굴이 붉게 변해버렸다.
휘익.
보안요원을 벽으로 던져버리고 사내는 더 걸어갔다. 그러자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민?’
출연자 이름이 써진 문을 보면서 그가 지나쳤다. 어떤 가수가 유명한지 소상하게 알진 못했지만 이왕이면 여자가 좋다. 게다가 지금은 별 게 아니라고 해도 태창 바이오가 지원해준다면 인기를 끄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이 공연장에까지 왔다는 건 그만한 매력이나 끼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가 더 걸어갔다.
‘도망쳤나?’
아까 그 활잡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갑자기 경보가 울렸다. 복도의 스피커로 요란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화재경보기가 작동한 것이다.
-아아아앗? 뭐야?
벌컥, 벌컥 열리는 문. 복도로 나온 매니저나 사람들이 붉은 안개를 보며 기겁했다.
-불이다!
-진짜 불이 났어!
-꺄아아아아! 어떡해!
붉은 안개를 연기로 오인한 사람들이 발칵 뒤집혔다. 본래 안개는 탁한 회색이거나 흰색이지만 공황에 빠진 사람들에겐 안개나 연기나 매한가지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가야 돼!
-빨리, 빨리!
-차로 가자! 현민아! 어서!
하지만 복도로 나왔다고 해서 이동이 쉬운 게 아니었다. 보이는 거라곤 온통 붉은 안개뿐이라 화재의 공포를 실감하면 사람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한다.
“이런….”
당황한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니 그로서도 처리가 곤란해져 버렸다.
PD 하나가 허둥지둥 사내 쪽으로 뛰어왔다.
퍽!
파리 쫓듯 휘두른 그의 팔에 PD가 나가떨어졌다.
“귀찮게 됐군.”
빨리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더 앞으로 향할 때였다.
솨아아아아아아아!
“…?!”
저 앞에서 뭔가 거대한 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그건 복도를 가득 채울만한 물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
실내 수족관이 터지면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흡!”
물은 파도처럼 밀려와 그를 덮쳤는데 엄청난 수압에 떠밀릴 수밖에 없었고 몸의 균형 또한 흔들려버렸다. 하지만 문젠 물이 아니었다.
사아아아아아아악!
물속에서 날아온 빠른 화살 하나!
“…하?”
그게 정확히 가의 배에 박혀 들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물속에선 화살이 힘을 쓸 수 없다.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화살은 공기 중에 쏜 것처럼 전혀 물살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두 번째 화살 역시 그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슈우우우우욱!
강력한 물 더미에 섞여 날아온 화살은 그조차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이대로 버티다간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몸에 힘을 풀어버리며 물살에 몸을 맡겼다.
휘리리릭!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붉은 안개처럼 픽! 사라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물은 탈출구를 찾아 움직였다. 주차장으로 쏟아졌고 운동장으로도 밀려갔다.
-꺄아아아아아아!
-뭐야!
공연이 중단됐다.
-불났대!
-뭐?
-아아아아악! 나 수영 못해! 도와줘!
운동장으로 떠밀려온 물이 잔디를 덮어버렸다. 쓰나미처럼 한차례 덮친 물은 주차장으로 대부분 흘러나갔는데 밖에서 폴리스 라인을 치던 경찰들도 날벼락을 맞았다.
-허억?
-물이다!
‘불이야!’라는 말은 익숙해도 물을 보며 이렇게 놀라는 일은 극히 드문 것이었다. 물살이 어찌나 세면 주차된 차까지 밀려왔다.
하지만 물의 양은 정해져 있었고 그렇게 한차례 폭풍처럼 휘몰아친 물은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사라져갔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물폭탄에 인근 도로가 마비되어버렸는데 퇴근 시간까지 겹쳐 일대가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물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경기장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불에, 물에….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콘서트장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막아!
-저걸 다 어떻게 막습니까!
-밟혀 죽어요!
경찰이 노력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거다. 5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는데 무슨 수로 막나? 게다가 모두 이성을 잃었으며 물이 한차례 쓸고 가서 통제선도 없어졌다.
-젠장! 뭐라도 해봐!
경찰들의 안타까운 외침만 경기장 주변을 떠돌았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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