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마켓-190화 (190/277)

#190화

‘어쩌지?’

들어갈까? 망설이는데 천사가 나타났다.

“민준아!”

도화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누나! 빨리요!”

내가 급히 말하자 도화지가 더 속도를 내더니 화장실로 쏘옥 들어갔다.

“….”

잠시 후 안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머릴 산발한 도화지가 걸어 나올 때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있었어요?”

“응! 잡았어!”

“오….”

도화지도 선수 다 됐다.

“사람들은 괜찮아요?”

“조금 물렸는데 죽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네요. 누난 얼마나 잡았어요?”

“방금 거 까지 둘!”

“그러면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같이 가요.”

“나는 그러면 좋지!”

여자 화장실 같은 곳은 내가 못 들어가니까 도화지가 함께하는 게 좋았다.

우린 수색을 계속했다.

“근처에 있으면 냄새가 나거든? 그래서 아까 그 녀석도 찾을 수 있었고.”

“잘됐네요. 지금은요?”

“아직이야. 저쪽으로 가보자.”

“네!”

하지만 복도엔 뱀파이어가 더는 없었다. 객석 쪽이나 무대 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어디로 가지?’

양방향 다 사람들이 많을 거다.

그런데 이때였다.

“누나, 잠깐만요.”

저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경찰인가?”

“그런 것 같아요.”

출연자 대기실로 향하는 곳, 남자들이 득실거렸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어요. 빨리 처리하고 나가죠.”

“응.”

우린 객석을 향해 서둘러 걸었는데 김우태를 만났다.

“오! 너희들! 함께 있었네?”

“형! 얼마나 처리했어요?”

“하나! 더는 안 보이더라고.”

그러면 이제 많아 봐야 한둘이 남았다.

“무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쪽으로 가죠. 가까이에 있으면 누나가 찾을 수 있어요.”

“좋아!”

“경찰 왔으니까 빨리 나가야 해요.”

“경찰?”

“네.”

마음이 급해졌다. 뱀파이어를 처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우리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려면 경찰에 노출되어선 곤란했다.

사람들을 피해 무대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콘서트 열기는 더욱 고조되어서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때 김우태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아아아….”

무대에 두 사람이 나왔다.

조명이 바뀌고 채린과 예원이가 무대 앞에 서서 노랠 준비하는 게 보였다.

“…아아아아아!”

김우태가 괴상한 소릴 내면서 무대를 바라보자 나는 머릴 절레절레 흔들며 도화지의 등을 두드렸다.

“가요. 형은 따라올 거에요.”

“쟤들이야?”

“네, 지금은 하늘이 무너져도 형은 안 움직일 거에요.”

“으휴! 쟤들이 뭐라고! 오빠도 참!”

“이해해줘야죠. 진심인데.”

“쳇, 저렇게 반반해도 똥 싸고 코 파고 방귀 뀌고 할 거 다 하거든?”

“…알고 싶지 않네요.”

“히히! 진짠데? 더 말해줄까?”

“싫다니까요.”

무대를 힐끔거리며 빙 돌아 그쪽으로 걸어가는데 노래가 시작했다. 다른 무대들에 비해 함성은 크지 않았다.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진 메인 가수들이 아니라 이제 막 데뷔한 듀엣이기에 ‘저 애들은 누구야?’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힘내, 예원아.’

요즘 내가 워낙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거리감이 생기긴 했지만, 마음속으론 예원이가 잘하길 응원했다. 하지만 지금은 음악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누나, 없어요?”

“어, 저쪽으로 가봐야겠는데?”

무대를 손으로 가리키는 도화지를 보면서 나는 계속 움직였다. 그렇게 우리가 무대를 가까이 바라보고 있을 때 예원이의 노래도 끝이 났다.

‘잘하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실수도 하지 않고 멋지게 마무리한 예원이를 보면서 내가 웃을 때 도화지가 말했다.

“저긴가 봐!”

“냄새나요?”

“희미하지만 맞아.”

“음….”

무대 주변으론 통제하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는데 저들을 뚫고 가는 건 힘들어 보였다.

“내가 다 때려눕힐까? 그사이에 들어갈래?”

“그게 말이 돼요? 저분들 누나 망치에 맞으면 죽어요.”

“…그런가?”

도화지는 아직도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지이이잉.

핸드폰이 울었다.

김우태인가? 라는 생각에 핸드폰을 꺼냈는데 메시지가 와 있었다.

-고마워.

예원이었다.

-힘들었을 텐데 가까이에 왔네.

어라? 날 본 건가?

-이제 끝이야?

-우리는 끝났는데 소속사 선배님들 다 끝나면 같이 갈 거야.

-그래? 그러면 이제 뭐 하는데?

-왜?

-아니 그냥….

-잠깐만.

핸드폰을 보면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답장이 왔다.

-대기실로 올래?

-그래도 돼?

-응! 채린 언니가 괜찮대. 매니저 오빠 보낼게. 어디 있니?

내 위치를 말해주자 도화지가 물었다.

“뭐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오! 민준이 능력잔데?”

다 뒤져도 뱀파이어를 찾을 수 없다면 놈이 숨을만한 곳은 이제 한정적이었고 지금부터는 속도전이었다. 아까 그 경찰들이 죽은 뱀파이어들을 발견했다면 골치 아파질 것이 분명했다.

‘재료 수집망을 쓸 걸 그랬어.’

워낙 정신없이 움직이는 탓에 일일이 사체를 수거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됐다. 지금부터라도 시간을 내서 흔적을 지워야 할 것 같았다.

10분쯤 지났을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네가 도민준?”

“네!”

“둘이네?”

“넵!”

“흐음. 따라와.”

목에 거는 스태프 증명을 하나밖에 가져오지 않았던 매니저가 우릴 일단 대기실로 이끌었다. 그러면서 도화지를 힐끔힐끔 봤다. 도화지는 본래 예뻤었다. 그런데 매력까지 덕지덕지 발라져 있으니 자연스럽게 빛이 난다.

‘냄새나요?’

‘조금.’

도화지가 코를 킁킁대자 매니저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말 없이 대기실까지 걸어갔다.

문이 열렸다.

“민준아!”

밝게 외친 건 예원이가 아니라 채린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다! 야!”

반갑게 맞이하는 채린을 보며 도화지가 고갤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근데 저 잠시 화장실 좀….”

매니저가 고갤 끄덕이며 목걸이를 줬다.

“이걸 차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거야. 혹시 길 잃으면 대기실 번호 물어보면 돼.”

“네! 감사합니다!”

도화지가 나를 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자기가 대기실 쪽을 뒤져보겠다는 신호였다.

“쟨, 누구?”

“같이 알바 하던 누나예요.”

“데이트 온 거야?”

“에이, 그럴 리가요.”

채린이 흐음,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요즘 어떻게 지냈어?”

나, 아직 예원이랑 인사도 못 했거든?

“늘 똑같죠. 공부하고 알바하고.”

내가 말을 하며 예원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나와 예원이의 시야를 채린이 스윽 몸을 움직이더니 막아버렸다.

와, 얘는 아직도 이러고 사는 거냐. 사람 참 안 변한다.

“무대 어땠어?”

“멋있었어요.”

“그치? 호호호! 내가 봐도 잘했다니까?”

예원이만 보이던데….

“뭐 마실래?”

“네. 아무거나요. 감사합니다.”

채린이 냉장고로 걸어가는 틈을 타서 내가 예원이에게 걸어갔다.

“이제 한가해져?”

“모르겠네. 더 바빠질 수도 있고 며칠은 쉴 수 있을지도 모르고.”

“틈틈이 쉬어가면서 해.”

“노력 중이야.”

“잠은 잘 자?”

“응. 누우면 기절해.”

아무렇지 않게 예원이와 대화 중이었지만 머릿속엔 뱀파이어가 가득했다. 그 괴물이 이런 대기실로 난입하면 대참사가 벌어질 거다.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찾아야 했는데 도화지에게만 맡겨두고 시시덕거리기엔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민준아.”

“응?”

“사진 찍을래?”

예원이가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진?”

“기념이 될 것 같아서….”

“그래. 그러자.”

내가 웃으며 걸어가자 채린이 냉큼 다가왔다.

“나도! 나도!”

나를 중심에 두고 두 사람이 바짝 붙었다. 막 무대를 끝내고 와서 그런지 둘의 몸에선 아직도 열기가 가득했다.

“이리 줘. 내가 찍어줄게.”

내가 핸드폰을 들고 팔을 뻗자 매니저가 다가와 내 폰을 받았다.

“찍는다.”

“오빠, 많이 찍어줘요. 꼴랑 한 장 찍지 말고.”

“알았어. 네 위주로 찍을게. 눈 감지 마.”

“역시 우리 오빠네!”

평소에 얼마나 구박을 당했으면 매니저까지 채린에게 완전히 맞춰져 있었다.

새액, 새액.

예원이의 숨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내 팔을 꼭 잡았다.

“웃어!”

매니저의 말에 예원이가 맑게 웃었는데 나는 이 와중에도 머릴 굴렸다. 도화지가 화장실 카드를 썼으니 나는 뭘 하면 자연스러울까?

‘머리야, 돌아라. 좀!’

매니저가 10번 넘게 사진을 찍었고 도화지는 핸드폰을 뺏어서 한참을 보더니, 만족한 듯 웃었다.

“나는 이거 보내줘.”

자기가 가장 예쁘게 찍은 사진을 내밀며 내게 말했다.

“아, 네.”

논은 핸드폰을 보고 있지만 머린 계속 돌아갔다.

‘핑계를 대야 하는데….’

막 예원이와 채린에게 사진을 전송했을 때였다.

쾅쾅!

노크라고 하기엔 과격한 소리가 문에서 들려왔다.

매니저가 고갤 갸웃하면서 문을 열자 사내들이 서 있었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확인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무슨 일인데요?”

“그냥 출연자와 스태프만 확인하면 됩니다.”

“저흰 아무 일 없는데요?”

경찰 두 사람과 보안요원 하나였는데 대기실이 크지 않았기에 문만 열면 내부가 훤히 보였다.

“그렇군요. 협조 감사합니다.”

다들 아무렇지 않을 걸 봤는지 문이 닫혔는데 내가 말했다.

“경찰이 왜….”

매니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주 있는 일이야. 스토커가 붙는 경우도 있고 테러 위협도 종종 하거든. 가수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아니라서 고깝게 보는 사람도 많아.”

“…혹시 저도 그 목걸이 하나만 빌려주실래요? 누나가 너무 안 와요.”

“아….”

“제가 데려올게요. 경찰들도 돌아다니는데 괜히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알았다. 가봐.”

여분의 목걸이를 받고 예원이를 보며 말했다.

“오늘 진짜 멋있었어!”

“응! 고마워!”

채린이 고갤 갸웃했다.

“왜 그래? 다시 안 올 사람처럼?”

이상한 곳에서 감이 좋네.

“하하!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저쪽을 보니 경찰이 다른 대기실을 탐문하고 있었다.

‘뱀파이어가 이 근처에 있다는 걸 경찰도 아는 건가?’

저들이 뭘 아는진 모르겠지만 마주쳐서 좋을 게 없었다. 그렇지만 이젠 피할 생각도 없었다. 내겐 프리패스가 있었다.

성큼성큼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화지는 어디로 갔을까? 화장실부터 뒤졌으려나?

‘공연이 끝나기 전에 잡아야 하는데.’

콘서트가 끝나면 수만 명이 한꺼번에 밖으로 나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그 난리 통에 뭘 할 수도 없을 것이었다.

‘화장실이다.’

도화지는 남자 화장실을 못 들어갔을 테니 내가 확인해야 했다.

‘없어.’

안으로 들어갔지만 깨끗했다. 청결 상태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괴물이 사람을 해쳤다면 어떤 미묘한 흔적이라도 남았을 것이었다.

‘좋지 않은데.’

이렇게 은밀한 곳이 아니라면 놈이 향할 곳은 ‘방’밖에 없다. 설비실이나 창고 같은 곳으로 숨어들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유명한 가수라도 놈에게 물리는 날엔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힐 것이었다.

‘미치겠네.’

제발 그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 때문에 걸음이 더 빨라졌는데 거의 뛰다시피 사람들을 지나쳤다.

‘누나는 어디 있지?’

전활 걸어볼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이상한 예감에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어?”

바늘이 움직였다.

재능마켓

지은이 : HAKA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839-322-6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

0